은혜가 먼저인가, 능력이 먼저인가?
물론, 은혜가 있어야 능력이 있고 능력이 있음은 곧, 은혜라고 말하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능력보다는 은혜를 먼저 구하는 것이 지혜다.
은혜가 있음으로 곧, 주안에서의 내가 누구인지( identity)를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다. 고귀하고 특별난 사람으로 나를 만드셨고 나와 같은 이는 세상에 아무도 없음을 알기에 "상황과 환경을 초월하여"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은혜의 경지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나는 작아지고 주님이 크게 보인다. 모든 것을 주님의 눈으로, 마음으로 보게 된다. 그래서 주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믿음하에 내게는 두려움도, 실망할 일도 별로 없다.
반대로, 능력이 먼저 되면 어떤가? 모든 것이 자기 의(self-righteousness)로 돌아간다. 죄를 이기고 악을 멀리하게 되며 온갖 기적과 신령한 것을 행하는 능력이 곧, "내가 무언가를 잘 했기 때문에'라며 내 등을 토닥거리기 쉬워진다. 곧, "내가 했기 때문에" 나머지 것 또한 내 힘을 의지해야만 한다. 자연히 그리스도에게서는 멀어지는 것이다.
주님은 이런 까닭에, 우리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을 최고 계명으로 주신 것이다(막 12:30). 하나님만을 사랑하며 오직 주만을 바라볼때 믿음에서 이탈하지 않고 계속해서 주님만을 의지하며 걸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부어주시고 그로 말미암아 아 능력은 자동적으로 따라오기 마련이다. 은혜를 전심으로 구할 때, 예수님을 닮아가고 싶어진다. 하늘나라만을 사모하며 달려가는 힘을 얻는다. 은혜는 나를 핍박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게 한다. 세상에서 따돌림 받을지라도 주님만은 나를 인정해 주심을 아는 것, 그래서 내 안엔 그 어떤 환경도 좌지우지 할 수 없는 기쁨이 있다. 고난이나 연단속에서 괴로와하기보다는 주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실 거라는 확신과 믿음이 있다. 이런것은 오직 은혜로만 가능하다.
오직 능력에만 촛점을 맞춘 사람은 능력의 있고 없음에 그 믿음이 집중되어 있다. 죄를 이기는 것 조차가 능력이고 그런 능력은 은혜로 말미암는다고 입술로는 시인하면서도 가슴 한구석이 말씀으로 목마르기보다는 예언이나 기적행함같은 신령한 것을 은근히 바라고 기대하는 부류이다. 신령하게 보이나 열매가 없고 성서밖을 벗어나 자기중심의 사역하는 이들을 보았는가? 이들을 추종하며 오직 신령한 것만을 보기 원하는 이들 또한 본 적이 있을 것이다.이들중 상당수의 사람들은 처음에는 바른 신앙이었던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자기가 우상화 되다시피하면서 능력의 올바른 범주를 벗어난 것이다 .
온갖 이적과 기사를 행한다한들 "나는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며 "그 날에' 주께 외면당할 수도 있음을 이미 경고하셨음을 기억하자(마 7:23)
기독교는 능력행함에 있지 않고 주님을 알아가는 것에 그 진정한 의미가 있음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