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토론 및 감상

Re:믿지 않으면 역사도 전설일 뿐입니다.

작성자J.J맹덕|작성시간05.12.13|조회수39 목록 댓글 0


한단고기가 모두 날조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현재 실증사학에서는 사료를 검증하기 위해서는

동시대 기록과 유물 및 유적 등을

통한 고증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단고기는 시대를 감안해 볼 때

상식적으로도 받아들일 수 없는 기록들이 있을 뿐

아니라, 출전조차 불분명해 역사서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단고기는 하나의 자료일 뿐입니다.

모두 진실이라고도, 모두 거짓이라고도 할 수 없는

아직 검증되지 않은 하나의 자료일 뿐입니다.

일왕만세일통설과 임나일본부설이 적힌

한단고기와 맞먹는 판타지 소설 일본서기도

사료로서 인정받고 있습니다.

제가 비록 역사학에 대해서 아는 것은 없지만,

실증사학이 식민사관의 명분이 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 일본 서기가 사료는 맞습니다. 그러나 1차 사료로 인정받는 건 아닙니다. 물론 일본에서 일부(아니 많은) 사학자들이 1차 사료라고 바득바득 우기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본 학자들의 주장이죠. 환단고기 역시 1차 사료는 절대로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환단고기의 경우는 작성 연대 마저도 불분명하기 때문에 (심지어 일제시대에 민족 사학자들 사이에서 만들어낸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있죠) 1차사료로써의 가치는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비슷한 입장이었던 규원사화의 경우는 숙종 시대에 편찬된 원본이 발견됨으로써 어느 정도 사료로써의 가치를 인정 받고 있습니다만,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이야기들이 많아서 역시 베이스를 깔아줄 1차 사료로써는 인정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일본서기나 환단고기나 사료로서의 가치는 '그 당시 시대를 바라보는 우리나라나 일본의 민족 사학자들의 사관' 정도 밖에는 없습니다. 환단고기가 일말의 진실을 포함하고 있기에 1차 사료가 될 수 있다면 그건 일본 서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 서기가 1차 사료가 아니듯이 환단고기도 아닙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삼국시대 다음에는 통일신라시대였습니다.

분명히 고구려 유민 대조영이 세웠다고

써놓고서 통일신라시대라고 정의해버리면

발해는 우리 역사가 아니라는 말이지요.

유득공은 사대주의가 팽배했던 조선시대에

37세의 나이에 '발해고'를 지어

발해는 우리의 역사라고 주장했는데,

200년이 훨씬 더 지나서도 제대로된 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우리 역사에서 아예 제외되어버린

채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학계에서 고구려관련 연구논문조차

거의 없는데 발해관련 논문은 말할 것도 없지요.

증거를 가지고 나와야 인정을 받는데,

가능성도 없는 발해를 증명하려고

러시아까지 가느니 차라리 자료 많은

신라사 연구하는게 훨씬 낫습니다.

그리고 이런 풍토 속에서 식민사관이

계속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발해 관련 논문 많습니다. 발해 관련 논문이 없다는 건 일부 재야학자들의 주장에 불과합니다. 다만 중국의 동북공정 같은 거 때문에 엄청나게 더딜 뿐입니다. 재야 아마추어 역사학자들의 판타지급 주장 처럼 단순히 어느 구절 하나만 있다고 해서 뭔가 베일에 가려진 역사가 드러나는 건 아니지요.

 

참고로 교과서를 제작하는 교수진은 지금에 와서 제대로 된 강단 사학자들 사이에서 인정 받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과거의 제작진이나, 개정판 제작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최근에 통일신라시대는 남북국시대로 이름이 상당히 많이 수정되었는데, 이러한 발상 역시 강단 사학계에서 먼저 나온 겁니다.

 

 

[네이버 백과사전] '고조선' 부분


...《삼국유사》에 나오는 단군신화에서는 기원전 2333년에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고 기술하였으나, 그대로 믿기 어렵다.

건국연대를 위로 끌어올린 이유는, 역사가 오래될수록 그 왕조는

권위가 있으며 민족도 위대하다는 인식의 반영에 불과하다.

고조선이 처음 역사서에 등장한 시기는 기원전 7세기 초이다.

 이 무렵에 저술된 《관자(管子)》에 ‘발조선(發朝鮮)’이 제(齊)나라와

교역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또 《산해경(山海經)》에는 조선이

보하이만[渤海灣] 북쪽에 있던 것으로 나타난다 ...

 

 

 

[네이버 백과사전] '박혁거세 신화'

 

이 신화가 수록된 문헌에는 《삼국유사(三國遺事)》 《삼국사기(三國史記)》

《제왕운기(帝王韻紀)》가 있는데, 《제왕운기》에는 짤막하게 언급되어 있어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 《삼국사기》에 실린 내용은 유교적 합리주의에

따라 기록한 것이므로 이에 관한 주요한 문헌은 역시 《삼국유사》를

제일로 칠 수밖에 없다.

 

 

 

색글 부분에서 실증주의사학이

얼마나 역사적 발견과 재해석의 여지를

막아서고 있는지 잘알 수 있을 것입니다.

'고조선' 부분에서는 삼국유사가 엉터리라

믿을 수 없다고 하면서 '박혁거세'에서는

정사인 삼국사기의 기록조차 부정하며

엉터리인 삼국유사를 제일로 보아 '신화'라고

하고 있습니다. 알에서 사람이 나왔다는 것을

믿으라는 것이 아니라 신화적 기록을 토대로

역사적 가설을 도출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서

열어놓아도 충분한데도 기록조차 부정하며,

모든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사가 아니라서 인정이 안된 자료를

정사가 부정확하다는 이유로 가져와서

사료마저도 전설로 못박아버리는 것입니다.

 

---> 삼국 사기의 기록을 전면 부정하는 건 재야학자들이지 강단 사학자들이 아닙니다. 물론 실증사학자=강단사학자는 전혀 아닙니다만. 그리고 고조선에 관해서는 '동시대(BC2333년)의 역사 중에 완전히 사실로 인정되는 역사는 거의 없다'는 말로 대신하겠습니다. 참고로 네이버 백과 사전에 언급된 관자는 잘 모르는 책이라 뭐라 말을 못하겠지만 산해경은 사료와는 거리가 먼 책입니다. 이건 일본서기나 환단고기보다도 더 역사적 가치는 없는 책이라는...... 저런 걸 근거로 대는 걸 보면 네이버 백과의 수준도 알 만합니다. 실증 사학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리고 실증 사학에서 고조선의 기원이 BC2333년은 아닐 확률이 높다는 주장은 여러번 봤지만 BC7세기로 못 밖는 경우는 별로 못 봤습니다.

 

그리고 요즘 시대에 순수한 의미의 실증 사학은 없습니다. 적어도 제가 읽고, 보고, 들은 한도 내에서 요즘 사학자 치고 정사가 아니라고 무조건 무시하는 경우는 못 봤습니다. 실증 사학도 많이 변했고(우리나라의 경우는 그 변화 자체가 늦긴 했죠), 현대의 실증 사학에서 '실증'의 영역은 정사에 한정된 게 아닌, 1차 사료를 포함한 광의의 사료를 다 포함하고 있는 겁니다.

 

 


물론 삼국사기가 정사라고 해도 모든 기록이

사실이라고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김부식이 표에서 쓴 것처럼 애초에

중국 사서를 자료로 썼으니 일치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앞서

지적했듯이 사대주의에 입각해서 왜곡하고

누락시킨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사대주의 보다는 유교주의적 관점에서 썼습니다. 사대주의적 관점이었다면 중국 내 세력의 침입을 격퇴한 고구려 장수들을 높게 평가했을 리가 없겠죠. 중국 사서를 자료로 썼던 건 삼국시대의 역사서 자체가 그다지 많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으로 추측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현동님이 말씀하신 '역사는 승자의 것'이라는 역사학계에서는 꽤나 보편적인 전제하에 왜곡, 누락이 있을 것이라는 데에는 웬만하면 누구나 동의하는 부분일겁니다.

 


한단고기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단고기에서 새롭게 발견된 기록 가운데

1%만이라도 사실로 밝혀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역사연구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한단고기를 역사서가 아닌

99%의 허구에 가린 1%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가능성의 하나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한단고기기도 최소한 삼국유사처럼

하나의 자료나 견해로서 받아들이면 되는데도

현 사학계에서는 금서처럼 여기는 이유는

한단고기가 기존의 역사연구와 배치되는 것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예 그 가능성 자체를 차단해버리려는

것으로 비춰질 수 밖에 없습니다.

 

---> 삼국유사와 환단고기는 사료적 가치가 같을 수 없습니다. 저자, 원본, 제작 연도 등이 비교적 확실한 삼국 유사와 그 존재 자체가 불분병한 환단고기는 같은 선상에서 논할 수 없는 사료입니다. 환단고기는 원본 자체의 존재 자체가 불분명한 책입니다. 상식적으로도 기원전 몇 천 년 대의 기록을 다루는 역사 책이 그렇게 구체적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환단고기를 실제로 보셨다면 그게 자료나 견해가 되기 힘들다는 걸 동의하시리라 생각해요. 그리고 강단 사학에서 환단고기를 아예 연구하지 않고 가능성을 무시한 건 아닙니다. 환단 고기에 대한 연구도 상당히 많았지만 우리나라 사학계의 고질병은 프로들이 입이 너무 무겁고 밝히는 데 게으르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음먹고 찾지 않는 이상 그 양반들 생각을 알기가 참 힘들거든요. 실제로 요즘 강단 사학의 주류는 과거 식민 사학자들로 불린 기존의 권위자들에 대해 굉장히 비판적입니다만, 그게 대중들에게 전달되는 경우는 거의 없죠. 그러니 여전히 식민 사학자들이 노교수로 남아있는 것만 보이는 거고 강단 사학 전체가 싸잡아서 욕을 먹는거죠.

 

 


슐리만이 트로이 유적을 발견하기 전까지

트로이 전쟁은 호메로스가 지어낸 '판타지 소설'이었습니다.

그럼 유적이 발견됐으니 사람들이 신화 속

올림푸스의 신들이 있었다고 믿습니까?

은허가 발견되기 전 20세기 초만해도 은왕조는 전설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은왕조가 발견되었으니

주지육림과 포락지형은 전설이 아니라 역사라고 믿습니까?

 

 

---> 그렇다고 트로이 전쟁이 1차 사료가 되는 건 아니지요. 2차 사료로의 승격은 이루어졌죠. 그러나 그 안에 기록된 사건들이 모두 역사로 남은 건 아닙니다. 환단고기 역시 2차 사료로서의 가능성은 있습니다. 여전히, 1차 사료로써의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우리가 발해를 잊고 있던 사이

중국은 발해의 다섯 도읍 가운데 이미 셋을 찾아냈습니다.

남의 역사를 저희 것이라 우기는 그들의

손에 우리의 역사가 파헤쳐지는 것이 안타깝지 않습니까?

 

---> 물론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환단 고기가 발해와 딱히 관련이 있다는 생각은 안드네요.

 

우리가 부정하면 역사도 전설로 남을 뿐입니다.

 

--->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환단고기를 1차 사료라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일본 서기가 1차 사료가 아니라고 주장할 수 없으며, 중국의 헌원황제는 역사적 인물이 되는 겁니다(중국 내에서도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는 헌원황제는 단순한 신화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쨌든 저 문구 자체는 숙지할 만하네요.

 

 

덧붙여서.

 

발해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서 몇 글자 더 끄적여봅니다.

 

흔히 발해=우리 역사로 주장할 때 재야학자들이 주장하는 바는 유득공의 발해고에서 발해왕이 일본에 사신을 파견할 때 고구려왕이라 칭했으며 일본의 사서의 외교기록에도 그런 기록이 가끔 보이기 때문에 발해=우리 역사라고 주장합니다. 근데 문제가 뭐냐면, 유득공의 발해고에서는 발해의 건국자인 대조영이 속말갈인이라고 기록되어있고 일본의 외교기록에는 고구려왕이라 칭하는 대목보다 말갈왕이라 칭하는 대목이 더 많다는 부분입니다. 여기에 대해 재야학자들은 그 기록들이 모조리 다 날조나 착오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유리한 정보만 사실이라는 거죠. 솔직히 억지입니다.

 

그렇다면 실증사학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는 강단 사학에서는 이 부분이 어떻게 연구되어왔을까요. 이런 식입니다. 발해왕은 고구려왕을 칭하기도 했고 말갈왕을 칭하기도 했는데 발해사를 연구하는 베이스 중 하나인 발해고에는 대조영이 속말갈인이라고 나와있습니다. 말갈인 중에서도 속말갈인입니다. 그래서 속말갈에 대해 연구합니다. 그리고 말갈이 하나의 특정 민족을 가리킨 다기 보다는 만주에 있었던 여러 비슷한 계통의 민족을 묶어 부르는 말이라는 걸 떠올립니다(말갈에 관한 연구는 굉장히 밝혀진바가 적습니다. 우리나라나 중국에서나. 그 이유는 이들이 기록을 남기지 못했기 때문이며 따라서 비교사적으로 밝혀낼 수 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들이 많은 동계통 민족의 잡탕이었기 떄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말갈왕'이라는 기록은 말갈=여진족으로 보았을 때 처럼 우리나라와 이질적인 집단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다시 속말갈이 고구려의 영토내에 있었던 것을 알아냅니다. 그리고 고구려가 멸망했을 때 고구려 유민이 상당 수 속말갈로 유입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따라서 이후 고구려의 연호를 사용한다거나 외교에 있어 고구려라는 칭호를 사용한다는 점, 그리고 신라와의 외교기록에 나타난 사실을 바탕으로 대조영이 속말갈인이었다는 기록이나 일본 역사에서 발해왕이 말갈왕을 자칭하는 경우가 있다고 해도 여전히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같은 결론이 나오기 까지 몇 배의 노력이 들어간 길입니다. 그러나 이 길의 결과 얻은 결론은 앞선 결론과 같다고 할지라도 설득력이 차원이 다릅니다. 또한 신라의 역사에 있어 발해는 발해라 불리기도 하고 말갈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발해와의 외교관계가 좋지 못할 때에는 발해를 말갈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이 덤으로 알려졌습니다.

 

실증 사학이 식민 사관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다는 건 편견입니다. 다만 오래 걸릴 뿐입니다. 그러나 오래 걸린다고 해서 정도를 버릴 수는 없는 일입니다. 쉽게 가자고 해서 중국이나 일본식 억지를 부려봐야 얻는 게 뭐가 있을까요. 결국 그런 억지는 힘이 받쳐줘야 가능한겁니다. 우리나라가 중국이나 일본보다 힘이 앞설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결국 우리는 그네들이 뭐라고 지껄이든 아무 소리를 못할 정도로 확실한 근거가 뒷받침된 보다 완전한 주장을 해야합니다. 같이 목소리 높여봐야 우리가 뭔가를 얻기는 힘드니까요.

 

사족을 하나만 더 달자면 재야학자들은 저런 강단 사학자들의 연구결과를 적극 받아들여서 최근에 새로운 주장들을 하고 있습니다. 대쥬신론이라든가 뭐 그런 것들인데... 다 쓰기는 귀찮고 그냥 요약하자면 '말갈=고구려, 그리고 고구려가 정통, 몽골, 거란, 여진, 왜는 결국 말갈에서 파생된 민족, 따라서 우리는 하나이며 정통인 고구려의 뒤를 이은 우리나라 민족은 동북아의 절대적인 맹주. 우리는 다 같은 기마민족. 일본은 정신 차리고 본가의 뒤를 받쳐라.' 이런 식의 주장입니다. 그 결과 어떤 이야기까지 나오냐면 조선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외도를 한 아주 쓰레기 같은 시대였다는 겁니다. 우리는 조선의 쓰레기 같은 정신은 버리고 위대한 기마민족의 기상을 이어가자는 얘기던가요. 언젠가 삼국지 관련 사이트에서 이런 주장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어떤 분은 심지어 신라 역시 반도에 국한된 나라였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원래 정통성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 역사의 치욕이다 라고 주장하더군요. 여러모로 저는 이런 주장과 흡사한 주장을 떠올리게 되는데 그건 바로 일제의 좆같은 식민사관입니다. -->사족 : 조선은 우리 역사의 치욕이라는 건 일제가 식민 사관에서 맨날 말하던거고, 일선동조론의 스케일만 키우고 주체만 우리나라로 바꾼게 바로 대쥬신론류의 주장이죠. 다른 민족들이야 실체가 남아있지 않으니 넘어가고, 일본이야 지들도 맨날 헛소리해대니 넘어간다지만 과연 몽골 사람들이 저 얘기 들으면 기분이 어떨까요. 그리고 정착민족으로써의 역사가 훨~씬 긴 우리나라가 진짜 기마민족이긴 한겁니까. 우리나라 역사에서 기마민족이라고 명시된 계열은 하나도 없고, 그나마 고구려가 정복국가의 성격을 띄고 있었죠(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하여 고구려의 땅을 되찾은 성격이 강하므로 정복국가로 보기는 좀 힘들다고 생각). 단순히 말잘타면 기마민족인가:)

 

 

마지막으로 덧붙여서.

 개인적으로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인터넷 뿐 아니라 학교 도서관의 여러 논문을 통해 이것 저것 읽곤 합니다. 솔직히 저희 학교는 학교 테마와는 달리 이 쪽으로 그다지 괜찮은 논문은 못 본 것 같지만... 어쨌든 그러다보니 강단 사학 쪽의 영향을 많이 받은 감이 있기에 관점이 객관적이라고 보기는 힘든 면이 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실 때도 그런 점은 감안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올린 블러그의 경우는, 제 평소 생각과 굉장히 흡사한 생각들이 적지 않고, 블러그 주인이 사학과 출신이라 그런지 나름대로 뒷받침할 자료를 많이 찾아 언급했기에 올린겁니다. 다만 그 블러그의 분위기는 너무 한 쪽으로 치우쳐있기 때문에 전혀 수긍가지 않는 글도 꽤 있고 이건 좀 아니다 싶은 글도 꽤 있습니다. 따라서 제 글을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니 그 이상으로 그런 점은 주의해주셨으면 합니다. 설득력이 있는 만큼 여과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어차피 사관에 관한 문제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 역사학계에서도 아직까지 논란이 되는 부분이기에 이런 부분까지 강요식으로 주장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현동님의 글과는 좀 거리가 먼 부분이겠으나) 강단 사학-물론 친일사관에 빠진 노교수들 제외-과 재야 사학을 비교함에 있어서는 양쪽의 '기울인 노력' 자체가 차원이 다르다는 것 정도는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사학이든 뭐든 간에 우리나라는 전문가들이 좀 더 책도 많이 쓰고 자기 목소리를 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어느 영역이든지 간에 전문가의 목소리가 아마추어의 목소리에 파묻히는 게 현실이다보니.

 

 그리고 또 하나, 쓰다보니 현동님의 글에서 좀 삔뜨가 어긋났습니다. 실증사학과 강단사학을 좀 혼동했습니다. 물론 강단 사학자들이 대부분 실증 사학을 지지하긴 합니다만. 그러나 수정하기에는 어디서부터 수정해야할지 모르겠고, 지우기에는 너무 열심히 써서 그냥 나둡니다(__)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