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 '타자'는 이영도씨를 지칭하는 말로, '키보드를 두드리는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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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권위의 상징들은 때론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미합중국의 첫 얼굴이 횃불과 독립선언서를 든 여신이며, 그 미합중국의 사법권이 눈을 가리고 저울과 칼을 든 여신의 가호를 받고 있다는 것 따위는 재미있는 잡담거리를 제공한다. 물론 타자1)는 자유의 여신과 정의의 여신이라는 '우상' 때문에 미국을 제2의 소돔과 고모라로 취급하는 기독교도를 (고맙게도) 아직 접한 적이 없으며, 혹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상식과 예의가 허락하는 한 그를 멀리할 작정이다. 타자는 독실한 비종교인이며, 어떤 경우라도 미국민들의 신앙 생활에 대해 논파해볼 입장은 되지 못한다. 그저 단군 상의 목을 친 사람들과 같은 부류가 자유의 여신의 목을 친다면 그거 참 충격적이겠다고 상상해 보는 정도가 고작이다. 게다가 당신이 이 글을 클릭했다면 이미 짐작하고 있겠지만 이 글은 어디까지나『반지의 제왕』에 대한 리뷰이다. 그렇다면 타자는 왜 권위의 상징이 어쩌느니 하는 요상한 서두로 이 글을 시작했을까. 정답은 물론 '눈길 좀 끌어보려고'지만, 그 속엔 한 명의 팬터지 애호가의 상념도 약간이나마 담겨 있다.
'JRRT의 LotR'이라는 당혹스러운 글자들에 아무런 위화감도 느끼지 않는, 오히려그렇게 말했을 때 더 잘 알아듣는 수상쩍은 작자들이 있다. 이 자들은 겉으로 보기에 온건하고 번듯해보이지만 사실 그 정신의 많은 부분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상에 장기 출장 중이다(고백하건대 타자 또한 그런 사람들 중 하나다). 저 읽기도 어려운 글자들은 'John Ronald Reuel
Tolkien'의 'The Lord of the Rings'의 이니셜이다.
톨킨의 반지의 제왕. 반지의 제왕은 권위의 상징이다.
그것을 이미 권위의 상징으로 여기고 있는 타자 같은 사람들에게 '반지의 제왕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혹은 '그 세계가 얼마나 정교한가', '그 가상의 시공 속에 꿈틀대듯 살아 움직이는 언어들의 마력이 어떻게 독자를 압도하는가' 따위의 말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하물며 '더 타임즈가 선정한 20세기 영미 문학의 10대 걸작'이니 '나르니아 연대기, 어스시의 마법사와 더불어 세계 3대 팬터지의 하나'이니 하는 말은 더더욱 필요 없다. 타자나 타자 같은 이들로 하여금 반지의 제왕에게 팬터지 최고의 권위를 부여하는 이유는 하나뿐이다.
반지의 제왕이 최고인 것은 '그것이 반지의 제왕이니까' 그러하다.
물론 타자는 문학적 단련이 부족하여 반지의 제왕에 일방적으로 경도되었다는 평가는 사양하고 싶다. 다시 자유의 여신상으로 돌아가 보자. 그 근사한 프랑스제 예술품을 폄하하고픈 생각은 조금도 없지만, '그것이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예술품이라서' 미국의 상징이 되었다고 말하는 괴팍한 이들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자유의 여신상에는 예술성 이외의 다른 무엇이 있다. 그리고 반지의 제왕에는 문학성 이외의 다른 무엇이 있다. 반지의 지배자를 다른 팬터지와 구별짓는 그 특별함의 정체는 무엇일까?
톨킨이 뛰어난 이야기꾼임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지만 반지의 지배자의 플롯들 중 일부는 눈에 익은 것들이다. 바그너의 저 유명한 반지와 유일 반지의 유사성은, 톨킨 자신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반지의 지배자를 따라 다니는 악의 어린 의심들 중에서도 유명한 것이다. 그리고 톨킨의 독창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50년이 넘도록 팬터지 최고의 권위를 지키고 있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여기서 잠시 톨킨의 본업을 떠올려보자. 옥스퍼드 대학의 언어학 교수가 톨킨의 본업이었다. 그리고 톨킨의 최대 관심사는 언어에 있었다. 언어학 교수이니까 당연한 말이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반지의 지배자의 작가로서의 톨킨을 생각한다면 이 말은 다른 의미로 다가오게 된다. 톨킨은 직접 가상의 언어들을 만들어내었고 반지의 지배자를 읽는 동안 독자는 그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있는 가상 언어들에 경탄하게 된다.
톨킨은 언어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언어로서 세계를 창조했다. 굳이 기표가 기의에 앞선다는 소쉬르의 이론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언어가 문화와 불가분의 관계임은 분명하다. 톨킨의 가상 세계는 50년 동안 무수한 애호가들이 매달려 연구하게끔 만들 정도로 완벽하다. 그 이유는 그가 언어를 만들고 그 언어로써 세계를 창조했기 때문이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던 것이다.
훌륭한 가상 언어. 그리고 그 언어로써 뒷받침되는 완벽한 세계. 이것이 바로 반지의 지배자를 읽을 때 느끼는 리얼리티의 원인이며, 그 자체보다 더 거대한 신화의 몇 장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끔 하는 원인이다. 실제로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독자가 볼 수 있는 것은 반지의 탄생도, 반지의 어두운 역사도 아닌 반지의 파멸뿐이다. 그럼으로써 독자는 수천 년에 걸친 역사의 일부를, 가장 극적이지만 가장 중요하지는 않은 어떤 국면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드러나지 않은 배경의 거대함에 감동하며 그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리뷰의 제목은 반지의 지배자의 패러디였다. 역시 반지의 지배자의 조잡한 패러디로써 리뷰를 맺는다.
그 모든 팬터지를 지배하는 하나의 팬터지, 그 모든 팬터지를 찾는 하나의 팬터지.
(원문 : One ring to rule them all, One ring to find them all.)
이 책을 쓴 영미 팬터지 문학의 거장 존 로날드 로웰 톨킨(John Ronald Reuel Tolkien, 1892∼1973)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블로엠폰틴 태생으로 네 살 때 영국으로 이주했다. 영국 버밍햄의 킹 에드워드 학교에서 중세 영어와 교양에 대한 지식을 쌓았으며 '요정들의 언어'를 만들면서 그의 언어학적인 천재성을 드러냈다. 옥스퍼드 대학 엑시터 칼리지 영문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New English Dictiona-ry'사에 취직한 톨킨은 근무하면서 '실마릴리온(Silmarillion)'으로 알려진 신화 연대기 '잃어버린 이야기들(The book of lost tales)'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1925년 옥스퍼드 대학 문헌학 교수로 부임했으며, 재직 중 신화학적 상상력을 좀더 가정적인 주제와 연관시켜 보라는 가족들의 권유에 '호비트(The hobbit)' 이야기를 지어 가족들에게 들려주었다. 12년간의 공을 들여 완성한『The Lord of the Rings』(London : George Allen & Unwin Ltd, 1954-55 / Boston : Houghton Mifflin Co, 1955-56)는 오늘날 팬터지 문학의 고전으로 손꼽힌다.
이영도 - 1972년생이며,『드래곤 라자』(황금가지, 1998),『퓨처 워커』(황금가지,1999),『폴라리스 랩소디』(황금가지, 2000)등을'두드렸다'(작가의 표현 -- 편집자). 한국의 대표적인 팬터지 작가로서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본 내용은 [교보문고문화 웹진 PENCIL 200105]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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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권위의 상징들은 때론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미합중국의 첫 얼굴이 횃불과 독립선언서를 든 여신이며, 그 미합중국의 사법권이 눈을 가리고 저울과 칼을 든 여신의 가호를 받고 있다는 것 따위는 재미있는 잡담거리를 제공한다. 물론 타자1)는 자유의 여신과 정의의 여신이라는 '우상' 때문에 미국을 제2의 소돔과 고모라로 취급하는 기독교도를 (고맙게도) 아직 접한 적이 없으며, 혹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상식과 예의가 허락하는 한 그를 멀리할 작정이다. 타자는 독실한 비종교인이며, 어떤 경우라도 미국민들의 신앙 생활에 대해 논파해볼 입장은 되지 못한다. 그저 단군 상의 목을 친 사람들과 같은 부류가 자유의 여신의 목을 친다면 그거 참 충격적이겠다고 상상해 보는 정도가 고작이다. 게다가 당신이 이 글을 클릭했다면 이미 짐작하고 있겠지만 이 글은 어디까지나『반지의 제왕』에 대한 리뷰이다. 그렇다면 타자는 왜 권위의 상징이 어쩌느니 하는 요상한 서두로 이 글을 시작했을까. 정답은 물론 '눈길 좀 끌어보려고'지만, 그 속엔 한 명의 팬터지 애호가의 상념도 약간이나마 담겨 있다.
'JRRT의 LotR'이라는 당혹스러운 글자들에 아무런 위화감도 느끼지 않는, 오히려그렇게 말했을 때 더 잘 알아듣는 수상쩍은 작자들이 있다. 이 자들은 겉으로 보기에 온건하고 번듯해보이지만 사실 그 정신의 많은 부분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상에 장기 출장 중이다(고백하건대 타자 또한 그런 사람들 중 하나다). 저 읽기도 어려운 글자들은 'John Ronald Reuel
Tolkien'의 'The Lord of the Rings'의 이니셜이다.
톨킨의 반지의 제왕. 반지의 제왕은 권위의 상징이다.
그것을 이미 권위의 상징으로 여기고 있는 타자 같은 사람들에게 '반지의 제왕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혹은 '그 세계가 얼마나 정교한가', '그 가상의 시공 속에 꿈틀대듯 살아 움직이는 언어들의 마력이 어떻게 독자를 압도하는가' 따위의 말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하물며 '더 타임즈가 선정한 20세기 영미 문학의 10대 걸작'이니 '나르니아 연대기, 어스시의 마법사와 더불어 세계 3대 팬터지의 하나'이니 하는 말은 더더욱 필요 없다. 타자나 타자 같은 이들로 하여금 반지의 제왕에게 팬터지 최고의 권위를 부여하는 이유는 하나뿐이다.
반지의 제왕이 최고인 것은 '그것이 반지의 제왕이니까' 그러하다.
물론 타자는 문학적 단련이 부족하여 반지의 제왕에 일방적으로 경도되었다는 평가는 사양하고 싶다. 다시 자유의 여신상으로 돌아가 보자. 그 근사한 프랑스제 예술품을 폄하하고픈 생각은 조금도 없지만, '그것이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예술품이라서' 미국의 상징이 되었다고 말하는 괴팍한 이들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자유의 여신상에는 예술성 이외의 다른 무엇이 있다. 그리고 반지의 제왕에는 문학성 이외의 다른 무엇이 있다. 반지의 지배자를 다른 팬터지와 구별짓는 그 특별함의 정체는 무엇일까?
톨킨이 뛰어난 이야기꾼임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지만 반지의 지배자의 플롯들 중 일부는 눈에 익은 것들이다. 바그너의 저 유명한 반지와 유일 반지의 유사성은, 톨킨 자신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반지의 지배자를 따라 다니는 악의 어린 의심들 중에서도 유명한 것이다. 그리고 톨킨의 독창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50년이 넘도록 팬터지 최고의 권위를 지키고 있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여기서 잠시 톨킨의 본업을 떠올려보자. 옥스퍼드 대학의 언어학 교수가 톨킨의 본업이었다. 그리고 톨킨의 최대 관심사는 언어에 있었다. 언어학 교수이니까 당연한 말이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반지의 지배자의 작가로서의 톨킨을 생각한다면 이 말은 다른 의미로 다가오게 된다. 톨킨은 직접 가상의 언어들을 만들어내었고 반지의 지배자를 읽는 동안 독자는 그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있는 가상 언어들에 경탄하게 된다.
톨킨은 언어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언어로서 세계를 창조했다. 굳이 기표가 기의에 앞선다는 소쉬르의 이론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언어가 문화와 불가분의 관계임은 분명하다. 톨킨의 가상 세계는 50년 동안 무수한 애호가들이 매달려 연구하게끔 만들 정도로 완벽하다. 그 이유는 그가 언어를 만들고 그 언어로써 세계를 창조했기 때문이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던 것이다.
훌륭한 가상 언어. 그리고 그 언어로써 뒷받침되는 완벽한 세계. 이것이 바로 반지의 지배자를 읽을 때 느끼는 리얼리티의 원인이며, 그 자체보다 더 거대한 신화의 몇 장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끔 하는 원인이다. 실제로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독자가 볼 수 있는 것은 반지의 탄생도, 반지의 어두운 역사도 아닌 반지의 파멸뿐이다. 그럼으로써 독자는 수천 년에 걸친 역사의 일부를, 가장 극적이지만 가장 중요하지는 않은 어떤 국면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드러나지 않은 배경의 거대함에 감동하며 그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리뷰의 제목은 반지의 지배자의 패러디였다. 역시 반지의 지배자의 조잡한 패러디로써 리뷰를 맺는다.
그 모든 팬터지를 지배하는 하나의 팬터지, 그 모든 팬터지를 찾는 하나의 팬터지.
(원문 : One ring to rule them all, One ring to find them all.)
이 책을 쓴 영미 팬터지 문학의 거장 존 로날드 로웰 톨킨(John Ronald Reuel Tolkien, 1892∼1973)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블로엠폰틴 태생으로 네 살 때 영국으로 이주했다. 영국 버밍햄의 킹 에드워드 학교에서 중세 영어와 교양에 대한 지식을 쌓았으며 '요정들의 언어'를 만들면서 그의 언어학적인 천재성을 드러냈다. 옥스퍼드 대학 엑시터 칼리지 영문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New English Dictiona-ry'사에 취직한 톨킨은 근무하면서 '실마릴리온(Silmarillion)'으로 알려진 신화 연대기 '잃어버린 이야기들(The book of lost tales)'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1925년 옥스퍼드 대학 문헌학 교수로 부임했으며, 재직 중 신화학적 상상력을 좀더 가정적인 주제와 연관시켜 보라는 가족들의 권유에 '호비트(The hobbit)' 이야기를 지어 가족들에게 들려주었다. 12년간의 공을 들여 완성한『The Lord of the Rings』(London : George Allen & Unwin Ltd, 1954-55 / Boston : Houghton Mifflin Co, 1955-56)는 오늘날 팬터지 문학의 고전으로 손꼽힌다.
이영도 - 1972년생이며,『드래곤 라자』(황금가지, 1998),『퓨처 워커』(황금가지,1999),『폴라리스 랩소디』(황금가지, 2000)등을'두드렸다'(작가의 표현 -- 편집자). 한국의 대표적인 팬터지 작가로서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본 내용은 [교보문고문화 웹진 PENCIL 200105]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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