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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G]통일전선 이상없다 - 03

작성자E.E.샤츠슈나이더|작성시간23.05.13|조회수449 목록 댓글 853

 

06. 자유를 지키는 창과 방패

 

미국발 산업원조와 대일무역 재개 등에 힘입어 산업화의 첫 삽을 뜨는 데 성공한 대한민국은 국토개발종합계획을 세워 산업화의 청사진을 그리는 것과 동시에 북한의 남침에 대비한 군사력 증강에 나섰습니다. 경제기획원 간부와 국내 각계각층 인사들을 모두 모아 설립된 임시기구 [국토종합개발위원회(국종위)]는 산업화의 중점 역할을 할 중심거점의 위치를 두고 언쟁을 벌였습니다. 전진한 국무총리(겸 경제기획원장)를 비롯한 일군의 정치인들이 국토균형개발이라는 의제를 다시 일깨우며 충청남도 당진-서천의 가로림만 일대에 대형 산업단지를 건설하자는 의견을 제시하는 동안 김학렬 국토개발청 장관 등 관료들은 이미 주변에 개발된 도시지역이 많고 국제항로와의 접근성도 양호한 남동 임해지역을 최우선적으로 개발하자는 현실론을 제기했습니다.

 

원래라면 관료들이 제시한 남동우선론이 압승을 거두어야 했지만, 그 이전의 경민특위에서 국토균형개발론이 채택되었기에 그들이 마냥 우세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원래 전진한과 뜻을 함께 하던 박철환이 관료들의 손을 들어주었음에도, 가로림만 대형산업단지 조성계획은 백지화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휴전선에서 불과 수십 킬로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수도가 위치한다는 안보적 요인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임시행정수도를 중부권으로 옮긴다는 전제를 수용한다면 중부에 공업기지를 두지 않을 수도 없었죠.

 

결국 돌고 돌아 문제는 “한정된 자원”이었습니다. 중부권(충청권)에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것은 산업-인구 편중화 문제 해결과 호남 소외문제 해결, 안보위협 경감 등을 위해 꼭 필요했으나, 단지를 조성하는 데는 최소 10년의 시간이 소요될 예정이었습니다. 즉 해당 프로젝트를 가동한다고 해도 남동지역 등에 선제적으로 산업기지를 구축할 필요가 있었죠. 돈이 추가적으로 나올 구석이 있어야 했습니다.

 

긴 토론 끝에, 정주영 현대건설 회장은 [국제개발부흥은행(IBRD)]에 개발차관을 요청하자는 아이디어를 제안했습니다. 미국으로부터 추가적 자금을 끌어오기 어려웠던 한국에게 IBRD의 주선은 매력적인 기회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문제는 IBRD가 가로림만 산업단지 조성에 대한 타당성을 인정하게 하는 일이었죠. 한두 푼도 아니고 도합 수억에서 수십억 달러나 되는 자금을 지원받으려면 채권자들 또한 확신이 필요했습니다. IBRD 사무총장 [요한 피셔]는 한국에서 면밀한 조사를 시행했습니다. 그가 보기에 한국의 고위 공무원들은 민족주의적인 열정에 매몰되어 무리한 설득에 나서는 것 같았으나, 피셔 총장은 그것을 좋은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국가주도 산업화를 방해할 지주 계층이 존재하지 않고 강한 민족주의와 신분상승 욕구가 전국민적으로 퍼져있는 환경은 고속성장에 매우 유리하게 보였습니다.

 

결론적으로 한국 정부는 IBRD로부터 1억 8천만 달러, 그리고 바클레이 은행 등 서구권 채권자들로부터 빌린 5억 6천만 달러에 대한 지급보증을 받아낼 수 있었습니다. 마치 가뭄의 단비같은 이 금액은 영남권과 중부권을 동시에 개발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었고, 정부는 [다산시(가로림만 산업특구)]와 [부산시]를 특별시로 격상하고 충남 공주군-연기군 일대에 임시행정수도 [세종시]를 건설하는 법을 제정했습니다.

 

한편, 국방부와 군에서는 상시적 안보위협의 해소를 위해 군 현대화 작업에 나섰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군의 정예화였는데, 60만명에 달하는 대한민국 국군은 그 규모가 지나치게 비대했습니다. 이는 보급과 병참을 끊임없이 방해하는 요소였으며, 만연한 병역기피 행태는 국민들로 하여금 군입대를 극히 부정적으로 바라보게끔 하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또한 휴전선 이북에 주둔한 인민해방군 공군은 소련과의 관계악화에도 불구하고 어째서인지 MiG-21의 다운그레이드형인 J-7을 운용하고 있어 현재 국군이 보유한 F-86 세이버로는 효과적인 대응이 불가능했습니다. 그 외에 국군의 작전역량이 조선인민군 및 인민해방군에 비해 그다지 좋지 못하다는 문제점도 존재했죠.

 

국방부와 군 상층부는 과감한 수술에 나섰습니다. 우선 병력관리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방위조달청, 병참국, 병기도입국, 기타 무기개발인력 등을 모두 합쳐 [국방개발위원회]를 설치, 국방부와 군 당국으로부터 모두 자유로운 장관급 독립부처로 만들었습니다. 또한 경제기획원과 협력해 전국민에게 주민등록번호를 부여하고 군복무에 따른 인센티브를 추가, 병역의무를 면제받는 모든 국민에게 소정의 국방세를 부과해 병역이탈율을 크게 경감하고 추가적 재원을 마련하는 데 성공했죠. 의무복무연한을 기존의 2년 9개월에서 2년 2개월로 크게 줄여 (병역기피 경감의 효과와 상쇄)약 10만명의 감군효과를 내기도 했습니다.

 

북쪽으로부터의 항공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프랑스제 미라주-III 전투기를 도입했습니다. 이것이 옳은 선택이었음은 본래 미국이 제안했던 F-104 스타파이터 전투기가 수많은 비전투손실을 기록하면서 쉽게 증명되었죠. 1964년 2월 27일 휴전선 부근에서 미라주 4기가 북한군 미그기 다섯과 교전해 치명적 손실 없이 그 중 둘을 격추하고 돌아온 이후부터 북한은 공중도발을 자제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의욕이 지나쳤던 걸까요? 국방개발위원회는 장차 국군의 발전방향을 “공중우세에 의한 압도적 화력전”으로 제시, 헬기전력 등을 적극 활용한 공수작전과 제병합동 기동전을 중심교리로 설정했습니다. 이는 당연히 국군의 현재 역량을 뛰어넘는 목표였기에, 그만큼 국군은 미군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물론 얻는 것도 많았지만, 과감히 포기해야 했던 것도 없진 않았습니다.

 


 

07. 빛과 그림자

 

보수-혁신세력이 총결집한 1964년 제6대 국회의원 총선거는 혁신세력의 완승으로 끝났습니다. 국민진보당은 단독과반을 달성했고, 조봉암은 꿈에도 그리던 대통령직에 올랐습니다. 진보당 정부는 지난 연립정부 시기부터 시행되던 시민아파트 사업을 확장시켜 서울에 판자촌을 짓고 살던 도시빈민들을 아파트로 이주시키는 대사업을 기획, 실행했습니다. 일명 [주택임대사업]이라 불리는 이 계획은 진보당 행정부의 복지정책 그 자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정부는 민간건설업자들에게 아파트 건설대금을 선지급하고, 입주자들은 국가에 임대료를 납부하며, 완납(보통 약 5-10년의 기간) 시 해당 주택을 입주자들의 소유로 자동 전환시키는 아름다운 계획이었죠.

 

그러나 진보당 정부 출범 3년차인 1966년 9월 23일, [안산시민아파트 붕괴 사고]가 터지면서 문제는 복잡해졌습니다. 도시행정가들과 건설업체의 노하우 미비와 지나치게 급한 계획, 그리고 하도급업체의 횡령과 부실공사 등이 직접적인 원인이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는데, 시민아파트 전수조사 결과 과반이 넘는 아파트가 “당장 퇴거”해야 할 정도로 부실하게 지어졌었다는 충격적인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아파트 철거 공고가 내려지면서 그곳에 입주했던 빈민들은 순식간에 거리에 나앉았고, 야당 신민당은 정부여당에 ‘내각 총사퇴’를 요구하며 강경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긴급국무회의는 매우 침울하고 감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개최되었습니다. 무려 70만명에 달하는 수도권 도시빈민들을 당장 수용할 방법을 찾아야 했고, 완전히 어긋나버린 주택임대제도를 되살릴 방법 역시 찾아야 했죠. 하지만 국무위원들은 좌파니 우파니 중도파로 갈려 문제의 본질적 해결이 아닌 ‘이념싸움’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박정희 국방장관과 김대중 법무장관이 서로를 비난하고, 박철환 의원이 문제의 ‘용공’ 발언에 격분해 회의장을 뛰쳐나가며, 김시형 과기부장관은 “이럴 거면 왜정 때처럼 재산을 가진 사람에게만 투표권을 주지 그러냐”며 분위기를 한껏 과열시키기에 이르렀습니다.

 

국무회의가 다시 정상궤도를 되찾은 것은 조봉암 대통령이 “이렇게 한심한 작태나 보여줄 거라면 차라리 야당의 내각 총사퇴안을 받아들이겠다”고 협박하고 나서였습니다. 지나치게 과격한 태도를 보이던 좌파 및 중도파, 그리고 대안 없이 반대의견만을 제시하던 우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뾰족한 해결책을 내지 못했지만, 결국 김시형 과기부장관은 “누구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타협안”이라도 제출하는 것을 택했습니다. 호텔, 여관, 군부대, 공공기관, 심지어 김포공항까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공간을 임시수용소로 조성하고 군을 동원해 이들의 출퇴근 환경을 보장하며 다주택자의 주택보유한도를 3채로 제한하는 한편 주거용 시설의 의무임대차제도를 만들어 ‘놀고 있는’ 방의 개수를 최소화하는 안이었습니다. 미봉책에 불과하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았죠.

 

다음날 다시 모인 국무회의는 주택임대제도의 재건방안을 논의했습니다. 금번과 같은 지반붕괴사고가 빈발할 수 있는 서울 산간지대에 무리하게 아파트를 재건축하느니 한강 이남(즉 경기도 광주군, 용인군 등)을 개발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 그리고 이재민들을 차라리 다산특별시에 선이주시켜 중부개발의 활성화와 빈민구제정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자는 의견이 제출되었죠. 정책 선호도는 후자가 압도적이었고 합리적으로 봤을 때도 후자의 효과가 더 높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사회적 참사와 정책실패를 책임져야 할 정부여당이 그렇게 과감한 개혁안을 발표했을 때 벌어질 여론의 포화였죠. 예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토지를 계속 소유하고 개인에게는 주택의 소유/임대차만을 인정하는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제도]를 채택했지만, 그건 당사자인 이재민들에게는 희소식이 아니었습니다.

 

머리를 굴리던 국무위원들은 “책임을 피할 수 없다면 야당을 더 나쁜 놈으로 몰아버리자”는 지극히 ‘정무적’인 판단에 이르렀습니다. 현실적으로 현강회 국무총리를 비롯한 정부의 핵심 고위공직자들의 사표를 받는다면 남은 2년동안 야당에 끌려다니다가 정권을 내주는 수밖에 없었기에, 그 방법이 최선이기도 했습니다. 이하준 동력자원부 장관이 이재민들의 다산시 입주를 위한 사항을 조율하고 국토개발청 장관으로 옮긴 김시형이 임대아파트로 집을 옮기는 퍼포먼스와 함께 이재민들의 임시거처 조성사업을 관리하는 동안, 정무1장관 정원상과 민족일보 사장 박철환은 야심찬 정치공작에 나섰습니다.

 

그 정치공작이란, 신민당과의 통합을 선택했지만 비주류로 밀려난 구 민주당, 즉 유진산과 양일동을 자극하는 것이었습니다. 11월 25일 조봉암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국민통합정부] 조각을 제안하며 진보당, 신민당, 자유민주당, 국민의당을 모두 초대했습니다. 신민당 원내총무 김영삼은 이 이간질에 넘어가지 않았지만, 문제는 당 최고위원 유진산이 공개 기자회견에서 “국민통합정부를 지지한다”고 밝히는 이른바 [진산 파동]이 발생한 것이었습니다. 내분에 빠진 신민당은 여당을 공격할 동력을 단숨에 잃어버렸고, 국민의당 총재이자 전 총리인 허정은 “젖비린내나는 어린아이들이 제1야당의 당권을 쥐락펴락하는 것이 문제”라는 [구상유취] 발언으로 모든 정치파동의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의원들끼리 주먹다짐을 벌이는 장면이 대대적으로 전파를 타며 17%까지 하락했던 정부 지지율은 다시 40%대 후반 선을 회복했습니다. 안정을 되찾은 정부는 이제 다른 일에도 시선을 돌릴 수 있게 되었죠. 예컨대 얼마 전 베이징에서 마오쩌둥 ‘전’ 주석이 지지자들을 선동해 정부를 타격하려다 실패, 군의 대규모 무력진압으로 이어진 [천안문 사태]라던지, 프랑스가 이끄는 유럽공동체(EC)가 이스라엘을 공개적으로 비호해 중동 산유국들과 서방권의 관계가 경색되는 사태라던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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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E.E.샤츠슈나이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5.19 지금부터 막화 작성 시작하면 오늘 내로 끝낼 수 있을 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해볼까 합니다(…)

    9에피 결론 난 시점에서 10에피 완결(해피엔딩이든 핵피엔딩이든…)은 거의 예정된 거였고, 다음주에 4화 작성을 시도했다가는 너무 정신이 없을 것이므로…
  • 답댓글 작성자dear0904 작성시간 23.05.19 다음주에 무언가 좋은 일이 있으신가보군요 ㅋㅋ 미리 축하드립니다(?)
  • 답댓글 작성자E.E.샤츠슈나이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5.19 개인 에필로그는 일단 4화 로그에는 명시적으로 반영되지 않습니다. (물론 정사가 아니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어떤 엔딩으로 가야 할지는… 생각 중인 게 몇개 있긴 합니다만, 잠깐 고민해봐야 할 것 같네요.

    일단 저 소련 우주선 스토리는 후보 중 하나였지만 북진통일하자는 rpg의 엔딩이 소련 우주인인 건 너무 갑작스러워서 그냥 번외로 넘겼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E.E.샤츠슈나이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5.19 dear0904 좋은 일은 아니고, 여태 미뤄놨던 여러 숙제들을 처리해야 할 때인 거죠(…) 2년째 유예했던 학사졸논이라던지…
  • 답댓글 작성자dear0904 작성시간 23.05.19 E.E.샤츠슈나이더 일복이 터진건 좋은일입니다(?) 뭐 사실 이렇게 말하는 저도 5월 첫째주에 저 말 들었으면 화를 냈을것 같긴 합니다 ㅋㅋㅋ... 이미 지난일이니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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