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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작]][축전] エメロ-ド♡님 100회 기념. (음악 수정판)

작성자[부지기]네드발백작|작성시간08.07.28|조회수108 목록 댓글 11

 

추억만 남은 대평야.

 

 

 

 만약 내일이 오지 않는다면
 오늘 그대를 찾을래요.
 만약 오늘이 멈춘다면
 그대 앞에 있을래요.
 만약 시간을 되돌린다면
 그래도 당신을 사랑할래요.

 

 어둠의 커튼이 빛의 장막을 가리기 시작할때쯤 펠리스 대평야에서는 조그마한 노랫소리가 울려퍼졌다.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와 병사들의 긴장된 소음외에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전쟁터에서는 오히려 특이한 소리다.
 "좋은 노래로군요, 총사령관."
 태양이 지는 쪽에 포진된 군대를 바라보며 노래를 부르던 페릴은 질문을 던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황혼을 배경으로 타는 듯한 붉은 머리 사이에 비치는 붉은 눈은 기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예전에 친구랑 만든 노래입니다."
 수석 참모를 맡고 있던 사이나스 윈더프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악에 조예가 있던 그는 그 노래가 아마추어가 만든 것이라고 추측했지만 설마 총사령관이 직접 만든 노래라고는 생각 못했던 것이다.
 마법사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마법보다는 음악을 좋아해서 집안과는 거의 의절하다시피 한 그는 사이나스 리미언이라는 이름의 음악가로 활동하고 다녔으나 그다지 큰 인기는 얻지 못했다. 머리가 명석했던 그는 그 이유가 윈더프 집안의 방해였다는 것을 알아챘고, 그에 대한 보복으로 즉시 군대에 자원했다. 그로써는 단지 윈더프 집안의 사람이 한 군대의 일개 병사로 참가한다는 것이 집안의 명예를 깎아내린다는 것을 노린 보복이었지만 우습게도 윈더프 집안은 공식적으로 의절을 선언함으로써 그의 계획을 꺾어버렸다.
 음악가가 되고 싶었던 사이나스에겐 총사령관이 부르던 노래의 어색한 점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좀 짧군요. 뒷부분이 더 있습니까?"
 "예. 제가 부른 것은 앞부분 뿐이지요. 그리고 뒷부분은…."
 페릴은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다시 태양을 등지고 있는 군대를 향하여 고개를 돌렸다. 친구와 같이 만들었다는 페릴의 말을 떠올린 그는 뒷부분을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짐작하고는 그녀가 있을 곳을 향하여 시선을 돌렸다. 그의 귀에 페릴의 말이 바람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나의 친구가 만들었습니다."


 만약 시간을 되돌린다면
 그래도 당신을 사랑할래요.
 설령 우리가 헤어지더라도
 반드시 그대를 찾아가요.
 언제가 우리에게 비칠,
 마주잡은 이 손을 놓지 않기를.

 

 "웃기는 노래군. 악마가 사랑이라니."
 등뒤에서 가히 듣기 좋다고 볼 수 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바라는 그 소리만 듣고도 상대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총대장에게 말을 걸때의 예법에 대해서 다시 가르쳐야되나, 탱구르트."
 탱구르트라고 불리운 악마는 바바라의 말에 코웃음을 치며 들고 있던 거대한 핼버드를 빙글 돌려서 땅에 꽂았다.
 "인간들 사이의 예의 따위를 악마에게 논하는건가, 바바라."
 오랜만에 생각해낸 노래를 불러봤건만 그 감정을 망치고 싶지 않았던 바바라는 군대 내에서 가장 무례한 악마를 성의로써 대해주기로 마음먹었다.
 "쿠엑!"
 갑자기 빙글 돌면서 창자루를 휘두른 바바라는 탱구르트가 우아하게 나가 떨어진 것을 확인하고 씨익 웃었다.
 "자네 말대로야, 탱구르트. 악마에겐 악마의 예법이 있지."
 사정없이 머리를 내려쳤기에 아무리 탱구르트라고 해도 일어나는데에는 시간이 좀 걸릴터였다. 그녀는 다시 맞은 편의 군대를 보면서 입을 열려고 했으나 이번에도 그녀의 노래는 방해를 받았다.
 "죄송합니다만, 총대장. 탱구르트경은 내일 아침의 선발 돌격대입니다."
 "이 정도에 일어나지도 못하는 돌격대장은 필요없다."
 날카로운 서슬에 그녀에게 다가가려던 아코마르트는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예정대로 내일 아침 최전방은 내가 맡는다."
 그는 눈살을 찌뿌렸다. 확실히 그녀가 최전방에서 맹활약을 하고 죽어준다면 현재 그녀의 위치에 대해서 불평불만인 악마들을 잠재울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기는 하다. 그러나 대천사의 돌의 효과로 아직 악마들의 전력은 온전하지 못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그녀가 사라져버리면 가히 즐겁다고 볼 수 없는 결과가 도출될 터다.
 "총대장이 함부로 최전방에 나서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됩니다만."
 "내가 질 것 같나."
 아코마르트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확고히 결심한 것이다. 더이상 그녀를 말리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 그는 조용히 몸을 돌렸다.
 "그 노래, 원래 그렇게 짧습니까?"
 "아니. 옛 친구랑 만든 노래다. 앞부분은…."
 총대장이 말을 멈추자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던 아코마르트는 좀처럼 대답이 이어지지 않자 다시 그녀를 돌아보았다. 기다리다가 지친 그가 입을 열려고 할때에 미묘하게 떨림이 숨어있는 그녀의 목소리가 그의 귀를 간지럽혔다.
 "나의 친구가 만들었지."


 250년전 철학자이자 비평가, 인류학자였던 아토만 데롱은 그의 가장 유명한 저서에서 이렇게 서술했다.
 '인간은 뭐든지 먹어치우는 돼지같은 존재다.'
 그 책이 발간되었을 당시 그는 수많은 사람으로부터 혹평을 받고는 몸을 숨겼다고 한다. 그 이후로 행방에 묘연해진 그지만 그의 명언은 아직까지 세상에 남아 전쟁반대론자들이 가장 애용하는 인용구가 되었다. 그리고 인간은 타인을 먹는 것으로도 모자라 다른 종족까지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윈더프가의 마법사들을 보호해! 적은 마법사들부터 정리할 생각이다!"
 바바라는 레프의 머리를 돌리며 외쳤다. 그녀는 윈더프가의 사람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종족을 배신하고 악마측에 붙었다. 설령 그 이유가 무엇이든간에 인간들은 그들을 용서하지 않으리라. 연합군이 윈더프가를 먼저 노린 것은 과연 감정이 섞인 것인지 아니면 타당한 전술계획의 발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마도 이 계획을 세운 것은 페릴이었으리라. 
 이렇게 된 이상 이기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바바라는 자신의 부대를 향하여 똑바로 돌격해오는 은색 갑옷을 입고 붉은 머리를 나부끼는 자신의 친구에게 레프의 머리를 돌렸다. 바바라는 결심을 굳혔다.

 

 [왜 울고 있어?]
 혼자서 훌쩍이던 페릴은 고개를 들었다. 드러워진 그림자 사이로 은회색의 머리가 눈에 띄었다. 눈 앞의 대상의 눈은 자신과 똑같이 붉은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아까 모의전에서 맹활약을 한 아가씨잖아. 네 전술에 한방 먹었다구.]
 생각해보니 자신과 맞싸우던 상대의 대장이었던 아이다. 나이는 자기와 동갑이지만 자기보다 큰 키덕분에 등에 매고 있는 창도 균형있게 그림자를 이루고 있었다.
 확실히 페릴은 그녀의 작전을 읽고 반대로 이용하여 포위, 섬멸전을 펼칠 계획이었으나 예상보다 아군의 피해가 컸다. 그리고 그 피해의 절반은 눈 앞의 아이가 혼자서 세운 공훈이었다.
 [이기고도 울다니. 내가 왜 이런 녀석에게 진 건지 이해가 안 가네.]
 [하지만!]
 [하지만?]
 말을 하고 싶진 않았지만 페릴의 입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이게 진짜 전쟁이었다면 수많은 사람이 죽었을 거 아냐.]
 [하아?]
 여전히 눈물로 젖어있는 그녀의 눈에는 상대의 모습이 희미하게 비쳤지만 말투로 보건대 그녀는 매우 어이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을 것 같다.
 [너 바보야? 일개 병사들에 대해서 신경쓰면 어떻게 싸워?]
 [대장이란 항상 그래야한다고 아버님이 말씀하셨어!]
 눈물을 닦고 본 상대의 얼굴은 역시 예상대로 심각하게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그리고 둘은 한참동안 서로를 바라보았다.
 [풋. 아하하!]
 페릴은 상대를 노려보다가 상대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하하! 우리 고국에서는 들을 수 없는 말이네. 마음에 들었어.]
 그녀는 호탕하게 웃고는 손을 뻗었다. 갑자기 바뀐 태도에 페릴은 잠시 어안이 벙벙했지만 그녀 역시 상대가 뻗은 손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페릴은 그녀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너 마음에 드네. 이름이 뭐야?]
 [페릴….]
 [난 바바라. 앞으로 사이좋게 지내자.]
 
 "배신자들을 찢어죽여라!"
 격동시키는 명령도, 고함도 필요없었다. 단지 윈더프가의 마법사들이 저곳에 포진하고 있다는 말 한 마디. 그 한 마디는 마법과도 같이 병사들의 투지를 불태웠다. 그리고 돌격이라는 짧은 한 마디는 그들에게 투지를 배출시킬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었다.
연합군의 우측 날개는 악마군의 좌측에 포진한 윈더프가의 마법사들에게 맹렬한 돌격을 시작했으며 상식을 초월하는 움직임에 악마군은 멈칫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틈을 노려 우측 부대는 재빨리, 하지만 완벽하게 윈더프가의 부대로 꽂혔고, 우측 부대가 지나가고 난 후에 연합군의 정면에는 악마군의 본대가 나타났다.
 그리고 총사령관의 작전을 읽어낸 사이나스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외쳤다.
 "중기갑부대 돌격 준비!"
 주위의 기병대의 베일이 하나하나 내려가기 시작한다.
 "돌격 태세!"
 스피어가 동시에 앞으로 내뻗는다.
 사이나스는 그의 총사령관을 바라보았고, 그녀의 얼굴에서 미약하게 숨어있는 슬픔을 읽어낼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이 전쟁이 끝나면 책이나 쓰거나 노래나 만들고 다녀야겠다고 결심하며 그는 총사령관에게 시간을 베어낼 것을 촉구했다.
 페릴은 결심을 굳혔다.

 

 페릴은 울고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것은 그녀에게 있어서 전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악마군과 싸우다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래도 사람들은 아버지가 1:1로 싸우다가 군인답게 돌아가셨다고 했지만 페릴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내용은 그것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큰 창을 휘두르는 악마군의 여자 대장과 싸우다가 돌아가셨다. 큰 창을 휘두르는.
 그렇게 울고 있는 페릴이 지쳐 쓰러져 잠들게 되었을무렵, 페릴의 방에 한 그림자가 움직였다. 그 그림자는 조용히, 하지만 절도있게 페릴이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바바라는 그녀가 깨지 않도록 조용히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바보같이 또 울고 있네.]
 처음 만났을때에도 울고 있었다. 두번째 만났을 때에도 울고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마지막이 될 만남에도 그녀는 울고 있다.
 바바라는 조용히 잠들어 있는 그녀의 곁에 앉았다. 침대에 엎드려 있는 그녀의 머리카락은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었기에 바바라는 그것을 하나하나 가지런하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정말 미안해.]
 [솔직히 뭐라 할 말도 없네.]
 [나도 어쩔 수 없었어라고 하고 싶지만.]
 바바라는 강한 악마였다. 적어도 악마들의 사이에서 그녀를 쉽게 이길 수 있는 악마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는 어떤 악마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서는 맑은 액체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미안해. 정말 미안해.]
 잠시동안 페릴의 머리를 정리해준 그녀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미 일은 돌이킬 수 없었고, 그녀는 페릴의 불구대천의 원수가 될 것이다. 바바라는 어쩌면 인간들중에서 유일한, 악마를 인간답게 대해준 사람을 잃게 만든 장본인이 될지도 모른다. 그녀는 악마에게 손가락질 당하고 인간들에게 손가락질 당했다. 자신의 친구에게마저 손가락질 당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페릴이 지쳐 잠들기까지 기다렸다가 나타났다.
 [곧 있으면 날이 밝겠지. 전에 너랑 만들자던 노래 만들어왔는데.]
 영원히 들려줄 수 없으리라. 단지 심심해서 만들어보자던 노래는 가사를 나누어 붙여보자고 했고, 만든 가사는 다음에 만날 때에 서로 보여주기로 했다. 하지만 그녀들에게는 이제 그 짧은 노래를 같이 부를 시간조차 없으리라.
 바바라는 조용히 일어나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억지로 떼어 책상으로 다가갔다. 아까 페릴이 울면서 쓰러지기 전에 무엇인가를 쓰던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삐뚤삐뚤한 글씨로 이렇게 씌여 있었다.
 [그래도 넌 나의 친구야]
 새벽빛이 밝아오는 연합군 신임 총사령관의 방에는 두명의 눈물과 한명의 숨죽인 울음소리만이 남아있었다.
 
 까앙!
 금속과 금속이 맞부딫히는 깨끗한 소리가 울려퍼진다. 그러나 이내 그 소리는 주위의 시끄러운 소리들에 묻혀서 스러져간다. 주위에는 인간들이 먹고 먹히는 소리가 넘쳐흐른다. 이 불합리하고도 불유쾌한 전쟁터의 한 가운데에서 헤어졌던 두 친구는 만났다.
 "이런 식으로 만나고 싶진 않았는데 말이지."
 바바라는 거대한 창을 마치 자신의 수족과도 같이 움직인다. 긴 운동 궤도로 인하여 부웅하는 섬뜩한 소리가 공기를 가른다. 가끔씩 창의 궤도에 방해되는 물건들이 창끝에 걸리지만 그녀의 강한 힘은 그러한 모든 것들을 무시하고 쳐낸다. 그렇기에 악마들이라고 해도 그녀가 싸우고 있을 때에는 그녀의 옆으로 가지 않는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페릴은 그녀의 검을 끌어당긴다. 그리고 끌어당긴 탄력을 이용하여 되팅긴다. 그녀의 검은 무서운 힘으로 상대의 약점을 파고든다. 비록 창에 비해서 회전이 적어 위력은 부족할지 몰라도 창으로 공격하기 힘든 부분을 날카롭게 파고 드는 것은 검의 특징이다.
 콰가각.
 검날과 창날이 서로 비껴나간다. 애초부터 만난 적이 없었다는 듯이, 이제부터 만날 일이 없을 거라는 듯이. 그 비껴나감의 끝에 바바라와 페릴은 서로 입술이 맞닿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서로의 호흡 소리가 불규칙적으로 들린다.
 서로의 호흡을 마신다.
 서로의 과거를 내뱉는다.
 서로의 현재가 마주친다.
 서로의 미래가 흩어진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적이었다. 싸워서 이기지 않으면 안 되는 상대였다. 그렇지만 친구였기에 그들은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둘은 똑같이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바바라는 페릴의 눈에서 눈물을 읽었다.
 페릴은 바바라의 눈에서 눈물을 읽었다.
 "총사령관님!"
 "바바라앗!"
 둘은 힘을 주어 서로를 밀어냈다. 사이나스와 탱구르트가 주위를 헤치고 그녀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들의 짧은 탈선은 끝났다. 이제 이곳에는 친구는 없다. 단지 적군의 대장과 적군이 존재할 뿐이다.
 그들은 서로 어우러져 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먼곳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다.

 

 "당주님 어쩌실 겁니까!"
 리프크네는 자신에게 윽박지르는 그들을 돌아보았다. 선대 당주의 실책으로 이어진 그들의 잘못은 이제 끝낼때가 왔다. 윈더프 가의 마법사들은 조금 전의 연합군의 기습 공격으로 꽤 많은 병력을 잃었다. 게다가 인간을 배신하고 악마의 편을 들었던 그들은 이제 설 자리가 없으리라. 비록 바바라 총대장이 있다고해도 거의 쓸모가 없어진 윈더프 가문에 악마가 힘을 들어줄 가능성은 적었다. 그렇다면 최대한 손해를 줄이면서 전투를 끝내야하리라.

 "적장은 저 은색 갑옷을 입은 자인가?"
 "그렇습니다, 당주님."
 리프크네는 침통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너무 거리가 멀어서 잘 보이진 않지만 체형으로 봤을때에는 일단 여성인 듯 했다. 그리고 바바라와 동등하게 싸울 수 있는 것을 보아하니 상당한 실력도 있다. 왠지 그 사람을 보고 있으면 예전의 연합군의 영웅, 이베스 로안나가 생각난다. 하지만 그녀와 바바라가 계속 싸우면 싸울수록 양군의 피해는 커질 터. 지금 그녀를 막아야 한다.
 "당신에게 원한은 없지만 수많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희생해주세요."
 리프크네는 그녀를 향하여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녀가 입을 벌린 순간 그녀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구속."
 "그녀는 페릴 로안나입니다."
 그녀는 황급히 손을 회수했지만 이미 바바라의 창은 페릴을 궤뚫고 있었다.

 

 바바라와 페릴은 즐기고 있었다. 오랜만에 서로의 긴장을 노리는 대무였다. 여기를 찌르면 이쪽으로 피한다. 그 후에 이쪽으로 검이 날라오겠지. 그럼 창대로 검을 흘리고 그 상태로 페릴을 밀어서 균형을 무너뜨린다. 그럼 페릴은 말을 이용하여 균형을 잡겠지. 그럼 난 레프를 이용하여 말을 밀어붙이고 힘껏 내찌른다. 분명히 페릴은 상체를 뒤로 젖혀서 피하면서 오른 손으로 내 왼손을 노리겠지.
 그렇게 되지 않았다.
 바바라가 페릴의 말을 밀어붙이고 힘껏 내찌른 창은 원래 하나라는 듯이 페릴의 복부에 파고들었다.
 손을 통해서 살갗을 뚫고 그 내부에 있는 무엇인가를 찢어내며 등쪽의 딱딱한 무엇인가를 부수는 느낌이 전해져온다. 바바라로써는 지금까지 수없이 느껴왔던 그러한 감각이다. 더한 감각도 느껴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느끼고 있는 감각은 지금까지 느껴왔던 어떠한 감각보다도 더 소름끼치는 그것이었다.
 바바라의 창이 자신을 궤뚫기 직전, 페릴은 낯익은 감각을 느꼈다. 자신의 몸이 타인의 의지에 의해 정지하는 감각. 그것은 자신이 알고 있는 어떤 윈더프가의 사람이 자주 쓰던 마법이었다. 그리고 페릴은 자신이 그 마법을 쓴 사람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는 사실에 더욱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 충격은 자신의 복부와 하나가 되어 있는 바바라의 창으로 인해 배가 되었다.
 페릴은 혼심의 힘을 다해 입을 열었다.
 "미안…, 바바라…."
 손을 뺄 수도 없다. 지금 창을 빼내면 페릴의 몸을 지지하던 척추는 그 힘을 잃고 그대로 무너져 내릴 것이다.
 "페. 페릴!"
 페릴은 친구에게 손을 뻗었다. 아니 뻗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의 손은 그녀의 명령을 거부했다.
 "울지마, 바보야. 추해…."
 "페리일!"
 가슴이 불타오른다.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그녀의 몸에서 무엇인가가 빠져나간다. 페릴이 다시 바바라에게 말을 걸려고 했을때, 페릴의 눈에 누군가 보였다. 그 존재는 바바라의 뒤에서 손을 지켜들고 있었다.
 "고맙다, 페릴!"
 탱구르트는 들고 있던 할버드를 그대로 내리쳤다.
 
 [이 몸은 무적이라서 안 죽어!]
 [바바라. 세상에 무적인 것은 없어.]
 [쯧쯧. 불쌍한 페릴. 그러니까 넌 세상을 모른다고 하는거야.]
 [네네~, 바바라님. 제가 놓치고 있는 것을 가르쳐주시겠어요?]
 [우리의 우정이 함께 하는 한 이 몸은 무적이라는 거야!]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아하하. 네가 존재하는 한 나는 무적이고, 내가 존재하는 한 너는 무적이야.]

 

 "무적…이어야 하는…데 말이지…."
 바바라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페릴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단지 바바라를 내려친 상대를 매섭게 노려보는 것 뿐.
 "어이어이, 그런 무서운 표정하지 말라고. 난 너를 도와준거야."
 말을 할 수도 없다. 이미 그녀의 육체 대부분은 그녀의 명령을 거부하고 있었다.
 "뭐 곧 따라갈테니 몇가지 알려줄까. 너희 둘이 죽고 난 뒤에는 다른 녀석들이 너희 둘의 유지를 이을거야. 우리들의 경우는 좀 다르지만 여기에서 다 죽을 순 없다고. 이미 몇몇이 섬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을테니까. 뭐 현 윈더프 당주도 마찬가지지만."
 물론 탱구르트는 그 윈더프 당주가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은 가르쳐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실은 리프크네를 알고 있던 페릴에게 있어서는 큰 충격이었고, 그 충격은 인지의 범위를 넘어 그녀의 육체에 힘을 불어넣었다.
 "윈더프 가문을 저주합니다. 그들이 사과하기 전까지 나의 저주는 영원할 것입니다."
 그 어두운 무게는 악마중에서도 가장 호쾌하다는 탱구르트가 뒷걸음 칠 정도였다. 그러나 탱구르트는 붙잡은 그의 할버드에 힘을 주었다.
 "좋은 유언이었다. 일단 바바라를 완벽하게 끝내고 너도 뒤따라 보내주마."
 페릴은 직감했다. 저 악마는 바바라의 사체를 조각낼 셈이다. 그리고 페릴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나의 친구를 건드리지 마앗!"
 영혼을 울리는 외침과 함께 페릴의 검이 빛났다. 그 빛은 바바라의 창에 옮겨가고, 둘을 감싸면서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 빛은 펠리스 대평야의 모든 존재를 부드럽게 감싸고 끝이 없이 퍼져나갔다.

 

 


 그때의 빛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냥 적을 닥치는대로 죽이고 있었고, 적에게 죽임당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죽음을 직감한 순간 우리에게 닥쳐오는 빛을 보았고, 그 빛은 우리를 넘어서 전평야를 감쌌다. 그리고 그 빛이 사라지고 난 다음에 평야에 남아있는 것은 우리들 뿐이었다. 악마는 어디에도 없었다. 고요했다. 누구 하나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모두가 같은 충격에 휩싸였으리라. 그리고 그중에 조금 빨리 정신을 차린 사람이 외쳤다.
 "성녀님의 기적이다! 성녀님의 기적이야!"
 하나둘씩 서서히 충격에서 깨어났다. 충격에서 깨어난 사람들에게 남은 것은 환호뿐이었다.
 "이겼다!"
 "우리는 이겼어!"
 모두가 기뻐했다. 모두가 승리에 들떴다. 모두가 살아났다는 희열에 기뻐했다. 하지만 나는……."

 - 사이나스 아일로프 저서, <신과 인간 3권, 로안나에 대해서. p.498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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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메로드님의 나르실리온 100회기념 축전 소설입니다.

광암전쟁의 최후의 전투를 배경으로 썼지요.

사실 나르실리온은 현재 서장만 읽은 상태입니다.

때문에 뒤에서 밝혀질 내용에 어긋나는 부분도 있을지도 모릅니다.

뭐, 그런 건 말씀해주시면 적당히 수정해서 나중에 완전본으로 보내드리지요.

에메로드님, 100회 다시 한번 축하드려요~.

 

 

첨부파일 03-becauseofyou(Acousticver.).wma

 

 

언제나와 같은 즐거운 행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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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부지기]네드발백작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8.07.29 파일만 올리면 자동으로 재생되는구나. (...)
  • 작성자[산스]風〃엘 | 작성시간 08.07.29 ㅇㅁㅇ.... 저번에 내가 언니한테 준 소설과는 비교도 안되네요 +ㅁ+
  • 작성자두르]산새 | 작성시간 08.07.29 재밌게잘읽었어요 ~
  • 작성자エメロ-ド♡ | 작성시간 08.07.29 어머 음악을 넣으니 뭔가 더 슬픈느낌이 강해졌어요...
  • 답댓글 작성자[부지기]네드발백작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8.07.30 전체적으로 그런 이미지를 유도한터라. 찾고 찾다가 그냥 저걸로 낙찰. (중간부분에 안 어울리는 게 단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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