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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바꾸는 사람들

[기도의 힘]4수생 엄마가 되어봐야 기도맛을 알지요!

작성자기도꼭성취|작성시간12.03.23|조회수3,645 목록 댓글 35

“엄마, 꿈에 제가 대학교 합격이 취소되어서 울고불고 난리가 났어요.” 


오늘 아침 작은아이의 말에 순간 가슴이 철렁하고 몇 초간 피가 멈춘 것 같았습니다. 지난 몇 년간의 일들이 떠올라 몇 자 적어봅니다.

제가 불교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2009년, 큰아이가 재수를 시작할 때였습니다. 무작정 찾아간 절에서 수능 백일기도를 접수하기에 등록하고, 아르바이트도 관두고 기도에 올인했습니다. 북 치고 금강경을 하는데 그저 어찌나 좋던지, 뜻도 모른 채 하루 30번 이상 독경하고, 절은 천 배씩 했지요. 


그런데 수능 10일 전, 마침 모의고사 성적도 잘 나와주었기에 별 걱정 없이 관음도량에서 3천배를 마치고 귀가할 때였습니다. 아침배가 들어오는데 간장게장용 게가 어찌나 싱싱하던지.. 망째로 사들고는 잘 샀다며 그날부터 집에서 맛있게 게장을 해 먹었지요. 3일 후 또 3천배를 마치고 일부러 찾아가 게를 사왔지요. 이게 엄청난 죄란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시험 2일 전, 아이의 몸은 불덩이가 되어 아예 집에서 드러누웠고...


그렇게 2010년 3수를 시작, 작은아이는 고3! 진짜 부처님이 계신다는건지? 소원을 들어주시기는커녕 왜 이런 시련을 주시는건지? 도저히 절에 나갈 엄두가 나질 않았습니다. 


그와중에 5월 10일, 자식같은 여동생을 멀리 보내버리고, 49일동안 혼자 법당 영단에 앉아 금강경을 읽었습니다. 정말 좋은 곳으로, 극락세계로 갈 수 있도록 간절하게 빌고 또 빌었습니다. 3재날 꿈, 햇빛이 가득한 초록색 잔디밭에서 분홍 스웨터와 흰 치마를 입고 흔들의자에 앉아있는 동생의 모습이 어찌나 평화롭고 행복한 풍경이던지요. 6재 되는 날엔 동생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분홍신발이 크게 보이면서 동생이 신고 갈 신발이라 했습니다. 꿈에 본 그 비슷한 신발을 사서 산소에 가서 태워주었지요. 그리고 몇 달 후, 관세음보살님같은 어렴풋한 동생의 모습을 보고난 후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영가를 위해 금강경 독경을 했기에 좋은 곳으로 갔으리라. 그리고 믿음이 강해졌습니다. 영가와 교감이 된다라고.

이제 다시 수능기도를 시작하면서 화엄경약찬게, 다라니에 집중했습니다. 10월 말 쯤 꿈에 부처님께서 신중전을 향하지 말고 관세음보문품을 하라 말씀하시는 선몽을 받고 잠자는 시간도 줄여가며 정말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정말 합격을 확신하며 원서를 넣었는데, 큰아이는 원하는 대학에 또 갈 수가 없었습니다. 작은 아이마저 떨어지고, 3점이 더 낮은 친구는 다른 대학에 합격한 사실을 알고 크게 깨달았습니다. 같은 점수라도 원서를 얼마나 잘 쓰느냐에 따라 학교 레벨이 달라진다는것을!

2011년, 큰아이 4수생, 작은아이 재수생. 

“엄마, 제가 취직은 빨리 할게요!”라는 큰아이에게, 괜찮아. 빨리 핀 꽃은 시들기만 기다리지만, 넌 이제 꽃망울이니 그만큼 희망이 있잖니? 라며 파이팅을 외쳤습니다. 우린 이렇게 또다시 익숙해져버린 수험생의 일상을 살아갔습니다. 어느날, 사시 합격시킨 보살님이 작년 수능 후 주신 지장경이 문득 생각났습니다. 꼭 읽어보라던 말씀. 처음으로 지장경을 여동생 기일에 맞추어 21일간 법당영단에서 읽던 중, 법안스님 법문을 티비로 잠깐 들었습니다. 관세음보살 염불로 스님께서 결핵을 완치시켰다는 내용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진즉 스님을 만났더라면, 여동생도 그렇게 허망하게 보내지 않았을텐데라는 죄책감에 인터넷으로 모든 법문을 들었습니다. 지장경이 초보자에게도 적합하고 가장 빠르다는 말씀에 귀가 번쩍 뜨여 날마다 낮이고 밤이고 읽었습니다. 새벽기도는 아직 엄두가 나질 않아 새벽에 기도할 수 있는 의지력을 갖게 해달라고 소원표에 적기만 했습니다. 


6월 12일은 잊지 못할 날이지요. 처음으로 봉정암을 다녀온 후, 용기가 나서 새벽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새벽엔 지장경1독, 지장보살염불만독을 하고 낮에는 관음기도를 열심히 했습니다. 이 때부터는 정말 자면서도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8월 말쯤, 수시원서를 써야 하기에 법안스님을 친견하려 문의하였더니 두 달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다행히 도반이 스님을 잘 알고 있어 금방 같이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친견 이틀 전 꿈에, 수많은 사람들이 기도하러 간다고 줄을 서 있었습니다. 저도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망에 든 참게를 기도하러가면서 무거우니 그 도반에게 받아달라고 줘버리고 깨어났습니다. 그 때의 기분이란! 뭔가 예감이 좋았습니다. 스님께 수시원서 3개를 보여드리며 어느 과에 써야 합격하겠습니까? 했더니 두 아이 모두 수시는 3개 대학 합격 카드가 안나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지장경 읽고 무슨 꿈 안꾸었느냐?물어보셨습니다. 뭔가 해결해야 할 꿈 같았던 며칠 전 꿈을 말씀드렸지요. 갓난아이 10명 정도가 양쪽으로 나란히 누워 자는데, 햇볕이 쨍쨍 내리쬐고 얼굴엔 땀이 가득하고 입을 벌린 채 자는 모습이 모두 똑같았다고. 스님께서 아이들 사주를 보시며 왜 안되는지를 설명해주셨는데 공감이되었습니다.스님께서 불공을 드리자 하셨습니다. 운좋게도 불공드릴 날짜가 그 다음 토요일만 간신히 비어있어 서둘러 불공을 드린 이틀 후, 꿈에 제가 막걸리를 열 몇 병을 들고 산길로 올라가서 양쪽으로 쭈욱 놓았습니다. 누군가 이미 막걸리를 놓고 갔었고, 저는 어떤 남자분에게 잘 지켜달라 부탁하고, 술도 따라 마시라고 하고 산길을 내려왔습니다.

9월 하순, 봉정암에 두 번째로 갔습니다. 버스에서부터 묵언을 하며 기도만 했습니다. 올라가는 길에도 경치도 보지 않고 혼자 그저 묵묵히, 관세음보살 염불만 하며 올라갔습니다. 철야를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소나무, 바위 하나 하나를 붙잡고 얼굴을 부비고 절을 하고.. 저 좀 살려주시라고 빌었습니다. 이틀 후 꿈에, 봉정암 가는 길에 커다란 바위가 있는 곳에서, 저 높은 하늘 아래 바위까지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높은 곳에서 보살님이 저를 두 번째로 들어올려서 그 곳으로 올려주시더니, 저까지만 올라오고 다른 사람들은 돌아서 오라고 했습니다. 아! 분명 합격꿈이다! 그런데 두 아이중 누가 합격된다는 건지, 왜 꼭 두 번째여야 했는지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수능 3일 전, 새벽 지장보살 정근 후 잠깐 졸았는데, 법안스님께서 과일을 올리라 하십니다. 수박이 보였기에 서둘러 수박을 올렸습니다. 수능 다음 날 새벽기도 후, 꿈에 서울법당영단 오른쪽에 커다란 접시에 조상님을 위한 음식이 3단으로 차려져 있고, 어떤 보살님이 커다란 목소리로 ‘좋겠어요’라고 하셨습니다. 뒤에서 저를 감싸안으면서요. 꿈에서 깨고, 부러워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수능 후, 정말로 수시는 둘 다 안되었습니다. 꿈에 스님께서 논산 안심정사에서 수험표 두 장을 보내셨습니다. 사인을 하느라 좀 늦게 보내셨답니다. 수험번호가 또렷하게 적혀있는 꿈, 그럼 늦는다는게 정시를 말씀하신 건가?싶었지요. 


여동생 아이가 이과라, 그 아이를 위해 생전 본 적 없던 이과 배치표를 받아왔습니다. 저녁에 잠이 오질 않아 밤새 깨알같은 글씨가 가득한 이과 배치표를 읽어내려가다 문득, 큰아이를 교차지원시켜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습니다. 확! 새벽 3시에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교차지원! 왜 이런 제도를 알려고 하지 않았을까? 왜 여태 눈 앞의 세 대학만 바라보며 3년을 달려왔을까? 모두가 어리석었다는 깨달음이 드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제 정시 원서를 쓰기 위해 스님과 상담을 했습니다. 큰아이는 A 대학 제일 센 과가 합격할 것이고, 작은 아이는 B대학과 C대학 중 B대학의 최고 학과를 넣어라 하셨습니다. 둘 다 합격카드가 나온다 하셨지요. 하지만 두 아이들은 모두 경쟁률도 높은 최고학과를 쓴다는 게 불안하다 했습니다. 차라리 안정적인 과를 지원하는게 어떻냐 말했지요. 하지만 저는 스님의 확신에 찬 눈빛을 믿었기에 밀어붙였습니다. 엄마만 믿으라고! 스님이 보통 스님이 아니라고!

큰아이는 지금 A대학 4년 장학금을 받고 다닙니다. 졸업과 동시에 취직이 보장되고, 군대 문제도 해결되는 학교인지라 정말 잘 선택했다고 큰아이는 말합니다. 이제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을 공개해도 좋을 것 같다고. B대학에 합격한 작은아이는 요즘 과외자리를 알아봅니다. 용돈이라도 스스로 해결하겠단 말이 기특하지요. 큰아이 교차지원을 했던 것도, 그런 지혜를 갖게 되었던 것도, 여동생을 위해 조금이나마 공덕을 지었기에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조상님과 영가님들에게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이들 합격 후에도 4년 후 취직을 위해서 새벽기도를 계속 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저금하듯 해야 한다는 걸 뼈저리게 체험했기 때문이지요. 이제 논산 안심정사에 기념식수를 합니다. 나무 같은 내 두 아이를 위해... 될성 싶은 나뭇잎이기에, 뿌리가 깊은 나무로 잘 자라줄거라 믿습니다.

그동안 수시로 기도 부탁드린다고 졸라대도 싫은 내색 한 번 없이 기꺼이 기도해 주신 스님께 다시 한 번 두 손 모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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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부처님곁에 | 작성시간 16.08.09 감동적인 체험글입니다. 축하드리고 잘 배워서 열심히 기도하겠습니다!!
  • 작성자김동주 | 작성시간 17.01.09 이제사 지장경기도 시작 하는 초보입니다.존경합니다.한터럭의 의심없이 하신4수생어머니 존경합니다. 전 속 섞이는 자식이 있어서 급하고 간절한 맘으로 매달려보려는 상황입니다
    계속 쭉~~가보려합니다.아이가 커서 어른이 되고 제가 기도할 힘이 없어지는 그날까지 아니 죽는 순간 까지도 기도 하고 싶은맘 간절 합니다.제발 지치지 않는 기도선근 허락해주십시오
    지장보살님^^
  • 작성자라벤더 | 작성시간 17.03.28 축하드립니다....^^
  • 작성자김서윤 | 작성시간 18.10.02 너무 감사합니다
    법우님
    이글이 기도는 적금과 같다라는 말씀에 너무나 깊은 감명을 받으며 저도 차곡차곡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주민호 | 작성시간 21.03.27 대단한 불심이고 큰스님의 가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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