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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강론 묵상

[스크랩] 2024년 02월 19일 월요일 < 최후의 심판>최정훈 바오로 신부의 오늘 묵상입니다.

작성자stellakang|작성시간24.02.19|조회수148 목록 댓글 3

2024년 02월 19일 월요일

 

복음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5,31-4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1 “사람의 아들이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함께 오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것이다.

32 그리고 모든 민족들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일 터인데,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

33 그렇게 하여 양들은 자기 오른쪽에, 염소들은 왼쪽에 세울 것이다.

34 그때에 임금이 자기 오른쪽에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35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36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37 그러면 그 의인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렸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38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39 언제 주님께서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찾아가 뵈었습니까?’

40 그러면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41 그때에 임금은 왼쪽에 있는 자들에게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42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43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이지 않았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병들었을 때와 감옥에 있을 때에 돌보아 주지 않았다.’

44 그러면 그들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시거나 목마르시거나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또 헐벗으시거나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시중들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45 그때에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46 이렇게 하여 그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은 최후의 심판 장면을 들려주는데, 하느님 나라를 차지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기준을 알려 줍니다. 심판관은 심판받는 이들이 살면서 무엇을 배웠는지, 무엇을 성취하였는지, 얼마나 노력하며 살았는지는 물어보지 않습니다. 심지어 무엇을 믿었는지 그들의 신앙과 종파도 묻지 않고, 그들이 어떻게 기도와 예배를 드렸는지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심판의 기준은 바로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베푼 사랑과 자비’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베푼 모든 사랑과 자비가 곧 당신께 베푼 것이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가장 작은 이들과 당신을 동일시하십니다. 이러한 동일시는 그리스도께서 가장 작은 이들에게 얼마나 특별한 사랑과 연민을 가지고 계셨는지 짐작하게 합니다. 이 본문은 교회가 누구를 우선적으로 선택하고 돌보아야 하는지 명백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교회의 가르침은 이처럼 가난한 이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사랑에 바탕을 둡니다. 이에 따라 교회는 초세기부터 가난한 이들, 병자들, 감옥에 갇힌 이들과 같이 가장 비천하고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을 그리스도로 여기고 그들에게 애덕을 실천하였습니다.


우리가 가난한 이들을 돌보고 사랑하는 이유는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여 드리려는 것입니다. 주님의 자비를 입지 못한 그들이 우리를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고 위로를 받을 때 주님께서는 그 어느 때보다 더 기뻐하실 것입니다. 당신께서 거저 주시는 사랑이 우리를 통하여 드러나는 것이고, 그만큼 하느님 나라가 실현되는 것입니다. 길을 가다가 우연히 가난한 이들과 마주칠 때, 피하지 말고 그들에게 다가가 따뜻한 사랑의 손길을 내밀면 좋겠습니다. 이때야말로 주님께 선물을 드리고 사랑을 표현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좋은 기회입니다.

 

( 최정훈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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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평화의 사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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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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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데이지덕 | 작성시간 24.02.19 하느님께서 거져 주시는 사랑이 우리를 통하어 드러나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조나단 | 작성시간 24.02.19 아멘 신부님 stellakang 님 고맙습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4.02.19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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