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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사라져 가는 것들

작성자한동수|작성시간19.05.08|조회수212 목록 댓글 6



봄이면 녹색 휀스 울타리를 화려하게 장식하던 넝쿨장미를  

가지치기 할 때마다 온 팔이 가시에 찔려  상처 투성이가 되고..

걷잡을 수 없이 자라는 통에 감당할 수가 없어  지난해에 다 없애 버렸습니다.


지난 겨울은 그리 춥지도 않았는데...

철쭉꽃은 왜  누렇게 말라 버렸는지,

온 산야는 초록으로 푸르기만 한데, 너무도 보기 흉해서

그것도 엊그제 잘라 버렸습니다.

오직 한 그루의 라일락만 남겨 두었었는데...

여러 해 동안 꽃을 피우지 않길래, 올해도 피지 않으면 베어 버리리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곳에는 이미 다 저버린 이제서야 활짝 꽃을 피워냈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대문 앞으로 들어오려면, 골목안이 향기롭기 그지없습니다.

베어내지 않기를 참 잘했습니다.


해마다 이맘 때...

라일락이 향기롭게 피어나고...

달빛 닮은, 순백의 으아리 꽃이 환하게 피어나면...

검은돌 부락 개울 옆, 모내기를 하려고 물 댄 논에서는

개구리가 울어댔었습니다.

한동안 그쪽으로 산책길을  잡지  않았더니...

진작에 메워지고, 오직 한 배미 남은 논마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벌건 생흙만이 펀펀합니다.


내 땅은 아니지만, 왜 그렇게도 서운하던지...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달이 휘엉청 밝은 날 밤,

"개굴개굴..."

요란하게  울어제끼던 개구리소리...

그리고 간간이 "맹꼬~옹, 맹꼬 ~옹..."

맹꽁이가 화음을 넣고 했었는데...


물 가득한 논에 벼가 파랗게 자라면...

살랑대는 바람에 물결치듯 하늘거리는 벼포기 사이를

느릿느릿, 우아하게 거닐던 다리 긴 황새도

이제는 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벼가 알알이 여물어 누렇게 익어갈 때...

고개 숙인 벼이삭을 마구 디디고 달리는 바람소리도

이제는 들을 수도, 느낄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아마, 이곳에도 다른 바람이 불어오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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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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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바람의 꽃~~ | 작성시간 19.05.09 맞아요 한참 안 다닌 산길을 오르다보면 얼굴을 휘감아 오는 찐득한 거미줄 때문에
    가기가 참 힘들지요.
    한동수님의 글은 언제나 다정다감하게 다가옵니다.
    라일락 향기가 제 방에도 풍기는 듯~~~
    솔님 다솜이님 한동수님 카페에서 자주 보고 싶은 이름들...
  • 작성자바람의 꽃~~ | 작성시간 19.05.09 그 라일락 나무 열매를 맺지 않은 무화과 나무처럼 베어질 뻔 했군요.
    라일락의 향기는 언제 맡아도 좋은 것 같아요.
    언제나 읽으면 좋은 동수님의 글처럼...
    왜 사람들은 논밭을 자꾸만 없애며 집들만 지어대는지 모르겠어요.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점점 커져만 가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 작성자나무로즈마리 | 작성시간 19.05.10 ^^ 저도 오늘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마틸다 형님. 거의 30년전 제가 교리받던 때부터 수녀님 손에
    이끌려 입단했던 청년레지오 단원 몇명을 비록 본당은 달라졌지만 지금까지 만나는데 이왕 만나는 것
    성지순례로 하자해서 오늘 절두산 성지를 가기로 했었거든요. 근데 전 이 절두산 성지를 고딩 때 가톨릭
    신자도 아니면서 자주 갔었지요. 그 분위기를 좋아새서요. 제 머리속에는 그때 합정동에서 걸어 들어가던
    그 오솔길과 성당 탑위의 십자가를 그리며 내렸는데 온통 빌딩이 들어서고 오솔길은 온데간데 없구요. ^^
    성당도 너무나 바뀌어서 제가 좋아했던 강변절벽위에 난간길은 없어지고 완전 다른 성지가 되어있더라구요.
  • 답댓글 작성자나무로즈마리 | 작성시간 19.05.10 그 난간에 서면 강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이 절벽과 성전 벽에 부딪혀 내던 그 가슴을 서늘하게 때리던 곡성같던
    소리는 들을 수 없구요. 성지 한켠에 그 당시 성지모습이 사진으로만 남았더라구요, 그래도 다행인 것은
    성지터를 잘 가꾸어서 십자가의길 기도처를 만들어 놓았구요, 뒷문으로 한강 고수부지와 연결되는 문이
    있고 내려가면 강변 자전거길을 따라 당시 오솔길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은 달랠 수 있었답니다.
    그당시에는 성전 지하에 박물관이 있고 그곳에 옛적 형틀. 형기들이 있었는데 오늘은 김수환 추기경님
    추모공간으로 살아계실 때 사용하시던 물건들,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어서 아쉬움을 달래고 왔답니다.
    아 상실감...
  • 작성자한동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9.05.10 솔님, 바람의 꽃님, 나무로즈마리님...
    감사해요, 읽어주셔서...

    울동네 건너편 들판이 온통 배밭이었는데, 다 없어졌어요...
    뿐만 아니라 내년이면 입주한다는 고층 아파트가 한참 건설중이랍니다..
    볼 적마다 혼자 중얼거립니다.
    "에구, 저곳은 그냥 좀 두지...
    아파트만 지어 대서 어쩔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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