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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나를 잊지 말아요

작성자햇살타고, 마리아|작성시간24.02.23|조회수152 목록 댓글 8

나를 잊지 말아요

 

 

 

  “사람이 언제 죽습니까?”

질문을 던진 분께서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질 때가 바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라고 한다. 맞는 말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나도, 사람들에게 잊히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쓴다는 사실에 속물이야하면서 몸서리를 쳤다.

농사라고 해야 남들의 비하면 소꿉장난이다. 그런데도 농사일에서 헤어날 날이 별로 없으니, 농사경력이 이십여 년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일솜씨가 서툴러서인가 했다. 하지만 거기에는 농약을 덜 줌으로써 우리 농산물을 먹을거리로 선택한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려는 노력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질 좋은 농산물을 소출하면서 그 들의 마음이 나에게서 떠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가족처럼 지내는 동식물을 볼 때면, 그들 나름대로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 년에 한 차례 새빨간 꽃잎을 피우는 작약을 바라보노라면 황홀하기 그지없다. 계단 아래 수돗가에서 꽃을 피우기 때문에 하루에 수도 없이 마주친다. 혹시라도 노란 꽃술이 밤사이에 내리는 이슬에 젖기라도 할까 봐 꽃잎을 포개는 예쁜 고것들이 나를 봐주세요.’라는 듯 아침마다 활짝 열기를 반복한다.

텃밭 한 귀퉁이에 부챗살처럼 활짝 꽃을 피우는 자귀나무의 우아함이라니···. 그도 밤이 되면 잎사귀를 모두 오므린다. 넝쿨에서 샛노란 꽃을 피우고 실기둥을 땅속에 박은 후에야 열매를 맺는 땅콩도 밤에는 푸른 잎을 모두 접어버린다. 내가 식물학자도 아니고 그들의 그런 행위에 대해서 아는 바가 별로 없지만, 그들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법이려니 한다.

 

  나에게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는 강아지들, 어느 자식이 저들처럼 나를 따르고 기쁨을 안겨줄지 할 때도 있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 너머로 녀석들을 바라보아도 그렇다. 사람의 기척을 용케 알아차리고 꼬리를 살래살래 흔들고, 현관문을 여는 순간부터, 마당 가를 거닐 때도 눈동자가 나에게 꽂혀 있다. 또 사람처럼 눈동자를 맞추면서 재주 부리기를 좋아해서, 일어서서 앞발을 내 손에 얹어 놓겠다고 두 놈이 경쟁할 땐 얼른 그 자리를 피한다. 내 발소리를 알아차리는 것은 기본이요, 남의 자동차 우리 자동차, 처음 오는 손님과 친척들도 구분을 아주 잘한다. 꽤 먼 거리에서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도 알아듣고는 펄쩍펄쩍 뛴다. 밤마실이라도 가는 날에는 앞장서서 내가 자주 놀러 가는 집으로 향한다. , 대문 밖에 웅크리고 앉아서 외출한 제 주인을 기다리는 충성심에 감탄할 따름이다.

 

  동식물도 사랑을 베푸는 제 주인에게 예쁘게 보이려고 노력하는데, 하물며 창조자의 으뜸 피조물인 사람들이야말로 몇 배로 더 노력해서, 생명을 부여하신 분께서 말씀하시는 삶은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분께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사랑스러운 너로, 세상 끝 날에 너를 기억하리라 잊지 않으리라하시는 그 말씀을 꼭 듣고 싶다. 그 때문에 망설이지 말고 나를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할 것이다

 

  공부해라, 책 읽어라, 막내딸의 종아리를 때리시던 우리엄니, 지금 내 모습에 엄청나게 좋아하시겠지, 하지만 이미 여러 해 전 이승을 떠나신 부모님이시다. 나의 소홀함으로 얼마나 많은 나날이 적적하셨을지. 엉터리 딸내미를 그리워하며 섭섭함을 어찌 달래시고, 이제라도 하늘에 계신 부모님께 늘 감사하는 마음 자주자주 기억해야겠다. 이웃의 잘못도 용서하고 형제들과 우애도 돈독히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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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햇살타고, 마리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2.24 새벽에 등산 가는 남의 편
    태워다 드리고, 보름은 거르고 지나갑니다.
  • 답댓글 작성자박종해 스테파노 | 작성시간 24.02.24 햇살타고, 마리아 저런저런.
    우째서 그냥 두는 겁니까!

    그러다 큰일납니다,

    와, 간 큰 남자.
    어디 나라를 구했나 보지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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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조나단 | 작성시간 24.02.24 마리아 님 진솔한 글 잘 읽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햇살타고, 마리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2.24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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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엠마우스 요셉 | 작성시간 24.02.24 일 중에 가장 보람 있는 일이 농사 중에 자식 농사 다음 논농사 받농사라 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쌤
    분꽃도 낮에는 오그라지고 달뜨면 활짝피니 조부님께서 애고 분꽃같는 눔듷 하셔서 ...
    나중에 알았어요 삼촌들이 덩치 값을 못한다고...
    새해 福많이 받ㅇㄷ시고 풍년 되세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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