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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고 올리기

마른 나뭇단처럼 기벼웠던 몸

작성자김성중 레미지오|작성시간23.03.21|조회수121 목록 댓글 3

나는 절에 들어와 살면서 두 번 어머니를 뵈러 갔었다. 내가 집을 떠나 산으로 들어온 후 어머니는 사촌동생이 모셨다. 무슨 인연인지 이 동생은 어려서부터 자기 어머니보다 우리 어머니를 더 따랐다. 모교인 대학에 강연이 있어 내려간 김에 어머니를 찾았다. 대학에 재직중인 내 친구의 부인이 새로 이사 간 집으로 나를 데리고 갔었다. 불쑥 나타난 아들을 보고 어머니는 무척 반가워하셨다. 점심을 먹고 떠나오는데 골목 밖까지 따라나오면서 내 손에 꼬깃꼬깃 접은 돈을 쥐어주었다. 제멋대로 자란 아들이지만 용돈을 주고 싶은 모정에서였으리라. 나는 그 돈을 함부로 쓸 수가 없어 오랫동안 간직하다가 절의 불사에 어머니의 이름으로 시주를했다. 두번째는 어머니가 많이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로 가는 길에 대전에 들러 만나뵈었다. 동생이 직장을 대전으로 옮겼기때문이다. 그때는 어머니도 많이 쇠약해 있었다. 나를 보시더니 전에 없이 눈물을 지으셨다. 이때가 이승에서 모자간의 마지막 상봉이었다. 어머니가 아무 예고도 없이 내 거처로 불쑥 찾아오신 것은 단 한 번뿐이었다. 광주에서 사실 때인데 고모네 딸을 앞세우고 직접 불일암까지 올라오신 것이다. 내손으로 밥을 짓고 국을 끓여 점심상을 차려드렸다. 어머니는 혼자 사는 아들의 음식 솜씨를 대견 스럽게 여기셨다. 그리고 그날로 산을 내려가셨는데. 마침 비가 내린 뒤라 개울물이 불어 노인이 징검다리를 건너기가 위태로웠다. 나는 바짓가랑이를 걷어올리고 어머니를 등에 업고 개울을 건넜다. 등에 업힌 어머니가 바짝 마른 솔잎단처럼 너무나 가벼워 마음이 몹시 아팠었다. 그 가벼움이. 어머니의 실체를 두고두고 생각케 했다. 어느 해 겨울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아. 이제는 내 생명의 뿌리가 꺾였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지금이라면 지체없이 달려갔겠지만. 그 시절은 혼자서도 결제(승가의 안거 제도)를 철저히 지키던 때라. 서울에 있는 아는 스님에게 부탁하여 나 대신 장례에 참석하도록 했다. 49재는 결제가 끝난 후라 참석할 수 있었다. 영단에 올려진 사진을 보니 눈물이 주체할수 없이 흘러내렸다. 나는 친어머니에게는 자식으로서 효행을 못했기 때문에 어머니들이 모이는 집회가 있을 때면 어머니를 대하는 심정으로 그 모임에 나간다. 길상회에 나로서는 파격적일 만큼 4년 남짓 꾸준히 나간 것도 어머니에 대한 불효를 보상하기 위해서인지 모르겠다 나는 이 나이 이 처지인데도 인자하고 슬기로운 모성 앞에서는 반쯤 기대고 싶은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머니는 우리 생명의 언덕이고 뿌리이기 때문에 기대고 싶은 것인가.

- 법정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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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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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박종해 스테파노 | 작성시간 23.03.21
    법정스님의 사모곡이군요.

    어머님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얘기하셨습니다만 누군들 이런 사랑이 없겠습니까?

    문득 어머님의 살아계실 때 모습이 떠 오릅니다.

    아, 어머니,
    언제 어디서라도 당신을 그리워합니다.

    감사합니다.
    레미지오 형제님.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답댓글 작성자김성중 레미지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3.21 법정 스님의 말씀처럼
    어머니는 우리 생명의 언덕이고
    뿌리이기 때문에 기대고 싶은 것인가
    봅니다.

    쓰테파노 형제님 마음처럼요.
  • 작성자박종해 스테파노 | 작성시간 23.03.21 아이구 무슨...
    그래요.
    어머니는 우리 생명의 언덕이고 뿌리기 때문에 기대고 싶은 것이겠죠.

    오늘 저녁도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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