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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의 멋진 글

토끼풀을 뽑아든 아이

작성자김성중 레미지오|작성시간23.03.07|조회수158 목록 댓글 4

며칠 전 한 친지의 병문안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서였다. 주택가 한쪽에 잔디밭이 있었는데 대여섯 살 된 사내아이가 토끼풀을 뽑아 한 손에 가지런히 들고 있었다. 그 아이의 모습이 하도 귀여워 다가서서 물었다.
" 누구에게 주려고 그러니?"
"여자 친구한테 주려고요."
이 말을 듣고 그 애가 너무 기특해서 그 곁에 쭈그리고 앉아 "나도 여자 친구한테 줄 꽃을 꺾어야겠네" 하고 토끼풀을 뽑았다. 한 주먹 뽑아 들고 일어서니 내 토끼풀에는 꽃이 없다며 자기가 뽑아 든 꽃에서 세 송이를
내게 건네주었다. 유치원생 또래의 아이가 여자 친구한테 주기 위해 토끼풀을 뽑고 있던 그 모습이 요 근래 내가 마주친 사람들 중에서 가장 감동적이었다. 내가 뽑은 토끼풀에는 꽃이 없다고 자기가 뽑은 꽃을 내게 나누어준 그 마음씨도 너무나 착하고 기특했다. 이런 아이들이 세상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곱게 자란다면 이땅의 미래도 밝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오전 나는 정기집회에서 '나눔' 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진정한 나눔이 무엇이라는 걸 그 애가
몸소 보여 주었던 것이다. 나눔이란 이름을 내걸거나 생색을 내지 않고 사소한 일상적인 일로써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것이다.
이를테면 끼어들려는 차에 선뜻 차로를 양보하는 일. 엘리베이터 단추를 눌러 뒤에 오는 사람이 탈 수 있도록 마음 쓰는 일. 또 뒤따라오는 사람을 위해 열린 문을
붙잡아주는 일. 그리고 마주치는 사람에게 밝은 표정으로 미소 짓는 일. 이와 같은 일들이 다 나눔 아니겠는가. 나눔에는 무엇보다도 맞으편에 대한 배려가 전제되어야 한다.
흔히 가을을 수확의 계절이라고 하는데. 이와 같은 표현은 어디까지나 사람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자연의 입장에서는 거두어들임이 아니고 나누어줌이다.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견뎌내고 여름날의 폭풍우와 뙤약볕 아래서 가꾸어 온 이삭과 열매와 잎과 뿌리를. 곡식과 과일과 채소들을 무상으로 나누어준다.
자연의 은덕을 노자는 이렇게 말한다.
'하늘과 땅은 만물을 생성하고 양육하지만 자기 소유로
삼지 않고. 스스로 이룬 바 있어도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지 않으며 온갖 것을 길러주었으면서도 아무것도 거느리지 않는다. 이것을 일러 크나큰 덕이라 한다.
죄다 나누어줄 뿐 어느 것 하나도 차지하거나 거느리지않는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공을 결코 내세우지 않는다. 이것이 대지가 지닌 덕이다. 땅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우리는 이와 같은 대지의 덕을 본받을 수 있어야 한다.
- 법정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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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박종해 스테파노 | 작성시간 23.03.07 죄다 나누어 줄 뿐 어느 것 하나도 차지하거나 거느리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공을 결코 내세우지 않는다.

    이것이 대지가 지닌 덕이다.

    좋은 글입니다.

    오늘도 행복하세요.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답댓글 작성자김성중 레미지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3.07 요점을 딱 집어서 말씀해 주시네요.
    그렇습니다!
    대지의 덕을 배워서 몸으로
    보여주어야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박종해 스테파노 | 작성시간 23.03.07 김성중 레미지오 무슨 말씀을,
    어려운 글 잘 쓰셨습니다.

    항상 명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답댓글 작성자김성중 레미지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3.07 박종해 스테파노 글을 올리적마다 공감해주시는
    마음 그 따뜻한 마음에서 나눔
    의 마음을 봅니다.
    다시한번 더 감사드림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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