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 봄이던가 꽃 속에 묻힌 섬진 윗마을을 이리 보고 저리 보면서 터덕터덕 지나가다가. 산자락에 눈에 띄는 외딴집이 있어 그 오두막에 올라가 보았다. 누가
살다 버리고 갔는지 빈집인데 가재도구들이 여기저기
흩어진 채였다. 언덕에 차나무가 심어져 있고 동백이 몇 그루 꽃을 떨구고 있었는데. 허물어져 가는 벽 한쪽에 서툰 글씨로 이런 낙서가 있었다.
' 우리 아빠. 엄마는 돈을 벌어서 빨리 자전거를 사주세요? 약속.'
'약속' 끝에다가 하트를 그려 놓았었다. 무심히 이 낙서를 읽고나니 가슴이 찡했다. 자기 친구들이 자전거를 타는 걸 보고 몹시 부러워하면서 아이는 자기 아빠와 엄마한테 자전거를 사달라고 졸랐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가난한 그 집 아빠와 엄마는 이 다음에 돈 벌면 사주마고 달랬던 모양이다.
자전거를 갖고 싶어하던 그 집 아이의 소원이 이루어졌는지 나는 궁금하다. 아직도 자전거를 갖지 못했다면 그 집 아이에게 이 봄에 자전거를 사주고 싶다.
- 법정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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