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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신부 강론

[스크랩] 2024년 2월 2일 금요일 (백) 주님 봉헌 축일(축성 생활의 날)<오늘 우리는 존재 자체로 주변의 어둠을 밝히고 있습니까?>

작성자stellakang|작성시간24.02.02|조회수241 목록 댓글 5

2024년 2월 2일 금요일 (백) 주님 봉헌 축일(축성 생활의 날)

 

제1독서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 말라키 예언서의 말씀입니다.3,1-4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너희가 좋아하는 계약의 사자
보라, 그가 온다.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2 그가 오는 날을 누가 견디어 내며
그가 나타날 때에 누가 버티고 서 있을 수 있겠느냐?
그는 제련사의 불 같고 염색공의 잿물 같으리라.
3 그는 은 제련사와 정련사처럼 앉아
레위의 자손들을 깨끗하게 하고
그들을 금과 은처럼 정련하여
주님에게 의로운 제물을 바치게 하리라.
4 그러면 유다와 예루살렘의 제물이 옛날처럼,
지난날처럼 주님 마음에 들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제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22-40
22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23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24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25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26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27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28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29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30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31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32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33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
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35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36 한나라는 예언자도 있었는데, 프누엘의 딸로서 아세르 지파 출신이었다.
나이가 매우 많은 이 여자는 혼인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는,
37 여든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
그리고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38 그런데 이 한나도 같은 때에 나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39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그들은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40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우리는 존재 자체로 주변의 어둠을 밝히고 있습니까?

 

주님 봉헌 축일이자 축성 생활의 날입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갓 태어난 아기 예수님을 품에 안고 성전으로 모시고 가서 하느님께 봉헌함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오늘 우리 역시 성전에 봉헌되신 아기 예수님처럼 주님께 봉헌되고 선물이 되기를 청하는 마음으로 초를 봉헌합니다.

 

봉헌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묵상해봅니다.

봉헌한다는 것은 드린다는 것, 바친다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왜 우리를 하느님께 바칠까요?

하느님은 세상과 만물을 창조하신 분으로서 먼지요 티끌이요, 아무것도 아닌 우리를 이 세상에 불러주신 분이십니다.

 

그분 섭리의 손길 아래 우리 인생은 활기를 띠며 가치와 의미를 지닙니다. 그분의 크신 자비가 아니라면 우리는 잠시도 제힘으로 서있을 수 없는 나약한 존재들입니다.

 

그렇다면 너무나도 당연히 우리는 좋은 것이 생겼다면, 감사할 일이 생겼다면, 감사의 마음을 표현해야겠습니다.

 

무엇보다도 무상의 선물로 주신 우리 인생이기에, 우리 자신을 수시로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역동적인 것이며, 상호적인 것이며, 오고가는 것입니다. 맨날 받기만 하고 드리는 것이 없다면, 그 관계는 절대 오래 가지 못합니다. 살아있는 사랑이 되기 위해서는 주고 받아야 합니다.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분 보면 그저 하느님께 청하기만 합니다. 하느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난감하고 어색할 것입니다. 자녀로서 아버지께 필요한 것을 청하는 것도 좋지만, 때로 감사의 마음을 담아 드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오늘 주님 봉헌 축일에 나는 과연 주님께 무엇을 드려왔나? 무엇을 봉헌하고 있나? 무엇을 선물할 것인가? 고민하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제대에 봉헌할 초를 깎으며 초가 지닌 상징성을 생각합니다. 초는 언제나 자신을 녹여가며, 자신을 소멸시켜가며 주변의 어둠을 밝힙니다. 자신의 희생으로 주변을 화사하고 훈훈하게 만듭니다.

 

오늘 우리는 존재 자체로 주변의 어둠을 밝히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는 하느님과 이웃과 세상을 위해 자신을 조금씩 소멸시켜 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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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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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조나단 | 작성시간 24.02.02 아멘 신부님 stellakang 님 고맙습니다.
  • 작성자아참 | 작성시간 24.02.02 오늘 우리는 하느님과 이웃과 세상을 위해 자신을 조금씩 소멸시켜 가고 있습니까?
  • 작성자두레골 | 작성시간 24.02.02 아멘 신부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작성자들꽃1 | 작성시간 24.02.02 감사합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4.02.02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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