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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진 신부 강론

[스크랩] 2023년 12월 27일 수요일 (백)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우리의 기쁨이 충만해지도록 이 글을 씁니다.』

작성자stellakang|작성시간23.12.27|조회수138 목록 댓글 5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강론>(2023. 12. 27. 수)

(1요한 1,1-4; 요한 20,2-8)

 

제1독서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선포합니다.>
▥ 요한 1서의 시작입니다.1,1-4
사랑하는 여러분, 1 처음부터 있어 온 것, 우리가 들은 것
우리 눈으로 본 것,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 본 것,
이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
2 그 생명이 나타나셨습니다. 우리가 그 생명을 보고 증언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그 영원한 생명을 선포합니다.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3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선포합니다.
여러분도 우리와 친교를 나누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친교는 아버지와 또 그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나누는 것입니다.
4 우리의 기쁨이 충만해지도록 이 글을 씁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0,2-8
주간 첫날, 마리아 막달레나는 2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3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으로 나와 무덤으로 갔다.
4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5 그는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6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7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8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Jusepe Leonardo (1601-1656), c.1630-1640, Bowes 박물관의 복음사가 성 요한

 

『우리의 기쁨이 충만해지도록 이 글을 씁니다.』

 

“처음부터 있어 온 것, 우리가 들은 것, 우리 눈으로 본 것,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 본 것, 이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 그 생명이 나타나셨습니다. 우리가

그 생명을 보고 증언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그 영원한

생명을 선포합니다.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선포합니다. 여러분도 우리와 친교를

나누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친교는 아버지와

또 그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쁨이 충만해지도록 이 글을 씁니다(1요한 1,1-4).”

 

이 말은, ‘예수님은 생명이신 분’이라고 증언하는 말이고,

예수님을 믿어서 생명을 얻으라고 권고하는 말입니다.

한 마디로 줄이면, 예수님에 관한 ‘복음 선포’입니다.

사도들의 직무 가운데에서 첫 번째 직무는 복음 선포입니다.

요한 사도는 복음서와 편지들과 묵시록을 기록함으로써

‘글’을 통해서 복음을 선포한 사도입니다.

그의 글들 자체가 중요한 업적이지만,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14).” 라는

고백과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 4,8.16).” 라는 고백은

특히 중요한 업적입니다.

그 고백은, 주님께서 내려 주신 계시에 그 자신의 깊은 묵상이

합해져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처음부터 있어 온 것”이라는 말은, 요한복음 1장 1절의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예수님은 한처음부터 아버지 하느님과 함께 존재하신 분입니다.

“우리가 들은 것, 우리 눈으로 본 것,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 본 것”이라는 말은, 예수님과 함께 지내면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과 예수님의 삶을 직접 보았고, 예수님의

말씀들을 직접 들었고, ‘예수님이 곧 하느님’이라는 것을 직접

체험했음을 뜻하고, ‘생명의 말씀’은 예수님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말씀이신 분’으로서

우리에게 참되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요한 6,68).” 라고 고백했습니다.

 

“그 생명이 나타나셨습니다.” 라는 말과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라는 말은, “생명이신 분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려고 오셨습니다.” 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그 생명을 보고 증언합니다.” 라는 말은, “예수님은

생명이신 분이라고 우리 사도들이 증언합니다.” 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증언합니다.” 라는 말은,

자신의 목숨과 인생 전부를 걸고서 하는 말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에게 그 영원한 생명을 선포합니다.” 라는 말은,

“생명이신 예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얻으라고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라는 뜻입니다.

<복음 선포는 함께 구원받자고 초대하는 일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라는 말은,

요한복음 1장 2절의 “그분께서는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라는 말과 ‘같은 말’이고, 이 말은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이며, 하느님과 같으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도 우리와 친교를 나누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친교는 아버지와 또 그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나누는

것입니다.” 라는 말은 복음을 선포하는 이유를 설명한 말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의 다음 기도에 연결됩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요한 17,3).”

이 말씀에서 ‘알다.’ 라는 말은, ‘친교, 일치’를 뜻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영원한 생명’을 얻어 누린다는 것은, 하느님, 예수님과

일치를 이루어서 ‘함께 영원히 사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요한 사도의 “여러분도 우리와 친교를 나누게

하려는 것입니다.” 라는 말은, “여러분도 우리와 함께 영원한

생명을 얻어 누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친교는 아버지와 또 그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나누는 것입니다.” 라는 말은, “영원한 생명은 하느님, 예수님과

일치를 이룰 때에만 얻을 수 있습니다.” 라는 뜻입니다.

 

<단순하게 표현하면, 복음을 선포하는 이유는 ‘모두가 함께

살기를 바라기 때문’인데, 그 마음이 바로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하느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되어서 영원한 생명을 얻고,

당신과 함께 살기를 바라시는 분입니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을 나도 바라는 것, 그것이 신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인이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것은

신앙인으로서 당연히 하게 되는 일입니다.>

 

“우리의 기쁨이 충만해지도록 이 글을 씁니다.” 라는 말은,

편지를 쓰는 이유를 설명한 말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의 “이들이 속으로 저의 기쁨을 충만히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17,13).” 라는 기도에 연결됩니다.

예수님의 복음 선포는 당신이 누리고 있는 기쁨에 동참하라는

초대이고, 우리가 하고 있는 선교활동은 함께 그 기쁨에

동참하자는 초대인데, 여기서 ‘기쁨’은 하느님 나라에서 누리는

영원한 행복과 영원한 평화를 총체적으로 나타내는 말입니다.

<복음 선포는 ‘너’를 위한 일이고, 동시에 ‘나’를 위한 일입니다.

‘기쁨’이란 원래 ‘함께’ 누리는 것입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서만 평화를 누리고, 혼자서만 행복하게

사는 것은, 평화도 아니고 행복도 아니고 기쁨도 아닙니다.

그것은 그냥 ‘고독’일 뿐이고, ‘자기만족’일 뿐입니다.

만일에 그렇게 혼자서 살겠다고 고집을 부린다면,

그것은 사랑이신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죄입니다.

다른 사람을 소외시키고 고립시키는 것은 당연히 범죄입니다.

우리는 외로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욱더 관심을 갖고

사랑의 손길을 내밀어야 합니다.>

 

[출처]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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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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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아참 | 작성시간 23.12.27 다른 사람을 소외시키고 고립시키는 것은 당연히 범죄입니다.
  • 작성자조나단 | 작성시간 23.12.27 아멘 신부님 stellakang 님 고맙습니다.
  • 작성자걸레 | 작성시간 23.12.27 영원한생명에 대하여 가르쳐주셔서 고맙습니다,
  • 작성자쉬리* | 작성시간 23.12.27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3.12.27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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