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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준 신부 강론

11월 11일 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 기념일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

작성자stellakang|작성시간23.11.11|조회수89 목록 댓글 4

11월 11일 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 기념일 

 

제1독서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16,3-9.16.22-27
형제 여러분, 3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나의 협력자들인
프리스카와 아퀼라에게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
4 그들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내 목숨을 구하여 주었습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민족들의 모든 교회가 그들에게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5 그들의 집에 모이는 교회에도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
내가 사랑하는 에패네토스에게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
그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를 믿은 첫 번째 사람입니다.
6 여러분을 위하여 애를 많이 쓴 마리아에게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
7 나의 동포이며 나와 함께 감옥에 갇혔던
안드로니코스와 유니아에게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
그들은 뛰어난 사도로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들입니다.
8 내가 주님 안에서 사랑하는 암플리아투스에게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
9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협력자인 우르바노와
내가 사랑하는 스타키스에게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
16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십시오.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여러분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22 이 편지를 받아쓴 저 테르티우스도 주님 안에서 여러분에게 인사합니다.
23 나와 온 교회의 집주인인 가이오스가 여러분에게 인사합니다.

이 도시의 재정관 에라스토스,
그리고 콰르투스 형제가 여러분에게 인사합니다.
(24)·25 하느님은 내가 전하는 복음으로,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로,
또 오랜 세월 감추어 두셨던 신비의 계시로
여러분의 힘을 북돋아 주실 능력이 있는 분이십니다.
26 이제는 모습을 드러낸 이 신비가 모든 민족들을 믿음의 순종으로 이끌도록,
영원하신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예언자들의 글을 통하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27 홀로 지혜로우신 하느님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희가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6,9ㄴ-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9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
그래서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하여라.
10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성실하고,
아주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일에도 불의하다.
11 그러니 너희가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12 또 너희가 남의 것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너희의 몫을 내주겠느냐?
13 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14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들이 이 모든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비웃었다.
1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아신다.
사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예수님께서 ‘약은 집사의 비유’에서 빛의 자녀와 세상의 자녀를 비교하시면서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라.”(루카 16,9ㄴ)라고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이 대목도 사실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성경에서 재물을 ‘마몬’ 또는 독일어

‘맘몬’(mammon)’이라고 하는데 희랍어 ‘마모나스 māmōnās μαμωνᾶς 에서 유래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흔히 부정적인 의미인 탐욕과 연결되는 지상의 재물을 말하는데 그 뜻은

천상의 보화와 대조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서 주님께서는 이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라고 말씀하시지요.

 

여기에서도 해석이 어려운데 세상의 재물이라도 선행하는 데에 쓰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 재물이 천상으로 이어지는 친구가 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다시말해 이 세상을 마칠 때 세상의 재물이 끝나겠지만 그동안 살아 생전에

세상 재물을 가지고 선행을 한 것들이 친구가 되어 영원한 거처로 인도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 중에 세상의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이 큰 일에도 성실한 것처럼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일에도 불의하다고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의 재물이라도 성실하게 다루며 하느님의 뜻인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성실하게 쓴다면 하느님 나라에서는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큰 결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약은 청지기가 자기 직업에 떨려 날 때를 대비해서 재빠르게 움직이며 먹고 사는 것을

대비했듯이 제자들도 하느님 나라를 준비하는데 신속하고 또 성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약은 집사의 비유를 마감하며 다음과 같은 결론의 말씀을 하십니다.

 

“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13절)

 

그래서 돈의 위력에 마음 뺏기는 사람은 불우한 이웃을 위해 선행 하는 것은 인색하면서도

자기 자신과 가족을 챙기는 데에 재빠른 것입니다.

 

세상의 돈에 대해서 절대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는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서 비유로 하시는

말씀들에 대해 배타적인 태도를 보여주며 비웃는 것입니다.

 

여기서 돈을 좋아 한다는 표현을 좀 더 풀어보면 바리사이들은 돈의 가치를 높이 매기는

것입니다. 바리사이들이 재물에 대한 애착과 가치추구가 월등해서 하느님을 뒤 켠으로

밀어 넣는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들에게도 한 말씀을 더 하십니다.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아신다. 사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다.”(15절)

 

바리사이들은 부의 축적을 하느님의 선물로 여기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들은 율법을

중심으로 힘 있는 사람으로 행세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바리사이들이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지만 실천이 따르지 않는

그들이다 보니 그들은 사람들을 향해 하느님 법을 떠들지만 막상 하느님께는 인정을 받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어디 바리사이들 뿐이겠어요? 당시 율법 전문인으로서 자타가 인정받는 종교인으로

재력가로 자처하며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던 바리사이들이었지요.

 

그런데 요즈음 세분화 된 지식인, 풍족한 재력의 뒷받침과 안정된 삶의 보장, 레저 활동의

다양화 때문에 하느님이 필요 없는 세상이 되고 있습니다.

 

굳이 하느님 찾지 않아도 세상은 재미있고 나름대로 가치가 구석구석 있기 때문에 하느님

사랑에는 공백이 생기게 마련이고 하느님을 삶의 뒷전으로 밀어 넣기도 합니다.

 

아무리 세상이 좋고 살맛이 넘친다 해도 불변하는 원칙은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입니다.

 

신앙인들은 하느님과의 관계를 깊이 있게 진행해야 되는데 자칫 잘못하면 소외된 이웃에게 대한

관심은 점점 줄어 들고 세상 마몬의 매력에 빠져 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주님께서는 “어떠한 종도 세상의 ‘마몬 μαμμωνᾶς’과 하느님 ‘테오스 θεός’을

동시에 섬길 수는 없다.”고 하십니다.

 

‘한 편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든지, 또 한 쪽을 떠받들고 다른 쪽을 업신여기든지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재물과 하느님을 동시에 섬길 수가 없다,’라는 말은 사랑의 배타성이라고 하지요.

 

 사랑은 이중적이 될 수 없고 한 쪽만을 선택해야 하는 결단의 조건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인들에게 확고한 하느님 사랑이 없다면 그들의 삶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줏대없는 혼란스러움이 삶을 어지럽힐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우리가 때로 삶의 순간순간이 힘겨울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우리 삶에서 항상 하느님을 첫 자리에 모셔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어려움과 고통들의 순간들, 재물의 유혹에서도 우리는 중심을 갖고

주님께서 제시하신 길을 우리도 걸을 수 있는 것입니다.

 

출처: 구름 흘러가는 원문보기   ▶ 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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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하늘 바래기 | 작성시간 23.11.11 아멘~!
    stellakang님 감사합니다.
    행복한주말 되세요
  • 작성자아참 | 작성시간 23.11.11 감사합니다
  • 작성자조나단 | 작성시간 23.11.11 아멘 신부님 stellakang 님 고맙습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3.11.11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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