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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준 신부 강론

2023년 11월 27일 연중 제34주간 월요일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

작성자stellakang|작성시간23.11.28|조회수25 목록 댓글 2

연중 제34주간 월요일

 

제1독서

<다니엘, 하난야, 미사엘, 아자르야만 한 사람이 없었다.>
▥ 다니엘 예언서의 시작입니다. 1,1-6.8-20
1 유다 임금 여호야킴의 통치 제삼년에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쳐들어와서 예루살렘을 포위하였다. 2 주님께서는 유다 임금 여호야킴과 하느님의 집 기물 가운데 일부를 그의 손에 넘기셨다. 네부카드네자르는 그들을 신아르 땅, 자기 신의 집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기물들은 자기 신의 보물 창고에 넣었다.
3 그러고 나서 임금은 내시장 아스프나즈에게 분부하여,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왕족과 귀족 몇 사람을 데려오게 하였다. 4 그들은 아무런 흠도 없이 잘생기고, 온갖 지혜를 갖추고 지식을 쌓아 이해력을 지녔을뿐더러, 왕궁에서 임금을 모실 능력이 있으며, 칼데아 문학과 언어를 배울 수 있는 젊은이들이었다.
5 임금은 그들이 날마다 먹을 궁중 음식과 술을 정해 주었다. 그렇게 세 해 동안 교육을 받은 뒤에 임금을 섬기게 하였다.
6 그들 가운데 유다의 자손으로는 다니엘, 하난야, 미사엘, 아자르야가 있었다. 8 다니엘은 궁중 음식과 술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자기가 더럽혀지지 않게 해 달라고 내시장에게 간청하였다.
9 하느님께서는 다니엘이 내시장에게 호의와 동정을 받도록 해 주셨다. 10 내시장이 다니엘에게 말하였다.
“나는 내 주군이신 임금님이 두렵다. 그분께서 너희가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정하셨는데, 너희 얼굴이 너희 또래의 젊은이들보다 못한 것을 보시게 되면, 너희 때문에 임금님 앞에서 내 머리가 위태로워진다.”
11 그래서 다니엘이 감독관에게 청하였다. 그는 내시장이 다니엘과 하난야와 미사엘과 아자르야를 맡긴 사람이었다.
12 “부디 이 종들을 열흘 동안만 시험해 보십시오. 저희에게 채소를 주어 먹게 하시고 또 물만 마시게 해 주십시오. 13 그런 뒤에 궁중 음식을 먹는 젊은이들과 저희의 용모를 비교해 보시고, 이 종들을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14 감독관은 그 말대로 열흘 동안 그들을 시험해 보았다. 15 열흘이 지나고 나서 보니, 그들이 궁중 음식을 먹는 어느 젊은이보다 용모가 더 좋고 살도 더 올라 있었다. 16 그래서 감독관은 그들이 먹어야 하는 음식과 술을 치우고 줄곧 채소만 주었다.
17 이 네 젊은이에게 하느님께서는 이해력을 주시고 모든 문학과 지혜에 능통하게 해 주셨다. 다니엘은 모든 환시와 꿈도 꿰뚫어 볼 수 있게 되었다.
18 젊은이들을 데려오도록 임금이 정한 때가 되자, 내시장은 그들을 네부카드네자르 앞으로 데려갔다.
19 임금이 그들과 이야기를 하여 보니, 그 모든 젊은이 가운데에서 다니엘, 하난야, 미사엘, 아자르야만 한 사람이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이 임금을 모시게 되었다.
20 그들에게 지혜나 예지에 관하여 어떠한 것을 물어보아도, 그들이 온 나라의 어느 요술사나 주술사보다 열 배나 더 낫다는 것을 임금은 알게 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수님께서는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넣는 것을 보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4
그때에 1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헌금함에 예물을 넣는 부자들을 보고 계셨다. 2 그러다가 어떤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거기에 넣는 것을 보시고 3 이르셨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4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023년 11월 27일 연중 제34주간 월요일

 

♧♣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 ♧♣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예루살렘을 포위해서 멸망시키고 여호아킴왕을

비롯해서 왕족과 귀족 몇 사람을 자기 나라로 데려갑니다.

 

귀족의 몇 몇 자식을 데려오게 해서 칼데아 문하과 언어를 배우게 합니다.

 

그들 가운데 유다의 자손인 다니엘, 하난야, 미사엘, 아자르야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내시장의 허락을 받고 이방의 금지된 음식 대신 채소와 물만 마셨는데도

다른 젊은이들보다 몸도 좋아지고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이해력을 주시고 모든 문학과 지혜에

능통할 수 있는 능력도 주십니다.

 

그중에서 다니엘은 하느님께서 모든 환시와 꿈도 꿰뜷어 볼 수 있게 해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헌금함에 예물을1) 넣는 부자들을 보고 계십니다.

 

그러다가 한 가난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2) 헌금함에 넣는 것을 보시고 이르십니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루카 21,3-4)

 

오늘 과부의 봉헌에 대한 주님의 칭찬 중에 그 여인의 ‘궁핍한 가운데’라는 말씀에 귀를

기우려야 하겠습니다.

 

부자들과 비교해 보면 부자는 자신의 일부를 바치는 것인데, 과부는 자신의 전부를 바친 것입니다.

 

‘일부와 전부’가 비교되면서 봉헌의 참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성전에서 봉헌되는 제물의 의미는 자신의 생명을 바치는 것입니다.

 

언젠가 마더 데레사 수녀님께 생존해 있을 때에 가톨릭 부인회와 가졌던 대화가 소개 된 적이

있습니다.

 

수녀님은 인도의 캘커터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부인들이 쓰고 남을 것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쓰기에도 부족한 중에서 나누는 정성이 더 가치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계산적일 때가 있습니다. 내가 부족하고 모자란 현실에서 어떻게 내 앞에서

손을 벌리는 사람을 도와 줄 수 있을까요?

 

구차한 속에서 복음의 정신대로 감사하고 정성을 다해 봉헌할 수 있다면 얼마나 복된 것일까요?

 

그렇게 되기까지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지요. 자신의 부족함을 깊이 체험하고

복음 정신대로 살려고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우리도 성숙된 신앙인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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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성전의 주랑에는 13개의 헌금함이 있는데 그 모습은 윗 부분은 좁고 아랫부분은 넓어서 마치 나팔모양을 하고 있다. 그런데 헌금함들은 같은 모양이지만 용도가 다 달라서 과거 밀린 성전세, 현재의 성전 성전세, 성전 제물 봉헌, 속제 제물들로 그 목적에 따라 구분되었다. 루카는 세분하지 않고 일반적인 의미의 ‘헌금함’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2) 신약시대인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던 복음서의 시대에는 큰 도시 안티오키아와 티로에서 화폐를 주조했는데, 이스라엘 북부 카이사리아에서도 유다인들을 위한 금, 은 동, 그리고 청동이나 놋쇠를 자료로 하는 화폐가 주조된 것으로 나타난다. 로마시대이다 보니 로마 주화와 유대인들의 주화가 혼합해서 썼기 때문에 성경에는 여러 단위의 화폐가 나오고 특히 복음서에는 그 현상이 더 드러난다. 그것은 예루살렘 성지순례를 위해서 해외에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왕래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르코는 두 렙톤이 콰드란스 한 닢에 해당한다고 설명한다.(마르 12,42) 당시 통용되는 동전 중에서 ‘렙톤’(마르 12,42; 루카 12,59)은 그리스 화폐단위, ‘콰드란스’(마르 12,42; 루카 12,59)는 로마화폐 단위라 할 수 있다.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세상에서 으레 하는 일들, 다시 말해서 안 해 될 행사를 예를 들면 연말연시 행사들에서

돈 낭비하는 느낌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런 행사 후에 으레 끼워서 주기식의 사은품들은 한 켠에 쌓아두는 처지 곤란한 물품으로

변하기 일쑤입니다.

 

잉꼬부부라고 요란한 소문은 없지만 한 수수한 부부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 부부는 처음의 설레임의 마음을 나이 쉰이 넘도록 서로 간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부부를 만나면 시원한 옹달샘을 마시는 기분이 됩니다. 

 

 이 부부는 맞벌이 부부로 남편이 직장 관계로 주말에나 아니면 건너 뛰어서 일 개월까지도

떨어져 지내야 한다고 하지요. 모처럼 함께 있는 시간이 좋고 시간을 쪼개서 여행도 갑니다.

 

옛날에 갔던 산도 가고 오는 길에 식당도 들리고요. 아내가 만들어 주는 칼국수와 팥죽은

언제 먹어도 좋다는 것입니다.

 

아내는 음식에 쏟는 정성이 늘 가득하다고 하지요. 이런 말들을 하는 부부를 보면 서로 푼수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푼수라고 놀리기도 하는데 그래도 무엇이 그렇게 좋은지 웃기만 합니다. 그들에게

우러나는 것은 진실과 변함 없는 서로의 정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정성의 반대되는 의미라면 건성으로, 또는 대충하는 행동이 아닐까요?

그러다 보면 서로 시들해지는 마음이 되겠고요.

 

요즈음처럼 명절이 그 옛날 가난한 시절에 비해 그 분위기가 많이 변해간다고 하지요?

 

좁은 부엌 바닥에서 부쳐준 부침은 그야말로 그 맛이 일품이었지요.

 

제사상 음식을 장만하는 모습들은 그야말로 정성이 가득했습니다.

 

요즈음은 제사음식을 위한 전문 업종이 생겨서 돈만 내면 맞춤형 제사상음식을 마련할 수가

있다고 합니다.

 

이제는 만두 국이나 떡 국이 고맙지 않은 것이 다 돈만 내면 다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정성이 없지요. 요즈음은 정성도 돈으로 해결하는 시대 같아요.

 

흔히들 바빠서, 편해서 정성으로 마련해야 하는 것들을 다 돈으로 해결한다고 합니다.

 

그것까지는 이해가 되는 것 같은데 그래도 왠지 우리 사회가 점점 소중한 것들을 잃어가고

인간 존엄성도 가벼워지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성전에서 사람들이 헌금함에 돈을 넣는 모습을 보고 계셨습니다.

 

부자들은 보란 듯이 많은 돈을 넣는데, 한 빈곤한 과부가 가장 낮은 화폐단위인 렙톤

두 닢을 넣는 것을 보시지요.

 

그리고 그 과부를 칭찬하시며 말씀하십니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루카 21.3-4)

 

궁핍한 가운데에서 그 과부는 정성의 마음을 갖고 생활비를 다 넣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돈의 액수보다는 정성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큰 숫자를 따지는

세상의 인심과는 달리 아주 작은 것이지만 정성을 담아 봉헌하는 과부를 칭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활에서 빠지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습관이 되는 것, 진실된 것도 반복하다보면

하나의 틀이 되고 형식으로 흐르기 쉽지요.

 

그래서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그때그때 마다 새롭고 정성을 다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일들 중에서 매 순간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자신이 묵은 나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에너지와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새 창조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릇에 오래 담아둔 것보다 샘에서 바로 길어 담은 물이 신선함을 주지요.

 

정성이 엷어지는 시대에 살고 있는 신앙인은 사람에게 변함없이 정성과 성실함과 함께

대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닮아야 하겠습니다.

 

작은 렙톤 두 닢을 칭찬하시는 주님의 따뜻한 마음을 닮아 신앙인인 우리도 이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출처: 구름 흘러가는 원문보기   ▶ 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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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조나단 | 작성시간 23.11.28 아멘 신부님 stellakang 님 고맙습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3.11.28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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