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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 신부 강론

[스크랩] 9월 15일 금요일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성모님의 마음으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작은형제회 오 상선 바오로 신부

작성자stellakang|작성시간23.09.16|조회수45 목록 댓글 1

 


9월 15일 금요일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순종을 배우셨고,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5,7-9
7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고,
하느님께서는 그 경외심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
8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9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아들 수난 보는 성모 맘 저미는 아픔 속에 하염없이 우시네(‘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부속가).>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9,25-27
그때에 25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26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27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미사의 말씀은 성모님의 마음으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 ...가 서 있었다."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을 지낸 바로 다음날에 우리는 그 십자가 아래 머물러 계신 성모님을 만납니다. 교회가 십자가 위에서 창에 찔려 피와 물을 쏟으신 예수님의 성심을 경배하는 "예수 성심 대축일" 바로 다음날에 "티 없으신 성모 성심"을 기념하는 것과 맥을 같이 합니다. 인류를 위한 예수님의 사랑의 순종과 성모님의 믿음의 순종을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당신의 영혼이 칼에 찔리리라."(입당송)

마리아의 고통은 이미 시메온에 의해 예견된 것이었습니다. 영혼이 칼에 찔리는 고통은 대부분 이스라엘에서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된 아들로 인한 것이었지요. 출산 후 이집트 피난이나 베들레헴의 아기들 학살은 물론이고, 공생할 초기 나자렛 회당에서의 위기, 아들이 미쳤다는 소문, 유다인들의 배척, 종교 기득권자들과의 갈등 등등 마리아는 예수님 생애 내내 크나큰 심적 고통을 안고 사셨을 것 같습니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요한 19,26)

그런데 그 고통이 절정에 달한 순간에, 아드님께서 어머니를 "여인"이라 부르시면서 인류를 어머니의 아들로 맡기십니다. 어쩌면 또 다른 고통의 씨앗들을 어머니께 왕창 안기신 것이지요.

우리 인간을 고통의 씨앗이라 표현하다니 좀 심하게 들리나요? 이는 인간의 존엄함과 소중함을 부정하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좀 강하다 싶은 표현을 통해, 영적 육적으로 생명을 잉태하고 품고 양육하는 모든 여정이 결코 쉽지 않다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마리아는 육으로 아들 예수를 잉태해 낳아 기르셨고, 죄에 오염되어 갈곳 몰라 하는 모든 인류를 영으로 잉태해 품고 기르십니다. 마리아의 모성은 이천 년 전 어느 한 시기로 끝나지 않고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모든 이가 영원한 생명으로 구원을 얻을 때까지 지치지 않고 이 세상에 현존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히브 5,8-9)

고난과 순종, 인내와 기도, 경외심과 의탁... 예수님의 삶은 마리아의 그것과 놀랄만큼 닮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리아를 그리스도인의 탁월한 모범이라고 부르지요. 우리가 마리아를 공경하고 사랑하는 건, 그분이 신이라고 우기는 게 아니라, 하느님 구원 계획에 순종하여 아드님 생애의 희로애락을 온전히 당신 것으로 받아안으셨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어떻게 주님을 따라야 하는지 모르는 우리에게 주님을 투명하게 보여 주는 본보기시니까요.

"당신은 주님의 십자가 아래서 죽음 없이 순교의 월계관을 받으셨나이다."(복음 환호송)

가슴이 아리도록 아픈 고백이지요. 사실, 사형수로 몰려 무죄하게 죽임을 당하는 아들을 바라보아야 하는 어머니의 목숨이 어찌 살아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물리적 죽음만이 순교가 아님을 마리아께서 가장 먼저 증언하신 것입니다.

고통을 피하지 않고 십자가 아래서 담대히 아들을 지키신 마리아께서 지금 우리 곁에서 우리의 고통에 울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어머니와 우리를 맺어 주신 순간부터 마리아의 관심사는 이 세상의 모든 자녀들, 바로 우리가 되었습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 19,27)

이 세상을 살아가느라 지치고 부서지고 깨진 우리의 고통을 모르시지 않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당신 어머니를 내어주십니다. 목숨과 살과 피를 다 내주시더니 어머니까지 주신 겁니다. 당신이 어머니의 사랑과 지혜로 양육되었듯 우리도 담대하고 믿음 깊은 어머니 품에서 생명과 힘과 용기를 얻길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고통의 어머니는 '그것도 못 견디느냐'고 채근하시지 않고 깊이 공감하고 함께 아파하며 위로하는 분이십니다. 바로 그 어머니가 우리 곁에서 인내로이 우리의 길을 지켜주고 계시니, 힘 내어 앞으로 나아가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괜찮아. 수고했어. 더 나아질 거야." 어머니의 속삭임이 여러분에게도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작은형제회 오 상선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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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3.09.16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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