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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수상

오이도 기행

작성자석촌|작성시간24.04.28|조회수228 목록 댓글 29

 

 
 
    오이도 기행
 
1. 갑오징어
 
그게 꼭 먹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어느 길벗과 함께 길을 나서서 
어디 해변가에 가 바닷바람이나 쐬다가
갯것을 좀 먹고싶었다.
 
지하철을 타고 종점에 내린 곳이 오이도인데
평일이라서 그런지 발길들이 뜸하고
바닷물도 나가버려 떵빈 갯벌만 볕바라기 하고 있었으니
퍼덕이는 생물도, 침샘 자극하는 입맛도 나지 않았다.
 
제방에 주욱 들어선 포장집을 둘러보다가
그래도 싱싱해 보이기에 갑오징어를 집어 올렸다.
"이거 회 쳐주세요!"
 
갯내야 안 났지만 찰지게 씹히는 맛이 괜찮았다.
예전 시골 초가집에 살 때엔 그걸 사다 먹으면
갑을 빼내어 지붕 위로 던져 올려놓았던 기억이다.
왜 그랬을까...?
 
원래 오징어 갑은 몸통을 밖에서 감싸 보호하다가
퇴화하여 몸 안으로 들어간 형태라 한다.
그건 외유내강(外柔內剛)의 상징이 아닐까?
겉으로 드러내는 허풍, 과시보다
속으로 감싸 쥐는 내실이 있어야 함을 생각해 보게 된다.
 
돌아서면서 오이도 등대를 바라보노라니
지난날 어느 글벗들을 만나 들렸던 기억이 떠올라
그 글을 불러내어 본다.
 
 

2. 오이도 기행 2.
 
오늘도 날씨는 영하로부터 시작되었다.
코로나 여파로 도심이 염려되어
조금 멀리 교외로 나가보기로 했다.
 
사당동에서 전철을 타려니 H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네덜란드에 거주하는 한인으로, 일시 귀국한 상태인데
얼마 전 어느 모임에서 만난 적이 있기도 하다.
 
행선지를 물으니 딱히 정한 데는 없다고 했다.
하여 함께 시흥의 갯골에 가보자 했다.
거기 가면 우리들 어머니에게서 풍기던 갯내도 맡을 수 있다 했더니
흔쾌히 동의했다.
 
사당역에서 열아홉 역을 지나 초지역에 하차했다.
거기서 시흥시청 행 전철로 바꿔 타고
다섯 정거장을 지나니 시흥시청 역이었다.
 
시흥갯골 가는 길을 물으니 셔틀버스를 이용하란다.
셔틀버스를 타고 종점인 시흥갯골 입구에 내리니
또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그네도 H인데
강원도 산골에서 태어나
향교 훈도인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고 자랐다 했다.
 
그러고 보니 H가 두 사람이 된 셈이어서 H2가 되고
나는 吾(O)이니 셋이 모여 H2O가 된 셈인데
물이 물길을 따라갈 일이지, 이디를 간단 말이냐?
 
바닷물이 들고 나던 갯골을 따라 한참 휘젓다가
큰 물길을 찾아 오이도로 갔다.
 
우리나라 선사시대의 유적이 있는 곳 오이도.
먼 조상들이 조개를 파먹고 껍데기를 버린 그곳에
우리도 뒤따라 조개를 파먹다가 돌아왔다.
 
먼 훗날 우리 후손들이 이곳 땅을 파보고
무어라 할까?
나는 그걸 예상하고 조개껍데기 속에 메모지 하나 넣어서 버렸다.
“조개는 예나 지금이나 조개껍데기만 남기고 갈 뿐이다.”
우리 셋은 이렇게 잠시 만나 잠시 함께 하다 헤어져 제 갈 길로 갔지만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든 안 만나든
종당엔 조개껍데기가 되어 흙에 묻히리라. / 2021.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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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석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4.30 그게 지혈제 소독제로도 쓰이는 모양이네요.
  • 작성자아녜스 | 작성시간 24.04.30 4호선 전철이 오이도행이지요.
    지명이 예뻐서 어느날 종착역까지 갔었습니다 .
    바닷가로 가려면 버스를 탔었어야 했었던것 같아요.
    이젠 기억이 가물거립니다 .

    석촌님의 글을 읽으니 다시한번 오이도에
    가보고 싶습니다 .
  • 답댓글 작성자석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4.30 네에, 이젠 여름으로 들어서니 별로이기도 하지요.
  • 작성자나무랑 | 작성시간 24.04.30 멸치가 오징어 보고 뼈대없는 자손이라고
    놀렸다고 하는데요.
    갑오징어도 오징어 사촌인거 맞는거죠?
    빨알간 등대가 무척이나 낭만적으로 보여요. 선배님
  • 답댓글 작성자석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4.30 갑오징어도 오징어지요.
    하지만 갑을 숨기고 있는게 좀 다르지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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