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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류가 있는 주막

고해성사?

작성자균희|작성시간24.03.25|조회수436 목록 댓글 20


그 분은 내가 잠깐 다니던 직장의 이사였다.
그 회사 대표의 매제 였는데
괴팍하기로 소문이 무성했었다.
여하튼 뭘 정확히 빗나가게 집어던지는걸 특기로 삼았던 분이다.

내겐 별로 관심 밖의 인물였는데
그런 그가 무슨 맘으로 그런 위험한 비밀 얘기를 내게 꺼냈던 것일까?

이사의 고등학교 시절, 그러니까 약 50여년 전쯤 이야긴데...

예전엔 건물을 지으려면 반듯하게 자란 통나무를 썼다.
그런 통나무를 원형으로 세워둔 걸 나도 어려서 본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그 이사가 다니던 학교에서도
뭔가 부속건물을 지으려고
운동장에 통나무들을 원형으로 세워 두었단다.
체육시간이 들었던 날이었는지
그냥 쉬는 시간이었는지 모르겠는데
그 이사의 장난끼가 용솟음 쳤던 것인지
그냥 어떤 견딜 수 없는 에너지가
그 젊은 이사의 가슴 속에서 불이 나게 했던 것인지
주체할 수 없는 몸가짐으로 그 통나무를 툭툭 발로 찼다고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손에 들고 있던 무엇인가로 톡톡 치기 시작했다고 했었는지,
그 시작의 발단은 확실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그 이사는 뭔가 이상한 징후를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견고해 보이는 통나무 더미가
탱크가 부딪혀도 끄떡 없을 것 같은 그 통나무들이
스르르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마침 그 통나무 반대 쪽에서 그 통나무를 등에 지고 매일매일
세상 고민을 혼자서 짊어지고 있는듯한
이상한 친구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사는 소리쳤다는 것이다.
비켜! 비켜!
야아, 친구야 얼른 비켜!
그런데...
그 친구가 그만 피하지 않고 그대로 통나무에 깔려 버렸다는 것이다.
이사가 먼저 정신을 차리고, 쓰러진 친구를 보니
피투성이가 된 채로 숨은 붙어 있는 것 같았단다.

그래서 친구를 어떻게 업고서는
병원으로 냅다 뛰었단다.
그리고 무조건 택시를 탔다고 했던가?
내가 정확히 기억하는 것은
그 친구가 결국 죽었다는 것이고
이사는 몇 달동안 끙끙 앓았다는 것이다.
밥도 못먹고, 잠도 못자고....

학교에서는 이사에게 표창장을 주었단다.
죽어가는 친구를 살리려고 한 선행에 대하여.
물론 그 통나무를 건드렸던 것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단다.
그러면서 그런 말을 덧붙였다.
그게 말이지... 그 통나무가 말이지...
아이가 슬쩍 건드렸다고 무너질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
그게 원래 넘어지려고 했던 시간에
우리가 거기에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난 간신히 그런 대꾸 밖에 할 수 없었다.
아마 그랬겠지요. 그랬을 거예요.

내가, 혹은 우리가 익히 아는 표창장에서도
뉴스에 나오는 봉사자들에게도
그런 숨은 이야기가 없기를 바라는 것은
나만의 욕심은 아니리라 생각해보며
왜 뜬금없이 오래전에 들었던,
잊고 있었던 그 얘기가 불쑥, 희미한 기억의 물결 속에서
건져 올려졌는지는 나도 모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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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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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균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3.26 살면서 그런 일이 어디 한 두번 일어나겠는지요.

    인사를 하지않고 지내던
    이웃 앞을 지날 때
    옷에 묻은 고추가루를 떼어내려고 고개를 숙였을 때
    앞에 있던 이웃이 인사하는 줄 알고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네온 적은 없었는지요?
    그래서 얼떨결에 인사를 나누기 시작하는...

    그냥 속으로만 간직하고 있는 사건들이
    가만히 팔을 뻗어 자세를 바로 잡는 시간인가 봅니다 ㅎ
  • 작성자트레비스 | 작성시간 24.03.28 균희님 글은 매번 머리를 굴리게 만듭니다

    삶의 旅程은 因果의 법칙에 따른 輪回
  • 답댓글 작성자균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3.29 그러게요 선배님,
    선배님의 댓글에서
    업이라는 말을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됩니다~^^
  • 작성자리디아 | 작성시간 24.04.06 고해성사 ㅡ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알고도 모르고도 진 죄가 없었는지.. ...
    나 자신 부터~~~
  • 답댓글 작성자균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4.06 살면서
    어찌 죄를 비켜갈 수 있겠는지요
    우리는 가장 가까운(부모님을 비롯)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께
    누구나 죄인 아니겠는지요.

    너무 깊은 성찰은 피하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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