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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종교 성화

서양문화의 알파와 오메가

작성자카페지기|작성시간23.11.24|조회수13 목록 댓글 2

■ 서양 문명의 알파~오메가, 아케다(Akedah)

역사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인간은 책이라는 유산을 남김니다.
그리고 한 시대를 풍미하며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끄는 것을 '베스트셀러'라고 하고, 이 베스트셀러가 시공간을 뛰어넘어 모두에게 공감과 감동 그리고 삶의 지표를 마련해주는 책을 '고전"이라고 하지요.
(기원전 8세기에 쓰여진 서양 최고의 어머니 문학작품인
일리아드와 오디세이)
- 성경과 더불어 서양인들의 삶의 지표입니다~^~

그 중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식인이라면 꼭 읽어야 하는 고전이 있습니다.
바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입니다.

(1867 레옹 밸리 작, 오디세우스 아케다와 세이렌)
- 오디세우스는 세이렌의 목소리를 듣고파서 부하들에게
배 기둥에 아케다(묶기)하라고 합니다.

(오디세우스의 정신을 뽕가게 한 세이렌은 맛으로 사람의 마음을 뽕가게 만든다는 스벅의 로고가 됩니다.)

(현상계와 예지계를 당시 현존하는 그리스 땅에 아케다 하기를 원했던 플라톤 형아의 '국가'라는 책은 그 결과물입니다)


인간은 존재론적으로 특별한 장소와 시간에 태어납니다.
한 환경에 태어난 인간은 자신이 경험한 세계를 인식하고 세계관을 형성해 그 안에서 인생을 살아갑니다.
나이가 들면서 자신과는 다른 세계관과 종교관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 갈등을 빚기 시작하지요.

이 갈등에서 자기의 세계관과 다른 사람들의 세계관이 틀릴 때 이런 생각을 바로잡아주는 것이 바로 고전입니다.
그런데 고전 중에서도 특별하고 강력한 책들이 있습니다.
이 책들을 '경전'이라고 합니다.

(기원전 4세기경에 쓰여진, 기독교의 베이직 경전인 모세 오경,
토라)
* 토라는 오리엔탈 신화와 그리스 신화의 아케다입니다


경전이라는 명칭은 고대 듕국인들이 인도로부터 불교와 불경을 수용하면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경전은 반드시 종교의 외피를 두름니다.
동양권에서는 '종교'라는 말은 '으뜸되는 가르침'이라는 의미로 7세기 경 중국의 천태지 스님이 법화경을 해석하면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듕국 송나라 때 성리학의 창시자 주희는 사서오경이라는 사자성어를 만들어 경전보다는 유교의 나라답게 '사서' 즉 공맹의 말씀을 우선 시 했습니다.
해서,
'으뜸되는 가르침'인 유교 또한 종교가 되었습니다.
동양인의 세계관이자 맹목적 신념이니까요.

(고대 그리스, 카논 즉 '이상적인 비례'의 입법자로 불리운 기원전 5세기 후반, 폴리클레이토스의 '창을 든 사람'의 로마 시대 모조품)


영어로 경전을 뜻하는 말은 캐논인데, 고대 그리스어 '카논'에서 차용했지요.
카논은 '이상적인 비례'라는 뜻이고 원래 의미는 '갈대' 였다고 합니다.
또한 갈대는 길이를 재는 자로 사용했습니다.

'발로 재는 사람'인 오이디푸스는 이성적인 사람을 뜻하며,
카논을 가지고 놀던 사람은 오이디푸스가 되겠네요.
'카논'은 길이를 재기 위해 눈금을 새긴 막대기나 목수의 다림줄을 의미합니다.
물론 캐논을 이러한 물질적인 의미를 넘어 추상적인 의미 즉 인간의 지적인 삶에 있어서 탐구하며, 판단하고, 생활하고, 행동하는 모든 분야에 기준이 되는 규범이나 법률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해서 캐논(경전, 비례)은 종교와 예술의 규범이 됩니다.

현재 종교라는 의미의 'Religion'은 라틴의 'Religio'가 그 어원입니다.
그 뜻은 묶기. 결합. 再讀 이라는 뜻입니다.
'묶기'는 캐논과 기독교 종교 사이에 오이디푸스신화가 메신저입니다.
중세시대에 경전은 우리가 살고 있는 중심 축, 태양과 같은 존재입니다.

근대 과학의 할배 코페르니쿠스는 묶기를 가져와서리 태양계를 해석합니다.
(1543년 태양 중심으로 뭇 행성을 아케다 하여 인류의 과학혁명의 정초를 다진 코페르니쿠스)


경전이 태양이라면 고전을 '달(moon)'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한반도 개몽군주인 정조임금은 자신을 가리켜 '만천명월 주인옹'이라 했다지요.
조선 초, 월인천강지곡도 같은 메타포입니다.
고래 이래로 동양에서는 임금을 달에 비유했습니다.
그런데 근대 서양에서는 바다의 고래를 '신의 메타포'로 사용했다지요.
19세기에 울 나라에서 호랭이를 산신으로 여겻듯이 말입니다.
고래는 1만키로 떨어진 다른 고래와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영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지구의 뭇 생명체를 진화라는 개념으로 아케다한 인류 혁명의 특급이자 달의 반열에 오른 '종의 기원')
※ 모비딕 출판과 거의 같은 시기인 19세기 중반에
출간되었습니다.

(19세기 판 오디세이아, 헬레니즘과 해브라이즘의 아케다인 허먼 멜빌의 모비딕은 미국인의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고전의 반열에 오릅니다)
- 험난한 여정을 마치고 아브라함의 큰 아들 이스마엘은 떠난
항구로 오디세이 합니다.
신(모비딕)을 알현하고요. ㅎㅎ


향유고래의 기름은 석유가 발견되기 전 그을음이 없는 '빛'을 밝히는 원료로 사용 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성부와 성자를 연결하는 메신저, 성령은 빛이니까요.

경전은 다른 고전이나 모비딕과 같은 위대한 문학작품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심연에 깊이 숨어 있는 폭력에 관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세속의 인간은 비극을 통해 성장한다고 합니다.
고대 그리스 고전에서 비극작품의 출현 또한 같은맥락이겠습니다.

예를들면 오이디푸스(발이 퉁퉁 부은 아이 혹은 발로 재는 사람이라는 뜻)는 그리스 영웅 아킬레우스와 유대의 조상 이삭의 이야기에서와 같이 중요한 주제를 담고 있는 신화소인 셈입니다.
주지하시다시피 탈근대를 예고한 심리학의 태두, 프로이트박사는 인간 정신의 심저, 무의식(나도 모르는 나)이라는 개념을 오이디푸스 신화에서 가져와서리 자신의 정신과학의 기저로 사용합니다.

(오이티푸스와 스핑크스)

(예수의 첫 이콘, 만딜리온(천에 새겨진 형상) ; 원 중심의 묶기는 두 개의 원을 그려 겹치는 부분에 예수의 얼굴을 형상화했습니다.
※ 위 그림은 예수 형상의 전범이 되었고 천에 새겨진 형상
원본은 소피아성당에 보관되어 있다가 1204년 분실
되었다고 합니다

(1954년 유다와 예수의 아케다, 무의식주의자 살바도르 달리)
- 십자가는 수직의 천상계와 수평의 지상계의 묶기입니다.

아케다,
'묶기'라는 뜻으로 아브라함이 자신의 외아들 이삭을 신에게 바치기 위해 제단 위에 묶어놓은 사건을 총체적으로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2016년 경매에서 44억에 낙찰 된 뉴턴의 프린키피아)
(뉴턴 형아의 만유인력의 법칙은 가정된 중력이라는 개념으로 천상계인 태양을 중심으로 한 각 항생들의 아케다입니다.)
- F1, F2는 가정된 중력입니다.
※ 뉴턴과 더불어 미적분의 공동창시자 라이프니치는
중력이라는 개념이 맘에 들지 않아 '활력'이라고 했다지요.

(현대과학의 꽃, 상대성 이론 또한 우주 아케다입니다)
- 통일장 이론은 중력, 전자기력. 약력. 강력 등을 묶으려는
아케다이고요..ㅎㅎ


위의 장황한 글발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그리스의 오이티푸스 묶기는 유대인들의 아카다를 거쳐
예수의 십자가 묶기, 중세엔 원 중심의 묶기를 지나 근대엔 뉴턴의 태양계 중심 항성 묶기와 다윈의 진화라는 개념으로 뭇 생명을 묶기 그리고 탈근대 사상인 프로이트는 정신의 원천을 오이디푸스 신화에서 가져와서리 욕망으로 마구 묶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미술작품은 유대인의 오이디푸스 신화, 아케다에 관한 명화들 입니다.
아케다는 유대인이 그리스 오이디푸스 신화를 카피한 것이며,
유태인의 아케다(묶기) 이야기는 기독교에서 예수의 십자가 희생의 신화소로 묘사됩니다.

아케다 사건을 묘사한 위대한 천재들, 렘브란트와 카라바조 그리고 샤갈과 뉴먼의 작품을 감상해 볼까요?
대가들의 그림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두 가지 측면에서 언어의 역할을 합니다.
한편으로는 화가의 내면세계를 드러내는 기능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작가의 삶과 정신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는 시대상황을 반영하여 표출합니다.
하여 감상을 형식적, 기능적 측면으로 제한하면 작품의 생명력을 제대로 흡수할 수 없습이지요.


먼저 렘브란트의 1635년 (이삭의 묶기)을 보면 세 인물의 시각적 표현, 즉 죽이지 말라는 천사의 표정, 천사의 등장으로 어리둥절하면서도 동시에 이삭을 죽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의 기쁨에 빠져 있는 아브라함. 아브라함에 의해 얼굴이 가려진 이삭 등의 내용을 토라의 창세기 내용에 의거하여 나타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렘브란트는 이삭을 피에타(슬픔, 비탄)의 예수로 표현 했슴이지요.

(인류 최고의 예술품 No. 1 ; 절정의 피에타, 미켈란젤로)

빛의 화가답게 천상의 빛을 발하며 죽은듯이 움직임이 없는 몸, 피에타의 구성요소들, 특히 허리 감개와 관찰자에게 확연히 드러나 있는 몸체, 누구인지 알 수 없게 손으로 가려진 얼굴, 희생양 등등 이 모든 것이 신약성서의 예수 이미지를 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른바 평범하고 일상적인 대상속에서 갑자기 경험하는 영원한 것에 대한 통찰인 에피파니(현현)을 묘사하고 있답니다.
그는 아케다 이야기를 예수의 십자가 처형 사건의 예시로 보았습니다.

다음으로 카라바조의 아케다 그림을 살펴 볼까요
그는 가톨릭 국가인 이탈리아에서 1603년에 (이삭의 희생)을 그렸습니다.
카라바조는 렘브란트 작품에서와는 달리 천사가 땅위에 있으며 또한 신적인 아우라도 부족합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의 목을 세차고 누르고 있으며, 천사의 만류에는 동의할 수 없슴을 그리고 천사의 등장을 그리 반기지 않는 듯 합니다.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이지경으로 만들었는데, 이제와서 개입하는 천사를 이해할 수 없다는 시선입니다.
또한 이삭의 공포에 사로잡힌 그의 눈은 처절하게 도움을 청하고 있습니다.
이삭은 우리에게 이 상황이 얼마나 끔찍한가를 절실하게 느끼라고 강요합니다.

렘브란트는 창세기의 긍정적 내용을 기반으로 그림을 그렸다면, 카라바조는 부정적 측면을 기반으로 작품을 완성했다고 봐야겠지요.
렘브란트가 성서의 내용을 전통적인 방식으로 표현했다면, 카라바조는 이야기에 숨겨진 내용을 시각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아케다 이야기의 결론을 우리 각자에게 맡깁니다.

카라바조 사후 300년이 지나 유대인 화가, 1887년생 사걀할배도 그 사건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샤갈의 그림은 세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단에는 아케다의 재현, 왼편에는 경전해석의 원칙인 침묵속의 웅변의 재현, 오른쪽 상단에는 예수의 십자가 사건과 피에타가 그려져 있고요.
두팔벌려 절규하는 이는 아마 사라이겠지요.
이삭은 윙크하는 모습으로 우리와의 교감을 시도합니다.
아카다에 대한 타인의 해석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그림을 통해 스스로 해석을 찾아내라는 것입니다.
샤갈은 아브라함과 이삭의 자녀들에게 일어날 비극을 그리고 있다네요.

600백만 명 이상의 유대인이 홀로코스트(번제) 사건으로 사라졌는데, 신은 눈을 감고 있습니다.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유대인 샤갈할배는 야훼가 인간의 고통을 마주할 의사도 능력도 없다고 확신합니다.
그런 신이 자기 자식을 살해하려는 사건에 개입하려는 모습에 그는 쓴 웃음을 짓습니다.
샤갈의 그림은 신에 대한 불평이랍니다.
샤갈과 동시대를 살아간 바넷 뉴먼은 현상계와 예지계(천당)를 붉은 바탕에 수직의 검은색과 노란색 혹은 검은 바탕에 붉은색 직선으로 묘사합니다.
절대자의 말씀에 따르는 아브라함에 행위에 침묵으로 일관하라고 가르치는 듯 합니다.
유대인 바넷 뉴먼(1905 ~ 1970)의 아케다,
위 1959년 작품 '하나' 와 아래 작품 '서약'
※ 서양인들은 바넷 뉴먼의 작품 앞에서 눈물을 흘린다고
하는데, 그것은 그들의 공통적인 신화소가 그 원천이
아닐까요.?
동양인들은 절대 이해 못합니다.
우리가 비록 기둑교 문화에 물들었다 해도 우리의 마음
근저에는 여전히 유가적이니까요.

(십자가가 천상계와 현상계를 이어 주듯이 뉴먼은 딸랑 붉은선 하나로 두 세계를 이어준다. 왜 붉은 선일까.? 붉은 옷을 입은 천사일까.? 아니면 메시아의 현현일까?)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해 봅니다.
원시인류가 만든 토라의 아케다 이야기는 우찌보면 인간이 누대를 걸처 만들어낸 산물이며 인신공양의 역사를 종식시킨 신화소인 듯 합니다.

그리고 위의 네 화가는 각 시대의 인간 정신의 진화를 보여 주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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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서 아케다 이야기를 소재로 노래한 가수가 있지요.
그는 바로 미국의 유명한 가수 겸 작곡가이자 슬프게도 얼마전에 노벨상을 받은 밥 딜런입니다.
유대인인 그는 1965년 아케다 이야기를 20세기 미국 상황에 빗댄(하이웨이 61 리비지티드)라는 노래를 작곡합니다.
그는 종교의 절대적 힘을 빌려 미국의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모는 현대의 아브라함(** 부시)를 개탄합니다.
하지만 밥 아저씨는 자국의 수백명의 이삭(군인)의 죽음을 알았지만, 이라크의 선량하고 죄 없는 아저씨들 아줌마들, 그리고 아이들의 죽음은 간과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ㅠㅠ


이상,
장문을 읽어 주심에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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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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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카페지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11.24 토라가 길가메시 서사시를 차용한 부분이 많죠.

    로마시대 석상이 모조품인 이유는

    그리스 청동상을 가져다 베낀 것인데..
    로마인들에게 인기가 많았습니다.

    원래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친부를 거세시킨 크로노스
    크로노스와 제거하고 신의 제왕이 된 제우스

    친부는 끊임없이 아들에 의해 제거됩니다.

    오이디프스, 테세우스도 마찬가지구요.

    유교적 도덕관을 가진 우리에겐
    절대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입니다.

    모비딕에서
    주인공이 이삭이 아니여서
    이상했습니다.

    선장 에이헤브는
    성경에서 가장 사악한 왕 아합이니까요.

    아합은 고래와 같이 바닷속으로 사라지고

    이스마엘(이삭 처럼 약속의 자녀가 아니죠)은

    혼자서 살아남습니다.
    아케다에서 해방 된 건 아닐까요?

    그는 묶여 본 적도 없고
    사막으로 외로이 내어쫒긴 자입니다.

    소진의 합종이 있다면
    장의의 연횡이 있죠.
    인간은 정치적으로 묶는데 능숙합니다.

    고대신화의
    가부장적 사고
    남자 중심사고
    장남 중심 사고를
    영웅 위주의 사고를
    전복시킬

    그날이 도래하길
    가이아여 다시
    온 세상의 주인이 되소서!
  • 작성자카페지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11.24 김혜수
    '저들은 나를 지구라 부른다. 가이아 또는 세계라고 부른다. 저들은 나를 그저 광물의 구체로만 여긴다. 그게 행성 이라는 단어에 대한 저들의 개념이다.

    생명이 없는 물체니까 거기에 구멍을 뚫어 광석을 캐내고 액체와 기체를 뽑아내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짓을 하면서도 부탁이나 감사의 말 따위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저들은 내온도가 왜 미지근한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저들은 내가 왜 자전과 공전을 하는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저들은 왜 다른 행성들과 달리 내 표면에만 생명이 존재하는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저들은 내가 살아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하물며 나에게 사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어찌 상상할 수 있으랴.

    저들은 저희와 닮지 않은 것은 무엇이든 경멸한다.
    어떤 존재에 눈이 없으면, 그 존재는 지능이 없으리라 단정한다.
    어떤 존재에게 소리를 지르기 위한 입이 없으면, 그 존재는 고통을 겪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ㅡ베르베르의 제3인류 중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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