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종 여행2 - 부르고뉴 왕국의 궁전을 거쳐서 노트르담 교회에서 올빼미 를 만나다!
리옹 파르 디외역 Lyon Part Dieu 에서 기차를 타고 2시간만에 디종 빌 Dijon Ville 역에
도착해 유인 레프트라기쥐 Left Luggage : Consigne a Bagage 에 배낭을 넣고는
걸어서 공원을 지나 다르시 광장 Pl. Darcy 을 본다음 기욤문 Porte Guillaume
을 지나 구시가지 리베르테 거리 Rue de la Liberte 에서 문장을 새긴 깃발들을 봅니다.
그러고는 옛 부르고뉴 시절 왕궁 인 Palais des Etats de Bourgogne 에 도착하니 1015년에
경건왕 로베르투스가 부르고뉴 공국 의 수도로 정하고 거주했다는 부르고뉴 공(왕)
의 관저는 현재 박물관 이 되어 있는데 궁전은 지금은 시청사 라 관광객은 출입
할 수가 없으며 시청과 디종 미술관 사이에는 15세기에 만든 필립 선량공의 탑이 있습니다.
궁전의 일부분으로 입장료가 무료인 디종 미술관 Musee des Beaux-Arts 에 들어가니
프랑스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와 플랑드르등 회화와 조각이 전시되어
있는데 1319년 태생인 대공 Jean Le Bon 으로 부터 이어지는 "가계도" 가 보입니다.
회화와 조각이며 유품과 대공의 관들을 구경하다가 부르고뉴 왕국 을 떠올리는
데... 훈족의 침입 으로 유럽 서부로 떠밀려온 게르만족이 세운 나라 는
앵글로 색슨, 프랑크, 서고트, 동고트, 반달, 롬바르디아 및 부르군트 등 입니다!
부르군트족 은 군디카르 영도하에 3세기 부터 점차 남서쪽으로 이동해 413년
에는 마인강에서 라인강 중류 지역에 있는 보름스 를 수도 로
삼았으나 436년에 서로마와 동맹관계에 있던 "훈족" 의 공격을 받아 멸망 합니다.
이 사건은 나중에 전설화되어 독일 서사시의 “니벨룽겐의 노래” 의 주제가 되었는데
1부는 크림힐트와 지크프리트의 결혼 및 지그프리트의 죽음 을....
2부는 훈족 앗틸라 왕의 아내 가 된 "크림힐트의 복수" 를 다루고 있는데 바그너 에
의해 4부작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 에 수용되어 독일 민족주의 형성 에 기여합니다!
그후 손자 군데리크 가 남은 부족들을 이끌고 서로마 내의 론. 손강 유역으로 이동해
443년에 제네바를 수도로 삼고 왕국을 재건 해 군도르바왕 때 서고트족으로
부터 프로방스를 빼앗고 부르군트 법전을 편찬 하는등 부르군트의 전성기를
누리지만 500년 프랑크왕국 의 클로비스에게 패하여 복속된후 534년에 멸망 합니다.
부르고뉴 공국 은 843년 프랑크 왕국을 분할하는 베르됭 조약 에 의해 서 프랑크 왕국에
할양된후 손 강의 동쪽을 영지 로 했는데 880년에 이르러 리처드가 부르고뉴 공국의
후작 (대공)이 되었으며 1004년에는 파리 카페 왕가에 의해 프랑스 왕국 에 합병 됩니다.
이후 파리 카페 왕가의 방계로서 로베르 1세 가 1032년 부르고뉴 왕국 을 창시하니
부르고뉴가의 후손들은 1,361년 까지 모두 12대 가 이어지니 이 해에
부르고뉴 왕국은 발루아 왕조 프랑스왕 장 2세에게 상속 되고 2년후인 1363년
국왕의 막내 아들인 필리프 2세가 부르고뉴공 이 되면서 공국으로 되살아 납니다.
백년전쟁 (1337년~1453년) 중 1430년 잔다르크 가 구세주로 나타났을때 4대손 부느고뉴
대공 샤를 1세는 잉글랜드와 연합해 프랑스를 공격 했는데 잔다르크가 오를레앙 전투
에서 승리하니 비로소 왕세자가 랭스에서 대관식을 갖고 샤를 7세 로 프랑스 왕위
에 오르는데..... 1451년 콩피에뉴 전투에서 잔다르크 는 "부르고뉴군에 포로" 가 됩니다.
잔다르크 는 영국군 에 넘겨지고 프랑스왕과 귀족 및 가톨릭 교회는 그녀를 시기 한지라
교회 종교재판 에 넘겨지는걸 동조하니 "마녀 판결을 받고 화형" 에 처해졌으며
이후 프랑스 왕국과 부르고뉴 공국은 서로 화해 하고는 연합군을 결성해서 1453년
이르러 영국군을 프랑스 영토에서 완전히 몰아냄으로써 백년전쟁을 마무리 하게 됩니다.
5대손인 부귀공 마리 는 1477년 신성로마제국 황제 막시밀리안 1세 에게 시집을 간후
친정에 후사가 끊기니 부르고뉴 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통치 하에 들어가는데...
예전에 네델란드(벨기에) 공주가 부르고뉴에 시집 오면서 친정에 후사 가 없어
부르고뉴가 다스리던 중이라 네델란드와 부르고뉴는 오스트리아에 속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1592년 코냑전쟁에서 프랑스가 승리하면서 부르고뉴는 다시 프랑스령 으로 돌아
오게 되었으며 부르고뉴 대공의 지위 는 1700년부터 1706년까지 잠시 에스파냐의
펠리페 5세가 상속 하였는데... 그러나 같은 기간 프랑스의 루이 15세의 아버지
황태자 루이를 비롯한 여러 프랑스 왕족이 부르고뉴 대공 의 지위를 사용 하였습니다.
미술관을 나와 한블록 뒤편에 있는 노트르담 교회 Eglise Norte Dame 를 찾으니 지붕에
기괴한 동물상 이 늘어선게 특이한데 성당의 2층은 아케이드장식으로 꾸며져 있는
고딕양식으로 지붕 위에 시계 는 필립이 프라망 원정에서 전리품 으로 가져왔다고 합니다.
시계를 치는 자크마르상 은 1500년에 만들어졌으며 짝과 아들딸이 추가되었는데 아들이
작은 종을 치면 딸은 15분마다 울리는 종을 칩니다. 교회 출입문 옆 게시판에는
세계 각국의 국기 가 그려져 있는데 그 나라 말로 번역된 안내문 이 있다는
뜻인가 본데..... 큼지막한 붉은색 글씨로 사랑 "愛(애)" 자가 붙어 있는게 눈에 뜁니다?
성당을 구경하고 돌아오다 거리의 기념품 숍을 보는데 "올빼미" 를 보자니... 아차!!!
불현듯 생각나는게 있어 다시 노트르담 교회로 되돌아 가는데 노트르담 교회의
북쪽 외벽 낮은 위치에 올빼미 조각 이 있는데 유독 디종에서 올빼미는 길조 로
사랑을 받으니 왼손으로 쓰다듬으면... 소원 하나가 이루어진다는 속설 이 있다나요?
특별히 무슨 소원이랄 것은 없고... 그저 소매치기나 당하지말고 또 아프지도 말고 무사히
유럽 여행을 끝마칠수 있기를 바래 보는데, 거리 길바닥에서 올빼미 그림 이 새겨져
있는 화살표가 많이 보이니.... 구도심 어느 곳에도 인도 마다 이런 그림이 철판에
새겨져 있으니 그건 디종의 노트르담 성당 외벽에 있는 올빼미상 때문 이었는가 봅니다?
거리의 악사 가 바이얼린을 연주 하고 있기에 조금 듣고는 1유로 동전을 내는데.... 부산의
오케스트라 GCO(BMO) 의 바이어린 연주자 인 마눌에게 악사의 수준 을 물으니
한두곡을 오래토록 연습해서 오직 그것만 연주한다면 얼핏 실력을 가늠하기 힘든데,
악사의 수준은 그리 높지는 않으나.... 켜고 있는 "바이얼린은 고가" 라고 부러워 하네요?
악사의 바이얼린 수준 을 물었는데 마눌은 바이얼린 가격을 저울질 하고 있었던가 봅니다?
하기사 보름간 러시아 전국일주 배낭여행중에 상트 페테르부르크 의 알렉산드로스키
극장에서 "발레 백조의 호수" 를 볼 때도 나는 인형같은 발레리나들의 황홀한 춤추는
동작에 정신을 못차릴때 마눌은 무대 아래쪽에 "오케스트라의 악기 연주" 만 바라보더라만!
동쪽으로 두 블록을 걸어 생 미셀 교회 Eglise St. Michel 는 15세기 착공당시 고딕 불꽃
양식에 17세기 완공시는 르네상스 양식으로 우아한 멋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중앙문
위에는 최후의 심판 부조 가 있으며 내부는 고딕식이고 천장이 높은 내진에는 왼편
교차회랑과 생 사크르망 예배당에 걸려 있는 프란츠 그라우스의 그림 4점이 볼만합니다?
생미셸 교회 Elglise Saint-Michel 는 후기 르네상스 시대의 건물이며 특히 교회
정문 위를 장식하고 있는 조각 작품 이 아름답고 정교하기로 유명하다고
하는데.... 이어 오페라 대극장 Grande Theatre 을 거쳐 찾은 뤼드 박물관
Musee Rude 은 프랑수아 뤼 드 Francois Rude 를 기념하는 박물관 입니다.
뤼드 는 파리 개선문 (에투알 개선문) 의 오른쪽 기둥에다가 “1792년 의용병들의 출정”
(라 마르세예즈 La Marseillaise) 을 조각한 프랑스의 유명 조각가라고 하네요?
서쪽으로 방향을 돌려 법원 Palais de Justice 을 지나 계속 걸어서는 보쉬에 광장
Pl. Bossuet 에 도착하는데 1,627년 여기 디종에서 태어난 보쉬에의 동상이 서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걸으면 보이는 건물은 생장 교회 Eglise St. Jean 로 1980년에 극장으로
개조되어 디종 부르고뉴 극장 과 국립 드라마센터 가 들어서 있다는데... 하기사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는 성으로 오르는 로열마일 거리에 검은 고딕식 교회 가
있으니 “Cafe Hub" 라고 교회가 망해서 비어 있던 건물에 술집 이 들어서 있더라마는!!!
문득 떠오르는게 파리 손진석 특파원에 따르면..... 디종 인근 랑그르에 사는 입양자 푸코씨 의
사연이니 “휼륭한 사람 되어 돌아오겠습니다” 32년전 한글 쪽지 간직해온 남자 이야기라?
9세때 불 입양 간 마티아스 푸코 는 파리행 비행기에서 본인이 쓴 한글을 잊고 살았으니
1986년 6월 11일 고아원에 살던 초등학교 2학년 정성수 는 파리행 비행기를
타고 있었다는데 한 승무원이 '뭐라도 적어 보라' 며 넘겨준 쪽지에 "나는 한국
사람입니다. 나중에 훌륭한 사람 이 되어 다시 한국에 오겠습니다" 라고 썼다고 합니다.
“정성수는 프랑스인 양부모로 부터 마티아스 푸코(40) 라는 이름을 새로 얻었고...
프랑스어를 익히면서 한국어는 숫자와 단어 몇개 빼고 모두 잊어
버렸다는데.... 하지만 비행기에서 쓴 쪽지는 32년간 고이 보관해 왔다고 한다.”
“현재 프랑스 중부에 있는 바로 이 도시 디종에서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작은 마을 랑그르에 사는 푸코씨 는 최근 노선주 디종 한글학교 교장
을 알게 됐다. 그는 노 교장에게 쪽지를 보여 주며 무슨 뜻 이냐고 물었다.”
“푸코씨는 "쪽지 내용을 전해들은 순간 말로 표현 못할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며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는 의지 가 강하게 남아있다는 걸 느끼곤 놀랐다" 고
본지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말했다. 푸코씨는 물리치료 전문 간호사로
일하며 열살 난 아들 에반 과 단둘이 산다. 프랑스인 아내와는 4년전 헤어졌다.”
그는 고아원에서 지내다 입양 됐다는 것만 기억할 뿐 가족의 이름이나 살던
곳을 기억 못 한다. "두번 버려졌어요. 가난을 못 이겼던 걸로 알아요.
할머니가 고아원에 보냈다가 어머니가 집으로 데려왔는데, 어머니가
다시 고아원에 맡긴 걸로 기억 합니다. 그리고 여동생 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는 쪽지를 통해 1986년 '광덕국민학교 2학년 12반 15번' 이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광덕 초등학교는 광명, 안산, 안성, 천안, 화천 등 5곳에 있다.
"프랑스 온지 얼마 안됐을 때 인종차별을 느껴서 프랑스어를 익히기 위해 애를 썼어요.
부모와 형, 여동생 덕분에 빨리 적응할 수 있었어요. 프랑스인으로 살아왔지만...
항상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있어요 " 나의홈페이지 : cafe.daum.net/baikall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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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카페지기 작성시간 23.09.03 누군가를 가장 사랑해야 할 때가 언제라고 생각합니까?
못 믿을 사람이라고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할 때,
그 사람이 하던 일에 실패해 좌절과 실의에 빠져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그런 때야말로 사랑이 진정 필요한 것입니다.
진실로 그를 사랑한다면 그가 이 자리에 있기까지 겪었던 슬픔과 고통,
그 모든 것을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멋지게 활기차게 아름답게 시작하시고 사랑은 행복의 시작입니다.
오늘 하루도 즐겁고 행복하고 사랑과 기쁨이 가득 웃음 가득 기분 좋은 날 되세요.(^*^)♡ -
답댓글 작성자가라치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3.09.03 늘..... 좋은 댓글들 고맙게 읽고 있습니다.
그 지독하던 무더위도 가고 이제 가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