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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옛날에 1 '안티와 롱핌플'

작성자공룡|작성시간20.09.15|조회수810 목록 댓글 19

엘보와 겹친 코로나 덕에 운동 못한 지 벌써 10개월이 됩니다.
지겹고 힘드네요..
평생을 거의 유일한 취미로 운동으로 탁구를 하다가 이렇게 오랜 기간 처음 쉬어 보니
일상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집니다.
직접 하지도 못한 채 탁구 치는 상상만 계속 하다 보니^^
오랜만에 사놓은 공격형 안티러버도 너무나 궁금하고
프리뷰만 써놓고 바라만 보고 있는 유크라시아도 써보고 싶고
괜히 롱핌플 러버도 한 장 꺼내서 붙여놓고..
혼자 별 짓을 다 하고 있습니다.ㅋㅋ
롱핌플 만지다 보니 옛 생각이..

옛날에 옛날에
우리나라에 안티러버가 처음 선보일 적에
그리고 롱핌플러버가 처음 판매될 적에
저는 그것들의 첫 유저였습니다.
동대문에 있던 버터플라이 본사에 직접 가서 러버 한 장 딸랑 사오곤 했죠.ㅎㅎ
처음 나온 안티는 버터플라이의 공격형 안티 '압소바'와 수비형 안티 '슈퍼안티', 이렇게 두 종류였습니다.
당시엔 버터플라이 브랜드를 한국에 들여온 신남무역의 천회장님이 국내 탁구계를 홀로 휘어잡고 계시던 때라 다른 브랜드의 용품들은 간간히 들어오는 병행수입 제품들 뿐이었고 그나마도 저 같은 아마츄어들이 쉽게 구입할 루트는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동대문 운동장 주변에 가면 버터플라이 펜홀더 라켓과 스라이버만 있었습니다.
간혹 보이는 극소량의 야사카와 TSP, 다커 등 일본 제품들이 다였구요.
아무튼
최초의 안티러버들 중 공격형 안티인 압소바를 사고
그걸 백핸드 면에 붙이기 위해 파워드라이브 한 자루를 샀습니다.
무게도 모른 채 구입했던 그 무거운 파워드라이브가 제 생애 첫 셰이크핸드 블레이드였지요.
히노끼 오겹 합판으로 당시 몇 안 되는 셰이크 선수들이 가장 선호하던, 얼마 전까지의 코르벨 같던 블레이드였습니다.
압소바를 붙이고 전적은 무척 좋았습니다.
생전 처음 상대하는 안티러버에 상대들은 진정 황당해 했고 저 역시 잘 다루는데 한참 걸리긴 했지만 승률은 정말 높았습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 국대들의 최종병기였던 롱핌플 러버가 국내에도 발매되면서 바로 롱핌플로 갈아탔습니다.
첫 러버는 버터플라이의 '페인트 소프트'.
중간 두께의 스펀지 붙은 롱이었습니다.
안티와 많이 달라서 참 많이 헤매다가 도저히 적응을 못하고 버리려 했었는데 문득 드는 생각.. 어차피 버리는 거, 버리기 전에 스펀지 떼고 러버만 붙여볼까.
스펀지 없는 OX 의 존재도 모르던 저였는데 이상하게도 스펀지 없으면 더 잘 될 것 같다는 막연한 추측이 떠올랐던 건.. 타고난 용품 감각이었으려나요.ㅋ
아세톤으로 스펀지를 떼고 다시 고무풀로 러버만 붙이고 나니
이건 완전 신세계였습니다.
지금의 롱핌플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정직한 '페인트 OX'가 된 거였지만
그 때는 최고의 변화계 러버였습니다.ㅎ
제 롱핌플을 처음 상대하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기겁을 했고 몇몇은 쌍욕도.. 막 했지요.ㅋ
피크는 모 대회에서 강력한 우승후보라는 오픈 1부 선수를 준결승에서 이기고 결승에 올랐을 때였는데 (그 대회는 핸디가 없었습니다)
사실 그 날이 제 롱핌플 사용의 마지막 날이기도 했습니다.
저한테 준결승에서 진 그 1부 선수는 그 자리에서 자기 펜홀더 라켓을 반으로 쪼개어 바닥에 집어던지며
'XX! 내가 이 지저분한 이질하고 다시 시합하면 사람새끼가 아니다!'
라며 소리소리 질렀습니다.
저는 기분이 많이 상했지요.
옆에서 심판을 보던 분과 다른 선수들 몇 분이 저를 위로하며
어려운 롱핌플 다루는 것도 엄연히 실력이고 공인된 러버로 정당히 이긴 것이니 너무 신경쓰지 말라고 얘기해주었습니다.
하지만 머릿속에는 '이 지저분한..' 이라는 말이 계속 맴돌았고
결승에서 의욕도 없이 그냥 서 있다 상대였던 선수부에게 무참히 하프로 깨진 후에 한참 동안 정들었던 롱핌플 러버와 이별을 했습니다.
그리곤 다시 전에 하던 펜홀더 전진공수형으로 돌아갔구요.
여러 해가 지나 중펜을 거쳐 셰이크로 돌아올 때까지 계속 일중호에 임파샬을 썼습니다.
갑작스럽게 러버와 전형까지 바꾸니 더 이상 좋은 승률은 나오지 않았고 실력도 떨어졌지만
상대를 화나게 만드는 '지저분한 러버'는 더 이상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제 모토는 '즐거운 탁구'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롱핌플 유저에게 지고 러버 탓하며 화내는 분들 간혹 계시..겠지요?ㅎㅎ
그 때 만약 제가 그 시합장에서 그런 말을 듣지 않았더라면 지금 쯤 오픈 1부로 국내 롱핌플의 일인자 소리를 듣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롱핌플을 계속 쓰지 않은 걸 크게 후회하지는 않지만 또 한편으로 아쉽기는 합니다.
저보다 두어 살 많았던 그 1부선수는 그 후로 롱이나 안티 유저들과 진짜로 게임을 안 했을지..ㅋ
사람새끼가 되는 걸 포기하고 그냥 게임 했을지.^^

용품만 만지며 상상과 추억 속을 돌아다니다가 몇 줄 쓴다는 게 길어졌네요.
엘보 때문에 다시 안티와 롱을 주력으로 써볼까 싶어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그랬습니다.
진짜 옛날 얘기였어요.
한 40년 전에 그랬습니다.ㅎㅎ

옛날 옛날에 지저분한 이질러버^^로 상대 힘들게 했던
용품선구자 공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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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공룡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09.18 제 탁구치는 스타일 영상 보시려면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한데요..
    나이먹고 배 나온 발트너가 이것저것 특별한 짓들 시도하다가 예전 같지 않고 실수할 때 머쓱해서 괜히 러버 쳐다보고 테이블 닦고 그러거든요? 그게 제 모습이예요.ㅋㅋ
    저는 몸이 커서 빨리 못 움직이고^^ 느릿느릿 컨트롤 위주로 치면서 타법이나 구질, 코스 등에 잦은 변화를 추구하는 스타일입니다.
    누님탁구들이 제일 싫어하죠.ㅋ
    끈적탁구님이 테이블에 좀 더 가까이 서서 발트너 같은 다양한 게임 운용을 추구하는 모습? 그 정도 될 겁니다.

    안티러버는 오래 전에 안티 스페셜 잠깐 써보고 요즘은 안 쓰고 있었습니다.
    스캔달은 제일 느린 안티라니 앞으로도 써볼 생각이 없구요.^^
    안티나 롱이나 저는 다 공격적으로 써서요.
    안티스피드를 고른 이유는 세계적으로도 정말 오랜만에 출시된 빠른 스피드의 공격형 하프안티라기에 컨트롤계 평면러버나 회전계 숏핌플러버와 비슷하게 공격적으로 다양하게 운용해볼까 해서입니다.
    이런 류의 러버들은 처음부터 그냥 평면이다 생각하고 적응하면 좋거든요.
    안티스피드 외에 킬러나 그라스 디 텍스 같은 류들도 즐기고 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TPT탁구 | 작성시간 20.09.18 공룡 근40년동안 사용하셨다 하니 놀랄뿐입니다. 안티러버가 저도 당기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의러버를 사용해야겠지요.

    오랜 경력의 볼구질을 한번 보고픈 1인 입니다.ㅎㅎ.

    항상 건강하시고요
  • 작성자마크원 | 작성시간 20.10.11 슈퍼안티 1.3미리 시타중입니다. 다음에 즐탁으로 선택해볼 러버는 트랜스포머일지 문의드립니다. 무게는 조금 더 나가고 반발력은 슈퍼안티 수준이며 조금 지저분한(?) 변화가 있는 러버가 있을가요? 😂
  • 답댓글 작성자공룡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10.11 수퍼안티 사용해본 지 너무 오래됐고
    새로 산 안티는 아직 써보지도 못했고
    요즘 새로 나오는 안티들도 그동안 전혀 써보지 못해서
    제가 뭐라 조언드릴 상황이 아니네요.^^
    트랜스포머가 수퍼안티보다 훨씬 까다로운 구질이 나온다는 건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ㅎㅎ
    수퍼안티는 가장 얌전하고 고전적인 러버라서요.
  • 답댓글 작성자마크원 | 작성시간 20.10.11 공룡 답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트랜스포머도 한번 도전해봐야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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