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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옛날에 2 '롱핌플 이야기'

작성자공룡|작성시간20.09.18|조회수399 목록 댓글 11

전에 쓴 글 '옛날에 옛날에'에 숫자 1을 붙이고
2를 씁니다.^^
안티와 롱핌플 이야기 시작한 김에
옛날에 롱핌플이 우리나라에 많이 쓰이지 않았을 시절 제가 겪었던 재미난 이야기 두어 가지를 우선 적어 볼게요.

첫번 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뚱보 아저씨.
나름 구장과 지역 최고수라고 자처하던 분이 있었습니다.
펜홀더(그 시절에는 셰이크가 거의 없었죠)로 스매쉬를 잘 치던 분이었는데
당시로서는 특이하게도 카본 소재의 합판으로 된 일본식 펜홀더에 국민러버 스라이버 얇은 거 조합.
뚱보라고 별명이 붙은 체격이었는데 참 잘도 움직였고 순간 돌아서 때리는 스매쉬가 일품이었습니다.
포어핸드로 돌 수밖에 없는 게.. 그립법이 뒷면 세 손가락을 각각 다 벌려서 뻗쳐서 받치는, 류궈량이 로빙볼 스매쉬할 때 쓰던 독수리 발톱 그립법이었으니 백핸드는 거의 커트만 가능한 그립이었거든요.
그러고도 지금으로 따지면 오픈 2부 정도 됐으니 구력과 감각이 참 좋은 분이었습니다.
우연히 제가 그 분 운동하는 구장에 방문하게 되어 구장 최고수라는 그 분과 친선 게임을 하게 되었는데..
제가 페인트OX를 백에 붙이고 있으니 그 이상한 러버는 뭐냐고 묻더군요.
롱핌플을 상대해보기는 커녕 생전 처음 보는 거였던..ㅎ
그 후 이야기는 굳이 뭐..
당연히 제가 이겼겠죠.
너무나 미안하리만큼 처참하게 이겼습니다.ㅋ
그 뚱보아저씨는 생애 처음 롱핌플을 상대하는 거였으니.. 어떤 상황이었는지는 상상이 가시죠?
21점 게임에서 제 실수로 두 세 점 줬을 겁니다.^^
이 아저씨 그 날 멘탈이 가출하시어 한동안 구장에 안 나오셨답니다.
한참이 지나 또 일이 있어 그 동네에 갔다가 그 구장에 들렀습니다.
뚱보 아저씨가 기합을 넣어가며 연습 중이었는데 가만 보니 페인트OX를 구해서 붙이셨더라구요.ㅋ
아무리 구력이 있어도 일펜 전면에, 그것도 무지 튕기는 전진속공용 카본 목판에 페인트OX를 생전 처음 조합했으니 맘대로 잘 될 리가 없겠죠.
반전형도 아니고 이면을 쓰는 것도 아니고 전면에 롱핌플OX 한 장만.ㅋ
그 날도 그 조합으로 도전해 온 뚱보아저씨는 제게 또다시 무참하게 패했습니다.
라버의 성격도 파악하지 못한 채 전에 쓰던 평면러버처럼 쓰려고 하니 잘 되는 기술이 전혀 없더군요.
그 후로도 친선 시합 등에도 그 조합을 들고 다니며 무참하게 지고 다닌다는 말을 한동안 들었는데
'러버 때문에 졌다. 나도 저 러버 쓰면 러버 덕 보겠다.' 라는 마인드였던 거죠.

롱핌플은 절대 호락호락한 러버가 아닙니다.
롱핌플이나 안티러버 같은 특별한 애들은 사용자가 피와 살과 뼈를 갈아 넣어야 비로소 말을 듣습니다.
혹시 롱핌플이나 안티러버를 조합하고자 하시는 분들은
평면러버로 모든 기술들을 감각적으로 자신있게 구사할 수 있을 때 슬슬 전향을 고려하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 짧은 이야기는 내기 탁구!
저녁 먹고 늦은 시간, 구장에서 친구와 평면러버 펜홀더로 슬슬 놀고 있는데 두 청년이 들어왔습니다.
탁구 좀 친다고 거들먹거리며 둘이 온갖 폼잡고 치는데 꽤 잘 치는 실력이긴 했지요.
얼굴이 벌건 게 둘 다 술도 한 잔 씩 했고^^ 내내 우리 쪽 테이블을 힐끔거리며 비웃으며 지적질도 하며 자기들의 탁구 실력에 무척 자신있어 보였습니다.
아니다 다를까 슬쩍 시비를 걸어오는 두 사람.
내기 탁구 어떠냐구요.
제가 정중히 거절했더니 처음엔 게임비로 시작한 제안이 밥으로 술로 돈으로 점점 커지더군요.
내기에 응하지 않으면 싸움이라도 하자는 기세였는데 저도 크고 힘이 있었지만 저와 있던 제 친구는 태권도 대표선수로 싸움짱이기도 했으니 전혀 그런 게 겁나지는 않았네요.ㅎㅎ
계속되는 도전에 너무 귀찮기도 하고 한편 속으로 괘씸하기도 하던 차에 '그럼 십만원 내기 하자'는 말이 나와 제가 오케이 했습니다.ㅋ
80년대 중반 당시 십만원은 지금 돈 오십만원에서 백만원 가까운 값어치를 가졌더랬죠.
혼내주려는 마음으로 롱핌플 조합을 꺼냈습니다.
친구는 옆에서 킥킥 웃고.^^
'친구야, 알지? 넌 그냥 안전하게 넘겨주기만 해.'
다짐해 놓고 게임 시작.
좀전까지 옆에서 보기와는 전혀 다른 게임 내용에 두 사람은 너무나 당황했고 결과는 무참히 우리 승.
롱핌플을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니 당연한 결과였죠.
정신 하나도 없이, 사실 내기한 십만원 줄 돈도 없어서 어쩔 줄 몰라 붉으락 푸르락 하는 그 두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내기 한 거 안 주셔도 됩니다. 그냥 재미있게 게임 한 걸로 넘어가시죠. 대신 이제부터는 어디 가서 함부로 그러지 마세요.'
그리고 괜히 덧붙인 (뻥) 한 마디.
'그리고 우리 격투기 선수예요..'
그 두 청년 그 때 얼굴 표정이 지금도 생생합니다.ㅋㅋ

보기와는 다른 구질이나 실력의 고수들이 참 많습니다.
롱핌플 같은 거 아니어도 실제로 가장 큰 변화는 평면러버에서 만들어집니다.
제가 잘 아는 어르신 중 탁구 육십 년 치신 극강 고수분이 계신데 차림새도 늘 허술하시고 폼이 보기에 엉성하여 함부로 대드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말도 안되게 지고 나서도 고개를 갸우뚱 하지요.
'내가 저 영감한테 질 실력이 아닌데!' 하면서요.ㅎ

아는 만큼 보이는 거 아니겠어요?^^

국내 롱핌플 초기 유저로 재밌는 경험 많이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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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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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왼손짱 | 작성시간 20.09.18 대구에서 롱핌플이 대유행할때쯤 참 재미있었습니다. 에피소드들도 많구요^^
  • 답댓글 작성자공룡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09.18 유행이 분명 있지요.ㅎㅎ
    지금은 이너 ALC 에 고경도 러버 유행.
    제가 안티스핀 러버를 한 번 유행시켜볼까요..ㅋㅋ
  • 작성자마라도나 | 작성시간 20.09.18 글을 참 재미있고 조리있게 잘 쓰십니다..
    롱핌플 잘 다루는 상대 만나면 어렵죠..ㅎㅎ 전 예전에 2006년도인가 서울에서 열리는 대회를 나간적이 있는데..
    본선에서 일펜에 더블헤피니스사의 C7을 붙인 상대를 만났어요..그것도 전면만 러버를 붙인 정통 일펜이었습니다...처음엔 내가 멀 잘못봤나 했습니다.. 간신히 이기기는 했으나..당황 스러운 경험 이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공룡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09.18 C7도 상당히 위력적이죠.
    펜홀더 전면에 그런 거 붙이고 잘 치는 상대는 참 까다롭습니다.
    분명 같은 러버인데 펜홀더의 특성상 포어와 백의 구질이 무척 다르기도 하구요.
    고생하셨네요.ㅎㅎ
  • 작성자규신 | 작성시간 20.09.18 제가 중펜 이면에 c7을 사용하다가 최근에 수퍼안티로(1.3mm)바꾸어 치고 있습니다. 괜히 안티 러버란 것도 있다고 알려 주고 싶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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