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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와 탁구 (3) 폭력의 유전자

작성자Oscar|작성시간18.06.08|조회수643 목록 댓글 10

글 이어 가겠습니다.


이 글 이전에 굉장히 길게 글을 썼었는데, 해외에서 올린 글이라 올라가면서 사라졌어요.

그리고 글을 이어갈 의욕을 잃어서, 오늘까지 글을 못 올렸네요.

참 아쉽습니다.


지금은 머리 속에서 그때 썼던 내용과 이전의 두 글에 썼던 내용이 섞여서, 

쓰다 보면 이전의 두 편에 썼던 내용을 모르고 중복해서 쓰거나, 혹은 꼭 써야 하는 내용인데도 

사라진 글에 썼던 것을 이전에 올린 두 편의 글에 쓴 것으로 여기고 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은 이전 글들 생각하지 않고, 새로 쓴다는 기분으로 빠르게 적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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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남자의 유전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사피엔스 종이 네안데르탈인을 몰아 내고, 인간 종을 이루게 된 시점,

즉 인류의 직계 조상인 사피엔스가 지구 상에 등장한 시점부터 지금까지의 역사를 50만년 정도로 추정할 때 

(호모 사피엔스 종족의 등장 시기는 20만년에서 30만년 정도를 봅니다만,

그 이전의 인류로부터 연계된 것이므로 대략 50만년으로 가늠하기도 합니다.)


인류는 농사를 짓게 되기 전까지는 수렵, 채집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한 곳에 모여서 살면서 인간 사회를 열게 되기 전까지,

인류는 소규모의 무리로 지내면서 상대적으로 평등하지만, 가혹한 자연 환경과 맞서면서 살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원시 사회에서 인류는 사냥을 하며 삶을 유지했습니다.



사피엔스 종이 진출한 곳마다 대형 동물들이 멸종했다고 합니다.

대략 지구상에 존재했던 대형 동물, 즉 소, 돼지 정도의 사이즈 이상의 동물들의 90%가 멸종했고,

인류가 가축으로 기르기 시작한 동물들은 그 이전에 생존했던 숫자보다도 훨씬 더 많이 번성하고 있지요.


유전자의 입장에서 보면 소, 돼지, 닭 등의 동물들은 엄청나게 성공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동물들의 삶은 비참하기 이를 데 없지요.

닮만 해도, 불과 1개월이면 식용으로 팔려 나가니, 자연 수명에 비하면 너무 불쌍합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사피엔스라는 종족 자체가 곧 지구 환경을 망치는 주범이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현대인들은 과거 원시인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소모를 하고 있지요.



그런데 과거 수렵, 채집의 삶을 한번 상상해 보시면, 제가 적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거에요.


사냥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폭력적인 삶과 마주해야 합니다.

짐승을 잡는 것은 죽음을 무릅써야 하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짐승을 잡기 위해서 때때로 매복하고 추적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신체적인 능력으로는 대형 동물들과 맞설 수 없으니까요.



앞선 연재글에서 적었지만, 원시 사회에서 여성은 일생 동안 임신, 출산, 육아를 반복하면서,

사냥을 할 수 없는 환경에서 살았을 것입니다.

즉 폐경의 시기에 이르기까지, 여성은 줄곧 임신, 출산, 육아에 매달려야 했을 것이고, 

그만큼 사냥은 남자들의 몫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성들은 신체적인 능력, 폭력성 등에 의존하면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삶은 아주 극히 최근까지 이어졌습니다.

많은 인류학자들이 인류는 본래 평화적인 종족이었다고 설명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보다 더 보편적인 자료들은 인류가 본래 대단히 폭력적인 삶을 살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중세의 자료들을 살펴 보면 이런 폭력성은 서양 역사에 아주 흔하게 나타납니다.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귀족들은 가학적인 재미에 빠져 들어 성 안에 감옥과 고문 도구들을 갖추고

사람을 괴롭히는 것을 일삼았습니다.

기록된 모든 역사는 전쟁의 역사입니다.


고대 역사는 어떻습니까?

성경에 기록된 끔찍한 전쟁의 모습들은 실제로 바벨론 문명의 벽화와 부조 속에 그대로 드러납니다.

잔인하기가 이루 말로 할 수 없지요.

어린아이를 들어서 바위에 매치고, 사람의 목 밑에 장대를 꽂아 높이 매달아 죽이는 장면 등....


역사적으로 그런 기록을 남긴 사람들은 그것을 자랑스러운 전쟁의 성과로 여기면서 그렇게 했지요.


이런 것들을 다 나열하면 한도 끝도 없을 것입니다.


일본 역사를 보면 끊임 없이 전쟁을 치르다가 내전이 사라지니 사무라이들이 견디지를 못 했습니다.

계속해서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데, 죽일 대상이 없어진 것이지요.

그래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임진왜란을 일으켜 그들의 가학성을 이어 가고, 일본 사회를 안정화 시킵니다.


저는 지금 슬로베니아에 와 있는데요,

유럽은 사실 전체가 전쟁통이었지요.

산맥으로 가로 막혀 언어와 민족이 가름되었는데, 산만 넘어 가면 마음껏 살육하고 죽여도 되는 이민족이 된 것이죠.

그래서 유럽 역사는 통채로 다 전쟁의 역사입니다.


고대의 그리스, 로마 시대로부터, 인류사는 전쟁사에 불과합니다.


우리 나라도 크게 예외는 아닙니다.

하멜의 표류기를 보면 조선 사람들을 매우 법을 중시하는 민족으로 말하고 있는데,

당시에 중죄인들을 너무 가혹하게 매질하고 고문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도를 말하며 예를 말했던 중국인들은 어떻습니까?

수호지와 삼국지를 보면 속이고 죽이고 빼앗는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생존을 위해서 폭력을 사용하고, 그 폭력에 가학성이 덧붙여 지는 것이, 인류 전체의 삶이었지요.


기독교에 바탕을 둔 서양 문화가 조금 더 교화되고 고양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선교를 핑계 삼아 일방적인 살육 방식의 전쟁을 하고, 나라와 심지어는 대륙까지도 식민지화 한

지난 몇 백년의 역사를 보면 종교가 폭력을 누그러뜨리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보기가 어렵습니다.


유럽과 미국을 지탱한 것은 그 폭력성입니다.

그들은 식민지 전쟁을 일삼으면서 약한 민족을 가학하며 내부적인 분란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또 노예를 사냥하고 노예를 부리면서, 경제를 일굴 뿐만 아니라, 스스로 폭력 앞에 무너지는 일을 막을 수 있었지요.


폭력은 인류에게 매우 일상적이었습니다.


제가 어릴 때만 하더라도, 학교와 학교가 패싸움을 하면 수십명이 집단적으로 칼과 도끼 등을 들고 싸웠지요.

그런 패싸움들이 흔했습니다.

선생님들은 야구 방망이로 학생들을 때리고, 학생들은 학생인지 조직 깡패인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이런 가정이 맞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인류에게 유전적으로 내재된 폭력의 지수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높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를 낳으면 너무나 천진하고 예쁘기 때문에, 이 아이에게 폭력성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 하지만,

유전적으로 누군가를 때리고 죽이고 빼앗는 것이 우리 인류의 유전자 속에 새겨져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현대의 삶은 폭력에서 매우 거리가 멉니다.

어떻게 해서 인류는 이 폭력에서 벗어났을까요?



만약 인류의 유전자에 폭력성이 새겨져 있다면, 이 폭력성을 풀어 놓지 않으면 인류는 자멸할 것입니다.

지속적으로 사냥을 하면서, 짐승과 죽음을 두고 싸움하면서 살지 않는다면, 

결국 이 폭력의 유전자를 잠재우거나, 혹은 활용할 뭔가가 필요한 것입니다.


첫째는 강력한 위계 질서, 혹은 계급 제도를 두는 것입니다.

상위 계급을 두고 하위 노예 계급은 상위 계층에 대항하지 못 하도록 하면, 노예는 노예끼리 연대하고,

상위 계급은 상위 계급끼리 친목합니다.

이것이 원시 사회로부터 근대 사회까지 사회가 진화하면서 인류가 생존의 시스템으로 만들어 낸 것일 수 있습니다.


둘째는 폭력에 방향성을 두는 것이지요.

서로 서로 죽이지 않도록, 사회 내부적으로 규칙을 제정하고,

그 폭력성을 적대 세력에게 돌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 부족과 부족간 전쟁을 하고, 민족과 민족간 전쟁을 하게 되면,

내부적인 폭력성에 의해서 한 부족이나 민족이 붕괴되는 일을 막을 수 있습니다.


셋째로, 폭력성을 전환 시키는 것입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스포츠일 것입니다.

스포츠는 가상의 전투이며 폭력성이 점수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직접적인 폭력과 연계된 격투기는 물론이고, 구기 종목을 통해서도 우리는 전쟁과 비슷한 형태의 집단적인 감정을 겪습니다.

2002년 월드컵이 대표적인 예이지요.

매우 고양되고 순화된 이미지이지만, 그런 집단적인 일체감을 인류는 갈망해 왔습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본래 수렵 사회에서의 인류는 집단적인 춤을 추면서 황홀경에 빠지는 것을 자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런 집단적인 의식은 지금도 많은 원시 부족에서 행해지고 있지요.

저는 독일의 카니발 축제를 통해서 그것을 느꼈습니다.

마치 2002년 월드컵 당시 우리 한국의 거리에서 느꼈던 그런 독특한 집단 최면적 황홀경이

독일의 카니발 거리에 있어요.


이야기가 곁길로 새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조금 줄여 적어 보겠습니다.


이런 폭력성이 인류 사회에서 급작스럽게 절제되기 시작한 것은 양차 세계 대전이 그 결정적인 계기라고 할 것입니다.

1차 대전 전까지만 해도 종교를 핑계 삼아서 침략하고 한 나라를 폭력 앞에 굴복시키는 것을

선진국들은 반복해 왔습니다.


그 시점까지 전체 인류는 돈와 권력을 가진 사람은 많은 아내를 거느리고,

돈이 없거나 신분이 노예이면 아내를 갖지 못 하는 완전한 불평등 사회 속에 처해 있었습니다.

아이를 낳아도 주인에게 빼앗기고 아내와 남편도 한 집에 살 수 없는,

그런 노예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대다수이고, 권력을 부리는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자연 상태의 유인원들을 보면 대략적으로 대장 수컷과 그 추종자 서너 마리가 수십여 마리의 암컷을 거느리고,

대다수 수컷들은 일생 동안 번식 행위를 하지 못 한다고 합니다.

그런 불평등과 폭력이 억압된 세계가 인류의 세계였지요.


인류 역사 속에서 일부일처제가 기본적인 사회 구조로 뿌리 내린 것은 18세기 가까와서였지요.

고대 로마 사회를 들여다 봐도 로마의 성인 시민 남자는 여자와 여자 노예, 성인이 되지 않은 남자 소년들을 마음껏 취했습니다.

즉 시민 남성이라고 하더라도 성인 남성에게 복종의 의미로 성적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런 억압과 정복의 세계가 남성들의 유전자에 새겨진 기본적인 특질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폭력성이 사라지고 인류 전체가 비폭력의 세계로 나아가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습니다.

바로 양차 세계 대전이지요.


인류는 이념이던, 정복욕이던, 아니면 그 무엇이든지 상관 없이, 

전쟁을 지속하다가는 전체 인류가 멸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인류사 처음으로 하게 됩니다.

당시는 지금처럼 전 세계가 교류하던 시기가 아니므로,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전쟁에 휩싸였던 나라들의 입장에서는 자기들이 보는 모든 세계가 전쟁터였습니다.

폭격이 지나가고 나면 거리 곳곳에 사람 시체와 신체 일부들이 나둥그러져 있고,

자기가 아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사랑하는 가족까지도 죽음을 겪었죠.


그래서 인류는 양차 세계 대전을 통해 폭력성에 내맡겨서는 인류가 멸명할 수 있다는 생각을 최초로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이후 핵무기 군비 경쟁이 거듭되면서, 이런 가정은 현실화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전쟁을 겪었던 당사자 국가들을 비롯해서 서서히 폭력을 인류 역사에서 걷어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월남전에 참전하고, 독재 정권의 대치 하에 남북간 긴장이 이어지면서,

상당히 더 오랜 시간 폭력은 유지되었습니다.

이런 폭력적인 문화는 비록 총이 금지되어 총기에 의한 살상은 없었다고 하지만

한국의 80년대, 90년대에 이르기까지 일상적으로 반복되었지요.

삼청 교육대와 폭력 조직을 굳이 예로 들지 않더라도,

그런 폭력적 문화는 우리의 가정과 학교에 그대로 펼쳐졌습니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때리는 것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았고,

학교 선생님들에게 아이를 맡길 때 많이 때려달라고 매를 선물했습니다.

경찰은 시민들을 향해서 최루탄을 쏘았고, 심지어는 탱크와 헬기로 시민들을 죽이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80, 90년대의 문화였습니다. 


그러나 90년대에 접어 들면서 이런 폭력성은 극적인 반전을 맞이합니다.

91년, 서울대학교의 강경대 학생이 시위 과정에서 죽은 후 수많은 분신 자살이 이어졌습니다.

학생들과 진압 부대의 대치 상황은 극단적이었지요.

그런데 정원식 총리가 모교인 외국어대학교를 방문했다가 밀가루와 계란 세례를 받게 됩니다.


언론들은 이 때를 놓치지 않고 학생들이 스승에게 너무 하다고 일갈하기 시작하고,

그때부터 학생 운동은 빠르게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전대협이 없어지고 한총련이 등장했고, 전체 사회의 분위기는 급변했지요.

그리고 김영삼, 김대중으로 정권이 이어지면서 한국 사회는 IMF 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습니다.

무너진 노동운동, 학생 운동의 뒤를 IMF 아래 생존이라는 테마가 뒤덮었죠.


저는 이 시점이 한국 사회에서 폭력이 물러나게 된 시점이라고 봅니다.

교련이 없어졌고, 시위가 사라졌죠.

국가가 위기에 처하면서 내부 갈등은 와해되고, 극단적인 생존 경쟁 속에 폭력성은 일시적으로 위축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보는 세계가 열렸지요.


유럽에서는 1,2차 대전 이후 전쟁은 소규모 국지전화의 길을 걸었습니다.

이스라엘과 중동 간의 끊임없는 전쟁의 위협이 있고, 월남전과 중동전 등의 전쟁이 있었지만,

유럽 사회 내부의 전쟁은 많이 사라졌습니다.

유럽이 전쟁을 하면 인류가 멸망할 수 있다는 교훈을 두 차례의 세계 전쟁을 통해 겪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전쟁이 전 세계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유엔과 여러 국제 정상들 간의 협업 시스템도 이어졌습니다.

과거 국가간의 협력은 동맹 관계로 인해 전쟁을 확대하고 부추기는 면이 있었지만,

세계 대전 이후의 국가간 협력은 전쟁을 국지화 하고 확대하지 않기 위한 움직임으로 변했습니다.


지금도 이 세계는 무지막지한 폭력 속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수많은 이슬람 여성들이 명예 살인의 위험 속에 살아 가고 

한 해에도 5천여 명의 여성들이 아빠와 오빠, 시어머니에 의해 명예 살인 됩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어린이들을 학살하는 폭탄들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정당하고 폭력에 참여하지 않으면 남자 답지 못 하다는

과거의 인식은 사라졌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폭력성은 인류의 유전자에서 사라졌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폭력성은 잠재적인 형태로 남아서 우리를 괴롭힙니다.


학교 내의 왕따 현상과 동기간 폭력은 이 폭력성의 유전자가 억제되면서 변형된 것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인류는 살아가면서 지속적으로 폭력을 당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면서 살아 왔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멈추려고 하니, 어딘가로 새어 나오는 것이지요.


인간이 얼마나 폭력적인 존재인가 하는 것은 군대에서 경험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착한 사람도 지속적인 폭력 속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되지요.

그리고 폭력이 억제된 사회 속에서 폭력이 정당화 되는 사회로 옮겨 오면 아주 잔인해 집니다.

그것을 거슬러서, 군대 속에서도 폭력적으로 살지 않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 소수의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폭력에서 건져 내고 비폭력적으로 유지되도록 하는 위대한 사람들인지도 모릅니다.




탁구가 매우 중독성이 높지요?

그런데, 저는 탁구가 이 폭력적 유전자를 순화 시키는 능력이 아주 출중하다고 생각합니다.

탁구는 매 순간 누군가가 이기고 집니다.

한 경기에도 수십번의 승부가 이어집니다.


그리고 누군가를 이겼을 때, 가슴이 뛰고 그 승리감은 잠을 못 이룰 만큼 높습니다.

누군가에게 졌을 때 분한 마음 역시 그렇지요.


졌지만 웃으면서 자기는 건강을 위해서 운동한다고 말하지만,

남성들의 유전자 속에는 삶과 죽음이 갈리는 사냥터와 전쟁터에서 익혀 온 승부 근성이 

그 내면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탁구는 선진국의 스포츠입니다.

그런데 그 이면에는 비폭력적인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스트레스를 감당하기에

탁구가 매우 적절한 스포츠라고 하는 계산이 담겨 있습니다.


아마도 폭력적인 국가에서 탁구는 인기를 잃을 것입니다.

사람을 때리고 죽이는 것이 탁구보다 더 우리 유전자에 담긴 폭력성을 만족 시키는 힘이 더 강할 것이기 때문이지요.

물론 탁구 경기에서 느끼는 쾌감과 권투 같은 것을 해서 상대방을 이겼을 때 느끼는 쾌감을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습니다만,

기본적으로 탁구가 남성들의 유전자 속에 있는 전투적 욕망을 완화 시키는 데 크게 기여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여러분들의 이견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숨도 안 쉬고 글을 써서, 글 내용에 문제가 있거나, 혹은 문장에 어색함이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나중에 천천히 읽어 보고 그런 부분은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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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탱크오산 | 작성시간 18.06.09 저도 남자였나봐요~ㅋㅋ
  • 작성자비스매니아 | 작성시간 18.06.09 겉으로의 폭력도 문제지만 인간 자체의 내부에 자리잡고 있는 악함과 욕심도 유전적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누군가 이야기했죠 인간의 내면을 점점 알게될 수록 기르는 개를 더욱 사랑하게 된다고
  • 작성자열서브 | 작성시간 18.06.09 이른 아침 눈 비비며 긴 글을 멈추지 않고 읽어 내려 갔습니다
    다시 생각하게 하는 세계사와 우리나라 역사의 흐름이~~(끄덕끄덕)

    탁구로 풀어 낼 수 있는 묘한 매력에 반하고 있습니다~
  • 작성자핑퐁늦동 | 작성시간 18.06.09 요즘 주변에서 남성이 육아로 탁구를 줄여야하고 여성은 승부욕이 갈수록 커지는 모습들을 보곤합니다^^ 탁구에서는 폭력성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빠르게 전이되는 것 같네요ㅎㅎ
  • 작성자세모래 | 작성시간 18.06.09 탁구 치면서 순둥이가 되고,
    키보드 치면서 워리어가 되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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