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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지기 방

가을이네요.

작성자Oscar|작성시간18.09.14|조회수436 목록 댓글 15

선선한 바람이 불어 오네요.

시간은 한 순간에 계절의 옷을 바꿔 입고 가슴 속에 들어 옵니다.

계절이 바뀔 때에는 옛 생각이 불현듯 떠오를 때가 있나 봐요.

무언가 낯선 향취, 갑자기 바뀐 날씨 속에 지나갔던 옛 일이 기억 속 편린을 모아

잊고 있었던 일을 마음 속에 고이게 할 때가 있습니다.


요즘은 탁구카페에 글을 쓰지 않고 블로그에 글을 모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글을 쓰려다가 생각해 보니, 저를 모르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정보가 아닌 마음이 담긴 글을 쓰는 것보다는,

저를 아는 많은 분들이 계신 곳에 마음을 쏟아 놓는 것이 낫겠다 싶어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사람은 공감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이지요.

어쩌면 제 글이 여러분들의 지나간 추억 속 잊혀진 장면들을 다시 되새기게 할 수도 있겠다 싶어,

혹여라도 공감할 몇몇 분들을 생각하면서, 지나간 이야기를 적습니다.



고등학교 입학 전이었어요.

기억이 정확하지 않아서, 그 날이 무슨 일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학교에 모였는지는 잘 모르겠는데요,

여러 중학교 졸업생들이 학교에 모여서 예비 소집 같은 것을 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는 지방 군소 도시에 살다가 5학년 때 조금 큰 도시로 이사를 했어요.

그리고 그곳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도 가게 되었지요.


중학교 동창들과 만나긴 했어도 여러 학교에서 낯 모르는 아이들이 모였으니 조금은 긴장되는 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갔던 학교는 오래 된 곳으로 플라타너스 나무가 교정에 높게 뻗어 있는 곳이었어요.

아름드리 플라타너스 나무들을 뒤로 하고 학교를 나오려는 참에, 누군가가 저를 부르더군요.

모르는 사람들이 가득한 곳에서 제 이름을 듣는 것은 생경한 일이지요.

누가 나를 불렀을까 하고 바라보니, 잘 모르는 얼굴이에요.


그 친구는 저를 너무 반갑게 불렀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고,

그리고 그 때 같은 반이었던 다른 아이들 이름도 얘기하면서,

학교 끝나고 자기 집에서 자주 같이 놀았는데, 기억하지 못 하냐고 하면서 아주 아쉬워 하는 거에요.


그 아이는 왜 자기를 모르는지 너무 답답해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기억이 나지 않았어요.

그래서 모르겠다고 했지요.

너무 서운해 하더군요.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엄청 있는 듯 한 얼굴로,

그렇게 저는 그 아이와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날 이후, 저는 그 아이를 다시 볼 수 없었습니다.



바로 그날 저녁이었나요?

아니면 며칠 지나서였을까요?


고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기 전, 그 날보다도 더 오래 전 일이 기억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저희 반 선생님은 미군 부대 카츄사 출신의 분이었습니다.

저희들에게 미군들이 쓰는 욕설을 알려 주기도 하시고, 대단히 세속적인 분이셨죠.

한 겨울에 석탄 난로를 떼는데, 그 시절에는 조개탄을 아침마다 바께스 (그 시절 용어를 써서 죄송합니다.)에 담아 난로에 붓고 불을 붙였죠.

그런데 그 조개탄이 오전 11시쯤 되면 꺼져요.

그럼 아무리 한 겨울이라도 11시 이후부터는 난로 없이 지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장이었던 저는 조개탄 창고에 지키는 사람이 없는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시켜서 조개탄을 홈치러 가야 했어요.

바께쓰를 들고 교사들 뒤에 있는 외진 창고로 가서, 몰래 문을 열고 조개탄을 담아올 때마다 얼마나 심장이 콩닥 콩닥 했는지 모릅니다.


한번은 수업 시간에 저희 반 부반장 아이 집에 다녀오신 얘기를 하시더군요.

부모님이 초대해서 그 집에 가봤는데, 그 아이 방에 들어가 보니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던지,

똘망똘망한 눈으로 너무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고,

방도 너무 깨끗하고...

그 시간은 수업은 하나도 하지 않고 그 아이가 얼마나 착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줄곧 들어야 했습니다.


그때에는 전체 학년이 풍금을 나눠서 썼는데요,

음악 시간이 될 때마다 풍금이 있는 반으로 가서 풍금을 들고 와야 했어요.

하지만 저희 반은 일주일 내내 가야 음악 시간이 별로 없었습니다.

선생님이 풍금을 잘 못 치셔서 그런지, 그냥 그런 엉뚱한 수업만 많이 하고, 노래를 부를 기회는 별로 없었어요.

정말 가끔 음악 시간이 있었지요.


그러던 때, 저희 옆반 선생님은 저희 선생님과 너무 비교되는 분이었어요.

이 선생님은 매일 한 시간씩 아이들에게 동화를 들려 주셨어요.

연재되는 이야기인데, 한편을 다 들으려면 거의 한 달이 걸렸지요.

추리 소설 같은 내용도 있고, 러브 스토리 같은 것도 있고 한데,

아주 이야기 솜씨가 좋으셔서 아이들이 그 선생님 이야기를 좋아했어요.

저도 옆반 선생님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옆반은 자주 자주 음악 시간이 있었어요.

아이들이 노래 부르는 소리를 들으면서, 우리도 노래를 좀 많이 불렀으면 좋겠다 생각했지요.

저는 정말 옆반 선생님 반 학생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일년이 지났지요.

제가 4학년이 되었을 때, 정말 꿈같은 일이 일어났어요.

3학년때 옆반 선생님이 저희 반 선생님이 되신 거에요.


저는 반장이 되어 선생님 심부름을 많이 해야 했지만 싫지 않았습니다.

조개탄 훔치러 가는 심부름은 하지 않아도 되었구요,

주로 해야 하는 심부름은 풍금을 가져 오는 일이었거든요.

선생님은 아이들이 지루할 때쯤 되면 옛날 이야기나 장편 동화를 들려 주셨어요.

저는 그 선생님을 너무 좋아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에는 모든 아이들이 리코더를 배우게 되어요.

저희 반도 리코더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때 리코더는 천원쯤 했던 것 같은데,

짜장면이 300원 할 때이니 비싼 악기이죠.

하지만 수업 시간에 배워야 하니까, 아이들이 리코더를 다 사가지고 와서 선생님께 배웠어요.


리코더는 손가락으로 구멍을 막아서 소리를 바꾸는 악기에요.

어렵지 않았지만, 호흡이 불안정하거나 구멍을 막는 것이 정확하지 않으면 잘 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반 아이 중 한 아이는 리코더를 아무리 배워도 정확한 소리를 낼 수가 없었어요.

선생님은 그 아이가 리코더를 잘 불기를 원하셨어요.

그리고 그 아이를 남겨 놓고 수업 시간이 끝난 이후에도 리코더 연습을 시켰지요.


구구단을 외우기 위해서도 아니고,

시험 공부를 위해서도 아니고,

그냥 리코더 연습을 시키기 위해 아이를 남겨 놓았어요.


저는 그 아이와 점점 더 친해졌습니다.

선생님이 그 아이에게 관심을 가진 이유를 알고 있었고,

방과 후에도 남아서 리코더를 열심히 부는 그 아이에게 뭔가 제 마음이 움직였거든요.


그 아이는 양 손에 손가락이 여섯 개였습니다.

네번째 손가락인지가 두 개의 손가락이 붙어 있었어요.

리코더는 손가락 하나에 구멍 하나씩을 막도록 되어 있었으니, 두개의 손가락이 붙어 있는 그 아이는 그 좁은 간격으로 붙어 있는 손가락을 끼워 넣어 제대로 음을 맞추기가 어려웠습니다.


장애가 있으니 리코더는 제대로 불 수 없는 아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선생님은 그 아이를 남겨 놓고 리코더 연습을 시켰어요.

그리고 그 아이도 열심히 연습을 했습니다.

그러니 반 아이들 그 누구도, 그 아이의 손가락을 두고 놀리거나 할 수는 없었어요.

모두가 알았지만, 그 아이가 손가락 여섯 개인 것은 모르는 문제나 마찬가지였어요.



그 아이는 제가 가지고 싶어 하던 자전거가 집에 있었습니다.

저는 그 아이 집에 가서 자주 놀았어요.

자전거를 빌려 타기도 하구요, 그맘 때쯤 뭐를 하고 놀았을지는 모르지만,

저와 그 아이는 단짝이 되었지요.


그리고 그 이듬 해, 저희 부친의 직장에 발령이 나서, 저는 더 큰 도시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정들었던 선생님과도 이별해야 했고, 그 아이와도 헤어지게 되었지요.

그리고 세월이 흐르고 흘러, 그런 옛 기억들이 다 사라지고 난 후,

이제 막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그 날, 그 아이를 만난 거에요.


전혀 모르겠는데, 너무 친한 척을 하니 제가 좀 불편했을까요?

저는 모르겠다고 하고 무심코 지나치려고 했는데, 그 아이는 저를 붙들고 옛날 얘기들을 했어요.

너 우리 집에 매일 왔잖아. 같이 놀았잖아.

우리 반에 경제 있었고, 또 누구, 누구도 있었고...

왜 나 모르겠냐... 생각해봐..


저는 전혀 모르겠는데 저를 붙들고 한참 얘기를 하니, 미안하다, 생각나지 않는다, 하고

그리고는 그냥 집에 왔지요.



아... 그리고 생각이 난 거에요.

그 옛 생각들이 떠오른 거에요.


그리고 그 아이가 왜 그렇게 저를 붙들고 안타까와 했는지도 짐작이 되더군요.

그 아이는, 저에게 자기 손가락만 보여 주면 제가 기억할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에게 그 손가락을 보여 주지 못 했어요.

차마 그렇게 하지 못 한 것입니다.




저는 이제 그 아이 이름도 알듯 말듯 합니다.

지금 제가 되뇌이고 있는 그 이름이 진짜 그 아이 이름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아마 맞을 거에요.

그날 이후 그 아이에 대해서 기억을 떠올려 보려고 여러 차례 노력했는데,

기억 나는 것은 방과 후에도 남아 리코더 연습을 하던 장면과,

그리고 그 아이가 가지고 있던 자전거를 빌려 타던 기억 등, 몇 개 안 되네요.

하지만 그 때 제가 그 아이와 단짝이었던 것은 확실해요.


세월이 더하면 미안함이 더하는 것이 누구나 그런 것일까요?

안 좋은 기억들은 털어 버리고, 어떻게 보면 나는 항상 잘 하고 살아 왔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 속 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한 일 한 것들이 생각나면,

가끔씩 가슴이 참 아파요.


시심이라고 하죠?

시를 쓸 때의 마음...


글을 쓸 때의 제 마음은 참 예쁩니다.

그런데 살아가다 보면 이런 예쁜 마음은 끄집어 낼 기회가 별로 없지요.

그저 각박하게, 전쟁같은 삶을 살아 가면서,

뭐가 옳으니 그르니, 뭐가 아름다우니 추하니, 따지지 못 하고

마치 촛농을 떯어 뜨리며 바람 앞에서 촛불을 지키는 아이처럼,

그렇게 생을 지탱하며 살아가는 것이 참 슬픕니다.


조금 더 돌아볼 틈이 있고,

시심을 지니고 주위 한번 돌아보면서,

그렇게 살면 좋으련만요....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옛 이야기 한번 적어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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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불사조② | 작성시간 18.09.14 어릴 때 함께 재밌게 지냈던 친구이름이 갑자기 생각나면서 어디서 무얼하며 지낼까 궁금하네요.그리고 그 친구도 내생각하며 살까하는 생각도 들고...
  • 작성자리누스 | 작성시간 18.09.14 "씀"이란 어플을 아시나요? 딸램이 덕분에 알게 되었는데, 주제어가 제시되기도 하고 시를 쓰고 공유도 할 수 있는 어플이 있더군요. 저도 한두번 써봤던 경험이 있네요. 저도 딸램이가 쓴 글도 제대로 읽을 시간이 없는 것이 현실이네요. ㅠㅠ
  • 답댓글 작성자붉은돼지 | 작성시간 18.09.14 좋은 어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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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슈미아빠 jw [운영진] | 작성시간 18.09.14 홍애란...
    갑자기 기억나는 이름이 있네요
    7살때 짝이었는데^^
  • 작성자Young_pingpong | 작성시간 18.09.15 왠지 드라마를 보는듯 장면이 머리속에 그려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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