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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 탁구를 만든 치키타와 용품 변화

작성자Oscar|작성시간20.11.24|조회수1,537 목록 댓글 31

2020년 그랜드파이널스 경기가 마롱의 우승으로 끝이 났습니다.

2020년은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국제 경기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번 경기에 대한 관심은 어느 해보다도 높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리모토 선수를 꺾고 4강에 오른 장우진 선수의 선전도 돋보이지만, 이제는 체력적인 한계가 아닌가 생각했던 마롱이 갈수록 날카로와지는 판젠동 선수를 이기고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많은 팬들에게 기쁨을 주었습니다.

 

경기를 지켜보면서 현대 탁구가 가는 방향과 그에 따른 용품업계의 대응에 대해서 생각해 봤습니다.

제가 유심히 봤던 경기는 장우진 선수와 하리모토 선수의 경기, 그리고 마롱 선수와 판젠동 선수의 결승 경기였습니다.

 

장우진 선수와 하리모토 선수의 경기는 장우진 선수의 짧은 리시브가 대단히 돋보였던 경기였습니다.

거의 모든 공을 전진 압박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하리모토 선수에게 선제를 주지 않기 위한 매우 짧은 송구들은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마롱선수의 경기는 치키타와 강력한 백핸드로 승부하는 판젠동 선수에게 뒤로 물러나지 않고 압박하며 백핸드로 대응하는 모습에서 마롱 선수가 약해지기 보다는 오히려 더 강해졌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저는 현대적인 탁구의 출발은 판젠동 선수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일화가 하나 있는데요, 제가 후원하던 선수들이 있던 한 고등학교 팀에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그때 그 학교 지도자가 선수들에게 도전해야 할 과제들을 메모해서 책상 위에 두었는데, 그 내용 중 하나를 보고 선수들이 웃으면서 선생님이 이런 것도 하라고 한다고 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포핸드쪽으로 가서 백핸드로 드라이브를 상대방의 포핸드쪽으로 하는 기술이었습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포핸드로 오는 공은 포핸드로 치는 것이 정석이지, 굳이 백쪽을 다 비우고 포핸드로 이동해서 백핸드로 리시브를 한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 기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현대적인 압박 탁구를 하는 선수가 출현했죠.

바로 판젠동 선수였습니다. 

 

치키타 기술은 그 당시만 하더라도 상당히 실험적인 기술로 보였고, 지금처럼 경기 중 상당수 리시브를 처리할 수 있는 범용적인 기술로 여겨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판젠동 선수는 탁구대 앞에 바짝 붙어 치키타로 모든 리시브를 선제 공격으로 연결하는 형태의 스타일을 선보였고, 매우 어린 나이에 왕자의 자리를 위협하는 놀라운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은 것이 하리모토 선수입니다.

하리모토 선수는 백핸드 치키타 뿐만 아니라 모든 공을 넷트 근처에서 공격적으로 처리하는 스타일을 선보였고, 결국 현대 탁구는 강한 전방 압박에 몰입해야 한다는 인식을 광범위하게 확산시켰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마롱 선수가 우승한 것은 그런 압박을 견뎌내는데 기존의 스타일로 견뎌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똑같이 전방 압박으로 대응한 점이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됩니다.

마롱 선수가 롤모델로 여기면서 배웠던 탁구는 아마도 왕리친 선수의 정석적 탁구였을 것입니다.

 

그의 2010년도 경기를 보더라도 치키타 기술은 등장하지 않고 강한 포핸드와 폭넓은 풋워크, 화려한 랠리가 돋보입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아직 공이 변경되기 전이니 랠리에서 밀리지 않는 것과 뒤에서 걷어 올려도 회전이 살아가는 형태의 라켓이 중요했습니다.

7겹 합판 라켓들이 대세를 이루던 시절이죠.

 

그러나 치키타 기술이 2구 공격에 대거 사용되는 현 시점에서는 랠리시 힘과 회전보다도 숏플레이에 대한 관심이 더욱 더 높아졌습니다.

또한 장우진 선수와 하리모토 선수의 경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상대방의 치키타 공격이나 전방에서의 강한 드라이브 공격을 피하기 위한 짧은 반구 능력도 매우 중요해 졌습니다.

 

즉 현대적인 탁구는 이렇게 정의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넷트 근처에서 드라이브 공격을 할 수 있는 치키타 기술이 중요해 졌고 활용도가 매우 높아졌다.

 

2. 뒤로 물러나서 강한 드라이브 공격을 하는 비율이 줄어들고 (강한 드라이브 공격을 위해서 공을 잡는 타이밍을 늦추는 일이 줄어들고) 탁구대에 바짝 붙어 선제를 잡는 전방 압박이 중요해졌다.

 

3. 상대방의 넷트 근처에서부터 출발하는 치키타를 포함한 드라이브 공격을 피하기 위한 짧은 송구 능력이 중요해 졌다.

 

이 세 가지 측면을 고려할 때 현재 선수들이 선호하는 용품들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용품 업체들이 용품 개발을 이어갈지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우선 물러나서 큰 스윙으로 걸 때 강한 회전과 힘을 줄 수 있는 라켓들보다는 짧은 숏게임에서 정확한 컨트롤을 할 수 있으면서, 작고 빠른 동작에서도 큰 회전력과 스피드를 낼 수 있는 형태로 선수들의 용품 선택이 변화되고 있습니다.

 

또 선수들의 러버 선택에 있어서 DHS의 허리케인 시리즈가 크게 늘고 있습니다. 

점착성을 가진 러버로서 DHS의 허리케인 러버는 대상 플레이에서 매우 짧게 반구되는 특성이 있습니다.

힘을 빼고 타구하면 공이 짧게 떨어집니다.

 

그러나 회전에 있어서 약하지 않습니다.

짧으면서도 임팩트만 살아 있다면 매우 강한 하회전이 가능하기 때문에 선수들에게 있어 중국 러버 선호도가 늘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백핸드 러버까지 중국 러버로 선택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데, 이 부분은 대상 플레이에서의 활용도가 큰 원인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치키타 기술에서 볼 수 있듯이 짧으면서 빠른 스윙시에 충분히 채 줄 수 있는 표면 능력이 중요해 지고 있습니다.

즉 탑시트와 러버 표면의 전체적인 반응을 통해 강한 공을 만들어 내는 것이 과거의 큰 스윙 경기에서 중요했다고 하면, 지금은 아주 짧은 순간에 공을 충분히 끌어올릴 수 있는 탑시트의 반응성이 매우 중요해 졌으며, 그런 의미에서 작은 임팩트에서도 공을 튕겨 내는 저경도 러버보다는 고경도 러버들이 더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전지희 선수는 최근에 백핸드까지도 DHS 러버로 변경하였습니다.)

한편으로는 조금 아쉬운 부분도 있습니다.

과거 탁구는 선수들마다 특정한 캐릭터를 보여 주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칼을 휘두르는 듯 시원시원하면서 정석적 드라이브를 보여 주는 왕리친 선수, 

중국 탁구의 실험 경과를 보여 주는 중펜의 마린, 왕하오 선수,

꾀돌이 유남규, 한방의 김택수, 발빠른 유승민, 칼잡이 수비수 주세혁 등 선수를 떠올리면 스타일이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특유의 스타일들이 사라지고 모든 선수들이 전방 압박에 의한 강한 드라이브 공격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매칭하면서 보는 경기의 매력이 적어졌죠.

 

 

그렇지만 결국 탁구는 스포츠이고, 스포츠는 승부를 겨루는 것을 요체로 합니다.

그러므로 선수들이 이기기 위해서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스타일을 취하는 것은 경기가 고도화 될 수록 더 많이 진행될 것입니다.

현대 탁구는 어떻게 보면 탁구가 스스로 그 정점에 이르렀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한국 탁구는 포핸드, 백핸드 전환 기술을 중심으로 한 펜홀더 탁구에 기반을 두어 왔고, 그런 만큼 올라운드적이면서도 앞뒤로 거리를 재면서 돌아설 타이밍을 만드는 풋워크가 기본적인 기술로 명맥을 유지해 왔습니다.

이제 그 전통을 뒤로 하고, 판젠동과 하이모토의 전방 압박을 배워야 하며, 그것에 충실히 대응해서 우승을 이룬 마롱 선수의 모습을 벤치마킹 해야 합니다.

 

한국 탁구의 선전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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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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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이게뭐야 | 작성시간 20.11.25 판젠동이 이겼던 경기는 뭐얐지.. ..
  • 작성자왕하오마린쉬신 | 작성시간 20.11.27 치키타하면 장지커 아닌가요?
    장지커도 포핸드쪽에 가서 백으로 리시브 많이하던데 판젠동보다 장지커가 나이가 훨씬 많으니 장지커가 먼저 아닐까요? 정확한 나이차는 모르지만 5살 이상 났던거 같은데요
  • 답댓글 작성자Oscar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11.28 예, 그렇죠.
    제 글은 치키타 등 전진 압박으로 탁구판을 바꾼 두 사람을 꼽는다면 판젠동과 하리모토라는 얘기입니다.
    치키타 기술은 장지커 시기에도 있었지만 모든 리시브를 치키타로 하겠다는 전술적 변화는 판젠동이 시작한 것 아닌가 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왕하오마린쉬신 | 작성시간 20.11.28 Oscar 아 그런가요?
    판젠동 쉬신이 힘들어하는 변강쇠스타일이라 안좋아했는데 실력만큼 대단한 선수인가보네요.

  • 답댓글 작성자Oscar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11.28 왕하오마린쉬신 실제로 만나보면 잘 생겼고 젠틀합니다. 슈신은 떡대도 크고 상남자 스타일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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