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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체육은 학교 체육 시간부터 시작한다.

작성자Oscar|작성시간21.06.16|조회수680 목록 댓글 15

한국 체육 교육을 말하다

연재글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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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글을 3편까지 올리고 올리지 않았는데요,

은근 읽고 계신 분들이 계신가 봐요.

그래서 4편을 올립니다.

 

본 글에 사용된 이미지들은 지난 2017년 독일 자르브뤼켄 스포츠학교를 다녀 왔을 때 그곳에서 찍은 사진들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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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스포츠는 학교 스포츠로부터

 

 

한국 체육계는 일본 체육계의 변화를 토대로 한국 스포츠계의 토양을 바꾸려고 시도 중이다.

일본이 바꿔야 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10여년 동안 한 것을 한국도 따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명시적으로 일본식으로 바꾸려고 한다라고 말한 곳은 없지만 각종 발표 자료들에 자주 등장하는 것이 일본 스포츠 계의 변화 사례이니 크게 문제될 것은 아닐 것이다.

 

일본은 엘리트 체육 시스템에서 벗어나 생활 체육으로의 변화를 시도하여 성공적인 생활 체육 문화를 이루었다.

그리고 이제 한국도 따라 하겠단다.

 

그럼 일본 체육계는 어디를 보고 그런 변화를 시도했는가?

 



 

일본은 근대국가 태생 과정이 한국과 매우 다르다.

일찍부터 서양 문물을 접한데다가 척양을 했던 한국과는 다르게 서양을 부러워 하며 근대 국가를 이루었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대로 따라하겠다고 한 결과 타국을 침략하는 제국주의를 시작했다.

일찍 받아들인 서양의 기술로 함선과 대포를 만들어 한국을 식민지화 했다.

 

그런데 그들이 근대 국가를 이루는 데 근간으로 한 것이 독일이다.

그들은 독일 헌법을 가져다가 일본 헌법을 만들고 독일의 관료제를 가지고 일본의 전체주의적 관료 문화를 만들었다.

그러니 2차대전의 주역으로 두 국가가 나란히 선 것도 우연은 아닌 것이다.

 

스포츠계의 정신이 정치성을 배제하는 것이니 이 글도 더 이상 정치적인 내용으로는 나가지 말자.

다만 알아야 할 것은 일본이 세운 근대 국가의 상당히 많은 기초 공사가 독일의 철근과 콩크리트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그리고 일본은 21세기에 들어서 독일의 스포츠 문화를 일본에 이식하는 데 성공한다.

이제는 일본의 생활체육이 일본의 엘리트 선수들을 육성하는 산실이 되고 있다.

직업적인 선수들이 동네 체육관과 학교 운동장에서 배출되고 있고, 생활체육은 마을 마을마다 뿌리내린 문화가 되었다.

 

 

그래서일까?

일본의 변화를 거론하는 한국의 생활체육의 밑그림에 독일 냄새가 상당히 난다.

 

큰 틀에서 합리적이면서 선진적인 면들만 보인다면 문제가 없다.

그래서 한국 정부의 생활체육 활성화 정책은 안팍으로 지지가 견고하고, 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마치 선에 대항하는 악이라도 되는 양 보인다.

 

엘리트 체육을 없내는 것은 선진 국가를 향한 선이고, 그것에 대항하는 것은 구체제를 옹호하는 악이다.

그 과정에서 일부 현 세대 엘리트 선수들이 희생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은 국가 이익을 절대시하는 일본 문화 속에서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러니 한국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밀어 붙이면 된다.

 

 

 

 

그런데 한국과 일본은 다르다.

그렇게 밀어붙이니 한국의 학부모들과 체육인들이 반대한다.

잘 만들었다고 자부했던 스포츠개혁권고안들이 무산되고 있다.

한국 체육인들은 한국 실정에 맞는 개혁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낸다.

 

한국의 체육인들이 반대하는 미래상,

그렇다면 한국적인 개혁안은 무엇을 염두에 두어야 하며 무엇이 일본과 달라야 하는가?

 

이 문제를 생각해 보기 위해 일본이 아닌 한국과 독일에 대한 비교를 하려고 한다.

 

일본의 생활 체육이 독일의 생활 체육을 이식했다면, 독일의 생활체육이 왜 그런 모습인지를 알아야 하고, 

독일과 한국이 어떻게 다른지를 알아야 독일과 다른 한국적 미래상을 그려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독일은 클럽 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클럽은 국가 주도적인 형태가 아니다.

 

독일의 클럽은 각 지역을 근거로 한다.

같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회원이 되어 같이 운동하는 곳이 클럽이다.

그 마을에 있는 식당, 호텔이 스폰서가 되어 자신들의 마을 사람들에게 광고를 한다.

 

독일 클럽 선수들은 옷에 덕지 덕지 상표들을 붙이고 있는데, 잘 보면 그 상표들이 무슨 대단한 회사 상표가 아니라 그 마을 식당, 호텔 이름들이다.

 

독일이 이렇게 지역을 근거로 한 클럽 문화를 이룰 수 있는 이유는, 독일 사회 자체가 대단히 분권적인 형태로 오래 동안 이루어져 왔고, 마을 단위의 커뮤니티가 매우 뿌리가 깊기 때문이다.

 

한국은 반만년 역사 동안 국가라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지만, 독일 같은 경우는 19세가 중엽 비스마르크가 독일 전체를 통일하기 전까지 한국처럼 중앙집권화 된 절대 권력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옆 마을은 경우에 따라서 약탈하러 오는 적이 될 수 있다.

마을과 마을은 때때로 전쟁을 벌여야 하는 적군이 될 수 있었다. 

주변 여러 나라 정세에 따라 옆마을이 먼저 타 국가에 정복되면 그 마을 사람들은 타 국가의 군인이 되어 다시 우리 마을을 쳐 들어 온다. 

 

사실 유럽 전체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 왔고 유럽 역사는 전투의 역사라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다.

 

 

그런 뿌리깊은 지역성에 바탕을 둔 독일의 문화는 여러모로 한국과는 다르다.

 

한국은 수없이 많은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이사 하는 것을 어려워 하지 않으나, 독일 사람들은 태어난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흔하다.

지역 사회를 떠난다는 것이 매우 드문 곳이 독일이다.

그만큼 공교한 지역 커뮤니티 개념은 곧 클럽 문화를 뒷받침한다.

 

그래서 옆 마을 클럽과 경기하는 것은 과거 시대의 전쟁과 같다.

물론 스포츠는 유희이며 즐거운 일이긴 하지만, 그 뿌리는 이런 전투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열광적으로 응원하고 마을 대표 선수들은 뜨거운 후원의 대상이 된다.

클럽은 입장 티켓을 판매해서 수익을 낼 수 있으며, 지역 업체들로부터 광고를 수주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있어 지역 연고제에 기반한 응원 열기는 이런 클럽 스포츠에 불을 붙일 수 있는 중요한 땔감이 되고 있다.

 

 

 

 

한국은 어떤가?

오랜 시간 기업체가 후원해서 팀을 이루어 왔다. 

기업체는 특정 지역에 연고를 두는 것보다는 전국 단위의 홍보와 판매를 원한다.

 

지역 연고라는 것은 또한 한국인들에게 불편한 지역감정을 연상하게 하는 부정적 기재이기도 하다.

우리가 남이가? 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나라가 뒤집어 지는 곳이 한국이다.

그러니 지역연고제에 기반한 스포츠 활성화는 야구 하나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생각한다.

그런데 한국 체육계는 여전히 지역 연고제에 기반을 둔 유럽식 클럽제가 한국 생활체육에 적합하다고 생각하고 밀어 붙이려고 한다.

우선 이 문제에 대해서 퀘스천 마크를 던져 보고 지나가자. 

 

 

오늘의 본론은 아직이다.

지역 기반의 정신적 유대감이 지역 감정이라는 부정적 단어를 연상시키고, 온 나라 국민들이 고향을 떠나 섞여 사는 삶의 형태도 지역 연고제를 어렵게 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독일과 한국의 다른 생활 패턴, 그리고 다른 교육 환경이다.

 

독일의 직장인들은 일찍 업무를 시작하고 5시 정도면 퇴근을 한다.

그들은 한국처럼 직장인들이 업무 후에 동료들과 같이 저녁 먹고 호프집에 가는 문화가 없다.

그리고 저녁 7시만 되도 온 도시에 문을 연 곳이 없다.

그러니 그들이 즐길 수 있는 여가 시간의 무화적 활동이란 결국 운동이다.

 

1인 1스포츠가 생활 체육의 이상을 나타내는 말 아니겠는가?

전 국민이 한 종목 이상의 운동 매니아가 되는 것.

독일인들이 한국인들보다 운동을 좋아해서 꼭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그들은 한국인들보다 덜 바쁘고, 밤에 할 일이 마땅히 없으며, 운동이라도 하지 않으면 삶이 무료하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이 독일에 가면, 여행은 좋지만 사는 것은 갑갑하다고 하나 보다.

 

한국인들이 운동하는 탁구장을 가 보라.

정신 없이 일하고 집에 온 시간이 8시, 저녁 먹고 부리나케 가방을 챙겨 탁구장에 오면 9시가 넘는다.

그런데 빈 탁구대가 없으니 줄 서서 기다리다가, 한 두시간이라도 운동을 하려면 12시 넘어 집에 온다.

 

 

보다 더 중요한 부분은 바로 체육 교육이다.

독일인들이 생활 체육을 접하는 곳은 어린 시절 마을의 클럽 체육관이 처음이겠지만, 그들이 운동을 멈추지 않고 평생 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는 학교다.

독일의 학교는 한국처럼 많은 교과를 강요하지 않는다.

정해진 45분, 50분의 시간 안에 후다닥 운동장에 나가 축구하고, 땀에 젖은 채로 옷 갈아 입고 영어, 수학을 이어 공부하게 하지 않는다.

 

운동을 교과로 선택한 학생들은 영어, 수학 수업 시간만큼이나 많은 양의 시간을 운동에 할애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오후 3-4시면 하교를 하고, 집에 와서 시간을 보낸다.

당연히 아빠, 엄마와 함께 클럽에 가서 저녁 운동을 할 수도 있다.

 

즉 독일인들의 삶이 더 풍요로운 것은 그만큼 그들이 적게 일하고도 (혹은 적게 공부하고도) 풍요를 누릴 수 있는 부가 축적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렇게 살 수 있는 원인 중 하나는 제국주의로 쌓아 온 과거의 부와 전쟁을 통해 비약적으로 축적된 과학, 의학 기술이 그 바탕에 있다. 

그래서 크게 부러워 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만큼 삶의 여건이 다른 것은 인정해야 한다.

 

 

한국의 교육을 들여다 보자.

인생에서 가장 왕성하게 운동을 하며 체력을 길러야 할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학교에서 체력을 기를 수 있는 기회는 상당히 적다.

체육 시간은 일주일에 몇 시간이 되지 않는다. 

통계치를 보니 주당 150시간이 안 된다고 한다.

 

놀이와 경쟁이라는 스포츠 본연의 모습을 잃어 버리고 교과 과목으로 다뤄지는 체육 시간은 아이들에게 흥미를 주기 어렵다. 

현실적으로 그 짧은 시간에 아이들이 흠뻑 땀을 흘리며 운동하게 하면 뒷시간 선생님들이 좋아하실 리도 없다.

그래서 체육 시간은 어느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 경우에 따라서는 자습으로 대치되어도 무방한 시간이 되고 있다.

 

 

 

정부의 상당 부분 예산이 유럽식 클럽 제도의 효시가 될 디비전 리그 지원에 쓰이는 현재의 탁구계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학교마다 학생들이 줄어서 빈 교실이 늘어가고 있는데, 그 교실들에 탁구대를 놓는 데 예산을 쓰면 어떨까?

아이들 체육 시간을 1시간으로 운영하지 말고 이어진 2시간이나 3시간으로 하고 충분히 운동한 후 샤워도 하게 하면 어떨까? 

 

 

정부의 근본적인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

어른이 되어 갑자기 운동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먹고 살기 힘들 때에는 있는 집 아이들이나 과외 받았지, 대부분의 학생들이 학교 수업과 상관 없이 운동을 했다.

축구장에서 사는 아이들도 있었고, 농구장에서 지내는 아이들도 많았다.

그런데 지금 어느 집 아이들이 그러고 사는가?

다람쥐 챗바퀴 돌듯, 학교, 학원, 집을 오가며, 그 많은 수행평가들로 인해 숨 쉴 틈이 없다.

잠도 못 자고 학원숙제, 수행준비 하는 아이들이 학교 체육 시간에 운동하라고 한들, 환영할까 싶다.

그러니 생활 체육을 하려면, 이 아이들이 운동을 좋아하게 만드는 일을 학교에서 시작해야 한다.

 

 

생각할 점들이 많이 있다.

권위적인 체육 수업이 바뀌어 아이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는 교과 시간이 되어야 한다.

운동을 잘 못 하는 아이들에 대한 배려도 해야 하고, 특기생들은 학교 체육 시간을 통해 직업 선수로 길러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시설에 대한 투자와 더불어 시간에 대한 배려가 선행되어야 한다.

체육 시간을 더 늘려야 하고,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학교에 패널티가 주어져야 한다.

 

 

 

잘 생각해 보자.

잘 사는 선진국 국민들일수록 운동을 더 많이 한다.

왜냐하면 운동량이 곧 행복량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공부에 찌들어 살다가, 군대에서 조금 체력 길러 그 기른 체력을 평생 써먹는 삶이다.

여성들의 경우는 운동이라고는 평생 제대로 경험하지 못 하다가 출산 하면서 체력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기가 일쑤이고, 뒤늦게 탁구를 배워 인생 후반기의 의미를 바꾸시는 경우들이 흔하다.

평생을 즐겁게 살아가기 위한 스포츠가 되려면, 한국인들이 어린 시절, 학교에서부터 운동을 즐겨야 한다.

 

 

 

 

글을 정리한다.

생활 체육을 뿌리 내리게 하기 위해서 유럽식 클럽제도를 도입한 일본, 

그리고 그 뒤를 따라가는 한국.

 

하지만 독일 사회가 클럽제에 기반하여 생활 체육 강국이 되고 있는 것은 적게 공부하고 적게 일해도 먹고 살 수 있는 토양이 근간이다.

우리도 그렇게 하겠다면 사회 전반적인 선진화와 경제적 번영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와 별도로, 우리 어린 학생들이 학교에서부터 운동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정책적 변화가 더 중요하다.

체육 시간을 늘려야 하고, 운동을 평생 즐길 수 있는 계기를 학교에서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근본적으로 이렇게 많은 입시 부담 속에서 운동하는 학생들이 공부하는 학생들과 똑같이 살라고 하는 것은 무리다.

운동하는 학생들이 공부량을 늘려야 한다고 강제한다면,

공부하는 학생들도 운동량을 늘리도록 배려 해야 한다.

이것이 생활 체육을 뿌리 내리게 하는 데 가장 우선되는 정책적 변화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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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Oscar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06.17 감사합니다.
  • 작성자likedeadman | 작성시간 21.06.18 아이들이 웃으면서 마음껏 운동할수있는 환경을 꿈꿉니다(하지만 회의적) 결국 이 나라의 문화 경제 사회 인권이 다 발전하는날 가능하다고 생각
  • 답댓글 작성자Oscar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06.18 ㅠㅠ 그래도 희망을 가져야죠.
  • 작성자퍼스탁 | 작성시간 21.06.22 좋은 글 이네요..

    저도 호주에 10년 넘게 살면서 동네클럽에서 탁구치는 1인으로서
    많은 부분 공감하게 되구요
    여기서는 당연하고 일반적으로 생각되어지는 것들이 한국과 비교하면
    많이 다르다 라는걸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학교끝나고 스포츠 복장으로 자주 오는걸 보게되는데요
    저 역시도 '운동량이 행복이다'라는걸 인식하며 더욱 운동에 전념해야겠어요 ㅎ
  • 답댓글 작성자Oscar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06.22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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