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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an님의 방

코난수다#3 담배.

작성자Conan - 카페운영진-|작성시간20.02.05|조회수418 목록 댓글 49

안녕하세요, Conan 입니다.

아침에 시간이 있어서 이렇게 짜투리 글을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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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담배를 피우지 않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아.. 어쩌면 특별한 이유일지도 모르겠는데 어머니께서 담배피지 말라고 하셔서 피우지 않습니다.

아버지께서 너무 담배를 많이 태우셨기에, 단편적인 어린 기억에도 두 분이 다투시면 열에 아홉은 담배 이야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 싸움의 강도가, 어린 남매가 느끼기에는 너무 강하고 무서워서 동생이랑 방에 들어가서 껴안고 큰 소리가 사라지길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에는, 어머니가 가방을 싸들고 택시타고 어디론가 가버려서 동생과 많이 울었던 기억이 있구요. 아버지가 처가에 가서 사정하고 어머니를 모셔왔다는건 나중에 알았습니다.

어느 날부터는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시던 아버지가, 현관을 나가서 피고 들어오기 시작했고, 티비를 보다 옷을 주섬주섬 입으면 어머니께 핀잔을 들으면서도 바람쐬러 갔다오시던 날도 생각납니다.

누구나 대부분 그렇듯이 스무살쯤 되자, 부모님 곁을 떠나서 나오게 될 때 어머니께서 무덤덤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디 가서 집안 망신만 안시키면 뭐든 해도 되는데, 대신 담배는 피지 마라. "

그것이 제가 담배를 입에 대지 않게 된 계기가 된 것입니다.

군 복무 중일 때에도, 대학 때 줄담배 하는 자욱한 동아리 방에서도 누군가가 담배를 권하면, 엄마가 피지말라 했다 라고 답했고 그러면 대부분은 실없는 농으로 생각하곤 했습니다.

부모님은 나이가 드셔서도 가끔 담배 때문에 싸우셨습니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방에서 아버지 양복에서 담배냄새가 난다며 저에게 찾아보라고 하셨고 이제 나이가 든 아버지는 짜증 정도 겨우 내시면서 담배 안피운다며 자리를 피하셨습니다.

20년이 지나,

병원 로비에 앉아서 생각해보니, 그 때 어머니 말씀을 하나 잘 들어서 지금 이나마 건강하게 앉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말씀도 좀 잘 들었다면 나는 더 훌륭한 사람이 되어 있을텐데 하는 후회도 좀 듭니다.

그리고, 내가 번번이 찾아낸 아버지의 담뱃갑들.. 책장 위, 서랍 구석, 양복 안주머니, 골프가방 속 몇 개비들을 내가 움켜쥐고 나왔더라면, 아버지는 수술실로 들어가지 않으셔도 되었을텐데 하는 후회도 많이 듭니다.

...

그걸 숨겨두고 모른척 나와서는

"없습니다. 없어요. 아버지 담배 안피셔요. "

하던 아들의 속마음이라는 것이, 내가 가정의 평화를 잘 지켰다.. 좀 어른스럽게 처세해야지 하는 거드름이었는지 잘난척이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지금 와서 얼굴이 빨개지도록 혼자 부끄럽고 눈물나도록 후회될 허세 라는 것을, 그 때 제가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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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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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Conan - 카페운영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02.06 정말 감사합니다. ^^
  • 작성자적룡혀니 작성시간 20.02.06 비슷한 이유로 술/담배를 하지 않습니다만
    알면서도 컨트롤 안되는게 있더라구요.
    아버님 얼른 쾌차하시기를 기원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Conan - 카페운영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02.06 감사합니다. ^^
  • 작성자공룡 작성시간 20.02.06 오랜만에 코난님 글 떴길래 반갑게 즐겁게 읽어 내려가다가 마지막에 가슴이 뭉클...
    같은 이유로 저는 술을 마시지 않아요.
    정확히 말하면, 가끔 마시긴 하는데 절대 취하지 않아요.^^
    늘 취해있던 아버지, 술로 쓰러진 형에 대한 쓰라린 기억 덕분이지요.
    어쩔 수 없이 많이 마시게 되는 날에도 취한 모습이 싫어서 절대 취하지 않죠.
    남들은 제가 술을 무지 잘 먹는다고 하지만 저는 술에 취한 모습을 보이는 게 죽기보다 싫어서 취기와의 사투를 몸과 마음 깊은 곳에서 벌이는 거랍니다.
    아버지의 모습은 아들에게 롤모델일 수도, 반면교사일 수도 있죠.
    반면교사 아버지를 가진 저는 아들에게는 롤모델이 되려 정말 노력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Conan - 카페운영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02.06 잘 지내시지요.. 아픈데는 좀 어떠신지. 각자 삶은 다 달라도 어느 부분에 공감하고 또 이해하면서 살아가는게 아니겠습니까. 제가 좋아하는 공룡님의 기억에 또 제가 공감하고 다시 한번 아버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외의 것들은 너무나 아버지를 닮아가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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