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생각] 대학가요제와 블랙베리, 노무현과 NLL

작성자고미생각|작성시간13.07.02|조회수343 목록 댓글 6

안녕하세요? 고미생각입니다. ^^;;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우선 뉴스 꼭지 두 개를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 참조 뉴스 :  대학가요제 폐지, 36년 만에 역사 뒤안길로…왜? (SBS-CNBC / 2013년 7월 2일)

(http://sbscnbc.sbs.co.kr/read.jsp?pmArticleId=10000575533)

 

▶ 참조 뉴스 : 블랙베리 '죽음의 신호'가 들린다. (헤럴드 경제 / 천예선 기자 / 2013년 7월 2일)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30702000270&md=20130702094609_AS)

 

 

이 뉴스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 무엇인지는 여러가지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허나 이 포스팅에서는 불가에서 가르치는 '제행무상'의 관점을 우선에 두고 이야기를 계속 이어보려고 한다.

  

시청률에 대한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대학가요제가 폐지되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다. 첫째는 예전의 연예계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성인이 되어서야 비로소 문을 두드릴 수 있다는 사회적 통념이 있었다면 그간의 세월 동안 이 통념이 무너졌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연예계로 진출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등용문 중의 하나가 옛 시절엔 대학가요제와 강변가요제 정도가 전부였지만 지금은 초등학생들 부터 대형 기획사와 방송사를 통해 오디션을 보고 연예계로 진출할 수 있다. 접근 경로와 방법이 다양해진 마당에 대학가요제가 예전의 명성을 그대로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둘째는 그 옛날 대학의 위상, 대학에 요구했던 사회적인 기대치와 바람들이 지난 10여년 사이에 완전히 변해버렸다는 데 있다. IMF가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을 비롯한 세계인들은 197~80년대의 경제 호황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90년대 들어서 조금씩 퇴조의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었지만 그것은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 우리에게는 전혀 해당 사항 없는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마치 어린 아이들이 노화와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전혀 무감각하거나 둔감할 수 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 당시의 대학이란 '낭만이 가득한 곳' '먹고 대학생으로 살 수 있는 곳' '잠깐 세상의 시간과 시선과 거리를 두고 천천히 나 자신과 사회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곳' (. 필자 주 - 바로 이 포인트가 80년대 민주화 투쟁의 메카요 선도층으로 대학이 자리마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해당된다.)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개인과 사회 모두 대학이 이런 곳으로 기능하는 것이 올바르다는 데 대해서 조금의 이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IMF가 터지면서 상황은 변했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사라지고 정리해고와 실업이 일상화된 시대에 접어들었다. 조금이라도 복리후생이 뛰어나고 안정된 일자리를 찾기 위해 바늘 구멍과도 같은 '취업 전선'에서 승리해야 하는 것이 대학생들의 '개인적, 시대적 사명'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런 엄청난 변화는 고작 15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예전 시대의 사회에서 대학에 기대하고 바랐던 것과 천양지차로 변해버린 것이다.

 

이런 변화 속에서 지금의 대학생들은 예전과 달리 '느림의 미학과 미덕'을 배울 수 있는 '시간과 공간과 기회'를 모두 잃어버렸다. 그런 것들은 더이상 나 자신을 윤택하게 해주지 못한다는 믿음에 사로잡혀 있다. '각자도생'이 생존의 절대 명제가 되어 버린 지금 이 시점에서 대학이 '노래나 부르면서 시간을 허송하는 곳'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사회적 인식이 형성되어 버린 것이다. 이것이 대학 가요제가 외면을 받다 결국 폐지의 길을 걷게 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그렇다. 지금으로서는 딱히 뾰족한 해법을 찾을 길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분명한 것은 이 해법이라고 하는 것이 좌파든 우파든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세력들에게서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왜 이런 결론이 나올까? 예전 내 포스팅에서도 여러번 지적했지만 우파 경제학의 핵심은 '전가'. 극소수의 '가진 자'가 다수의 '못 가진자' 에게 고통을 떠넘기는 것.. 예전에도 그래왔고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우파는 이 방식을 그대로 고수할 것이다. 그들은 세상이 바뀌어야 할 이유와 필요성을 결코 인식하지 못한다. 그리고는 다수의 '못가진 자'에게 '달콤한 사탕'을 늘어놓는다. 너희들의 선택지는 둘 중의 하나다. '우리가 흘린 부스러기를 받아먹고 살거나' 그렇지 않으면 '우리와 같은 입장이 되는 길 뿐'이라고 속삭인다.

 

바로 요즘 MBC에서 방영되고 있는 '여왕의 교실'의 담임 고현정이 속삭이는 메시지가 바로 이것이다. 그런데 이게 가능할까? 천만에! 로또를 맞는다고 해도 그들과 함께 섞이기는 불가능하다. 그것을 실제 체험으로 사무치게 경험한 사람이 바로 '고현정'이다. 돈이 많고 유명하다고 해서 절대로 그들 만의 세상에 녹아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허나 대다수의 '못 가진 자'는 이를 모른다. 그저 해왔던 대로, 남들이 제시해주는 대로 생각없이 따라갈 뿐이다.

 

그렇다면 좌파의 관점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가능할까? 그렇지 않다. ? 개방이라고 하는 것은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제국주의 세력'의 매판을 위한 시장 개척의 관점으로만 접근해서는 답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개방을 <전가>를 위한 수단과 명분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은 반쪽 짜리다. 개방의 나머지 반쪽은 <분업과 교환>에 있기 때문이다. 좌파의 경제학은 <분업과 교환>에서 경제 시스템이 작동한다는 사실을 끝까지 외면하고 무시한다. 이래서는 결코 '관성에 매몰된' 다수의 못가진 자들이 그들의 해법에 동의하고 수긍하기는 불가능하다.

 

대다수의 '못 가진 자'들은 80년대 고도성장의 시기에 '낙수효과'로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었던 그 시절의 '행복한 기억'을 결코 잊지 못한다. 이명박과 박근혜가 연달아 당선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과거는 언제까지나 과거일 뿐이지만 여전히 과거를 현재에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개방이란 '매판의 명분'일 뿐이라고 열심히 항변해 봐야 그 주장이 얼마나 먹힐까?

 

좌파의 문제는 여기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노동>의 관점과 문제로만 경제 현상을 해석하고 분석하는 18세기 19세기의 관점으로는 IMF 시대에 쏟아진 <비정규직과 자영업자>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분석하고 해결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보호받지 못하는 비정규직과 자영업자들이 그들을 보호해줄 생각이 없는 우파 경제학에 표를 던져주는 현상을 결코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과거의 '행복한 기억'에서 여전히 헤매이고 있는 것은 좌파들 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했던 예전의 기억 때문에 좌파 경제학은 18세기 19세기의 해법을 좀 더 철저하게 다듬고 실천하면 자신들의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 시대의 현상을 무시하고 외면하는 것은 좌, 우파 공히 뛰어넘어야 할 문제인 것이다.

 

어쨌거나 대다수의 못 가진 자, 피지배층들은 지난 15년 동안 너무도 크게 변해버린 세상에 지칠 대로 지쳐버렸다. 이들을 상대로 한방에 '혁명'을 성공시킬 수 있다고 '신파'를 부추기고 '감언이설'을 늘어놓아봐야 그들이 원하고 바라는 혁명의 세상은 절대로 오지 않는다. “인류 역사상 배고파서 성공한 혁명이란 성공한 적이 없었다는 지난 시절의 교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길 충고하고 싶다.

 

그나마 좌파와 우파의 답없는 현실 인식과 입으로만 외치는 해법의 틈바구니에서 개방을 <매판의 전위>가 아닌 <새로운 활로의 개척> 기회로 삼으려 했던 사람이 노무현이었다. 지금 세간에 회자되고 있는 노무현 NLL 문제는 사실 NLL이 포커스가 아니다. <북한의 조선업 유치>를 무기로 개성과 해주와 인천을 잇는 경제 벨트를 추진해서 남북한 모두가 공영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을 마련해보고자 노력했다는 것이 국정원 녹취록 전문에 녹아있는 노무현의 의지였다. NLL - 평화지대 논란은 바로 이를 실현하기 위해 지금까지 계속되어 왔던 소모적 대결을 종식시킬 수 있는 <수단>으로 거론된 것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좌파와 우파 모두 노무현의 이런 접근 방식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그저 자기 정파의 안위와 인기를 유지하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 있을 뿐이다. 그러니 작년의 대선 정국의 시대정신이 <친노척결>로 모아진 것은 무척이나 당연한 일이 될 수밖에 없었던 거다.

 

이를 막아줄 수 있는 마지막 보루는 시민들의 <각성>이었지만 그 시민의 각성을 일으키는데 <친노세력>은 실패했다. 하긴 당연한 일이다. 친노 세력 조차도 판판이 분열하여 서로 대립하고 반목하는데 이것이 가능할 리가 있었겠는가

 

대학가요제 뉴스로 시작했던 글이 돌고 돌아 애먼 이야기까지 건드리게 되어버렸지만.. 그래서인지 요즘의 나라꼴을 보고 있자면 그저 한숨만 나온다

 

 

 고미생각 드림 / 2013년 7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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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지여 작성시간 13.07.02 "세상에 공짜 없다" 는 전제로 작금의 우울한 세태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꽃이 피기를 바라지만 꽃은 종자가 사라질 절박한 상황이 되어야 꽃을 피우지요. 귀한 식물일수록 배부르면 그 식물은 꽃을 피우지 않지요. <역사에서 배고파서 성공한 혁명은 없다> 는 명제와 <배부르면 꽃을 피우지 않는다>는 명제는 모순된 것 같지만 혁명=꽃 이라는 등식을 포기하면 두 명제는 조화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프랑스 혁명,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 혁명 등 <혁명>이란 용어로 역사를 설명하면 배고파서 성공한 혁명은 없지만,
    유럽의 감자흉작으로 아메리카 대륙으로 대 이동 (19세기 미국을 성공=꽃으로 전제하고) 세계최강국이라는 꽃은 피었지요
  • 작성자지여 작성시간 13.07.02 여성노동의 고달픔이 극에 달한 즈음 그 배고픔이 ,재봉기(미싱)를 발명시켰고, 몽골초원의 배고픔이 만주 - 중국대륙 - 유라시아 대제국 = 꽃 을 피웠다고 해석하면 무리일까요? ^ ^#
    625 라는 대 재앙 후 소득 백불 ~ 5백불 시절에 남한 인구는 두배 세베 늘어났는데 소득 만불 ~ 이만불 시대에 인구증가 세계 최소의 아아러니도 꽃 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구요
    아직 배가 덜 고프고 아직 절박하지 않아 꽃을 피우지 않는다 그리 생각합니다
    노무현의 <개방>, <열린세상>도 저는 활짝 필 꽃으로 봅니다. 문제의 시발점을 빈부격차 관점으로 보는 진보진영논리를 저는 믿지 않습니다.
  • 작성자지여 작성시간 13.07.02 자본 - 노동 2분법 대립개념이 한국정치를 왜곡시켰고 지금도 왜곡시키고 있고, 1% - 99 % 언론의 여론형성이 본질을 가려버려 보이지 않게 하더니 요즘 구차하게 나온 <갑>과 <을> 대립개념이 사태를 더욱 꼬이게 하고 있다 생각합니다
    노무현의 개방, 상식, 열린세상, 민주주의 라는 꽃은 활짝 필 것입니다. 다만 그
    꽃은 빈부격차해소 라는 꽃은 아닐 것이라는 거지요. 노무현이 꿈꾼 세상이 빈부격차해소에 있지 않다 는 것이 제 생각이구요
  • 작성자지여 작성시간 13.07.02 꽃이 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대한민국을 바라보면, 빈부격차보다는 <세습>= 돈 지위 명예 의 신분 이 본질이고,
    <삼권분립의 해체> 돈, 지위, 명예 언론의 독점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독점된 돈 권력 명예 언론권력을 자녀 손자 증손자까지 세습하려는 것, 이것이 본질이고, 이것을 막아야 하는 것이 노무현의 정신 ,사람사는 세상, <민주 2.0> 을 계승하는 것이 아닐까? 평소 생각입니다. 현대자동차 노동자 신분의 세습과 재벌가의 세습이 무엇이 다르고 무엇은 보호할 가치가 있는지? 많은 것을 깊이 생각케 하는 세태입니다.

    꽃은 배부르면 피지 않지만 다음 세대에 희망이 보이지 않는 그 때가 되면 활짝 꽃핀다 -지여생각
  • 작성자지여 작성시간 13.07.02 배고픈 사람이 배부른 사람의 돈 지위 재산 명예를 일정부분 가져 오는 것을 혁명 이라고 정의 한다면
    그 정의에 동의할 수 없고, 동의하더라도 배고픈 사람이 성공시킨 혁명은 없다 는 역사적 팩트에 동의합니다
    부의 세습, 신분의 세습을 방지하는 <시스템=또는 사회적 대합의 도출>을 혁명이라 칭한다면 혁명에 동의하고
    그 혁명은 성공할 수 있다. 성공해야 한다. 그리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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