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크 콘서트, 공론과 주장 / 다니엘 튜더, 남충현

작성자아프로만|작성시간14.11.09|조회수258 목록 댓글 10


전에 어느 마케팅 교수님 말씀이
, 설문조사를 해서 좋고 나쁨을 0에서 5사이 스케일로 찍으라고 하면, 서양 사람들은 아주 좋다, 아주 싫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찍는 사람이 많다면, 한국은 그냥 중간에 수렴되는 경향이 더 강하다고 한다. 그런데 나름 외국에 몇년 살아보니, 이런 차이가 굉장히 많이 나타난다! , 서양인들이 한국인들에 비해 더 선명한, 볼드한 주장을 내는 경향이 많다는 것이다. 같은 동양인이라도 중국인이나 인도인 들은 서양인 스타일 쪽에 좀 더 가깝다. (물론 그러면 왜 한국 정치 문화는 이렇게 극단적이냐? 할지 모르나.. 사실 극단적인 주장을 집단적으로 하게 되는건,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집단 내에서는 그 주장이 극단이 아니라 중간적인 대세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끔씩 서양애들 보면, "어떻게 저 녀석은 저렇게 무식해서 용감한 소리를 하지?" 라는 느낌이 들때도 있다..
그러나, 그래도 보면, 무식해서 용감한 소리 같은 것도 일말의 논리가 있고, 일말의 사실이 담겨있다. 그래서 그런 소리도 과감하게 나와주는 것이 전체적인 논의에 마이너스보다 플러스가 더 되는거 같다. 그리고 심하게 무식하고 용감한 주장은 보통 다른 토론 참석자들의 집중적 타격을 받고 곧 도태되니까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사실 어떤 발언을 하는 개인에게 개인 단위에서 균형이 잡혀있을 것을 너무 과하게 요구하는거 같다. 근데 균형이란건 개개인 차원에서 잡히는게 아니라 전체 사회 차원에서 잡혀야하는거 아닌가?

서양사람들은 우리나라와 달리 "자신감 있게 말하라!"라는걸 무척 강조한다. 근데, 그게 완벽하게 맞는 말을 말하란 소리가 아니다. 그렇다고 터무니 없는 소리를 말하고 나서 그게 맞다고 우기란 소리가 아니다.

, 자신감을 가지고 확신있게 말하기 위해서 반드시 본인이 절대적 진리를 말하고 있어야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내게 주어진 정보 하에서 내가 스스로 생각해서 최선을 다한 결과가 이 것이다! 라면 나는 그 것을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서양애들은 "당신 주장이 디펜스 가능하냐?" 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건 그게 절대적 진리냐는 소리가 아니다. 그럴 필요도 없다. 확신을 가지기 위해서 절대적 진리를 알아야 할 필요는 전혀 없다.
물론 당연히 오류 가능성은 있다! 아니 있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많다! 그런데, 그런 오류를 시정하는 것이 사회 공론장의 기능인 것이다! 개개인이 스스로 노력해서 오류를 자체적으로 완전 제거한 발언만 하라 그러면 공론장은 위축되고 만다. 개개인은 오류 가능성을 완전히 제거 하지 못하더라도 일단 자기가 생각하기에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다면 확신을 가지고 과감하게 말하도록 하고, 거기서 오류가 있으면 지적하고 까는 것이 사회 공론장의 역할이 아닐까? 물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걸 확신을 가지고 말하라는 것이 그렇게 확신을 가지고 한 말에 대해 다른 사람이 까지 못하게 까방권을 주자는 말은 절대 아니다!

자신의 주장의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고 겸손해지라는건, 절대로 "전 잘 몰라요" 라면서 우유부단한 태도로 말하라는게 아니라, 일단은 강하게! 자신있게! 말하면서도... 그렇게 말한 것에 대해 정당한 논리적 반박이 들어온다면 그 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정말 자기 주장의 논리적 허점이 어떻게 수정보완이 불가능할 정도로 크다는 것이 상대방의 반복적 공격을 통해 밝혀졌다면 최종적으론 자기 주장을 접어야 한다. 그러나, 상대방에게 유효한 공격이 들어오기도 전에 진작부터 "제 주장은 한계가 많아요!"라고 꼬리를 내리는게 겸손한 태도가 아니다!

 

남충현 / 페이스북 2014- 11-08




   아프로만  2014- 11- 09

공감 - [우리나라는 사실 어떤 발언을 하는 개인에게 개인 단위에서 균형이 잡혀있을 것을 너무 과하게 요구하는거 같다. 근데 균형이란건 개개인 차원에서 잡히는게 아니라 전체 사회 차원에서 잡혀야하는거 아닌가?]

 

공감 - [ 자신의 주장의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고 겸손해지라는건, 절대로 "전 잘 몰라요" 라면서 우유부단한 태도로 말하라는게 아니라, 일단은 강하게! 자신있게! 말하면서도... 그렇게 말한 것에 대해 정당한 논리적 반박이 들어온다면 그 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라는 것이다.]

 

아프로만 어록 - " 개인을 존중하라 그러나 인정은 별개다, 집단을 인정하라 그러나 존중은 별개다"

 

- 상대성은 개인 의 영역 = 존중 의 영역 : 근사치 영역 : 개인은 자유롭게

- 절대성은 집단 의 영역 ( = 신 의 영역 ) = 인정 의 영역 : 표준치 영역 : 집단은 정의롭게

 

▶ [정론 과 공론 / 노하우업 칼럼  http://cafe.daum.net/knowhowup/Dnqf/513 ]

 

개인을 절대치로 재단하면 그게 바로 전체주의 절대주의가 됩니다 - 동양은 이게 극심해요

 

개인영역과 집단영역의 개념분화가 동양 특히나 동북아에서는 제대로 전개된 문화적 역사가 없어요. 본문에서 남충현님은 중국애들은 좀 다르다고 하셨지만 저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개인속성의 합집합 이꼬르 집단속성 이라고 착각하는 것에서 동양은 서양에 한참 뒤쳐저 버린 겁니다. 절대성과 상대성의 개념구분에 눈뜨는 것은 개인과 집단을 구분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고 이것이 수학의 교집합, 부분집합 합집합 개념이거든요.

 

개인속성의 합집합 이꼬르 집단속성과 오히려 반대일 수 있다는 역설현상을 동양의 식자들은 심지어 서양 유학다녀오면서도 제대로 인지 못하는 게 다반사 = 핏줄의 관성? 인데. 그래서 배워도 헛 배우는 거죠.

 

이율배반적 역설현상을 이토록 적나라하고 실랄하게 기탄없이 집어내는 남박사님같은 분은 정말 드뭅니다.

 

*****

[삶의 향기] 한국인은 왜 토크콘서트에 열광할까

 

[중앙일보] 입력 2014.11.08 00:04 
[ URL -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6359517 ]

[내블로그에 저장 허용 ]

 

 

지난 4월 나는 친구와 협약을 맺었다. 한 달 동안 페이스북을 안 하기로 했다. 한 달이 지나자 한 가지가 자명해졌다.남의 관심을 끌고자 하는 행동이 인간적이지만, 그런 행동을 하면 할수록 인간은 더 비참하게 된다는 것이다. 페이스북 애용자는 이렇게 묻는다. “사진 올렸는데 왜 댓글이 안 달리는 거지?” 더 좋은 질문은 이것이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사진을 올려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걸까.”

 

 한국인은 페이스북만큼이나 토크콘서트를 좋아한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5 1일 페이스북에 복귀하고 새삼스레 보니, 뉴스피드에서 상당히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유명 한국인들의 강연이었다. 강연 광고, 강연 사진이나 강연에 대한 반응이 올라와 있었다. 젊은이들을 타깃으로 하거나(제목이 예컨대 청년! 힘내라!’ 식의 것들임) 일에 찌들고 스트레스가 너무 많아 힐링이 필요한 어른들을 위한 강연도 있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은 모두 한국말로 돼 있다. 왜일까. 토크콘서트는 한국적인 현상이다. 내 친구들의 본국에서는 토크콘서트가 한국만큼 인기가 없다. 내 고향인 영국의 경우에도 저명 비즈니스 분야 작가인 아무개 씨의 리더십 강연을 듣고 왔어라고 말하는 친구를 본 기억이 없다.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공공 강연 그 자체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모든 사회는 전문가가 필요하다. 모범을 보이는 영웅도 필요하다. 그런 인물들을 보러 강연장에 가서 영감을 얻고 또 뭔가를 배우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한국과는 반대로 영국은 롤모델에 대해 지나치게 부정적이다. 영국인은 모든 것에 대해, 또 모든 사람에 대해 냉소적이다. 반대로 한국의 대중은 전문가나 지도자 역할을 자임하는 사람들을 지나치게 신뢰한다. 한국에서 자기계발서가 잘 팔리고 토크콘서트가 인기 있는 이유는 이런 신뢰를 반영한다.

 

 한국에는 왜 이런 전문가 컬트(cult)’가 자리 잡고 있는 걸까. 내 생각에는 권위에 대한 존중과 관련 있다. 특히 한국에 강한 경향이다. 상투적으로 표현한다면, 따지면 안 되는 정답이 있다고 가르치는 교육 체제의 산물이기도 하다.그런 교육 체제에서 해답이란, 내가 스스로 해보는 탐구와 발견의 산물이 아니다.

 

 토크콘서트는 콘서트 산업과 마찬가지로 산업이다. (나는 콘서트 산업을 선호한다. 우리를 춤추게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동기를 부여하는 강연자 덕분에 기분이 고무된다면, 티켓 값이 헛되지 않은 것이다. 행복·재물·사랑을 쟁취하는 비결을 판매하는 사람은, 사실 우리가 더 행복하게도, 돈을 더 잘 벌게도, 운명적인 사랑을 만나게 해 주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는 어쩌면 저녁 한때라도 우리를 기분 좋게 해준다.

 

 정치 주제에 대한 강연은 나를 좀 불편하게 한다. 흥미롭게도 한국 친구들 중 정치 콘서트에 가는 친구들은 대체적으로 좌편향’(유럽 기준으론 좌편향이 아니지만···)이며 권위에 대해 회의적이다. 그들은 민주주의와 지적인 자유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강단에서 내려오는 의견을 들으며 저녁 시간을 보낸다. 토크콘서트는 하향식·일방통행식 커뮤니케이션이다. 그런 의미에서 토크콘서트가 사실은 매우 비민주적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예전에 나도 몇 번 정치적·사회적 이슈에 대해 강연한 적이 있다. (청중 숫자는 적었다. 내가 쓴 책들은 아주 인기 있는 책들은 아니다.) 강연할 때마다 기분이 묘했다. 나는 항상 제 말을 들을 필요는 없어요라고 강조했다. 질의응답 시간에는 이런저런 복잡한 사회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묻는 분들이 항상 있다. 진실된 대답은 이거다. “저는 아무런 실마리를 발견하지 못했네요. 답을 제가 안다면 노벨상을 받지 않을까요.” 그렇게 대답하면 질문자는 실망하는 눈치다.

 

 내가 꿈꾸는 정치 토크콘서트에선 강연자가 청중이 스스로의 의견에 자신감을 갖도록 격려한다. 강연자가 제 말은 듣지 마시고 다른 분들과 이 주제에 대해 토론하세요라고 말하는 토크콘서트다. 유명인 중에 누군가 나서서 토론모임이나 토론카페를 조직하고, 모임이 정착한 후에 뒤로 물러선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다니엘 튜더 전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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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고미생각 작성시간 14.11.10 결국 자신 안에서의 '존엄과 확신'이 부족하니 남의 시선, 남의 권위에 종속되어야 안심하는 우리나라 사람들 특유의 사고방식이 이렇게 표출되는 것이 아닌가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따져 보면 아프로만님께서 소개해주신 두 칼럼이 공유하는 '맥락'을 찾을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이러한 '하방식, 일방통행식'의 소통문화는 이른바 범야권으로 갈수록 더욱 심해집니다. 상대방의 의견을 열린 마음으로 청취하거나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질 않습니다. 그저 어떻게 하면 상대방의 말문을 막아버릴 수 있을까를 골몰하는 것이 토론의 목적이자 방향이 되어버립니다. 참으로 답답하고 한심할 노릇입니다.
  • 작성자고미생각 작성시간 14.11.10 왼쪽이나 오른쪽이냐의 방향성, 극성만 다를 뿐 사고회로는 거의 똑같이 공유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이념갈등과 노선갈등의 본질이라고 한다면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 진보연이 보수세력을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단언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결국은 '진영논리'로 귀결되어 '위선자'라는 비판과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죠. 이런 부분에 대한 반성과 고민이 없다는 것 또한 대한민국 범야권, 진보연이 갖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 중의 하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작성자고미생각 작성시간 14.11.10 단, 남충현 님의 칼럼에서 한가지 이견이 있는 부분은 살짝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간자적인 성향을 띄는 부분은 어디까지나 '대면관계의 속성'이 드러날 때에만 해당됩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굉장히 '양극화'되는 성향을 보입니다. 특히 정치 문제나 사회 문제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왜 그렇게 될까? 저는 '억하심정'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침 천관율 기자가 일베 현상을 짚으면서 그들의 '정의감'의 원천을 무임승차에 대한 거부감으로 지적하고 있는 부분은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고 할 수 있겠죠.
  • 작성자고미생각 작성시간 14.11.10 만약 정치 사회 영역에서 중간자적인 성향이 그대로 유지된다고 할 것 같으면 안철수의 지지율이 갑자기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현상이나 노무현, 유시민의 '제3지대 정치세력화 시도'가 어째서 번번히 좌절되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양측의 극단적인 주장과 지점을 피하고 좀 더 건설적이고 건강한 시도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논리적, 도의적으로 매우 온당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사람들의 성향에도 부합한다고 말할 수 있음에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죠. 이런 부분에 대한 고찰이 부족했던 점에 대해서는 다소 아쉬움이 남습니다.
  • 작성자고미생각 작성시간 14.11.10 고미생각 비망록 - 2014년 7월 28일

    양극화의 주범이자 동력은 '대상에 대한 미움과 증오'다. 그것이 판단을 마비시키고 분별을 방해하여 결국 증오하던 자들과 같은 잘못을 저지르게 만든다. 누누히 말하지만 이것이 억하심정이 갖는 가장 큰 문제요 폐단이다. 억하심정의 역사 그것이 바로 인류사 역사 순환의 본질이다!

    http://cafe.daum.net/knowhowup/Dnqf/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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