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존중하는 법이란?
나를 존중하는 것의 핵심은 가슴에 있습니다.
이 무한한 나라는 존재는 있음의 세계에서는 가슴에 자리 잡습니다.
그 가슴이 무엇을 원하는지 온전히 귀기울여 그 가슴에 예! 하는것이 존경의 전부 입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무엇을 얘기하고자 하는지 가슴에 귀 기우립니다..
귀 기울이면 나에게 기쁨을 드릴 수 있습니다.
내가 내 가슴을 기쁘게 하는 방법은?
내 가슴이 원하는 것을 이루게 하는것. 그것은 굉장히 큰 기쁨입니다.
그 나가 기뻐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어떠한 원함 중에서도 이 생을 선택했을 때는 분명 내가 생을 통해 경험하고자 하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오셨을텐데 그 목적을 이해하고 알아차려 그 목적이 이루어지도록 내 삶을 살 수 있다면 매 순간 가슴이 기쁠것입니다.
그러니 이 삶의 목적에 온전하게 눈 뜨지 못한다면 얼마나 큰 기쁨을 경험할지 자기자신도 모르는 채 그 만큼의 기쁨에만 만족할 것입니다.
어떤 철학자가 인간은 자기자신이 얼마나 큰 일을 할 수 있는지, 그럴만한 능력이 있는지 알지 못하고 생각도 못해본 채 죽게된다고 말했습니다.
시도를 해보지 않았으니 당연히 기쁨조차도 어느 정도의 기쁨까지 경험할 수 있을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만큼의 기쁨에 만족하고 머물러 버립니다.
큰 고통속에서 이정도 기쁨에 만족하는 조차도 너무 감사하고 찬탄드릴 일이지만
끝내 눈떠야 되는 것은 우리가 무한자라는 겁니다.
도데체 기쁨의 끝이 어디일지 알 수 없는거죠. 무한성이니까.
거기까지 가기 위해, 이 생을 선택했을 때 분명 내 삶의 목적을 가지고 오셨을 거라는거죠.
그것이 원중의 원일 것입니다.
그 원을 우선 알아야 내가 나를 가장 크게 존중할 수 있습니다.
그 원을 모른다면 나는 나를 알맞게 존중하게 됩니다.
자기속에 가장 큰 원함을 알아차리고 그 원함대로 삶을 살 수 있다면,
그 원함이 이루어지도록 할 수 있다면,
가장 큰 기쁨을 경험 하게 되는것은 이치적으로 당연합니다.
예. 우선은 내가슴을 기쁘게 하는것이 삶의 초점일 수 도 있는데
내 가슴의 가장 큰 기쁨은 삶의 목적대로 내가 삶을 사는것.
이것입니다.
삶의 목적대로 이 순간을 사는것이 굉장히 큰 기쁨이자
매 순간순간 삶을 축복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이겠죠.
또 내가 내 가슴을 기쁘게 하는 방법은?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이렇게 주는 방법들.
타인을 칭찬했을 때, 타인이 허용되어졌을 때,
내 가슴을 기쁘게 하는 방법은 숱하게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부분중의 하나가 말을 통해서 내 가슴을 기쁘게 하는것입니다.
타인의 생명을 살리는 언어를 썼을 때 내 가슴은 기뻐한다는거죠.
속성대로 쓰여졌을 때, 즉 내가 생명이며 생명은 살리는 거니까 뭔가 내가 살리는 언어를 썼을 때,
나는 사랑 그 자체이니 사랑의 언어를 썼을 때,
나는 지혜 그 자체이니 뭔가 내 안에서 앎이 일어났을 때,
나는 조화 그 자체이니 뭔가 사이좋은것을 느꼈을 때,
나는 풍요 그 자체니까 내가 계속 풍요로와 지는것을 느꼈을 때,
내 가슴은 이것 이상이 있겠나 싶을만큼 한없이 기뻐지는 것을 경험하죠.
그런것들이 주로 우리들이 쓰는 말로서 이루어 집니다.
우리들은 자각,이미지,생각,말,행동등을 통해서 내 가슴을 존중할 수 있습니다.
생각도
생명의 생각들. 살리는 생각들.
그리고 앎이 일어나는 생각들.
사랑이 넘치는 생각들,
그리고 그 생각과 말한데로 내가 행위하고 있을 때 그저 자기가 찬탄 되어지는 순간들,
언행이 일치 되어지는 순간순간을 자기가 살고 있을 때, 너무 멋지죠?
그럴 때 내 가슴은 너무너무 기쁘고 그것이 다구나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언행일치 되어지는 것 중에서 가장 큰 부분 역시 삶의 목적에 대한 거겠죠.
삶의 목적이 언행일치로서의 지금 이 순간을 살 때, 내 가슴은
'영원히 똑같은 삶이 되풀이 되더라도 그 삶을 살겠습니까?' 하고 질문 했을 때 기꺼이 예!
할 수 있습니다.
법장비구가 극락세계를 이루기 위해 수억겁을 똑같은 삶을 살 때도 그 존재에게 물으면
당연히 예 할것입니다.
'예! 극락세계 또 짓고 싶어요.' 할 때 그 기쁨은 어떤 기쁨이겠어요?
색깔없는 기쁨 아니겠어요?
투명하고 투명하고 맑고 맑아서 모든것을 녹여 버리는, 티끌한점 없는, 기쁨 이라고 표현할 수
조차없는 그 청정한, 텅비어버린, 그런 매 순간순간의 기쁨이 아마도 가장 내가 나를 존중하는
삶이 되겠죠.
그런데 그 말을 통할 때 보면, 타인에게 살리는 생각으로 향하는데,
타인의 생명이 살아날 수 있는 언어를 했는데,
내 가슴이 더 기쁜 이유는?
예, 내가 저 존재와 다르지 않음 입니다.
저 존재를 살릴 때 내가 사는구나. 이것이 자명하게 경험적으로 알아지는거죠.
저 존재를 살리는데 내 가슴이 이토록 기쁘고 저 존재를 죽이는 말을 했는데 저 존재 이전에 내가
먼저 죽고 있고.
자명하게 우리가 하나인데 어떻게 내 삶의 목적이 없는 나를 만들어
이 존재를 기쁘게 하는 것이 1번 일 수 있습니까.
저 존재를 살릴 때 내가 기뻐지는것을 하루에도 여러번 체험하고 있지 않나요?
나너의 불멸성을 떠올리며 온 우주천지에 가득찬 존재~ 이랬을 때 내 가슴이 얼마나 기뻐지는가요?
'아~ 그러면 나를 존경하는 법이 너를 존경하는 법이구나 !'
이렇게 자동적으로 알아지는 체험을 매순간 만납니다.
나를 존경하는 것이 너를 존경하는 것이고, 너를 존경하는 것이 나를 존경하는,
이 분리 되어짐 없는 형태.
그렇게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존경한다는것은, 온전하게 이 존재에게 기쁨을 드리는 것이며 그 기쁨의 끝,
청정 그 자체인 기쁨을 드리는 법은 이렇게 생각과 말과 행위를 통해 드림입니다.
이것이 언행일치로서 삶의 목적이 그대로 지금 이 순간을 결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삶의 목적대로 내가 매순간순간을 살면 자동적으로 되어집니다.
그럴려면 당연히 잘 들어야되고 잘 들어야 원함을 알 수 가 있고 원함을 알아야 행동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 말 행위들은 매순간 하나로 드러나게 되겠죠.
들음으로 부터 앎, 그리고 그대로 행위로 드러나게 되는것.
그대로 드러나게 되는데 때로는 생각이라는 부분이 이 원함을 바라보지 않고 원치않음을
바라보는 순간 알아차리고 자기가 원하는 그것을 그대로 믿고 또 행위하는, 이런 삶이 되어지겠죠.
그럴 때 우리들은 매 순간순간을 당연히 백의 주의로 한번에 하나씩.
그거 이외에는 할 일이 하나도 없는거죠.
가슴을 기쁘게 하는것은 지금 이 순간 드러나는 현상입니다.
그러니 진짜 백의 주의로 한번에 하나씩, 그러다보면 어떤 삶의 목적이 이루어져가는거죠.
매 순간순간이 삶의 목적이면서 어떤 관점에서는 여기가 삶의 목적이아닌 이루어나가는 자리.
네. 매순간순간 이것이 다 이면서 또한 해나가는 그 존재.
이것이 내가 나를 온전하게 존경하는 법이 되겠죠.
초점은 나 너가 분리되어져있지 않다는것.
가슴이 출발이라는것.
가슴 중에서도 온전한 기쁨을 드리는 최고의 존경은 삶의 목적과 연결되어질 수 밖에 없다는것.
그 삶의 목적이 지금 이 순간의 행동과 온전하게 일치되어질 때, 그럴 때 우리는 한번에 하나씩 백의 주의로 지금 여기를 축복된 삶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것.
이것이 존경의 한 이치 입니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자유 작성시간 14.06.16 나를 존중 하면서 상대을 존중하는 마음 다시한번 가슴에새기면서 기쁨을 알아차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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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사랑이 작성시간 14.11.16 만큼의 기쁨이 아닌 기쁨의 무한성~
경험합니다 -
작성자골드 작성시간 16.05.21 이 생을 선택한 내 삶의 목적을 가지고 왔다
라는 부분이 가장 오래 가슴에 전해집니다
자각합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골드 작성시간 16.07.16 오늘은 감사함이 참 많이 경험되는 날입니다.
오늘 비로소 온전히 가슴으로 전해집니다.
그대로 하루 하루 행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윤주 작성시간 23.06.24 머물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