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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스 칼럼

상위 1%를 위해 사는 80%의 암울한 운명!

작성자비빔밥(경기)|작성시간13.11.22|조회수1,136 목록 댓글 26

주위를 보면 불쌍하게 사시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참 행복하다 생하시니

행복이란 결국 주관적 판단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해보면

그리 불쌍한 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요즘 우리사회를 보면 1%를 위한 99%의 희생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사실 이중에서 최상위 1% 밑의 19%는 최소한 자기 밥그릇은 잘 챙기고 있다고 봤을 때,

나머지 80%는 태어나면서 죽는 날까지 1% 혹은 상위 20%를 위해 산다고 봐야겠지요.

..

저희 어머님 친구 중에 참 힘들게 사시는 할머니가 한 분 계십니다.

사실 그 분 아드님과 어려서 나름 친하게 지냈던 사이니

그 분이 살아오신 과정을 저 또한 어려서부터 계속 지켜봐왔지요.

제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그 친구 집은

우리 동네에서 나름 잘사는 집이었습니다.

그러다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병으로 돌아가신 후

빠르게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지요.

어쨌든 지금은 달동네의 15평 남짓한 방 두 개짜리 월세방에서

아들 내외와 함께 생활하고 계십니다.

그 아들이 일용직으로 근근이 살아가다보니

70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주로 파출부 일을 하시며

틈틈이 공장에서 단순 포장 업무를 하신다고 하더군요.

최근 그렇게 공장에서 2개월을 힘들게 일해서 50만원을 받았던 모양입니다.

한동안 만나는 친구들에게 자랑을 하며 그 돈으로 여행을 갈까?

아니면 손주들에게 장남감을 사줄까? 엄청 기분이 들떠있었다고

저희 어머님이 말씀해 주시더군요.

아마 그 분에게는 그 50만원이 일반 직장인들이

연말 보너스로 받은 수백만원보다 더 가치가 있었겠지요?

그래서 그 돈을 결국 어디에 썼는가 물어봤더니

본인이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이 해외여행을 가셨는데

여행 경비에 보태 쓰라고 목사님에게 드렸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결국 세상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에 쓰게 되셨다며

그렇게 기뻐하시더랍니다.

..

참고로 그 교회 목사라는 분은

가난한 동네의 대형 교회 목사 아들로

어려서부터 가난의 ‘가’자도 모르고 자랐고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탱자탱자 놀다가

귀국하여 젊은 나이에 아버지의 교회를 세습한 분입니다.

그러다 보니 툭하면 선교나 각종 행사를 빌미로

해외여행을 즐겨 다닌다고 합니다.

그러니 말 그대로 거지들이 부자들 걱정하는 꼴이었던 것이지요.

그 할머니 입장에서는 그 50만원이

보통사람 500만원보다 더 큰 돈이었지만

기사 딸린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수십만원짜리 몽블랑 볼펜을 싸구려 모나미 볼펜처럼 쓰는

부자 목사 입장에서는 그깟 50만원은 있으나 마나 한 돈이었겠지요.

..

이야기가 교회 비난 쪽으로 흐른 것 같은데,

문제는 다른 곳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입니다.

특히 정치 쪽도 만만치 않지요.

앞서 말씀드린 제 어머니 친구 분도

완전히 새누리당 팬이시니까요.

박근혜가 당선 된 것을 마치 자기 딸이 당선된 것처럼 기뻐하고

없는 살림에 친구들을 불러 밥까지 샀다니 말을 다했지요.

그래서 제가 어머니에게 그랬습니다.

그 할머니는 자기 손으로 자기 자식 목을 죄이고 있으면서도

정작 자신은 그걸 모르고 있다구요.

자기 자식은 나이 40이 넘어서도

언제 잘릴지 모르는 일용직으로 힘들게 살고 있는데

어떻게 자본가, 기득권 편에 서는 새누리당을 지지하다니요?

그 할머니가 강남에 그 흔한 30평짜리 아파트 한 채만 있어도

새누리당 찍은 것을 나름 이해할 수 있지만 15평 월세 살면서

새누리당 찍은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그런데 어쩝니까?

이 세상에 자신의 주제를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걸요!

자기 주제를 모르다보니 오줌 똥 가릴지도 모르고

자기 앞길을 막는 건 그렇다고 쳐도

자기 자식들 앞길까지 막고 있으니 거참!!!

오히려 너무 순수하다 못해 무지한 것이라고 해야될런지??

..

물론 이러한 문제들을 온전히 개인의 문제라고만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1922년 Walter Lippmann이 그의 저서 ‘Public Opinion'을 통해

강조했던 ‘무지한 대중’의 개념을 생각해 볼 때,

산업사회 속의 대중들은 거대 자본이 만들어 놓은

공교육과 매스미디어의 틀 속에서

정해진 진실만을 받아들일 수 있을 뿐이니까요.

그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대중의 정치적 인식은 편견과 고정관념,

그리고 무지에 의해 끊임없이 손상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그는 무지한 대중에게 과도한 정치적 결정권을 부여하는

현 민주주의 시스템에 대해 매우 심각한 우려를 했던 것이지요.

..

우리는 항상 민주주의의 실패를 목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학교 교육과 언론을 통해서 만들어진 민주주의 신화,

즉, 다수결의 원칙에 따른 최종적 의사결정이라는 미덕이

마치 절대적인 선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현 상황에서

민주주의 시스템 이면에 자본가들이 짜놓은 은밀한

비민주주의적인 구조들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지요.

그래서 그들은 그러한 상황에 대한 자신감에 힘입어

금방 진실이 들러날 어설픈 자작극 테러를 일으키고

또한 뻔히 드러날 선거 조작 또한 서슴지 않는 것이지요.

어차피 대다수 대중들은 그러한 뻔한 진실마저

제대로 파악할 최소한의 지적 능력마저 결여된 상태니까요.

따라서 과거 앙시앵레짐을 배격하며 개인의 자유로운 판단을 강조한

19세기 유럽의 자유주의자들(Liberals)이 가장 우려했던,

1인 1표의 ‘평등선거’의 폐해는 현실 정치에서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다수인 노동계급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역사상 유래 없는 1인 1표의 엄청난 정치적 기회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결코 그 기회를 자신들을 위해 사용하지 않았으니까요.

이에 대해 장하준 교수는 국가의 미래를 위해

노동계급이 스스로를 절제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사실 진실과 거리가 먼 이야기입니다.

불편한 진실은 민주주의를 향한 정치적 개혁의 뒤에서

정치의 거의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었던 자본가 계급이

노동자들에게 정치적 권한을 주고도 그들을 완벽히 통제할 수 있다는

충분한 자신감을 얻고 나서야 노동자들에게 평등선거권을 부여한 것이니까요.

그리고 그 배경에는 자본주의 발전에 따른 부의 팽창과 함께

과거의 일방적 착취 대상인 노동자의 개념에서

소비하는 노동자의 개념으로의 전환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즉, 자본계급의 착취 하에서 계급혁명의 이상에 사로잡힌

과거식의 투쟁적 노동자 개념에서 탈피하여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새로운 부를 향해 매진하는

역동적 계층으로 새롭게 변신했던 것입니다.

..

그들은 과거에 귀족 계층들만이 누릴 수 있었던 문화를

대중문화라는 이름으로 비슷하게 재현해 내어 체험할 수 있었고

과거 소수 자본가들만이 탈 수 있는 자동차와 각종 기계들이 대중화되며

노동자들의 삶의 질 또한 빠르게 높아졌습니다.

이처럼 20세기에 급격하게 이루어진 부의 팽창과

기술에 발전으로 인한 삶의 질 향상은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을 희석시켰던 것이지요.

더군다나 같은 노동자간에도 소득 차이가 벌어지면서

노동 계급의 계층 분화가 빠르게 이루어졌고

그 결과 저임금 노동은 사회 구조적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노력과 능력 부족의 문제로 취급되기 시작했습니다.

과거 아메리카 드림이 미국에서 성공하지 못한 이민자들에게

오히려 자기비판의 근거가 되어주었던 것처럼,

상대적으로 부유한 노동자의 등장은

가난한 노동자들의 투쟁 의식을 분쇄시켜 버렸던 것이지요.

..

이제 노동자처럼 입고 노동자처럼 말하며,

노동자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철지난 옷을 입고 혼자 추위에 떠는 것만큼이나

어리석고 바보 같은 짓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 멋진 신세계의 주역이 되었으며

그들이 직접 만든 쭉 뻗은 도로 위에서

그들이 직접 만든 잘빠진 무개차를 타고

바람을 가르며 달려갈 특권이 주어졌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물건들을 자신들이 소비하며

헐리웃 영화의 멋진 주인공들의 삶에 매료가 되었던 것이지요.

이처럼 노동자들이 자본가 흉내를 내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진정한 비극은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그 멋진 헐리웃 영화가 끝나고

극장 밖으로 나가 냉엄한 현실과 마주해야 될 시기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점입니다.

..

.

..

저는 예전 글을 통해 우리가 지난 100년간

지속적인 팽창의 시기를 살아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팽창은 결코 영원히 지속될 수 없는

기하급수적인 성장 패턴이었고

결국 파티가 끝나고 진한 화장을 지운 뒤

과도한 파티에 지쳐버린 우리의 맨 얼굴을

마주해야 될 시기가 오고 있다고 말씀드렸지요.

우리는 지속 불가능한 성장을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잘 못 이해하고 있었고

그러다 보니 저성장의 답답한 현실 앞에서

과거의 성장 주역의 신화를 끄집어내는

과오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어떻게 앞으로 나아갈 것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과거의 화려했던(?) 시절로

돌아갈 것이냐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국민들은 안타깝게도 과거를 선택했고

결국 그 선택의 결과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진정한 배움이란 항상 복습을 필요로 하는가봅니다..

..

좋은 사회란 공동체의 관점에서 개개인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사회입니다.

만약 어떤 사회가 개인들의 부족한 점을 지적하고 그 부분을 문제 삼는다면

이는 결코 건강한 사회라고 볼 수 없겠지요.

더나가 교육과 매스미디어를 통해 국민들을 바보로 만들고자 한다면

이는 국민들을 향한 공권력의 범죄행위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과거 국민들을 심하게 채근질 했던 특정 정치인들이 우리나라를 만든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발전은 지정학적으로 독특한 지리적, 정치적 위치 위에서

지속적으로 팽창하는 세계 경제의 풍선위에 올라탔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지요.

그리고 그 풍선의 바람이 임계점에 이르렀다면

바람 빠지는 풍선이 날아가는 곳을 향해 풍선과 함께 무작정 날아갈지

아니면 풍선이 터질 때 같이 터져 화려한 죽음을 맞이하든

결국 그 풍선의 운명과 함께 할 것입니다.

..

무엇이든 바람이 빠지면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그 때 필요한 것이 ‘철학’입니다.

나의 자리, 그리고 너의 자리, 그리고 우리의 관계!

바람이 빠지고 나면 다시 모든 것을 재정리해야 되기 때문이지요.

이 재정리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가 ‘철학’이고

그 철학에 기반을 둔 ‘미래 비전’입니다.

물론 우리는 지난 60년간의 빠른 경제 성장 속에서

산업화에 의한 구질서의 파괴와

물밀듯이 들어오는 서구 문화의 수용 과정을

우리 스스로 분석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새로운 사상 체계를 전혀 세우지 못하였습니다.

그냥 남들보다 빠르게 더 부자가 되면 된다는 생각에

양심이고 윤리고 모든 정신적 가치를 내팽개쳐 버렸지요.

사실 더 부자가 되고 더 많이 소비하는 것은 비전이 아니지요.

그건 부풀어 오르는 풍선의 메커니즘에 대한 반응일 뿐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경제적으로 많은 발전을 이루었지만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지?

그리고 어떠한 삶이 진정 행복한 삶인지? 등

삶의 가장 기초적인 가치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공무원들은 뇌물에 혈안이 되고

의사들은 환자들에게 아무런 가책 없이 독극물을 주입하고

성직자들은 신도들의 돈으로 사치와 낭비를 일삼았던 것이지요.

즉, 천민자본주의에 의해 직업윤리가 실종되면서

우리 사회는 점점 막장을 향해 치닫고 있는 것이지요.

과연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다가올 축소의 시대를

어떠한 철학과 비전으로 극복해 나갈 수 있을까요?

영향력 있는 오피니언 리더가 전무한 이 시점에서 말이지요..

..

저희 어머니 친구의 사례로 시작한 이야기가

산으로 가다 못해 안드로메다로 향한 것 같습니다.

종말 얘기나 귀신 얘기로 가기 전에 이쯤에서

급 마무리해야 될 것 같네요..

사실 저희 앞에 쓴 어머니 친구 얘기를 들었을 때

그 분의 고단한 삶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참으로 허탈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 분은 자신이 쓸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곳에

자신의 돈을 썼다고 생각하고 나름 행복해 할 수 있겠지만

제 3자의 입장에서는 그보다 더 바보 같은 짓이 없는 것이지요.

그 분은 자신과 자기 자식의 삶을 조금이나마

더 윤택하게 바꿀 수 있는 작은 선택 앞에서도

올바른 선택을 내릴 수 있는 최소한의 인식 능력이 부족했습니다.

가난한 자기 자식이 아니라 오히려 부유한 남의 자식에게 그 돈을 주었지요.

그리고 그 부유한 남의 자식은 그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할테구요.

그냥 혼자 마음속에 두기에 너무 답답한 일이라

마음을 풀 겸 글을 쓰다가 너무 길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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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암흑속의안식 | 작성시간 13.11.22 화복 무문 유인자초라 혼자 감당하면 좋은데 주변에 민폐를 끼치니 죽여 없애버리지도 못하고.. 참... 이런 저런 모습보면 인류종말을 꿈꾸는 소위 악당의 심정을 이해하게 됩니다.
  • 작성자도가도 비상도(서울) | 작성시간 13.11.23 세상사 알면서도 당하는데, 모르고서 당하는 일은 또 얼마나 많을까요? 다들 제멋에, 제 깜냥에 사는걸.. 나만은, 우리가족만은 그러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제 생각이 너무 이기적인가요?
  • 작성자연개소문(경북) | 작성시간 13.11.29 깨어있지못하면,올바른 삶을 살아갈수 없겠죠.매스컴과 권력에 세뇌된 인간들...인간으로 태어나 사는 원만을 풀겠죠.이성이 없으니,짐승같은 삶을 살수밖에...
  • 작성자서정이(경기) | 작성시간 13.11.30 저희빌라 아랫층살던 동갑내기 애기엄마 ㅡㅡ. 투표하러가자 했더니 여자도 대통령 해봐야지 하는데 ㅡㅡ. 흠. 또갑갑함ㅁ.. 잘모르는 내거봐도 답답한데. 희유~~~
  • 작성자순백이아빠 | 작성시간 13.12.07 모든 것은 다 정해져 있는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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