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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스 칼럼

인간들은 땅을 박차고 하늘을 향해 오를 수 있을 것인가?

작성자비빔밥(경기)|작성시간13.12.09|조회수394 목록 댓글 10

우리는 흔히 ‘과거와는 달라!’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됩니다.

물론 과거와 달라진 점을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과거 삐삐(pager)시대를 신기해했던 구시대(?) 분들에게

지금의 스마트폰 시대는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또한 인터넷 가상공간이 생기면서

타인과의 만남과 관계에도 큰 변화가 생긴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외형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신체적 제약으로 인한 만남의 제약이 극복된 것은 아닙니다.

카톡 너머로 미지의 이성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는 있지만

통속적 의미의 사랑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신체에 속해 있는 바,

인터넷 가상공간의 한계는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가 사랑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

이성의 부드러운 피부를 나의 피부로 직접 느끼는 것은

엄연히 차이가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우리가 인터넷을 통해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넘어선

그럴듯한 플라토닉한 사랑을 느낀다 하더라도

그 플라토닉한 사랑의 감정역시 우리 신체적 반응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고요.

..

경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생명의 근원이 태양인 것처럼

우리의 모든 부의 근원은 토양입니다.

그래서 토양을 ‘1차적 부’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크래시코스’의 저자 크리스 마틴슨은

고전 경제학자들이 낭패를 보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경제를 ‘진공 상태에 존재하는 어떤 것’으로 상정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들은 경제를 자원의 생성과 고갈 등 외적 요소와 연계하지 않고

주변으로부터 완전히 고립돼 스스로 존재하는 시스템으로 간주한다고

크리스 마틴슨은 그의 책을 통해 비판하고 있지요.

사실 1차적인 부가 없으면 2차(산업), 3차(금융)의 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은 그리 어렵지 않게 추론해 낼 수 있습니다.

..

우리는 때로 복잡한 환경을 이해하기 위해서

가장 기본으로 돌아올 필요가 있습니다.

요즘 비트코인의 급부상으로 비트코인을 둘러싸고 다양한 의견들이 많습니다.

비트코인의 외형만 보면 화폐로서 충분한 자격이 있어 보이지만

단지 교환의 수단이 아니라 화폐의 가장 근본적인 요소인

진정한 가치 저장의 수단이 되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볼 때

자신의 뿌리인 금과 단절된 현대의 신용화폐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신용화폐의 발전 과정을

중앙정부에 의한 자율적 시장에 대한

위계질서의 주입과 그에 따른 통제력 확보라는

매우 정치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때,

민간의 자율적 화폐의 성격을 갖고 있는 비트코인은

신용화폐의 생존 제 1원칙,

즉, 반드시 그들의 것이어야 한다는

가장 중요한 조건을 채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이 비트코인과 같은 민간 전자화폐를

그들의 것으로 만들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기존의 신용화폐와 다를 게 없겠지요?!

사실 금의 채굴 방식을 모방하여 만들었다는 비트 코인이

정작 흉내를 낸 것은 금이 아니라

무의 가치임에도 불구하고 교환 수단의 역할을 해온

기존의 신용화폐였던 것입니다.

..

과거부터 인간은 하늘에 닿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진화과정에서 직립을 통해 동물적인 것에서 벗어난 인간은

자신들의 물적 조건을 완벽히 벗어나도록 도와줄

바벨탑이나 이카루스의 날개를 갖고자 부단히 노력해 왔던 것이지요.

하지만 인간은 불행히도 여전히 하루에 세 끼를 먹어야 하고

7시간 잠을 자야하며, 먹은 만큼 배출해야 되는

동물의 몸에서 크게 진화하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그간 인간이 시도한 수많은 이카루스의 날개는

신의 시험인 뜨거운 태양의 열기를 이겨내지 못한 채

인간들을 그들의 시작점인 저 척박한 토양으로 내동댕이쳤던 것이지요.

하지만 신을 인간들의 영역으로 끌어내리고자 했던

그리스 인들의 그 멋진 시도가 실패한 이후에도,

즉, '보편적 미'를 추구한 과거 고전주의와

이성을 기치로 내세웠던 계몽주의의 실패로

퇴폐적 낭만주의가 힘을 얻은 이후에도

우리 인류는 땅의 영역에 묶어 두어야 할 것들을

끊임없이 하늘에 풀어두는,

결국 자신들이 감당하지 못할

시도를 끊임없이 해왔던 것입니다.

때로는 '신'의 이름으로,

그리고 때로는 '인간'의 이름으로 말이지요!

..

‘인류의 모든 불행은 문명에 있다’는 루소의 말이

지나친 피해의식과 과대망상의 결과라 할지라도

모든 문명이 부의 근원인 땅에서 시작되어

그 땅을 부정하는 자기부정의 과정을 거쳐 왔다는 것은

우리의 물질 뿐만 아니라 경제 시스템만 봐도 자명한 것입니다.

과거 도시화의 과정을 ‘광물화’의 과정으로 이해했을 때,

(http://fulljazz.blog.me/30167575728)

화폐에서 토지의 요소, 즉 광물을 배척해 낸 것은

불타는 태양을 향해 깃털과 밀랍으로 만든

이카루스의 날개를 펼칠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땅의 요소 없이 화폐를 통제할 수 있다는

과거 인간들의 그 모든 교만은

역사상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지요.

따라서 현 경제 상황의 암울한 현실을 보았을 때,

자기부정의 함정에 빠진 현재의 신용화폐는

거대한 실패를 피할 수 없을 것이며

인간은 또 다시 그들이 파괴한 '땅' 앞에서

두 무릎을 꿇고 겸손함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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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비빔밥(경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12.10 물론 그런 주장에 옹호하는 것은 아니고 이론상 그렇다는 얘기지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앞서 언급한 '커런시워'의 짐 리카즈가 M1, M2 개념을 바탕으로 잘 구분해 놓았으니 그 분의 책을 참조해 보시면 신용화폐 옹호론자들이 말하는 금 본위제 자체의 한계가 논리적 모순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규모가 커질수록 화폐공급이 늘어나야 되기 때문에 금본위제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은 과거 사례를 보아도 그렇고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는 신용화폐 옹호자들의 주장으로 볼 수 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잘생긴김씨(전주) | 작성시간 13.12.10 비빔밥(경기) 시간나면 사서 봐야겠군요. 물론 신용화폐 옹호론자 입장은 아니지만 이론상 그렇다는 이야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모순점이 보여서 말입니다. 금의 가치보존능력에 기댄다는게 참 위험한 발상인데 말이죠.
  • 삭제된 댓글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잘생긴김씨(전주) | 작성시간 13.12.10 그래서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개념이 나왔죠.(그것도 1970년대에 말입니다.)
  • 작성자gh9198 | 작성시간 13.12.16 사람머리수를 기준으로 돈을 발행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한 사람당 얼마가 필요하다는 기준으로....

    인구가 늘면 더 발행하고 ..... 인구가 줄면 회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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