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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스 칼럼

자본주의와 노동자의 비극!

작성자비빔밥(경기)|작성시간12.09.05|조회수479 목록 댓글 12

오늘 글은 좀 지루하고 깁니다..

감안하고 읽으시길..ㅠ

 

[교과서가 말하는 거짓말!]

..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택하고 있고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지요.

하지만 이 두 개념은 상호 모순적입니다.

자본주의는 자본에 의한 계급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고

유럽의 자유주의 사상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지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정치적 자유와 민주주의 이념과 일치하는 것이지만

경제적 관점에서의 자유는 봉건 사회질서의 붕괴에 따른 자본가들의 등장과 함께

그들의 이익을 최우선하기 위해 생겨난 계급적 이념입니다.

..

교과서에서는 근대 민주주의의 시작을 프랑스 대혁명에서 찾습니다.

분노한 시민들이 봉건제도의 상징적 장소인 바스티유 감옥을 붕괴시킴으로서

그리고 자신들이 신처럼 섬기던 왕을 자신의 손으로 처단함으로서

봉건 질서속의 노예에서 벗어나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진정한 자유 시민으로 거듭났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실 이 모든 이야기는 역사적 승자의 편에서 만들어진

그럴듯한 멋진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프랑스 혁명의 진정한 승자는 봉건제도에 억눌려왔던 평범한 시민들이 아니라

자본과 지식으로 부를 축적해온 일부 시민들, 즉 부르주아 계급의 승리였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시민혁명을 시민혁명이 아니라 부르주아 혁명,

또는 자본가 혁명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우리가 프랑스 대혁명을 시민혁명이라고 부르게 되면

지금의 보편적 시민계급에 의한, 그리고 그들을 위한 혁명으로

오인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시민혁명이라는 명칭은 그러한 오해를 의도했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

결론적으로 프랑스 혁명을 통한 엘리트 민주주의의 시작,

그리고 자본가들의 부상을 통한 자본지배 경제체제의 시작은

대다수 국민들의 평화와 자유에 대한 정치적 열망을

경제적인 것으로 바꾸어 놓았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노동계층의 탄생과 함께

그들에 대한 무한 착취의 시대가 열렸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

시민혁명을 통해 사실상 절대적 권력을 잡게 된 자본가들은

그들의 이상, 즉 자본이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산업혁명을 일으키게 됩니다.

산업혁명을 통해 그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 조건이 있어야 했는데,

첫째는 저렴한 대량생산을 뒷받침해줄 저임금 노동자들,

둘째는 자신들의 물건을 내다팔 수 있는 광범위한 시장이었습니다.

후자는 식민지 개척을 통해 이루어냈다면

전자는 자국민들의 노예화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자본가들은 노동자 확보를 위해서

먼저 자국의 농업 시장을 개편했고

효율성을 내세운 농업 개편을 통해 수많은 소작농들이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어 예비 노동자로 전락하게 됩니다.

당장 굶어죽게 된 농민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물밀듯이 밀려들어왔고

자본가들은 이들을 위한 노동자 타운을 급조하여

인간 이하의 생활을 하도록 방치했으며,

각종 로비와 결탁을 통해서 이들이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실상 자발적 노예계급이 되도록 유도하였습니다.

당시 노동자들의 삶이 얼마나 고되고 비참했는지는

아동노동에 관련된 당시 영국 의회의 기록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어쨌든 계몽주의 이념에 의거하여 세상을 바꾸는 데 일조한

또는 시민혁명에 환호를 보냈던 대다수 시민들은

결국 자신의 손으로 세운 자본계급의 자본 논리에 의해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거나 저임금 노동자가 될 수밖에 없는

비참한 운명에 빠지게 되었던 것이지요.

물론 이 과정에서 도시의 소상공인 대부분이 역시

비참한 노동 계급으로의 추락을 경험하게 됩니다.

..

일단 자본가들의 착취 논리는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었으며

그 가운데 발생하는 이득의 일부를

정치, 금융, 법률, 교육 엘리트들에게 나누어 줌으로서

자신들의 왕국을 완벽하게 만들어 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과도한 노동으로 인한 노동자들의 사망문제가 표면화 되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노선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특히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되었던 아동노동에 대해 법적 제제를 받게 되었습니다.

자본가들은 이를 공립학교 시스템을 도입하여

상위 노동자 계층을 양성하는 방법으로 해결합니다.

또한 지나친 식민지 착취로 인해 식민지의 유효수요가 붕괴되고

유럽 국가들 간의 식민지 쟁탈전이 세계대전으로까지 번지면서

새로운 수요를 발생시킬 필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

[오염된 평등의 개념!]

..

19세기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20세기 들어

결국 보통선거와 평등선거의 쟁취를 통해 표면상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민주주의 이념의 현실화에 대해서 가장 우려했던 것은

19세기 유럽의 자유주의자들이었으며

이들은 민주주의의 허황된 이념이

결국 자본가들의 목줄을 죄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였지요.

하지만 그들의 우려는 현실화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정치적 민주화를 대중들에게 허용하기 이전에

이미 경제적 안전장치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이 경제적 안전장치는 바로 정치적 평등의 이념을

경제적 평등의 이념으로 바꾸어 놓은 신계몽주의 사상을 의미합니다.

이 신계몽주의 사상은 법 앞에 평등이라는 민주적 평등 개념을

Objects(물건들)앞의 평등사상으로 바꾸어 놓는데 성공했으며

소비를 통한 평등 구현이라는 새로운 이상을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에

집어넣는데 성공을 하였습니다.

‘누구나 노력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이념이

아메리카 드림을 통해 일부 실현되면서

전 세계 노동자들은 성공의 꿈을 꾸게 됩니다.

‘내가 열심히 일할수록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그들의 꿈은

‘너희들이 열심히 일할수록 내가 부자가 된다!’는

자본가들의 꿈과 동상이몽이었던 셈이지요.

..

대중의 소비에 의존한 내수의 개념은 20세기

민주주주의적 평등개념이 법제화되는 과정에서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으며

이는 노동자 계급이 소비의 주체로 떠오르게 되는 역사적 사건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19세기 이후 과학기술의 발달과

글로벌 무역을 통한 효율성 증대,

그리고 환경파괴와 자원착취를 통해 이익증대를 통해

18,19세기 가장 비참했던 노동자 계층의 삶의 질이 극적으로 향상됩니다.

이들의 삶이 노동 외적인 조건에 의해 향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본가들은 이를 자유로운 자본 활동의 긍정적 결과로 해석을 하고

대다수 노동자들은 이들의 해석에 동조를 합니다.

그 결과 20세기 들어 노동자 계층은 과거 생산을 책임졌던

지하의 노예계층에서 벗어나

생산과 소비를 동시에 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로

재평가 받게 되며 동시에 스스로 자긍심을 갖게 됩니다.

..

하지만 이는 자본주의 생리상

자본가들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한 전략적 방편의 결과이지

결코 노동자들의 이익을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위대한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지적했던 바,

물건의 소유를 통한 만족은 본래성의 추구와 관련이 없는

자본주의가 선사하는 허황된 자기만족에 불과하기 때문이며,

또한 노동자 계급이 추구한 물건을 통한 평등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거짓 이데올로기로

소비를 통해 자신의 부를 소진하고

결과적으로 부자들의 이득을 위해 봉사하는

자기 기만적인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

자본가들은 소비를 촉진시키기 위해

자연스러운 모든 것을 소비와 거래의 대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덕분에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은 과거 순수했던 만남과 사랑조차도

돈을 주고 거래하며 소비하는 세상 속에 살게 된 것입니다.

..

결국 현대의 노동자들은 소비를 통해서 자아실현을 추구합니다.

이러한 소비행태는 자본가의 이익으로 구체화 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은 노동 계약의 더욱 종속되게 만듦으로서

자본가들의 입지를 넓혀주게 됩니다.

소비를 통해 자아를 실현하는 노동자들은

지속적인 소비를 위해 노동에 더욱 매진해야하며

사용주의 무리한 요구 또한 수용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자본가들의 부채 촉진을 통해 더욱 심화됩니다.

빚을 낸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에 더욱 종속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며

사용주의 무리한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부채 자본주의가 자리를 잡은 이후

노동자들이 가장 두려워하게 된 것이 실직임은

이상할 게 하나도 없습니다.

노동자들은 이제 과거처럼 노동에서 해방되고자 노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스스로 과도한 노동을 짊어짐으로서 궁극적으로 노동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이율배반적인 선택을 취하게 됩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과거 한 CF 속의 외침은

후기 자본주의 노동자의 자기평가 방식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열심히 노동하지 않은 노동자에게는 여가가 허용되지 않습니다.

아니 노동자 스스로 허용할 수 없습니다.

오직 열심히 노동한 노동자만이 여가를 즐길 수 있으며

그 여가는 철저한 소비의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노동자들의 여가 소비를 위해

자본가들은 친절하게도 다양한 문화 상품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 같은 후기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자본주의 비판은

이러한 본래성과 가치를 상실한 자본주의 문화 상품의 비판에서 시작됩니다.

현대의 노동자들은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이 지적했던

소비의 메트릭스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

[유일한 탈출구를 막다!]

..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완벽한 노예화를 위한 추가적 조치를 취하는데

바로 금환본위제의 과거 화폐를 폐기시키고

순수한 신용화폐로 탈바꿈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 노동자 계급의 화폐를 통한,

즉 저축을 통한 부의 축적 통로를 원천 차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여 노동자들의 소비를 더욱 촉진시키는

이중의 이득을 얻을 수 있습니다.

..

개인이 부를 축적하여 후대에 전달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화폐의 축적을 통해 부를 늘리는 방법,

두 번째는 토지의 확보를 통해 부를 늘리는 방법,

세 번째는 보석, 예술품 등의 귀중품을 통해 부를 늘리는 방법입니다.

문제는 두 번째와 세 번째 방법은 노동자들이 현실적으로 추구할 수 없는 방법이라는 데 있습니다.

사실 노동자 계급이 부를 축적하는 유일한 방법은 첫 번째 방법 밖에 없습니다.

화폐를 통한 부의 축적이야 말로 낮은 계층의 사람들이

상위 계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현재의 신용화폐 시스템 안에서는

저축을 하는 개인은 결코 부를 축적할 수 없습니다.

자본가들이 화폐대신 제시한 부의 축적 방법은

주식시장과 같은 투기 시장입니다.

아예 대놓고 복권과 도박 산업을 장려합니다.

결국 가장 기본적인 부의 축적 통로가 막히면서

각종 편법이 판을 치게 되고

파생상품이 무분별하게 늘어나면서

경제적 안정성이 훼손되게 된 것이죠.

힘들게 번 돈을 들고 투기 시장으로 달려가는 노동자들 덕에

자본가들은 손도 대지 않고 코를 풀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노동자들의 근원적인 부의 축적은 불가능하게 되었고

이를 알아차린 상위 노동자 계급들은 자식의 교육에 목숨을 걸게 됩니다.

물론 자본가들은 교육을 통한 신분상승의 드라마를 상영함과 동시에

교육산업을 통해 이들의 이익을 거둬갑니다.

결국 금본위제에서 벗어나 부가 확장되고

삶의 질이 높아진 게 아니라

노동자들의 부의 축적 통로가 사라지고

빈부의 격차가 점점 더 심해지게 된 것이지요.

..

과거의 진짜 돈은 저축을 통한 부의 증식이 가능했지만

지금의 돈은 투자를 통해 위험을 감수하거나

어차피 소비할 것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돈을 소비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기꺼이 부채를 짊어지고자 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어차피 돈 놓고 돈 먹기 식의 도박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되었으니까요.

어찌어찌하다 보니 빚을 내는 것도 능력인 황당한 세상이 된 겁니다.

..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의 저자 기요사키는

금융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기요사키는 사람들이 부자로 살지 못하는 이유가

공부를 못해서, 또는 좋은 직업을 갖지 못해서가 아니라

돈의 흐름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노동자 계급의 자녀들이

공립학교에서 돈의 흐름이나 시장의 원리에 대해서

배울 리가 없다는 점이지요.

결국 후기 산업시대를 정의하는 ‘지식’의 소유는

이 사회의 계급 구조 속에서 일부 계층에 국한되어 버립니다.

..

기요사키는 최근 저서에서 앞으로 10년간

돈의 배반이 시작될 것이라고 예견하며

금과 은으로 대비하라고 말합니다.

그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지만

기요사키의 주장을 단지 음모론으로 치부할게 아니라

신용화폐의 시대가 이미 저물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로인해 당장의 이익이 사라지고 손해를 볼지는 모르겠지만,

거품이 사라지고 건강한 화폐 시스템이 정착되는 길이

경제적 평등 뿐만 아니라 정치적 평등을 이루고

누구나 노력하면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공정한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만약 우리시대에 현재의 신용화폐가 그 생명을 다하고

노동자들의 부의 축적을 가능케 하는 믿을 수 있는 화폐가 탄생하지 않는다면

노동자 계급의 미래는 앞으로도 밝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노동자의 자녀들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성공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

오늘 잠시 바람을 쐬러 밖에 나갔습니다.

주머니에 손을 넣었더니 동전 하나가 집히더군요.

꺼내보니 1979년도 100원짜리 동전이었습니다.

당시 기억에 핫도그 하나가 50원이었으니

지금 돈으로 따지면 적어도 3,000원 정도의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과거에 3,000원의 가치가 있던 동전이 20년이 더 지난 지금도

여전히 액면가 그대로의 가치만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쉽게 돈의 가치가 그만큼 떨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희생된 노동자들의 피와 땀도 생각해야 될 것입니다.

79년도 100원이 갖고 있던 가치 중 사라진 2,900원은

공중 분해된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손으로 옮겨간 것입니다.

최소한 노동자의 손으로 간 것 같지는 않군요..

..

자본주의의 가장 큰 특징은 ‘은밀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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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friend | 작성시간 12.09.06 깔끔한 정리 감사합니다...
  • 작성자sabai | 작성시간 12.09.06 감사합니다!
  • 작성자아하그렇구나(대전) | 작성시간 12.09.06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역시 거시적으로 보면 그렇군요. 갑자기 비빔밥님의 직업이 궁금해지는군요
  • 답댓글 작성자비빔밥(경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09.06 별거없습니다. 과거 직장 생활할 때는 기업 컨설팅일 했구요, 지금은 복잡한 서울 생활이 싫어서 다 때려치고 지방에서 직원 10명도 안되는 조그만 자영업하며 근근히 살고 있습니다..ㅋㅋ
  • 작성자논산댁 | 작성시간 12.09.06 은밀함... 은밀함... 비빔밥님 ...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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