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그래도 나이는 나이대로 먹는다.

작성자시골버스|작성시간09.10.10|조회수346 목록 댓글 2

종종 그런 말을 들어왔다.

"나이값을 하라."거나 "나이값도 못한다."거나 "하는 짓이 어린애 같다."는 말.

비아냥과 빈정거림과 나무람, 그리고 꾸지람도 들어있다.

한편으로는 세상물정을 모르고 사회경험도 없고 세상사는 요령도 모른다는 폄훼도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옳다는 생각을 하고 늘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세상을 닳을대로 닳도록 살아온 똑똑한 사람들이 볼 때

내가 살아가는 모습은 바닷가에서 모래장난이나 하는,

그러다가 바닷물에 풍덩빠져 죽을 지도 모르는 딱한 모습일 것이다.

 

태생이 그렇다면 도무지 어떻게 할 요령도 방도도 없다.

그렇게 살도록 내버려 두는 수밖에...

 

지금도 종종 그런 말을 듣는다. "나이가 몇이세요?"

심지어는 "정신연령이 어떻게 되세요?"

 

그럴 때마다 이렇게 대답한다.

"제 나이는 30대구요, 정신연령은 18입니다."

 

에이~ 거짓말!!

나이 30이 그렇게 주름살이 많고 머리가 하얘요?

"주름살이 많은 건 어려서 고생을 하도 해서 삭아서 그런거구요,

머리가 하얀건 공부를 너무 많이 했더니 머리에 뜨겁게 열이나서

머리카락이 탄겁니다."

 

그러고는 웃고만다.

 

나는 거짓말을 하더라도 들통날 거짓말을 하기에

사람들은 내가 거짓말을 하면 금방 안다.

 

한번은 이런 적이 있다.

연락이 오래 전에 끊어진 친구인데 대학에서 근무 중에

화학약품 실험을 하다가 실험관이 폭발하여 얼굴이 날아간 친구이다. 

 

그친구.

결혼 전에도 꽤나 여자가 바뀌더니 결혼 후에도 여전했다.

부인은 신방과출신인데 성깔이 대단했고 남편의 과거를 용서못했다.

자기는 첫남자라면서~

 

그런데 남편이 허구헌날 그러고 다니니 부부싸움도 치열했다.

살림살이 부서지는 건 애깃거리도 아니고 방문짝이 덜렁덜렁,

장롱문짝은 덜컹덜컹, 집유리창은 테이프로 땜빵, 방구들은 들썩들썩.

 

하루는 친구가 전화를 했다.

지난 밤에 뭔 짓을 하느라 집에 못들어갔는데

나와같이 술을 마시느라 밤이 늦기도 하고 너무 취해서 

우리집에서 잤노라고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당시에 혼자살았다.)

 

그러마 하고선 전화를 끊으니 친구부인에게서 전화가 여지없이 왔다.

"여보세요?  시골버스님이시죠?"

"네~ 그런대유~ 누구신대유?"

"네~ 전 최 아무개씨 부인이예요."
"아~ 유진이 엄니요?  왠일이신대요?"

"다름이 아니라, 유진이 아빠가 지난 밤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혹시, 어젯밤에 유진이 아빠와 같이 계셨나요?"

"아니요! 같이 안있~~ 아니!아니! 같이 있었는데요."

"그래요? 그래도 전화한통해줄줄 알았더니 전화가 없어서요.

그러면 어제 같이 술드셨나요?"

"그렇죠, 둘이서 비디오 보다가 술을 마셨죠."

"비디오요? 무슨 비디오요?"

"저기 왜, 이미숙 나오는 거요. 아니! 아니! 원미경 나오는 거요. 맞나?"

"어머나~ 시골버스님도 그런 야한 비디오 보세요?"

"아뇨~ 안보는데 어제 유진이 아빠가 같이 보자고 해서~."

"어머나~ 시골버스님도 거짓말이 어색하시다.

우리 유진이 아빠는 유치하게 그런 비디오 안봐요. 뽈노 보죠.

그것도 일본꺼... 모르셨어요?"

"아는데요, 비디오가게에 갔더니 일본뽈노는 전부 나갔다고 해서..."

"어머나! 비됴가게에서 일본뽈노를 빌려요? 비됴가게에 뽈노가 있어요? 그건 불법인데..."

"아~ 그래요? 없나? 암튼 비됴봤어요."

"네~ 그랬군요.  그럼 두분이서 술도 마시고 비됴도 보았군요."

"그렇죠. 둘이서..."

"여자들이랑 같이 술마신거 아녜요? "

"아뇨~ 여자들은요.  아시면서..."

 

이때 친구부인이 갑자기 목소리를 무겁게 깔더니 한마디 내친다.

"시골버스님.  시골버스님은 거짓말같은 거 안하시죠. 할줄도 모르고요, 그렇죠?"

"그야 그렇죠."

"제가 다른 사람들 말은 안믿어도 시골버스님 말은 믿는다는 거 잘 아시죠?"

"그렇죠.  그렇죠. 제가 유진이 어머니께 거짓말한 적이 있나요?"

"그러면 한번만 더 여쭈어 볼께요. 어제 유진이 아빠랑 술안마셨죠? 그렇죠?"

"네~ 술 안마셨어요."

"같이 계시지도 않았죠?"

"네. 저는 그냥 혼자 잤어요."

"잘 알았어요. 고마와요, 사실대로 말씀해주셔서..."

 

그다음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 지 말씀드리지 않아도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리고 유진이 아빠란 친구가 나를 얼마나 원망했는 지도 짐작할 것이다.

"내 다시는 시골버스하고 상대를 안햇!!"

하지만, 어쩌겠냐고~ 태생이 그런 걸...

 

한가지 더 이야기 하면 이 글읽는 분들이 거품물고 뒤집어 질 것이다. 

지금은 꽤 잘나가는 친구이다.  하루는 이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시골버스니? 나다."(이 친구는 항상 그런다. "나다.")

"엉?  왠일인데?"

"응~ 나 지금 나이트클럽에 와있는데 혼자거든? 지금 올래?"

"왠 나이트? 아림이 엄마는?"

"어. 오늘 처가에 갔어. 부부싸움을 했거든..."

"그러면 데리고 와야지, 나이트에 가면 어떻게해."

"알아서 올테지, 뭐. 나도 오늘밤엔 바람피울거야."

 

순간, 한 가정이 무너진다는 생각과 가정을 지켜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친구가 있다는 나이트클럽에 달려갔다.

이 친구, 생긴 것과는 다르게 멀쩡한 여자하나 달고 술을 마시고 있고

이여자도 술을 얼마나 마셨는 지 혀꼬부라진 소리를 해댄다.

"오빠~ 오늘밤은 나랑 지내는거야?

잘됐네, 혼자지내느라 외로웠는데..."

 

업어가도 모를정도로 술에 취한 여자는 20대 후반이고 직장여성이다.

친구가 나를 소개시켜주니 그러냐며 안길려고 하기에 내가 홱! 뿌리쳤다.

어딜 감히!!

 

그리고는 일갈대성으로 나무랐다.

"이봐요! 아가씨!

여기 이친구는 딸 둘이 있고 아내도 있는 가장이야!

남의 가정을 무너뜨릴 거야?

뭐야, 이거! 시집도 안간여자가 밤늦게 술이나 퍼마시고, 엉?

부모님이 아시면 가만두시겠어? 빨리 집에 가!"

그랬더니 아 아가씨는 오빠가 좋아서 그런건데 몰라준다며

소파에 얼굴을 묻더니 엉엉 울어댄다.

(내가 때린 것도 아닌데 왜 우는 지 이해를 통 못했다.)

 

그때가 1992년도 이니 결혼하기 6년 전이다.

친구가 나이트에서 여자를 꼬셔서 바람피우겠다는 말에

큰일났다며 친구를 말리러 나이트에 가서 여자를 혼내주고

더 놀고 가겠다는 친구를 들쳐업고 집으로 데리고 와서

잠을 재웠다.

 

그다음날 친구가 쌩뚱맞게 그런다.

"시골버스야. 차비를 줄테니까, 아림이 엄마좀 데려올래?"

"야~ 임마. 그건 니가해야지, 왜 나덜러 데려오라냐?

내가 아림이 엄마꼬셔서 도망가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면 더욱 고맙지, 친구야.

하지만, 너는 그럴 친구가 아니고 너는 믿을 수 있으니까 그렇지."

"그래도 그렇지, 내가 어떻게 데리고 오냐?  니가 데리고 와야 보기좋지."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정확하게 나이가 35살이었다.)만해도 여전히 순수했다.

오죽하면 유진이 아빠란 친구와 술을 마셨다니 친구아내가 믿지도 않았고

아림이 아빠란 친구가 자기아내를 처가에서 데려와 달라고 했을까?

 

지금이야 종종 맥주도 마시고 데낄라도 마시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술과 여자에 관한한  청정구역이었고 정신연력이 상당히 낮았다.

그런 걸 좋게 표현해서 "순수하다."고 하는 것이지만,

뒷담화에서는 늘 조롱과 놀림과 비아냥의 대상이었다.

바보스럽다고.

지금이야 결혼해서 아들 딸낳고 사니 반청정구역이지만...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서 인지 세상보는 눈만큼은 아이가 아니다.

그동안 보고듣고겪으면서 사회를 보는 눈과 판단하는 머리가 발달한 모양이다.

옳고그름에 대한 사고력, 해야할 것과 해서는 안될 것에 대한 분별력.

그리고 상대방에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떻게 행동을 할 것인가에 대한 예지력.

 

종종,

주변에서 나이가 많고 무기력하고 무능력해보이는 연장자들을 본다.

 

중국인이던, 한국인이던, 그들의 삶이 어떤 것이었던지 간에

삶의 과정을 살아오면서 겉에 나타나지 않은 삶의 경력과 생각이

그들의 묵언 속에 나타나있음을 안다.

 

세월의 바람은 단지 머릿결을 스쳐지나가지만 않고

뇌신경세포와 연결된 시냅스를 따라 편두엽에 연결된 송과선에 축적되지 않을까?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는 '송과선(松果腺, pineal gland)을 정신과 육체의 집합장소라고 했는데

이곳에서 정신기능을 활발하게 도와주는 멜라토닌이란 물질이 생성되어 노화방지를 해준다고 한다.

 

노화방지에는 고스톱이 좋다고 하는데...

아! 치매예방에 좋다던가?

 

어쨌던 간에 살아온 세월을 곱씹어보면

머릿 속에는 바보같고 어린애같고 유치한 생각만 있는 것도 아니고

그간의 행동이 어린애같고 유치하고 무기력했던 것만도 아니다.

단시 세상의 검은물과 흙탕물이 들지 않았을 뿐이다.

 

나이가 먹어고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이 어린 것은 아니다.

단지 세상의 혼탁한 때와 먼지가 묻지 않았을 뿐이다.

혹은 덜 묻었던 지...

 

그렇지만, 세월이 흘러가면

그만치 나이는 나이대로 먹는다.

주변을 정리하려는 마음이 생겨서 그러는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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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지원,유겸사랑 | 작성시간 09.11.17 에휴..글을 읽어보니..저랑 비슷한것 같으시네여..늘 신랑이..저보고 뭘해도..불안하다하네여..모든일에..서툴러서여..사람보는 눈도 그렇고요..신랑이..일때문에..먼저 작년에..상해에 갔는데..뭘해도 불안하다고 하는 사람보고..저랑 애들만 놓아두고가서 사람보는 눈이 조금 생긴것같아여..신랑이 많이 챙겨주는 편이라..신랑이..무슨말을 해도..이해못한부분이 많았는데.. 신랑옆자리가 크기도 하면서 많은 걸 배우게 된 계기가 된것같아여..나를 걱정해주는 지인들과..때로는 아닌부분들도..요 그리고..다른사람이 못가지부분을 제가 갖고 있는부분을 이용하려하는느낌을 받을때여..신랑은 제가 늘 귀가 얇다고 걱정해여...
  • 작성자지원,유겸사랑 | 작성시간 09.11.17 사실인정해여..나이가 33~34인데 다되어 가는데도..말이죠..그렇지만..좋은일 나쁜일 겪으면서..느낀점..식구가 제일이라는거..아니라고 생각되는부분은 조금씩 모퉁이에 갖다놓게되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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