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아이들을 뒤에 두고 오다.

작성자시골버스|작성시간10.04.09|조회수566 목록 댓글 10

지난 주 지난 주말 청명절 연휴가 끼어 2~3일 가족들과 시간을 낼 수 있었다.

토요일 오전 비행기를 타고 공항에 도착하니 아침 9시이다. 

아이들에게 선물 사다 줄 시간없이 집으로 날랐다. 번개택시를 타고...

 

악랄한 심통을 부리는 힘있는 자의 횡포에 밀려 직장을 옮겨야했다.

전에 근무하던 학교의 학교장이 여기저기로 어지간히 취업을 방해했나 보다.

 

직장은 구해야하겠고 취업비자기간은 끝나가고 생활비는 떨어지고...

무작위로 수십여군데 보낸 서류 중에 한 군데 연락이 왔다.

중국실험학교 국제반인데 미국유학 준비반 학생들에게 SAT를 가르쳐 달라고...

 

중국학교에 근무하면 더이상 방해하는 자가 없으려니...

 하는 마음에 천리를 마다않고 날아갔다. 시골비행기를 타고...

시골버스는 너무 느리니까...

 

중국인교장과 중국인 영어교사들과 모사범대학영어과 교수와

중국인학부모들과 중국학교 중고등학생들 앞에서

2시간동안 영어로 시범강의를 했다.

 

그들은 그랬다.

'한국인이 중국학생들에게 무슨 영어를 가르쳐?

우리가 왜 한국인에게 영어를 배워야해?

우리학교에도 영어원어민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랬을테지.  아니꼬왔을테지. 나라도 그랬을텐데...

 

나름 열성을 다하고 나름 진땀을 빼가며

어설픈 영어발음으로 시강을 마쳤다.

속으로 그랬다.

잘해야 할텐데.  그래야 우리가족 밥벌어 먹고 살텐데...

거부감을 표출하는 저들에게라도 인정받아야 할텐데

그리고 합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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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여만에 보는 얼굴이 얼마나 반가웠을까? 

아이들은 아빠가 얼마나 보고싶었던 것일까?

초등학교 5학년인 딸은 큰아이라서 그런 지 행동이 어른스러울 때도 있으나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은 연신 아빠를 부르며 목덜미에 매달린다.

무척 보고싶었다고...

 

이번달 말, 그리고 다음 달 말에 더 보고 이제는 다같이 이사하는 거야...

라며 가족들에게 말을 하고서도 목이 메인다.

어느 한 곳에 정들기 싫어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때문이다.

정떼기가 싫어서...

 

정떼는 일은 단장(斷腸)의 슬픔과도 같다. 

아이들을 뒤로 하고 아내에게 모든 것을 내맡긴 채

집은 떠나는 발길이 그렇게 무거울 수가 없다.

아내가 뭇미더워서가 아니라 가족들을 두고오는 무거움 때문에...

 

이런 이야기가 생각난다.

 

옛날 진나라 때 화온이란 사람이 배를 타고 촉나라로 가던 중 장강 삼협을 지날 때의 일이다. 화온을 따르던 시종 한 사람이 숲에 들어갔는데 원숭이 새끼가 앉아 있었다. 원숭이 새끼가 귀여워 덥석 안고 배로 들어왔다. 그것을 어미 원숭이가 보더니, 따라와 강물로 뛰어들지 못하고 애를 태우며 슬프게 울었다. 배는 그냥 떠나버렸다. 원숭이 어미가 울부짖으며 험한 강가를 기를 쓰고 배를 따라왔다. 때로는 아슬아슬한 바위 벼랑을 기어오르며 험한 숲을 헤치며 강기슭을 따라 울부짖으며 계속 따라왔다. 백리도 더 가서 배가 강기슭에 닿자마자, 어미 원숭이가 배로 뛰어 들었다. 뛰어들더니 새끼 원숭이를 끼어 안고 금방 죽었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고 죽은 어미 원숭이의  배를 가르니, 창자가 여러 도막으로 끊어져 있었다. 너무 애를 태워 창자가 끊어졌다.

 

이것이 단장(斷腸)의 슬픔이란 말의 유래다.

 

고속전철을 타고오는 길에 아내와 아이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

내가 가족들에게 못할 짓을 한 것만 같은,

그래서 천형(天刑)의 벌을 받아 귀양을 떠나는 죄인인양 생각들었다.

 

차라리, 돈을 적게 받는 일을 하더라도 가족과 지낼 걸 그랬나?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자며 아내를 위로하여도 마음이 개운치를 않다.

아내도 속이 상한 지 사람들에게 당하고 지낸 것이 너무도 억울하다며

어린아이처럼 울어대지만, 삵쾡이같은 인간들이 뒤섞인 중국에서

내가 그들을 내 손으로 아작낼 수 없으니 어쩌랴~~

 

아직 끝난 인생도 아닌데 그렇게 슬퍼할 이유가 없다.

다시 일어서면 되는 일이고 끝까지 버티면 종단간에 결말이 올테지...

그렇게 살아온 인생이고 어느인생에서 마냥 잔치판 벌어지겠는가?

 

금강경(金剛經)에서 이르기를  사람의 삶의 과정에서 저지른 행업(行業)은

당대에 아니면 후대에 업장소멸(業障掃滅)해야 하는 법이라 했고

사람이 자기의 행한 행위대로 결과를 얻는다고 성경에서도 일침을 놓았으니

굳이 내가 힘으로 누르지 않더라도 자기행위의 결과를 당하지 않겠는가?

 

길거리에 널린 똥덩어리가 냄새난다고 발로차면 내 발만 더러워 질테니

어느날 밤 쏟아지는 폭우에 씻겨나가기를 기대하고 기다림도

나의 인격을 쌓는 데 좋은 배움이 되리라.

 

일전에 어느 지인이 내게 말하기를,

'3명이나 되는 망할 놈의 교육자라는 놈들이 한국에서 성폭행을 저지르고서

사회봉사명령이라는 명목으로 중국에 온 적이 있다잖소.

그중 한놈이 내 후배요.

 

그후로 한국에서 사람들이 왔다하면 색안경을 쓰고 보기로 했소.

그런데 형씨는 그 나이에 애들 데리고 한국에서 살 일이지

쓸데없이 중국엔 왜 왔소? 혹시 도망친 거 아니오?"

 

그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 지 확인하지 않았고 그럴 가치도 없고

사실의 유무를 떠나 사람사는 일에 무슨 일인들 없겠냐? 해도

순간 불끈하는 분노가 없지 않았지만, 

세상을 아름답게 보려고 노력하는 일이 건강에 도움이 될테니

털털하게 웃으면서 꼴보기 인간들이 많아서 그랬노라고 대답하고서

그러는 댁은 왜 왔는데? 라고 물어보았으나

피차가 사돈 남말하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들리는 말들이 죄다가 우울하고 죽을 지경이라는 울상만 짓고 사는

막막하고 절박한 현실 앞에서 남의 이야기 할 것도 없고

내 궁핍한 사정도 말할 필요도 없어져 버렸다.

 

땟거리 없이 굶고 들어앉은 추운 겨울날,

얼음장같은 냉 구들장에 하얀 입김을 호호 불며

벌겋에 동상들이 가렵고 따가운 손등을 벅벅 긁어가며

살아왔던 궁핍한 과거를 들먹이는 일만큼

궁상떠는 일도 없으리라.

 

하물며 다들 겪는 고달픈 삶과 당하는 슬픔을

그것이 무슨 살떨리게 추억으로 남기고픈 이야깃거리가 아닌 바에야

남씹는 일이 즐거울리가 만무하다. 자기일에나 충실할 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이들을 아내에게 내맡긴 채 가족들 떠나는 일이야

탱탱한 눈알로 살아있어도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일 찐대...

 

내 살같은 자식들이 엄한 바다에 빠져 죽임을 당한 부모들은

억장이 무너지는 아픔이 아니라 장(腸)이 끊어지는 슬픔이었을텐데

기껏 며칠 못보는 일로 이렇게 마음아파 하는 얄팍한 감성과

팍팍한 인심이 몹시 부끄럽다.

 

생떼같은 자식들이 부모님을 부르며 죽어갔을 일을 생각하면...

그러기에 살아남은 자는 늘 미안함을 가져야 하겠지.

그들의 삶을 대신 살아갈 수 없지만,

그들의 죽음을 수치스럽지 않도록...

 

시커먼 바닷물에 잃어버린  죄없이 아이를 빠트려 죽인 부모들의  슬픔과

죄없이 죽은 사랑하는 자녀들의 비극 앞에서

군인의 군인다운 죽음이 아닌 평범한 한 부모의 자녀로서 죽음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올바르게 살지 못함에 늘 죄책감을 느껴야 할 지도 모른다.

 

군인으로서 죽었대도 죽음이 자랑스럽지만은 않을텐데

시커멓고 차가운 바닷물 밑바닥에서 부모님과 가족들을

그토록 간절하게 외쳐불렀을 명을 달리한 그들에게

이렇게 살아있는 우리의 모습이 부끄럽다.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그대들이여,

우리들만 이렇게 살아있어 정말 미안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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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창고예욤 | 작성시간 10.04.09 에구... 오늘 이래 저래 짠~ 해지네....원....
    잘 읽었습니다.
  • 작성자eoqkrdlstod | 작성시간 10.04.10 저도 잘 읽었습니다..... 부모가 되어서야 부모의 마음을 안다더니...갑자기 제 부모님이 그리워지는 밤이 됩니다.....
  • 작성자얼얼얼 | 작성시간 10.04.10 잘 읽었습니다. 느낌이 오는 글 올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 좋은 일들만 이어지길 바라겠습니다.
  • 작성자익숙한 골퍼 | 작성시간 10.04.12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잖아요...
  • 작성자별보는 조향사 | 작성시간 10.04.30 힘내십시요. 세상이 그렇더라도 또 다른 세상이 늘 존재합니다. 홧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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