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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ger] 체첸항쟁사

코카서스의 늑대들 : 체첸 - 27. 외로운 늑대

작성자jager|작성시간09.03.13|조회수2,680 목록 댓글 16

 

 

 

 

 

 

살만 라두예프와 조하르 두다예프

 

 


  "늑대들이 간다!"

 

 1996년 1월 9일, '외로운 늑대' 살만 라두예프가 인솔하는 200명이 넘는 체첸군은 다게스탄 키즐레이의 러시아 공군 기지를 습격하였다. 목표는 기지 내의 헬기 폭파, 군수 공장의 파괴, 러시아 내무군 기지 습격이었다. 군사기지를 노린 습격이었기 때문에 체첸인들은 기관총, 박격포, 대전차 무기, 화염방사기 등을 지참하여 러시아군 중장비를 상대할 대비를 하였다. 최소한 10일 동안 키즐레이를 점거하여 국제 사회의 이목을 끌고, 다게스탄의 봉기도 획책할 생각이었다.

 

 

 

 

살만 라두예프


   공격은 오후 2시 무렵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지만, 라두예프는 작전 정보가 미리 새나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러시아군은 대비태세를 갖추고 기다리고 있었으며, 헬기 기지에는 단 2대의 헬기만이 남아 있었다. 투입된 체첸군 선발대가 이 헬기들을 파괴했지만, 다른 주요 목적지에는 접근 조차 할 수 없었다. 체첸의 늑대들은 수세에 몰렸다.

   다급한 나머지 라두예프는 모든 군사 목표를 포기하고 4층 건물의 키즐레이 병원으로 집결하도록 하였다. 체첸군은 4만이 넘는 키즐레이의 주민들을 최대한 많이 끌어모은 뒤에 병원 건물을 점거하여 농성에 들어갔다. 인질들의 수는 최소 2천, 최대 3천 4백이라는 지난 번의 인질극 규모를 뛰어넘는 엄청난 숫자였다. 

 

   살만 라두예프는 병원 건물의 모든 통로에 지뢰를 매설하도록 한 뒤, 체첸에서 러시아군이 철수하라고 요구하였다. 러시아군이 병원을 습격할 수 없도록 "만약 러시아의 공격으로 체첸인 1명이 죽으면, 인질 15명을 죽이겠다."고 공언하였다. 거기에 러시아군의 통신망을 차단하여 초기의 효과적인 대처를 방해했으며, 인근 건물에 저격수를 배치하여 병원으로 통하는 테레크 강 위의 다리를 봉쇄하였다.

 

 

 

 

무전하는 살만 라두예프


  라두예프의 공언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내무군 장군 아나톨리 쿨리코프와 연방 보안국 (FSB) 수장 미하일 바르수코프는 병원 점거를 시도하였다. FSB 산하 특수부대들이 병원을 포위한 채 사격을 가했고, 몇번 진입을 시도하였지만 체첸군의 방어를 뚫지 못했다. 라두예프는 인질 중의 러시아 경찰 1명을 사살하여 자신이 허풍을 떠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였다. 병원 점거와 농성 과정에서 인질 24명이 죽었다.

 

   결국 러시아는 협상을 선택하였고, 다게스탄 현지 아바르족의 지방 의원도 몇명 동석하였다.  협상이 지속되면서 살만 라두예프는 점차 '러시아 군의 완전 철수'라는 요구에서 자신들의 체첸으로의 안전 통로 확보 쪽으로 무게를 두었다. 하루가 지난 1996년 1월 10일, 다게스탄의 중재를 통한 양자의 협상은 타결을 보게 되었다. 체첸인들의 안전한 귀환 약속과 함께, 160명을 제외한 나머지 인질들은 모두 석방되었다. 11대의 버스와 2대의 트럭이 제공되었고 남은 인질들과 함께 체첸인들은 귀환길에 올랐다.

 

 


 

 

 

버스를 타고 돌아가는 체첸인들

 


   체첸인들은 이걸로 상황은 모두 종료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생각은 차량 행렬이 체첸 국경에 도착하면서 깨졌다. 도로는 봉쇄되었으며 인질을 풀어줄 것을 요구하였다. 러시아군에게 부데노프스키의 굴욕은 한번으로 족했던 것이다.  살만 라두예프는 자신들의 생명줄인 인질을 석방하라는 요구를 당연히 거절하였고, 곧 검문소의 러시아군과 상공에 있던 러시아 헬기의 폭격이 시작되었다.

 

   버스에 잠자고 있던 체첸인들은 즉각 유리창을 깨버린 뒤 응사하였다. 하지만 러시아군은 단단히 벼르고 있었고, 특히 상공에서 내리 꽂히는 공격에 대처할 수가 없었다. 동행하고 있던 러시아 OMON 부대원 37명을 전부 생포하여 인질에 포함시키고, 체첸인들은 훈자르 파샤 이스라필로프의 지휘 하에 가까운 마을 페르보마이스코예로 대피하였다.  (살만 라두예프는 첫번째 공군기지 습격이 실패한 뒤로 이 시점에서 지휘권을 이스라필로프에게 넘겨줘야 했다.)

 

 

 

 

 

훈자르 파샤 이스라필로프. 압하지아 전쟁에 참전했으며, 체첸 동부전선 사령관이었다.

 


   페르보마이스코예에 들어선 체첸인들은 인질들이 있음에도 공격한 러시아군에 대해 의아해 하였다. 일단 마을에 들어섰지만 그들이 러시아 공격에 대비해야 할 지 망설이고 있었다. 그래서 서로 왈가왈부하는 동안, 하늘에서 갑자기 비둘기 두마리가 내려와 땅을 쪼았다고 한다. 이를 하나의 계시로 받아들인 그들은 인질들까지 동원하여 참호를 팠고, 결과적으로 그들의 목숨을 구했다.

 

 

 

 

 

체첸군이 구축한 참호

 

  마을을 점거한 지 5일 동안 러시아와 체첸인들은 서로 인질 석방과 안전 보장을 요구하며 한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중간의 1월 12일에 이스마일로프는 인질 중의 여자와 아이들은 석방하였다. 거기에 추가로 요구하기를 만약에 러시아의 주요 정치인과 장성급 4명이 자진해서 인질이 되면 나머지 모두를 석방하겠다고 하였다. 러시아 야블로프 당수 그리고리 야블린스키와 전직 총리 이고르 가이다르, 전직 러시아군 상장 보리스 그로모프, 러시아 안전 보장 이사회의 중장 알렉산더 레베드였다. 앞의 두명은 동의했지만 뒤의 두명은 거절하였다.

 

  1996년 1월 15일, 러시아 FSB 대변인은 살만 라두예프가 인질을 처형하기 시작했으며, 러시아군의 공격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인질 살해는 잘못된 정보였지만, 마을 주변을 포위한 2400명의 FSB 산하의 알파 부대, 특수 신속 타격대 (SOBR), 비샤츠 기타 내무군 특수부대가 헬기와 다연장 로켓포의 엄호 속에서 공격을 시작했다.  체첸군은 200명이 약간 넘는 수준으로,  인질들까지 딸린 채로 이 공세에 대처해야 했다.

 

 

 

 

 

러시아군의 로켓포 사격

 

  마을은 탁트인 개활지로 러시아의 중화기를 피하기는 어려웠지만, 체첸 측에도 몇가지 이점이 있었다. 우선 마을 주변이 진흙탕이기 때문에 전면적인 공세는 어려웠다. 이용가능한 몇 개 도로를 통해 5,6 군데로 공격을 가해야 했다. 또한 주변에 마을을 조망하는 언덕이 없었기 때문에 러시아가 체첸군의 진지 배치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거기에 집과 집을 연결하도록 참호를 파고, 후방에 벙커를 만들어서 그쪽에 갖고 있는 중화기와 탄약을 비축하도록 하였다. 이 벙커 구축은 밤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러시아군은 위치를 알 수 없었다.


   15일의 러시아군 공세는 체첸군의 참호를 돌파하지 못하고 실패로 끝났다. 체첸인들은 키즐레이에서 노획한 러시아군의 대전차무기와 탄약들을 이용해서 간신히 버텨냈다. 그 뒤로 3일 동안 러시아군은 배열해 놓은 다연장 로켓포와 헬기를 통해 포격을 가하고 여러번 진지 점거를 시도했지만 실패하였다. 체첸군은 한겨울의 물이 고여 있는 참호 속에서 허기와 피로 속에서도 전선을 유지하고 있었다.

 

 

 

 

 

마을 주변의 체첸군

 


   러시아 내무부는 사태가 장기화됨에 따라 인내가 한계에 도달했다. FSB 대변인 알렉산더 미하일로브 장군은 1996년 1월 17일, 기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브리핑을 하였다.

 

      
              "우리가 아는 한 더 이상 살아 있는 인질은 없습니다."

 

 

  기자들이 아직 남아 있는 인질이 있으며 이에 대한 구출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냐고 몇차례나 질문했지만, 대변인은 저 입장에서 한치의 변화가 없었다. 페르보마이스코예에 이제 인질은 없으며 섬멸해야 할 체첸군 만이 남았으며, 그에 맞는 작전을 수행하겠다는 것이다.

 

   러시아군은 대변인의 말을 충실히 이행하였다. 1월 17일 아침 9시, 마을을 포위한 러시아 특수부대는 3개 방향에서 체첸군 진지를 향해 공세를 가했다. 체첸군은 참호에 배치된 채 압도적인 화력을 상대했다. 당시 지휘관 중 한명인 아이데미르 아바라에프에 의하면, 러시아군의 화력은 체첸군보다 300배 우위였다고 한다. 거기에 키즐레이 습격 이후로 9일 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해서 극도의 수면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전투는 오후 4시까지 계속되었으며, 체첸군은 한개 제대가 싸우고 한개 제대가 휴식하는 방식으로 버텼다. 거의 두눈을 뜨고 있기도 힘든 상황이 되었지만, 체첸군의 무전을 통해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샤밀 바사예프가 400명을 인솔하고 그들을 지원한 것이다. 러시아군은 새로운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물러나야 했고, 농성하던 체첸군은 간신히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총 39대의 러시아군 전차가 파괴되었다고 한다.

 

  그날 밤, 체첸군은 포위망을 돌파하여 탈출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미 '인질을 통한 협상'은 불가능했고, 시간이 지날 수록 무기, 탄약, 식량이 모두 부족해지고 체력도 소진되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원군이 도착하여 러시아군의 관심이 이동한 틈을 타서 빠져나와야 했다. 그러나 러시아군은 처음 농성 시점에 3개 포위망을 구성하여 물샐틈없이 봉쇄했기 때문에 상당한 각오가 필요하였다.

 

 

 

 

 

 

 

페르보마이스코예 전투 지도.

 

붉은 색이 러시아군 배치, 푸른 색이 체첸군 방어선. 아래의 화살표가 샤밀 바사예프의 지원군

 

 

 

  훈자르 파샤 이스마일로프는 3개 제대를 편성하였다. 우선 가장 강력한  알리 아타게리프가 지휘하는 부대가 선두에 섰다. 두번째는 아이데미르 아바라에프가 인질들과 부상병들을 에워싼 채 따라가며, 마지막의 후위대는 슐리만 부스타에프가 전체 대오를 호위하면서 빠져나왔다. 출발은 1월 18일 새벽 3시였다. 작전을 수행할 수 없을 정도의 중상인 20명의 체첸군은 마을에 남겨졌다.

 

 

 

 

 

알리 아타게리프. 압하지아 내전에 참전했으며, 셀코브스키 지역 사령관이었음

 

  처음 선두는 40명이었는 데, 돌파 과정에서 17명이 전사하였다. 중간 제대는 26명이 전사하였다. 마지막 제대가 최종적으로 돌파할 때까지, 체첸군은 총 65명이 전사하였다. 거의 돌파를 수행한 부대의 절반이 사라졌다. 그래도 70명의 체첸군과 60명의 인질은 이 마지막 작전에서 살아남아 체첸 노보그로즈니로 갈 수 있었다.


   이리하여 중부 다게스탄을 뒤흔들었던 살만 라두에프의 '외로운 늑대'의 전투는 종료하였다. 작전에 동행했던 200명이 넘는 인원 중에 살아서 체첸 땅을 다시 밟은 사람은 70여명에 불과했다. 인질은 병원 농성과 마을 전투 중에 총 26명이 죽은 걸로 추정되며, 러시아 특수부대의 전사자는 200명이 넘는 걸로 추정된다. 

 

  러시아군은 또 한번의 부데노프스키를 막기 위해 사력을 다했고, 체첸군은 힘으로 이 포위망을 돌파하였다. 이 전투로 인해 살만 라두예프는 샤밀 바사예프를 잇는 러시아의 '넘버 투'의 공적이 되었으며, 체첸에서는 또 한번 러시아를 농락한 새로운 영웅으로 떠올랐다. 비록 초기 기지 공격은 실패였고 그 뒤의 마을 농성과 포위망 돌파는 훈자르 파샤 이스라필로프라는 유능한 지휘관의 공이었지만, 대중들에게는 살만 라두에프의 이름이 알려졌다.

 

 

 

 

코만 투르팔 훈장. '국가의 영예'라는 뜻으로 체첸 최고 훈장이었다. 살만 라두예프는 이 훈장을 수여받았다.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Kizlyar-Pervomayskoye_hostage_crisis
               http://en.wikipedia.org/wiki/Khunkar-Pasha_Israpilov
               http://en.wikipedia.org/wiki/Turpal-Ali_Atgeriev
               http://amina.com/article/icprio.html
               http://amina.com/article/partition2.html
               http://www.time.com/time/europe/chechnyatrail/951204.html
               http://en.wikipedia.org/wiki/Salman_Raduyev
               Serbastian Smith의 Allah's Mountain
               Paul Murphy의 The Wolves of Isl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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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jager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9.03.16 대군이 그 힘을 지나치게 믿으면 의외의 복병에 당하기가 쉽죠
  • 작성자롱기누스 | 작성시간 09.03.15 아바르 족이 아직 남아있었군요. 근데 러시아는 좀 심히 굴욕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jager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9.03.16 살만 라두예프라도 죽였으면.. 했다지만 살아서 빠져나갔습니다.
  • 작성자임용관 | 작성시간 09.10.27 살만 라두예프와 이스라필로프의 투혼이 눈부십니다... 러시아의 인질극 처리가 다른 나라에 비해 좀 잔인하군요... 강대국에 대한 저항의 수단이 인질극이라니... 약소민족의 딜레마입니다...
  • 작성자기러기 | 작성시간 09.12.06 헐!!!..인질들을 염두에 두지 않고 마구 공격하다니요..아무리 부데노프스키의 악몽을 재현하고 싶지 않았다지만 그래도 이건 도가 지나친 행동이었습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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