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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ger] 체첸항쟁사

코카서스의 늑대들 : 체첸- 43. 늑대사냥

작성자jager|작성시간10.01.12|조회수3,374 목록 댓글 36

 

 


"우리 지휘관들이 앞장 설 때가 되었다"

 

                                                                         - 탈출 작전 중에 샤밀 바사예프가 한 말


  샤밀 바사에프의 선택은 러시아군을 매수하는 것이었다. 그로즈니를 봉쇄한 러시아군의 포위망 일각을 지키는 부대를 매수하여 자신과 체첸군 본대가 탈출할 수 있는 안전 통로를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부데노프스키를 비롯하여 수도 없이 사선을 넘어온 바사예프는 이번에도 자신의 행운을 믿고 있었다. 실제로 다게스탄 침공 당시만 해도 러시아군의 포위망을 매수를 통해 안전하게 탈출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가 그렇게 생각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체첸군의 탈출로는 최단 거리로 그로즈니를 빠져나와 남부 산악지대로 향하는 길이어야 했다. 지리 상으로는 남쪽 우르스 마탄을 통과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었지만 1999년의 두달에 걸친 격전 끝에 현재 그곳은 러시아군이 확보한 상태였다. 그렇다고 주전장인 미누카 광장 쪽을 통과하여 남동쪽으로 간다는 것도 무모한 일이었다. 자연스럽게 러시아군의 병력 배치가 상대적으로 적은 남서쪽을 통해 빠져나갈 것이 결정되었다. 그로즈니를 공격하는 러시아군의 남쪽 측선과 남서쪽 측선 사이의 얇은 공간에 배치된 러시아군을 매수하면 체첸군 주력 부대는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었다.

 
  바사에프는 해당 지역을 경계하는 러시아군 장교 한명과 비밀리에 접선하였고, 간단한 흥정 끝에 교섭이 성립되었다.  체첸군 주력부대가 탈출하는 것은 눈감아 주는 대가로 10만 달러를 지불하기로 하였다. 바사에프는 그로즈니를 사수하는 주요 지휘관들에게 철수 시간과 루트를 전달하였다. 2000년 1월 31일 밤 10시, 그로즈니 서쪽 정유 지대를 통해 서남쪽의 알칸 칼라로 이동하기로 하였다.

 

 

 

 

훈자르 파샤 이스라필로프

 

그로즈니 북동쪽을 담당했던 체첸군 주요 지휘관 중 한명이었다.

 


   2000년 1월 31일 밤, 행운은 바사예프를 향해 미소짓는 듯 하였다. 그로즈니 남쪽 전선을 보강하기 위해 서쪽에 배치된 러시아군 병력이 이동한다는 러시아군 무전이 체첸군에 의해 청취되었다. 평소보다도 그로즈니 서쪽 전선의 러시아군의 경계는 허술할 터였다. 바사에프는 거듭되는 자신의 행운에 감사하며 약속된 탈출로를 향해 정찰대를 파견하였다. 혹시 근처에 배치된 러시아군이 있는 지, 통로는 안전하게 확보되어 있는 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뒤에는 2천에 달하는 체첸군 주력 부대가 기다리고 있었고, 그로즈니 전투를 지휘했던 주요 지휘관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이동하는 체첸군


   그런데, 그렇게 파견된 체첸군 정찰대가 돌아오지 않았다. 샤밀 바사예프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방이 지나칠 정도로 조용한 상태인데, 파견된 정찰대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은 뭘 의미하는 것일까? 그제서야 바사예프는 지금까지 일이 너무 잘 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제 와서 체첸군을 물러서게 한다면 그 뒤에는 최종적인 전멸 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고심 끝에  샤밀 바사에프는 체첸군 본대에게 예정된 안전 통로를 향해 전진하도록 지시했다. 다른 길은 없었던 것이다.

 

 

 

 

 

 

체첸군

 

    체첸군이 그로즈니 남서쪽을 빠져나가 알칸 칼라로 향하는 길로 들어섰을 때, 선두에 섰던 체첸군이 폭발하였다. 지뢰가 터진 것이다. 이제 모든 것이 분명해 졌다. 러시아군은 궁지에 몰린 체첸군을 안전 통로라는 미끼로 유인하여 함정을 팠다. 샤밀 바사예프가 접선한 러시아군 장교는 돈만 주면 뭐든 내주는 부패한 국방군 장교가 아니라 고도로 숙달된 러시아 연방보안국 (FSB)의 요원이었다. 서쪽 방향의 러시아군이 남쪽으로 이동한다는 무전도 체첸군이 감청한다는 것을 알고 있던 러시아군 사령부의 계략이었다. 반대로 남쪽 전선에 배치된 러시아군이 서쪽에 보강되어 있던 상태였다.

 

 

 

 

 

 

러시아군 장갑차

 

 


  샤밀 바사예프는 자신의 책임을 통감하며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하였다. 러시아군이 그토록 주도면밀하게 준비했으면 아마도 자신들의 탈출 목표가 알칸 칼라라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분명히 매복이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우회할 수 있는 다른 길도 없었다.

 

  거기서 남쪽으로 향한다면 우르스 마탄에 배치된 러시아 군이 기다리고 있었다.  2000년 1월의 격전 속에서 러시아군은 그로즈니 남쪽 지역에 '남부군'을 편성하였다. 공수부대, 해군 육전대, 국경 수비대의 정예들로 편성된 5천의 남부군은 체첸군이 그로즈니를 탈출할 가능성을 없앤다는 목적 하나를 위해 조직되었다.. 거기에 지휘관인 무리딘 아수로비치 소장은 하타브가 참전한 적도 있는 타지크 내전에서 201 기계화 보병 사단장을 역임했던 타지크 족 출신의 산악전의 베테랑이었다.  물론 북쪽으로 간다는 것은 고려 대상조차 될 수도 없었다. 러시아 서부군 주력이 배치되어 있으며 남부 산악지대에서 점점 멀어지기 때문이었다.

 

 

 

 

 

무리딘 아수로비치 소장. 타지크 족 출신의 러시아군 남부군 사령관이었다.

 


   우회할 다른 길이 없고, 물러설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될까? 지뢰밭을 돌파하는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러시아군이 매설한 지뢰 지대를 하나하나 손으로 개척한다면 날이 샐 것이고, 수만명의 러시아군의 포위 속에서 체첸군 주력부대는 전멸할 것이다. 시간이 없었다. 그렇다면 마지막 남은 방법은?

 

   마침내 결심이 선 샤밀 바사예프는 주요 체첸군 지휘관들을 모으고 이렇게 말한다.

 

   "지뢰밭을 걸어서 돌파한다. 내가 앞장 서겠다."

 

   이미 자신들 나름대로 상황을 파악한 다른 지휘관들은 별로 놀라지 않은 기색이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도 앞장 서겠네'

 

  샤밀 바사예프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집결한 체첸군을 향해 전진을 명령한다.

 

 

 

 

 

 

아슬란벡 이스마일로프

 

그로즈니 전투 당시 체첸군 총 지휘관


   러시아군이 매설한 지뢰 지대는 혹독할 정도로 촘촘하였다. 앞장서던 체첸군이 몇미터 가기도 전에 지뢰가 폭발하였고, 그는 발목이 날아간 채 쓰러졌다. 그 뒤를 따르던 체첸군이 다시 앞장 섰다.   몇미터를 전진하고 또 지뢰가 폭발하였다. 그러면 그 뒤를 따르던 체첸군이 이어서 전진하였다.  도로 상의 하얀 눈이 점점 붉게 물들었고, 전진하던 체첸군은 자신이 앞장 설 차례가 되면 뒤따르던 전우들을 향해 소리 쳤다.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

   
   그로즈니 남서쪽으로 빠져나온 체첸군은 마침내 순자강 다리를 만났다. 아직 알칸 칼라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절반을 더 가야했다. 지뢰밭을 걸어가던 체첸군은 다리를 건너서 서쪽으로 향하려 했다. 그 순간 근처에 매복한 러시아군이 사격을 가했다. 체첸군의 탈출로를 간파하고 있던 러시아군이 그들이 습격할 최적의 지점으로 순자강 다리를 선택하였다. 체첸군은 터지는 지뢰 속에서, 러시아군의 기관총 사격 속에서도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전진하였다. 물러서면 남는 것은 파멸 뿐이었다. 그들은 뒤에 따라오는 동료들을 위해 한명한명 죽어가면서도 마침내 다리를 건너서 러시아군의 공격 속에서도 계속 전진하였다.

 

 

 

 

 

그로즈니에서 알칸 칼라로 향한 체첸군 탈출로

 

붉은 원이 러시아군 지뢰 매복 지점이자 체첸군의 순자강 도하 지점

 

 

   결국 체첸군은 지뢰밭을 뚫고 알칸 칼라에 도달하였다. 수도 없이 많은 체첸군이 전사하였다. 그 중에는 그로즈니 전투를 총 지휘했던 아슬란벡 이스마일로프, 시내 동북부 지역을 담당했던 훈자르 파샤 이스라필로프, 조하르 두다예프의 조카이자 그로즈니 시장이었던 레챠 두다예프를 비롯한 주요 지휘관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앞장서서 지뢰밭을 건너다가 전사한 것이다. 샤밀 바사예프는 자신의 오른발을 잃었다. 몸의 피가 절반이나 빠져나가 알칸 칼라에 도달할 당시에는 30분만 늦었어도 생명을 잃었을 상태였다 한다. 즉시 마을에 있는 병원에서 급히 수술을 받아야 했다.

 

 

 

 

 

 

 

지뢰를 밟은 샤밀 바사예프

 

 


   체첸군은 혹독한 시련 속에서 알칸 칼라에 도달했지만 남부 산악지대로 가기 위해서는 아직도 먼길을 우회해야 했다. 러시아군이 그들의 탈출을 예견했다는 점이 분명한 지금 그것은 너무 위험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가야만 했다. 알칸 칼라를 뜬 눈으로 밤을 새운 체첸군은  다음 목표인 잘칸 유르트로 향했다. 잘칸 유르트로 향하는 길에서도 러시아군 장갑차가 끊임없이 습격하여 사격을 가했다. 이미 체첸군의 탈출로는 러시아군에게 훤히 노출된 상태였고,  서쪽으로 향한 한걸음 한걸음마다 뒤따라 출혈을 강요했다.

 

 

 

 

 

 

후퇴하는 체첸군

 

 


   2000년 2월 1일, 체첸군은 잘칸 유르트에서 다시 서쪽인 샤미 유르트로 향했다. 러시아군은 체첸군이 중간에 샤미 유르트 천을 도강하는 순간에도 놓치지 않고 그라드 미사일과 로켓포를 날렸다. 러시아군은 장갑차와 헬기까지 동원하여 이동하는 체첸군의 행렬을 습격하였고, 벌써 3일째 밤을 세운 체첸군은 한명한명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발걸음을 늦출 수 없었다. 추위와 굶주림과 질병 속에서도 러시아군의 공격을 견뎌내면서 체첸군은 다음 목적지인 카티 유르트로 향했다.

 

 

 

 

 

 

알칸 칼라에 도달한 체첸군.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2월 2일 새벽 4시, 체첸군 본대는 마침내 산악지대로 가기 전의 마지막 중간지인 카티 유르트에 도달하였다. 체첸군 본대가 아직까지도 병력을 상당 부분 보전한 상태로 여기까지 오게된 것을 알게된 러시아군은 시내를 향해 포격을 가했고, 마을 주민들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러시아군의 포격에 노출되었다. 오후 3시의 일이었고, 그 뒤로 이틀에 걸친 포격으로 적어도 170명의 시민들이 죽었다.

 

 

 

 

 

 

이동하는 체첸군 

 

 

  러시아군은 150킬로에 달하는 항공폭탄까지 동원해서 카티 유르트를 폭격하고, 서부군 지휘관 사마노프는 자신의 관할 지역에서 이동하는 체첸군을 전멸시키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러시아군이 카티 유르트의 체첸군을 봉쇄하려 했고, 그로즈니 남서쪽을 담당했던 체첸군 지휘관 함자트 겔라예프는 본대가 빠져나갈 수 있도록 카티 유르트의 방어전을 3일 동안 수행했다. 그 동안 본대는 동쪽의 발레리크로 이동했다가 다시 남쪽으로 향했다.

 

 

 

 

 

알칸 칼라 이후 체첸군의 탈출로

 

계속되는 러시아군의 추격 속에서도 마침내 본대는 남부 산악지대에 도달한다.

 

 


   그리하여 2000년 2월 6일, 그로즈니 철수를 시작한 지 1주일 만에, 체첸군 본대는 끝내 남부 산악지대 마을인 게키 츄에 도달하면서 임무를 완수하였다. 이 과정에서 체첸군 300명에서 600명이  전사하였다. 철수 병력의 4분의 1에 달하는 규모였다. 그리고 주요 지휘관 중 3명이 전사하였다. 하지만 러시아군은 그로즈니 시내에서 체첸군 주력을 파괴하려던 임무를 달성하는 데 실패하였다. 그로즈니 시가전을 수행한 핵심 병력 중 4분의 3이 살아남은 것이다. 

 

 

 

 

 

 

그로즈니를 점령한 러시아군

 

 

   러시아 사령부는 이 작전을 '늑대 사냥'이라고 하여 대대적으로 선전하였지만, 10만의 러시아군이 포진한 가운데서도 1천명이 넘는 체첸군이 시내를 탈출했다는 점에서 완전한 성공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들은 향후 체첸군의 핵심 병력으로 죽어간 전우들을 위해 복수를 결의하였다.


  마침내 그로즈니는 러시아군의 손에 넘어갔다. 하지만 체첸군도 주력부대를 보존한 상태였고,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븐 알 하타브와 샤밀 바사예프

 

러시아는 '늑대 사냥'에서 가장 큰 늑대들을 잡는 데 실패한다.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Battle_of_Grozny_(1999%E2%80%932000)
         http://ru.wikipedia.org/wiki/%D0%91%D0%B8%D1%82%D0%B2%D0%B0_%D0%B7%D0%B0_%D0%93%D1%80%D0%BE%D0%B7%D0%BD%D1%8B%D0%B9_(1999%E2%80%942000)
         http://ru.wikipedia.org/wiki/%D0%98%D1%81%D1%80%D0%B0%D0%BF%D0%B8%D0%BB%D0%BE%D0%B2,_%D0%A5%D1%83%D0%BD%D0%BA%D0%B0%D1%80-%D0%9F%D0%B0%D1%88%D0%B0
         http://www.chechnya.ru/view_all.php?part=hist&offset=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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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jager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0.01.16 만약 지뢰밭 앞에서 시간을 지체했으면 전멸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과감히 돌파하여 앞장섰던 수백명이 죽는 대신 나머지는 신속하게 빠져나갈 수 있었던 것이죠. 러시아군도 저렇게까지 할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들었겠죠
  • 작성자edcdedd | 작성시간 10.01.14 너무 재미 있게 잘보고 있습니다 책으로 않내시나요??ㅎㅎ
  • 답댓글 작성자jager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0.01.16 출판할 수준도 안되고, 그만한 돈도 없네요;;
  • 작성자centurion | 작성시간 10.01.21 진짜 소름끼치네...... 지뢰지대를 몸으로 돌파... 정말 군인이라기 보다는 전사인듯. 저런 지휘관을 둔 병사들이 강하지 않은게 오히려 이상하겠죠.
  • 작성자카이사르 마그누스 | 작성시간 10.02.15 바사예프도 다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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