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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7년 2월 8일,아일라우 전투-프랑스 기병대 돌격

작성자제국의명장|작성시간12.02.04|조회수1,702 목록 댓글 14

 

 

 

 

 

 

 

1807년 2월 8일, 나폴레옹 황제가 지휘하는 프랑스군 45000명은

 

베닉센 장군이 지휘하는 러시아군 67000명과 아일라우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른 아침에 프랑스 분견대와 러시아 정찰대의 소규모 교전으로 시작된 전투는

 

오주로 군단의 패퇴와 다부 군단의 혼전으로 프랑스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러시아군은 프랑스군을 밀어붙이며 쇄도하고 있었고

 

러시아군의 일부 전위대는 나폴레옹으로부터

 

불과 100보 정도 떨어진 거리까지 진출하였다.

 

 

프랑스군의 전면 붕괴를 우려한 나폴레옹은 기병대장 뮈라에게 기병대 돌격을 명하였다.

 

오전 11시 30분, 프랑스 기병대와 근위 기병대가

 

프랑스군 중앙 후방에 집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80개 중대 10700여명의 기병들이 돌격대형을 갖추고 명령을 기다렸다.

 

 

나폴레옹이 명을 내리고 뮈라의 지휘 아래

 

프랑스 기병대는 돌격을 개시했다.

 

 

프랑스 기병대는 기병대를 여러 부대로 나누어 제파 돌격을 실시했다.

 

뮈라가 지휘하는 프랑스 기병 제1파는

 

프랑스군 전열에서 2300m 떨어진 전방에서

 

3열 대형으로 전진해오고 있는 러시아 보병대를 향해 돌격했다.

 

 

그러나 러시아 보병대는 우세한 포병전력의 지원을 받으며 전진하고 있었다.

 

이날 아일라우 전투에 동원된 프랑스군 포는 200문이었으나

 

러시아군이 동원한 포는 460문에 달했다.

 

 

그 중에서 러시아 보병대를 지원하며 프랑스 기병대에

 

실질적인 위협을 끼치는 러시아 포병대는

 

60~70문의 대포로 프랑스군에게 포격하고 있었다.

 

 

당시 프랑스군의 양익은 러시아군의 공세에 무너지거나 고전하고 있었다.

 

그래서 프랑스 기병대는 별다른 지원없이 포격을 무릎쓰고 돌격해야 했다.

 

 

피탄지역을 돌파한 프랑스군 제1파는 전진하는 러시아군 보병대 전열 중앙에 뛰어들었다.

 

그 공세는 엄청나서 돌격에 참여한 프랑스 근위기병대 장교 파킨 대위는

 

마치 밀밭을 휩쓰는 태풍과 같았다고 하였다.

 

 

프랑스 기병대는 전진하는 러시아군 대열을 완전히 짓밟아버렸고

 

러시아 보병대는 붕괴되어버렸다.

 

 

프랑스군 제1파는 전진하던 보병대를 유린한 다음,

 

계속 돌진하여 러시아 본진에 있던 몇개의 러시아 지원포대도 쓸어버렸다.

 

러시아 보병대를 지원하던 일부 러시아 기병대도 프랑스군 돌격에 휘말려 궤멸되었다.

 

무섭게 돌진하던 프랑스군 제1파는 러시아군의 2번째 전열에 부딫쳤다.

 

 

한편 프랑스군의 1차 돌격이 지난후, 러시아 보병대 시체더미에서

 

살아남은 러시아 보병들이 일어나 프랑스군 기병 뒤를 향해 사격을 가했다.

 

하지만 베시에르 원수가 지휘하는 근위기병대로 구성된 프랑스 기병대 제2파가

 

뮈라 기병대의 뒤를 이어 돌격하여 그들을 강습하고 모조리 죽여버렸다.

 

 

프랑스 기병대 돌격대형에 러시아군은 계속 포격을 퍼부었고...

 

 

프랑스군은 큰 피해를 입었지만 돌격을 멈추지 않았다.

 

 

프랑스 기병대 제1파는 사켄 대공이 지휘하는 러시아 보병대를 중앙 돌파하였다.

 

이날 아일라우 전장에는 강한 눈보라가 몰아쳐 시계가 좋지 못했다.

 

그래서 이날 아침 프랑스의 오주로 군단이 러시아군 포병대의 중앙으로 잘못 전진하다가

 

집중 포격을 맞고 패퇴했었다.

 

 

그러나 이날 정오에 프랑스 기병대가 돌격할 무렵,

 

눈보라는 러시아 보병대에게 재앙이 되었다.

 

러시아 보병대는 눈보라로 인해 기병대의 돌격을 감지하지 못하여

 

방진을 형성하지 못한채 돌격에 쓸려버렸고

 

운좋게 방진을 구성한 전열도 기병돌격에 붕괴되어버렸다!

 

 

프랑스군 기병대는 러시아 본진에서 프랑스군을 향해 포격하던 포대들도 공격하고

 

대부분 무력화시켰다.

 

 

프랑스군 1파의 돌격은 러시아 본진을 돌파하여 예비대에까지 이르렀다.

 

러시아 중앙 예비군도 돌격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졌고

 

러시아군은 프랑스 기병대를 저지하기 위해 러시아 기병대를 투입하였으나

 

프랑스 마지막 기병 제대의 돌격에 무너졌다.

 

2300M의 돌격을 끝낸 프랑스 기병대는 방향을 되돌려

 

1열 횡대로 그들이 돌격했던 길을 다시 지나 프랑스군 진영으로 복귀하였다.

 

그들은 돌아가면서 러시아 포병대와 보병대를 다시 돌파하였다.

 

약 1시간 동안 전개된 프랑스 기병대의 돌격에서

 

프랑스 기병대는 1500명이 전사했으나 러시아 중앙군이 붕괴되었고

 

프랑스군은 위기를 넘겼다.

 

 

오후 1시부터 좌익의 다부 군단이 러시아군을 밀어내기 시작했고

 

3시 30분에는 러시아군이 위기에 처했으나 프로이센 지원군의 개입으로 위기를 넘겼다.

 

저녁 7시에 네 원수가 지휘하는 프랑스군이 도착하자

 

러시아군이 밤에 몰래 후퇴함으로서 아일라우 전투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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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jowlaw2 | 작성시간 12.02.05 폴레옹 성님이 시뮬레이션을 미친듯이 하셧다고 아는데 사실입니까?
  • 작성자centurion | 작성시간 12.02.06 뮈라 이자식 멋진자식
  • 작성자찰목합 | 작성시간 12.02.06 19세기에 왠 관운장의 돌격? 그나저나 1만명의 기병대의 돌격이라니 몽고기병때에도 없었을거 같은 장관이었겠네요
  • 작성자기러기 | 작성시간 12.02.13 ㅎㄷㄷ한 기병돌격!!!.....ㄷㄷㄷㄷ
  • 작성자제국의명장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02.13 jowlaw2:무슨 시뮬레이션이요?? 만약 워시뮬레이션을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나폴레옹은 잦은 열병식과 지도 구상을 통해서 전술기량을 닦긴 했었죠.
    센츄리온:확실히 뮈라는 미남에 패셔니스트였죠. 다만 기병 지휘외의 군사적 재능이 없었죠.
    찰목합:프랑스 기병대장 조아생 뮈라는 거의 항우,여포에 비할 수 있을만한 용장 이었습니다. 다만 그에게 교양이 없었고 그로 인해 말년도 불행해서 관운장과 비교하긴 뭣합니다. 그리고 아일라우 기병돌격은 나폴레옹 전쟁 전체에서 가장 큰 기병전은 아니었습니다...,
    기러기:1만마리의 기러기 돌격도 후덜덜 할 겁니다. 나폴레옹 전쟁에서 3번째로 큰 기병돌격 이었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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