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이제큐터] 전쟁론

퓰러와 리델 하트 '신화'

작성자이제큐터|작성시간12.03.04|조회수786 목록 댓글 11

오랜 세월 동안 2차 대전 이후 각국의 기동전, 기갑전 교리 발전사에 대해서 서방 학계는 계속해서 이 문구를 반복해 왔습니다.

"퓰러의 기갑전 사상과 마비전 사상, 리델 하트의 간접접근전략은 본국에서는 무시당했지만 독일의 기갑전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고 독일 국방군은 퓰러와 리델 하트의 이론을 적용시켜 전격전을 만들었으며 소련은 이를 본따 종심전투 교리를 만들었다."1

이 일련의 '신화'는 80년대 이후 서방이 소련의 작전술을 진지하게 연구하기 시작할 때까지 쭉 계속되었고 우리나라에는 그 경향이 아직도 계속되는 걸로 보입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저 '신화'는 서방 군사학계의 오랜 자위질이라고밖에 말할 수가 없습니다.


<전격전의 전설>에서 계속 나오다시피, 프랑스 전역에서의 전격전 현상은 보불전쟁 시절부터 이어진 독일군의 전통적인 작전술적 기동 포위 섬멸전의 연장이지 퓰러의 전략적 마비나 리델 하트의 간접접근 전략 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습니다. 프랑스 전역에서 프랑스군이 보여준 마비 현상은 독일군이 의도하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2

독일군의 기동전과 퓰러, 리델 하트의 연관점을 찾는 근거는 리델 하트가 전후 독일 장성들과의 인텨뷰 모음집인 <German Generals Talk>와 리델 하트가 만슈타인, 구데리안과 교환한 서신, 구데리안의 <한 군인의 회상(=기계화부대장)>입니다. 문제는 최근 구데리안의 책이 신빙성 없는 사료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겁니다. 구데리안이 기갑전에 관심을 가지기도 전에 이미 오스발트 루츠, 에른스트 볼크하임 등은 퓰러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상태에서 대대, 연대급 기갑 부대 편성과 기갑 운용 교리 형성을 주도하고 있었고 이는 독일 기갑 부대 형성의 모태가 되었습니다.3


구데리안은 여러 모로 상대적으로 후발주자였으며 회고록에서 독일 기갑 부대 형성에 대한 자신의 역할을 상당히 과장하며 자신을 독일 기갑 부대의 아버지로 포장하는데 성공했습니다.4 이 책에서 구데리안은 자신이 퓰러와 리델 하트의 저서를 탐독했다고 적었으며5 기타 서신 교환이나 다른 책에서 리델 하트가 구데리안을 띄워주며 서로 신화를 만들어 주는 데 성공했습니다.

물론 아예 리델 하트와 퓰러를 참고 하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지만 여러 모로 독일 기갑 교리 형성에 두명이 끼친 영향은 미미합니다.

소련군의 기동전은 퓰러처럼 '마비'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의 공통점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소련 기동전 사상의 경우 독일보다 더 퓰러, 리델 하트 등과 관계가 없습니다.

서방 학계는 투하쳅스키가 퓰러의 <기계화전> 러시아어판에 추천사를 달아줬다는 것에 계속 집중해 왔지만 그것 이외에 퓰러와 투하쳅스키를 연결시킬 수 있는 자료는 전무합니다. 소련은 독일과 마찬가지로 기동전을 선호하는 경향이 이미 오래 전부터 갖춰져 있었고 투하쳅스키, 트리안다필로프 등의 종심 작전 이론은 이것의 연장선상입니다. 게다가 투하쳅스키가 퓰러에 관심을 보인 것은 퓰러의 책에 추천사를 달아준 것 이외에는 없었으며 되려 나중에는 퓰러의 소수 정예 병력이 다수의 징집병을 압도한다는 전략관에 대해 이렇게 비웃었습니다.


"미국과 영국이 전쟁을 벌인다고 가정해 보자. 전장은 미국과 캐나다 국경이다. 양군은 모두 완전히 기계화되어 있다. 그런데 영국군은 퓰러가 좋아하는 18개 사단을 가지고 있고 미국은 180개 사단을 가지고 있다. 전자는 전차 5,000대와 항공기 3,000대를 가지고 있고 후자는 전차 50,000대와 항공기 30,000대를 가지고 있다. 규모가 작은 영국군은 손쉽게 무너진다. 기계화, 기동화됐지만 규모가 현저히 작은 부대가 미래 전쟁을 주도한다는 것이 망상이라는 게 확실하지 않은가? 오직 멍청한 자들만이 퓰러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6

투하쳅스키가 본 퓰러의 사상은 러시아적인 입장에서 볼 때는 그저 망상이었습니다. 소비에트 연방의 경악스럽게 긴 국경을 고려하면, 아무리 붉은 군대가 최정예가 되어도 18개 사단으로 나라를 지킨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였습니다. 투하쳅스키 입장에서는 병력과 장비를 뽑고 유지하는 데 무리 없는 산업 능력을 가졌으면, 특히 영국처럼 당시의 소련보다 훨씬 산업화된 나라에서 군대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인데 왜 병력을 소규모로 제한하려 하느냐는 물음표를 던질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투하쳅스키의 측근인 게오르기 이서슨은 그 정도로 격한 표현은 쓰진 않았지만 퓰러에 대해서는 "제국주의 국가들에서는 선구적이지만 종심 전투가 제병협동으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주장했으며 우리의 실정에 전혀 맞지 않다."고 일축했습니다.7 후대의 이론가인 바실리 사브킨은 퓰러에 대해 긍정적으로 언급하지만 종심 작전과의 연관성은 언급을 안했습니다.8 리델 하트에 대해서는 당시 소련의 어떤 이론가도 관심을 보인 적이 전혀 없었습니다.

물론 퓰러와 리델 하트가 당시 서방에서는 상당히 선구적인 이론가임은 틀림 없습니다. 전차라는 무기 체계에 주목하고 1차 대전으로 부정된 기동전의 가능성을 다시 주장했으니까요. 그러나 퓰러와 리델 하트의 사상이 서방 이외의 기동전 사상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명백히 잘못된 이야기이며

신화라는 것을 몇몇 자료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1. 이런 식의 문구는 국내 출간된 리델 하트의 <전략론>이나 퓰러의 <기계화전> 서두에서 추천사로 볼 수 있습니다. 비교적 최근의 서방 저작인 <MADE IN WAR: 전쟁이 만든 세계사>에도 나오고 안토니 비버의 <D-day>에서도 '전격전을 만든 리델 하트 어쩌고'가 나오는 걸 봐서 언제 사라질 지 모르겠습니다.
  2. 자세한 사항은 칼 하인츠 프리저, 전격전의 전설 참고
  3. 이데 대한 자세한 사항은 <The Roots of Blitzkrieg: Hans von Seeckt and German Military Reform.> 참고. 이 책이 구데리안의 역할을 지나치게 폄하한다는 말도 있긴 합니다.
  4. 간단히 알아보고 싶으면 장갑묘님의 이글루스 참고 http://panzerkatz.egloos.com/2885414
  5. 그것도 몇줄 안됩니다. 기계화부대장 참고
  6. . Mikhail N. Tukhachevsky, “Predislovie k knige Dzh. Fullera,” in Izbrannye proizvedeniya, II: 152.
  7. G. S. Isserson, The Development of Theory of Soviet Operational art in 1930s
  8. V. E. Savkin, Basic Principles of Operational art and Tatics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블템포컴빌리48 | 작성시간 12.03.05 전투 교리라는것은 각국의 특성과 전투 환경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 ㅇㅇ
  • 답댓글 작성자아르카나 | 작성시간 12.03.05 미군이 덩치가 크긴하지만 그건 전세계가 작전 지역이고, 엄청난 군수를 소모하기 때문입니다. 실질적으로 한 전역에 투입할수 있는 전투 병력은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닙니다.
  • 답댓글 작성자Aetius | 작성시간 12.03.05 물론 직접적인 지상 전투부대야 현재시점엔 비교적 소규모이지만 2대전 당시에는 덩치도 커다란데 그게 허당도 아니라는게 제 의견입니다... 사실 대전 당시 최고의 완전체 군대는 미군이 아니었나 싶구요. 병사들 입장에 생각해서도 미군이 최고인거 같기도하고요 ㄱ-;;
  • 작성자j s k | 작성시간 12.03.05 교환비가 얼마였든 미군은 소말리아서 도망나왔죠,
    요즘 꼬라지도 잘나간다고는 못하겠고요.
  • 작성자이동준 | 작성시간 12.03.06 머, 상황에 따라 다르겠죠....가장 이상적인 것이야 '최정예 수준의 부대 숫자와 병기 숫자가 적보다 더 많이~'겠지만 말입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