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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현대사]2차 대전 에이스, 창공의 기사 한스 요아힘 마르세유

작성자신불해|작성시간12.07.21|조회수633 목록 댓글 6








 2차 대전의 수많은 에이스 들 중에서도 한스 요아힘 마르세유는 그야말로 특출한 에이스였습니다. 8대의 적기를 격추하며 이미 에이스가 된 시점에서도 남들이 소위를 달때 여전히 장교 후보생 노릇을 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이는 마르세유의 인사기록에 규율 위반, 사고, 말썽, 불복종 등 온갖 문제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소위가 못된것을 원망할것이 아니라, 장교 후보생으로라도 남아 있는것이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8대의 적기를 격추했다고는 하는데, 그 과정 중에서 무려 6대의 매서슈미트 Me109를 날려먹었습니다. 더 괴이한건 그럴때마다 낙하산으로 탈출해서 무사히 기지로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괴짜라고 해도 분명히 공중전에 관한 실력은 있었습니다. 잦은 격추는 실력 문제라기보단 마인드 문제로, 너무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보니, 다른 조종사들은 내버려 두고 혼자 수많은 적을 상대하겠다고 나서는 통에 그렇게 된 일이었습니다.  


 여하간 이렇게 사고를 치면서도 그래도 실력이 좋은탓에, 마르세유가 속해 있는 제27전투비행대대(JG 27)의 제3중대 중대장 노이만 대위는 마르세유를 쫒아내지 않고 계속 남겨두었습니다. 그리고 곧 1941년 4월, JG27과 함께 북아프리카의 전선으로 보내졌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도 마르세유는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트라폴리에서 출발해서 가자라로 가는 도중, 갑자기 엔진 고장을 일으켜 사막에 불시착해버린 것입니다. 그 지역은 다행인 이탈리아 군의 지역이었습니다. 헌데 마르세유는 또 묘한짓을 저질렀습니다. 일개 애송이에 불과한 마르세유가 대장급 장군에게 가서 차를 내놓으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나는 아주 중요한 사람이고, 급한 임무를 맡고 있으니 차를 한대 내주시오."


 이탈리아 군의 장군은 마르세유의 허풍을 물론 믿지 않았지만, 배짱이 제법 마음에 들어 전용차를 빌려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태워준 값이야 안 받을테니, 앞으로 적기 50여기만 격추하게."


 "고작 50여대? 그 세 배로 채워드리죠!"


 하지만 허풍대로 일이 되진 않아서, 영국군의 허리케인 전투기를 격추했지만 적기를 한 기 격추하면 항상 배힝기가 벌집이 되었고, 무엇보다 아군 편대를 무시하고 혼자 나서는 고약한 스타일은 여전했습니다. 심지어는 잠깐 계기판을 보기 위해 머리를 숙였는데, 그 잠깐 사이에 총탄이 머리 위를 스쳐지나간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온갖 무모한 짓을 벌이면서, 마르세유는 슬슬 자신의 재능을 개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공중전의 천재적인 감각을 깨우면서, '어떤 종류의, 그 어떤 숫자의 적기가 몰려 있어도' 혼자서 접근해 '절대로 빗맞지 않을' 사격술을 익혀나갔습니다. 점점 비행기가 벌집이 되는 상황은 줄어들었고, 나중에는 한 기도 맞지 않고 적기를 격추해나갔습니다.


 1941년 9월 24일, 마르세유는 오전에 영국 폭격기 1대를 격추했고, 오후에는 4대의 허리케인 전투기를 박살냈습니다. 그리고는 기지에 돌아와서 기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드디어 감이 좀 잡히는군!"




가을과 겨울 동안, 사하라 사막에서는 폭우와 악천후 등으로 출격 횟수가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마르세유는 격추기록을 거침없이 쌓아 올렸고, 48대를 격추한 후 철십자 훈장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기체를 노란색으로 칠할 권리를 얻어, 이 기체는 '황색14'라는 애칭으로 유명 해졌습니다.


계급도 순조롭게 올라서 1924년 4월에는 중위가 되었고 JG27의 제3중대 중대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1942년 부터 '사막의 여우' 롬멜이 공세로 전환하며, 마르세유는 더욱더 좋은 기회를 얻었습니다.


 공중전 교범이라는것은 편대를 중시하기 마련인데, 마르세유는 그런 교범은 완전히 무시했고 사실상의 단독 비행으로 일을 항상 처리했습니다. 요기란 단지 멀리서 마르세유 근처를 좀 살펴주는 역할일 뿐이었고, 단독으로 적의 편대에 접근해서 급가속, 급감속, 상승, 하강과 선회를 '도저히 인간이 하는 것이라곤 믿을 수 없는' 수준으로 구사하며 적을 추격했고, 사격도 너무나 정확해서 단 한번으로 적기를 격추해버리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사격술은 인간이라기보단 악마의 수준에 가까웠는데, 마치 멈춰 있는 표적을 쏘는듯 엔진, 조종석, 동체 뒤까지 단 한발도 빗맞지 않고 골고루 맞혔습니다. 동료들은 혀를 내두르면서 "마르세유가 조준해 쏘는게 아니라, 적기가 총탄을 빨아들인다." 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면서 총탄은 매우 경제적으로 아겼는데, 1942년 6월 3일, 6대의 P40 전투기를 격추하고도 탄창은 여전히 넉넉했습니다. 6대의 적기를 맞추면서 쓴 총탄은 20mm 기관포탄 10발과 7.92mm 기관총탄 180여발이 전부였습니다.


비행술과 사격에만 능하였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라 적기를 처리하는 속도도 믿을 수가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6월 3일의 공중전에서 6대를 격추하는데 든 시간은 겨우 20여분이었고, 일단 적기를 포착하기만 하면 처리하는데는 몇분 걸리지도 않았습니다. 아프리카 전역이 벌어지며 마르세유의 '황색14'는 독일군 사이에서 신화적인 존재가 되었고, 반대로 영국군 사이에서는 악마적인 존재로 여겨졌던 것입니다. 많은 영국의 조종사들이 황색 14를 격추하겠다기보다는 황색 14를 만나도 무사히 돌아오기를 비는 수준이었습니다. 




 더이상 아무도 마르세유를 말썽꾸러기로 여기지 않았고, 천재 격추왕이 된 그의 부대 생활도 많이 바뀌어 개인 텐트에는 바텐더를 갖춘 작은 바와 축음기까지 생겼습니다. 현지에 나와있는 독일과 이탈리아의 고관들도 종종 마르세유를 찾아왔습니다.


 1942년 6월 11일, 롬멜의 공세에 영국군이 밀려 후퇴하기 시작하자 마르세유는 격쳘한 공중전을 벌여 3일간 6대를 격추해 84대까지 스코어를 올렸습니다. 6월 15일에는 단 하루에 4대를 격추해 스코어는 91까지 올랐습니다. 그리고 마르세유는 선언했습니다.


 "자, 앞으로 48시간 내에 내 기록을 100대로 만들겠다!"


 마르세유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출격했고, 6월 16일 4대의 적기를 격추했습니다. 그리고 6월 17일 JG27은 영국 전폭기를 막기 위해 모두 출격했고, 마르세유는 오후가 되서야 비행장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온 마르세유는 비행장에 접근하면서 세 번 날개를 흔들었습니다. 적기를 3대 격추했다는 이야기인데, 그대로 착륙하지 않고 한 바퀴를 돌더니 또다시 세번 날개를 흔들었습니다. 6대 격추, 100대도 넘어 101대를 격추해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착륙한 마르세유는 격렬한 전투 때문인지 식은 땀을 비오듯 흘리며 창백한 표정이었고, 손이 너무 떨려 담배를 피는것도 힘들었습니다. 상관인 노이만은 마르세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마르세유를 비행기에 태워 독일로 보내버렸습니다. 쉬고 오라는 뜻입니다.


 잠깐 쉬고 돌아올 요량이었지만 휴가는 두달이 넘게 이어졌습니다. 마르세유도 국민적 영웅이 되었고, 독일 공군이나 나치 당에서는 선전 효과를 생각했습니다. 요기의 도움도 없이 100여대를 격추하고, 부대 전술이 아니라 독고다이 식의 기사 스타일은 선전 포장을 하기에는 아주 적절한 대상이었습니다. 마르세유의 여성 팬들은 어딜가나 들끓었고, 수많은 팬레터가 그에게 전달되었습니다. 편지에는 주소도 필요 없었습니다. '아프리카의 별' 이라고만 쓰면 편지는 마르세유에게 전달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마르세유가 휴가를 즐기고 오자, 북아프리카 전역도 상황이 묘하게 되어 있던 형편이었습니다. 롬멜의 쾌진격은 볼만했으나, 덕분에 지나치게 전선이 늘어나 보급이 형편없어져, 진격도 멈추어버린 시점에서 마르세유는 귀환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나 저러나 마르세유는 하늘에서 무적이나 다름없는 면모를 보이며 스코어를 올려갔습니다.


 9월 1일 8시 28분, 마르세유는 2대의 P-40을 격추하였고, 10분 뒤에는 2대의 스핏파이어 역시 격추했습니다. 잠시 기지로 돌아갔다 또 다시 출격한 마르세유는 10시 55분까지 10분간 무려 8대의 P-40을 격추했고, 세번째로 출격해서 17시 47분부터 6분과 5대를 격추해버렸습니다. 단 하루에 17대를 격추해버린 것입니다.


 소식을 들은 영국군은 노발대발하며 이 스코어는 독일 공군의 허풍이나 조작이라고 우겼지만, 모든 격추는 요기에 의해 목격되거나 건카메라에 찍혀 있었습니다. 모든 격추는 정확한 시간, 장소, 격추방법까지 자세히 기록되어 더 비난하기도 어려웠습니다.


 9월 내내 마르세유는 신들린듯이 스코어를 올렸습니다. 9월 말에는 무려 158대를 격추했고, 이탈리아 장군과의 약속도 넉넉하게 지키게 된 셈입니다.


 그런데 이 시기부터 무언가 안좋은 예감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158번째인 스팟 파이어를 격추할때, 마르세유 역시 거의 격추될 뻔했고, 이전과는 달리 이 1대를 격추하는데 25분이나 소비했습니다. 


 9월 30일, 마르세유는 동료들과 함께 독일 폭격기들을 엄호하느라 출격했지만 적기는 단 1대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귀환하고 있었는데, 오전 11시 35분, 갑자기 마르세유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조종석의 연기가 가득 찼다!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는다!"


 


 마르세유는 안간힘을 쓰며 겨우겨우 기체를 독일군 장악 지역까지 몰았고, 독일군 지역에 도착하자 곧바로 비상탈출을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되려는지, 마르세유는 수직 꼬리날개에 그대로 충돌해버렸습니다. 기절한 마르세유는 모든 의식을 잃고 낙하산을 펼치지 못한채 지면으로 떨어져버렸습니다.


 이것이 마르세유의 최후였고, 그는 그 추락한 지점에 묻혔습니다. 마르세유의 종말과 함께 독일 아프리카 군단도 같이 추락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안 가 영국군은 대공세를 시작해 독일군을 힘껏 몰아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마르세유는 그 특이한 스타일과 어린 나이, 금발의 외모 때문에 아이돌 스타나 다름없는 인기를 누렸습니다.
 
 무엇보다 마르세유는 소련군이 아니라 영국군을 상대로 그러한 전과를 올렸습니다. 대전 초기에 소련 공군은 독일 공군의 사냥감이나 다름없었고, 소련 전역에서 독일군의 에이스들은 수백대의 전과를 올려내었습니다. 하지만 영국군은 기체의 성능이나 여러가지 면에서 대전 초기의 소련군보다 만만찮은 상대였는데, 그러한 적들을 상대로 159기의 격추 기록을 올린 것입니다. 그래서 단순히 조종사로서의 기량만 따지자면 하르트만이나 귄터 랄 같은 엄청난 스코어를 기록한 인물들 보다, 마르세유가 더 나았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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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Z.W.P.A | 작성시간 12.07.22 인간적으론 똘아이지만 조종실력으로는 350기 이상을 격추시킨 하르트만보다 한수위라는게 중론이죠 거의 초능력이라고 밖에 볼수없는 그만의 예측사격술은 뭐 그누구도 흉내낼수 없는 기술이죠
  • 답댓글 작성자[★]kweassa | 작성시간 12.07.23 동시에, 사고가 없었다고 할지라도 종국에는 살아남지 못할 스타일의 전투를 지나치게 즐겼다는 것도 중론임.

    하르트만 같은 초안전빵 초냉정 전투스타일 보다 마르세이유의 화끈함이 더 어필은 하겠지만...
  • 작성자花美男 | 작성시간 12.07.22 성이 마르세유인걸로 봐서 프랑스계인가요??
  • 작성자벡스터 | 작성시간 12.07.23 마르세유 집안은 17세기 말에 루이 14세가 발령한 퐁텐느 칙령에 의한 박해에서 벗어나기 위해 독일로 망명한 프랑스인 신교도(위그노)의 후예입니다. 아돌프 갈란트도 같은 위그노 망명가 출신이라네요.
  • 작성자북현무진 | 작성시간 12.07.24 제로의 영역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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