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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남송의 마지막을 불멸의 영혼으로 장렬히 장식한 대충신, 문천상

작성자신불해|작성시간12.03.27|조회수1,145 목록 댓글 5

천하라는 넒은 곳에서 살며, 천하라는 올바른 자리에서서, 그 대도를 실현하며, 뜻을 얻으면 백성들과 같이 실행하고, 뜻을 얻지 못하면 혼자서 그 도를 실행하여 나간다. 부귀도 그의 마음을 음란하게 하지 못하고, 비천한것도 그의 마음을 옮기지 못하며, 어떠한 무력의 위협에도 굽히지 않는다.
 
이러한 것을 일컫어 마땅히 대장부라 말 할 수 있다.
 
걷는 길은 무엇인가 하면 의(義)다. 인(仁)에 몸을 두고 의를 따르면 대인이 해야 할 일을 다 갖추는 것이다.
 
─ 맹자



역사의 수많은 시간 중에 많은 업적을 이뤄낸 사람이 있고, 역사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 고결함 때문에 훗날의 우리에게 가슴속에 기억이 되기도 합니다.

 

문천상의 자는 송서 (宋瑞) 또는 이선 (履善), 호는 문산 (文山)이고 강소성 길주현 노릉 출신 입니다. 어린 시절 문천상은 구양수 등의 과거의 유명한 문사들을 동경하였는데, 과거에는 뛰어난 실력으로 장원으로 합격했습니다.

1259년, 남송은 대륙 전체에 몽골군의 침입이라는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대칸 몽케 칸이 이끄는 서로군은 사천으로 진격했고, 쿠빌라이가 이끄는 중로군은 다른 길로, 이라크 부케가 이끄는 군대는 운남을 돌아서 별동대로 뒤를 치려고 했습니다.


몽골 제국이 사력을 다한 공격이었기에 조정은 극심한 혼란 상태에 빠졌습니다. 내시 동송신은 패닉에 빠져 천도를 이야기 했고, 송나라 조정도 거기에 관심을 기울였지만 문천상은 극렬하게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말을 조정이 전혀 듣지도 않자 그냥 벼슬을 버리고 떠나고 맙니다.



대충신이라고 하면 강직한 사대부를 상상할수 있지만, 문천상은 사대부이면서도 사서에 "아름답기가 옥과 같았다" 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고, 원고도 필요없이 황제의 앞에서 말을 줄줄 할정도로 달변이었으며 생활에서는 꽤나 사치스럽고 여자도 좋아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만큼 자존심도 강했기에 벼슬도 버리고 낙향해 버린 것입니다.



풍전등화와 같던 송나라의 운명은 그러나 조어성의 왕견(王堅)과 10만 군민이 합심하여 몽케칸은 상대로 5개월이나 버티면서 전혀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몽골의 공격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고, 사천의 기후에 몽골군은 전염병이 걸려 힘들어했습니다. 무엇보다, 몽케 칸이 공성전 도중에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대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이상, 더 이상의 전쟁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역사는 크게 소용돌이 쳐 쿠빌라이는 송나라의 가사도와 협상을 하고 후계자 쟁탈전에 끼어들기 위해 돌아갔고, 저 멀리 중동에서 이 소식을 들은 훌라구도 마지막으로 남은 이슬람 왕조인 맘루크 왕조를 눈 앞에 두고 귀환길에 올랐습니다. 이슬람의 바이바르스는 이 기회에 남은 몽골군을 격파, 몽골 제국의 서진을 막았습니다.



이제 송나라에서 가장 강력한 사람은 쿠빌라이와 협상을 했던 가사도였습니다. 문천상은 그 시기 서주로 떠나 그곳에서 일을 했는데, 황폐화된 서주에서 좋은 일을 많이 해 칭찬을 많이 받았습니다. 문천상은 가사도의 전횡을 마구 비난하여 낙향되었고, 자신의 재산을 털어 굶주리는 백성들에게 나눠주었다고 합니다.



이 무렵 송나라는 멸망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원나라의 장군 바얀이 이끄는 20만 대군이 진격했고, 수도 임안은 풍전등화의 상태였습니다. 문천상은 지체없이 가진 모든 재산을 털어 1만명의 장사들을 모았습니다. 



물론 이런 오합지졸 군대가 20만 원나라의 군의 상대가 될리는 만무했습니다. 친구들이 무모함을 지적하자, 문천상도 뜻밖에 동의하면서 말했습니다.


"상황이 어려운것을 나라고 모르겠나? 허나 국가가 삼백년동안 신하와 백성을 돌보았는데, 드디어 위급한 때가 되자 한 사람도, 한 마리의 말도 모이지 않고 있다네. 내가 가장 가슴 아픈것이 바로 이것이야. 그래서 내가 역량도 안되지만 일어나는것이야. 내가 바라는것이 있다면, 천하의 충신의사들이 소식을 듣고 일어나 모두가 정의를 위해서 싸우는 것일세. 그렇게 된다면야 성공할 수 있네. 사직을 지킬 수 있네."


문천상은 게릴라 활동을 벌였고, 조정으로부터 우승상에 임명되었습니다. 그러나 몽골군은 수도 임안 코앞까지 다가왔고, 남송의 재상이던 유몽염과 진의중이 달아나는 초유의 사태까지 있었습니다. 남송의 태황태후는 이런 소식을 듣자 한숨을 쉬었습니다.


"왕조가 이제 삼백년. 사대부를 대접하기를 그 예로 하였건만은."


그러나 이렇게 야비한 사람들도 있었던 반면에, 청나라의 학자 조익이 말했듯 진정한 충신 열사였던 사대부들도 송나라에 있었습니다. 장세걸이 그랬고, 육수부가 그러했으며, 또한 문천상이 그러했습니다. 문천상은 몽골군이 임안으로 진격해 온다는 소리를 듣자 친구들에게 말했습니다.

"형세가 좋지 않구나. 이제 어찌해야 하는가?"

"당신이 죽으면, 우리 모두가 따라 죽을 것이오."

그러자 문천상은 이 절박한 상황에서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며 우스갯소리를 했다고 합니다.

"예전에 유옥천이라는 사람이 기녀와 사랑을 했는데, 그 기녀는 유옥천만을 위해 다른 손님을 받지도 않았다고 했지. 유옥천이 진사가 되자 당연히 기녀도 부임지에 따라 가려고 했지만, 웬걸! 유옥천은 그게 싫었던 거야. 그러더니 이렇게 말했지.

'조정의 규정으로는 가족을 데려갈수가 없어. 차라리 우리 둘이 죽어버리자고. 나 혼자서는 갈 수 없어.'

그리고 독약을 마셨지. 기녀가 먼저 마시고, 절반을 유옥천에게 주었는데, 유옥천은 그걸 마시지 않았어. 기녀가 죽는것을 본 유옥천은 혼자 떠났지. 여보게나. 자네들이 그렇게 말하는것이 유옥천을 본받자는 소리 아닌가?"




여하간 문천상은 홀로 바얀의 진영으로가서 그와 담판을 벌였습니다. 문천상의 시에 의하면, 이때 북쪽 몽골 사람들은 이렇게 수근거렸다고 합니다.

"강남에도 아직 사람이 있구나." 


생사가 상대방에 달린 상황에서도 문천상은 전혀 물러서지를 않았고,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 바얀은 문천상을 잡아다 가두어버렸습니다. 욕을 마구 퍼붓은 문천상이지만, 이렇게 가두어진 상태에서 그는 조국이 항복을 하는 광경을 지켜봐야했습니다.


처량한 신세로 북쪽의 도시 대도로 끌려가던 문천상은 그러나 기회를 봐서 도주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진강에서 도주한 그는 병력을 모아 치열하게 유격전을 벌였으나, 1278년 원나라 장수 장홍범에게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문천상이 이끌던 전 병력은 전멸했고, 그를 따르던 문인들도 모두 전사했습니다.


자살을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한 문천상은 포로로 끌려와 떠있는 바다위 의 배에 갇히는 상태에 놓였습니다. 장홍범은 마지막 남은 송나라 부흥 세력에게 항복 권고문을 작성하라고 문천상을 협박했지만, 그는 듣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송나라의 명운은 이미 끝난 뒤였습니다.


1279년 2월 6일. 원나라 군은 애산을 공격했습니다. 그곳을 지키던 남송의 육수부와 장세걸은 가지고 있는 칼이 다 부러지고, 화살이 모두 떨어질 때까지 싸웠지만 힘이 부족했습니다.


육수부는 어린 황제를 업고 바다에 뛰어들었습니다. 황제의 어머니도 물에 빠져서 자살했고, 장세걸은 배가 뒤집혀서 죽었습니다. 병사들은 원나라의 군대의 칼에 찔려 죽고, 궁녀들은 수난을 피해 물 속으로 몸을 던져 자진했습니다.


이 모든 광경을 문천상은 적의 배에 갇혀서 똑똑히 지켜봐야 했습니다. 감시가 심해 바다에 몸을 던질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의 심정이 어땠을지 짐작도 되지 않는데, 문천상은 이렇게 시로 담담하면서도 비통하게 심정을 표시했습니다.


산을 하나 도니 물 하나.
나라도 없고 또한 집도 없다.
남아의 천년 뜻.
내 생은 아직 다하지 않았다.



문천상은 다시 북쪽으로 끌려갔고, 이번에는 도망치지 못했습니다. 끌려가는 도중, 그는 8일간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자살을 시도하다가, 그만두었습니다. 충성을 보여주자. 죽음을 당하기 전까지는 죽지 않겠다는 것이 그의 뜻이었습니다.



쿠빌라이 칸은 제국을 이끌어갈 인재를 너무나도 간절히 원하고 있었습니다. 포로인 문천상이 도착하자 연회를 베풀었는데, 이는 대단히 성대했고 문천상의 마음을 흔들어보자는 수작이었습니다. 하지만 문천상은 놀랍게도 준 침대에도 눕지 않고 아침까지 앉아 있었다고 합니다.


연회가 끝난 후엔 원나라의 승상이 찾아와 문천상을 협박했습니다. 회유와 강압을 모두 써본 것인데, 문천상은 전혀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원나라에 항복한 문천상의 동생 문벽이 나서서 형을 설득했고, 이제는 송나라의 폐제가 된 황제까지 문천상을 설득했습니다.



문천상이 지켜야할 충성의 대상인 송나라는 이미 사라졌습니다. 저항 운동도 무너졌습니다. 쿠빌라이 칸은 세계의 지배자였고, 그를 따른다면 최고의 부귀는 당연히 보장되었으며 쿠빌라이를 따른다고 해도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문천상은 이 모든것을 거절했고, 댓가는 차가운 지하의 감옥 굴이었습니다. 햇빛도 잘 비치지 않고, 사방에선 차가운 기운만이 가득했는데, 바로 이곳에서 문천상은 가장 위대한 한시중에 하나인 정기가(正氣歌)를 썻던 것입니다.


天地有正氣

하늘과 땅에 정기가 있으니.

雜然賦流形

서로가 뒤섞여 온갖의 형상을 만들었네.


下則爲河嶽

아래로 강과 산을 이루었고
 

上則爲日星

위로는 해와 별을 이루었고

於人曰浩然

사람에서는 그것을 '호연'이라 하는데,

沛乎塞蒼冥

온천지에 또한 가득 들어찼더라.

皇路當淸夷

한길 맑고 번듯할 때는

含和吐明廷

화기를 머금어 맑은 뜰에 뱉고

時窮節乃見

때 막히면 굳게 잡은 것 드러나

一一垂丹靑


하나하나 역사에 드리웠더라.
 
 
맹자는 호연을 이야기 했고, 그것은 형태가 없어 아래로 가면 강이 되고 위로 가면 별이 되는데, 사람에 이르러선 바로 호연의 기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이 온화하면 그것은 밝은 형태로 나타나지만, 세상이 어지러우면 이 호연의 정기는 바로 거대한 에너지가 되어 절의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이 역사에 길이 남게 됩니다.
 
 
 
在齊太史簡

제나라에는 태사의 간簡

在晋董狐筆

진나라에서는 동호의 필筆

在秦張良椎

진나라에서는 장량의 추椎

在漢蘇武節

한나라에서는 소무의 절節

爲嚴將軍頭

엄장군의 머리가 되었고

爲혜侍中血

혜시중의 피가 되었고

爲張수陽齒

수양 장순의 이가 되었고

爲顔常山舌

상산 안고경의 혀가 되었더라.

或爲遼東帽

혹은 요동의 삿갓이 되었으니

淸操여氷雪

맑은 뜻은 얼음과 눈과 같으며

或爲出師表

 
혹은 출사표 되어

鬼神泣壯烈
 
그 장렬함, 귀신을 울렸으며

或爲渡江楫

아니면 강을 건너는 노가 되어


慷慨呑胡갈

그 강개는 오랑캐를 삼켰고

或爲擊賊笏

아니면 역적을 치는 홀 되어

逆揷頭破裂

반역자의 머리를 부셔 놓았다.
 


제나라의 재상 최저가 주군을 살해했을때, 그 기록관은 죽간에 '최저가 주군을 살해했다' 고 썻기에 처형당했습니다. 기록관의 동생은 다시 '최저가 주군을 살해했다' 고 작성했고, 최저는 다시 그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러자 기록관의 막내 동생이 '최저가 주군을 살해했다'고 또 다시 작성하였으니, 최저도 결국 손을 놓고 말았습니다.


역사의 진실을 전하고자 하는 절의의 정기가 역사에 남았습니다.


진나라의 조천이 군주인 영공을 죽이자, 기록관이던 동호는 조천의 형이자 권력가였던 조순이 동생을 처벌하지 않았기에, '조순이 주군을 살해했다.' 고 기록했습니다.


권력에 아부하지 않는 절의의 정기가 역사에 남았습니다.


장량은 진시황제를 죽이려고 역사를 고용해 암살을 기도했으나 실패했습니다.


폭군을 두려워하지 않는 절의의 정기가 역사에 남았습니다.


한나라의 소무는 흉노에 무려 19년이나 잡혀있었으나, 자신이 사자로 왔음을 상징하는 부절을 결코 버리지 않았습니다.


불타는 애국심의 절의의 정기가 역사에 남았습니다.


엄장군, 엄안은 장비에게 패배하여 포로가 되었으나, 차라리 목이 잘릴 지언정 항복하지 않겠다고 큰소리를 쳤습니다.


끝없는 용기의 절의의 정기가 역사에 남았습니다.


혜시중 혜소는 진 혜제를 보호하다, 사방에서 화살이 날아오자 자신의 몸으로 화살을 막아 주군을 살리고 죽었습니다. 혜제는 자신의 옷에 묻은 혜소의 피를 결코 지우지 않았습니다.


지극한 충성심의 절의의 정기가 역사에 남았습니다.



장순과 안고경은 안록산의 난때 반란군을 막다 잡히게 되었지만, 결코 뜻을 굽히지 않아 죽어버렸습니다. 장순은 전쟁을 지도하면서 분노로 이를 갈아 가지고 있던 이가 다 부러졌고, 안고경은 안록산을 욕하다가 혀가 뽑혀서 죽었습니다.


열사의 피의 절의의 정기가 역사에 남았습니다.


관녕은 삼국시대의 인물인데, 요동으로 피난해있는걸 조조가 불렀으나 끝까지 한의 유민으로 행세하며 결코 위나라의 관직에 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늘 소박한 옷차림과 모자 하나만을 쓰며 지냈습니다.


단수실은 탈라스 전투에도 참가했던 당나라의 장수로 반란을 일으킨 주자를 만나 홀로 그의 머리를 내리쳤으며, 동진의 장군 조적은 빼앗긴 땅을 회복하려고 강을 건너며 노를 부셔버리면서, 땅을 수복하지 못하면 절대로 살아서 강을 건너지 못할 것을 결의했습니다.



이와 같은 모든 정기는 출사표에도, 단두실의 홀에도, 장순의 이에도, 관녕의 모자에도, 안고경의 혀에도, 소무의 절에도, 장량의 추에도, 동호의 필에도, 태사의 간에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귀신도 눈물을 흘릴만한 장렬함이 되었습니다.



是氣所磅박 

이 숨이 힘차 가득할 때

凜熱萬古存

얼음인 듯 불인 듯 만고에 살았으니

當其貫日月

해도 달도 꿰뚫는 마당에

生死安足論

살고 죽음 어찌 말이 되느냐.

地維賴以立 

땅 줄 이를 힘입어 섰고

天柱賴以尊 

하늘 기둥 이를 힘입어 높았다.

三綱實係命 

삼강이 참으로 여기 목숨을 걸었고

道義爲之根 
 
도의가 이로써 뿌리를 삼았더라.
 
 

그 정기는 일월을 꿰뚫고, 생사를 초월하며, 천지를 유지하고, 군신과 부자와 부부의 삼강의 인륜을 다스리고 도의로 뿌리를 삼게 됩니다.
 

嗟予구陽九 

아아! 나는 나라가 망하는 점괘를 당했지만

隸也實不力 

미천한 신하의 몸이라 힘이 없구나

楚囚纓其冠

초나라 갇힌 사람 갓에 끈 매고

傳車送窮北 

수레에 실려 궁북으로 끌려왔다.

鼎확甘如飴

끓는 솥 달기가 엿과 같거늘

求之不可得 
 
죽음을 바랐건만 얻을 길이 없네.
 
 
과거 초나라의 포로는 끝까지 초나라의 관을 썼는데, 이제 나라가 망했지만 힘이 부족해 포로가 되어, 차라리 달기의 형벌이라고 마땅히 받고 싶었지만 그 뜻을 이룰수가 없습니다.
 
 

陰房격鬼火

어둔 방에 귀신불만 껌벅거리는데

春院비天黑

봄 동산 하늘 캄캄에 잠기었구나.

牛驥同一卓

소와 기린 한 마구에 서고

鷄栖鳳凰食  
 
닭 봉황에 깃들여 같이 먹다가

一朝蒙霧露  
 
하루 아침 안개 이슬 맞고 보면

分作溝中瘠

도랑 속으로 버려지는 송장의 신세


지하 감옥의 상태는 참으로 좋지가 못했습니다.


如此再暑寒

이렇듯 추위와 더위가 지나고

百려自酸易 
 
온갖 요괴도 스스로 두려워서 물러나네

嗟哉沮여場 
 
아아, 슬프다. 이 진탕 속이

爲我安樂國 

나의 즐거운 나라 됐구나.

豈有他繆巧 

어찌 무슨 잔재주 있어

陰陽不能賊

음양도 해칠 수 없음은.

顧此耿耿在 
 
돌아보아 이 속에 깜박이는 빛

仰視浮雲白 

우러러 저기 떠도는 흰 구름


2년간 감옥에 있으니, 요사한 기도 마침내 피해떠나 진탕도 즐거우니, 음양도 그의 몸을 망가뜨릴 수 없습니다. 이는 하늘에 빛나는 기가 구름처럼 희기 때문입니다. 


悠悠我心悲 

끝없는 내 마음의 슬픔이여

蒼天曷有極

푸른 하늘은 다함이 없는가.

哲人日已遠 

어진 이들 가신 날은 이미 멀어도

典刑在宿昔 

모범은 예부터 있구나

風첨展書讀

처마 밑에서 책 펴 읽고 나니

古道照顔색

옛 성현의 도가 내 얼굴을 비추는구나.
 
 
 
그도 사람입니다. 저 하늘을 바라보면 어느순간 슬프고, 두렵고, 불안하지만은, 그럴때마다 책을 펼치고, 이 앞에 열거한 사람들은 이미 먼 아득한 과거의 역사가 되었지만, 그들이 남긴 그 정기만은 그대로 남아 책을 펴면 상쾌한 바람이 됩니다. 그로인해 그는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더럽고 어두운 토굴에서 문천상은 2년간이나 갇혀있었고, 쿠빌라이는 정말 집요할 정도로 문천상을 설득했습니다. 또한 송나라의 대신이었다가 원나라의 장관이 된 왕적옹은 문천상을 안타까워해 구명운동을 벌였습니다. 자신과 같은 귀순자들을 모아 문천상을 석방하자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일전에 송나라의 재상으로 도망간 적이 있던 유몽염은 반대했습니다. 문천상이 풀려난다고 해서 가만히 있을 사람인가? 틀림없이 또다시 송나라 부흥 운동을 전개할 것이다. 그럼 자신들은 어떻게 되는가?
 
 
 
시간만이 흐르고, 문천상은 더러운 토굴에서 3년째를 버텼습니다. 쿠빌라이는 끝까지 애가 탔지만, 문천상이 살아있는것만으로도 송나라의 사방에서 부흥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송나라는 멸망했지만, 그 정신만은 문천상이 변절하지 않는한 끝까지 남아서 부흥 운동의 중심이 되어버렸던 것이었죠. 결국 쿠빌라이도 포기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세상을 지배했던 쿠빌라이 칸은, 문천상의 정신만은 지배할수 없었습니다.
 
 
쿠빌라이는 문천상을 마지막으로 설득했지만, 위대한 대충신은 거절했습니다. 1282년의 12월, 문천상은 끌려나와 처형을 맞이했습니다. 최후의 마지막때, 그는 남쪽을 향해 절을 했다고 합니다.
 
 
 
 
남송은 멸망당했지만, 그 마지막 여명은 문천상이라는 존재 때문에 끝까지 빛났습니다. 시간을 돌려, 쿠빌라이 칸은 멸망한 남송의 어린 황제와 황후를 데려와서 몽골식의 연회를 베풀었는데,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쿠빌라이 칸의 아내는 그들을 보고 안쓰러움과 걱정어린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고 합니다.
 
 
"예부터 천년을 이어간 왕조는 없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의 자손들도, 언젠가 저런 운명이 되지 않겠습니까."
 
쿠빌라이 칸으로부터 30년, 그 전성기가 끝난 원나라는 100년이 되지 못하고 멸망했습니다. 역사는 그런식으로 계속 흘러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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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bookmark | 작성시간 12.03.27 이부분 시조를 보면서 '안진경 안습... 동시대에 충신 소리 들은 사람은 죄다 거론되었는데 혼자 빠졌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죠.(...)
  • 답댓글 작성자▦무장공비 | 작성시간 12.03.27 원문은 찾아보니 為顏長山舌 이라고 되어있는데 안장산이 안진경 아니냐능?
  • 답댓글 작성자bookmark | 작성시간 12.03.28 안고경 아님? 둘이 사촌이고 둘 다 둘째가라면 서러운 충신인데, 죽을때까지 안록산 욕하다 죽어서 안진경이 죽기 직전에 '너님들 안고경이 끝까지 안록산 욕하다 죽은건 못들어봤음? 그사람이 내 형인데 내가 너네들 말을 들을것 같슴?' 하는 식으로 말한거 보면 혀 설자 쓰는 일화라면 안고경으로 보임.
  • 작성자▦무장공비 | 작성시간 12.03.27 꽤나 길고...음 제가 한시를 잘 볼 줄 아는건 아니고, 이해 못하는 소절도 반쯤 되지만 그래도 참 좋네요. 언제 원문으로 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
  • 작성자[★]kweassa | 작성시간 12.03.30 "나라 망할 때 따라 죽을 충신 셋 정도는 있다고 한다 (그거 없으면 안습;;;)"이라는 말도 있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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