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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폭격의 역사 (33) 독수리 깨어나다 -3- 일본의 무리수

작성자Venice의 선원| 작성시간11.11.26| 조회수985| 댓글 18

댓글 리스트

  • 작성자 heidegger 작성시간11.11.26 오오 드디어 진주만 공습이군요
  • 작성자 푸헬헬 작성시간11.11.26 미국의 요건이 애매했죠. '중국'에서 철수하삼. 이게 만주까지 포함하는건지 구체적인 얘기가 없는, 협상가능한 상황이었음에도 우리의 도조는 전쟁전쟁!!
  • 작성자 VOCALOID 時代 작성시간11.11.26 솔까말 진주만 공습이 성공했다면, 태평양을 꽤 오랫동안 앞마당인 듯 휘잡고 다녔을지도 모르는 데...애초 목표였던
    미 항모는 물론, 유류저장소마저 파괴 못 했으니 원...진주만에 침몰한 전함 다수는 나중에 인양돼서 수리-전쟁에 참여
    했고 ㅇㅅㅇ. (위대한 천조국의 I.C...)
  • 작성자 에헤라디야응 작성시간11.11.26 오송에 상륙한 일본군을 기다리는 건 마찬가지로 더욱더 요새화된 상하이 외곽이었습니다. 뭐 어찌되었든 일본군은 상하이에돌격했고, 결국 3개월의 전투끝에 상하이를 점령합니다. -일본군 사상자 5만여명, 국민당군 사상자 25만명(......)

    - 대체 어떻게 싸웟길래 지키는쪽에서 사상자가 더 많이나오는지.. 요놈들은 이때도 인해전술썻나; ㅋㅋ
  • 답댓글 작성자 밥묵고자자 작성시간11.11.27 일본군에게 엄청난 사상자가 나올줄 알았는데.. 결과가 좀 반전이었다는..
  • 답댓글 작성자 price2323 작성시간11.11.27 그만큼 당시 국민당군의 항공능력부족이나 지상군을 지원해줄 백그라운드가 부족했단거 아닐까요? ㄷㄷ..
    예나 지금이나 제공권이 중요한걸보면.
  • 작성자 leejw 작성시간11.11.26 생각해보면 나치독일과 일본의 관계가 참 웃기네요. 독일은 일본하고 손잡았고, 일본은 국민당군을 공격했는데, 독일은 국민당군을 지원하고 있었지를 않나, 비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일본이 공격해서 점령하질 않나, 그런데 독일은 일본한테 Me-262시제품을 보내질 않나.........뭐여 이 관계는? 독일한테는 일본이 아군이 아니고 완전 웬수네요 그냥........결과론적이긴 해도 일본이 진주만을 공습하면서 미국이 전면적으로 전쟁에 참가하는 계기가 됐으니.......
  • 답댓글 작성자 Che_GueVaRa 작성시간11.11.27 '국공 내전'때문에 나치 독일이 중국 국민당군을 지원해 준 걸로 압니다. 아시다시피 철저한 반공국가 나치 독일이었으니까요.
  • 작성자 오우고메이지 작성시간11.11.26 일본의 자살골이 시작되려 하는군요. ㅋㅋ
  • 작성자 centurion 작성시간11.11.26 영화 집결호에서 국민당군이 완전 독일군 모양을 하고 있어서 첨에는 " 아니 이게 무슨 타임워프물도 아니고 중공군이랑 독일군이 싸우다니?!?! " 했었는데 국민당군의 현대화가 독일에 의해 이루어져서 그랬던 거군요. 한가지 또 배우고 갑니다
  • 작성자 비두우카★ 작성시간11.11.26 중국의 사상자를 보고있으면... 일본보다는 국민당군이 착검돌격을 감행한것같군요 ㄷㄷㄷ
  • 작성자 청의동자 작성시간11.11.27 디시 본사를 공격했네요
  • 작성자 Che_GueVaRa 작성시간11.11.27 근데 한스 폰 젝트는 단지 중국의 독일인 군사고문 정도일 뿐이라서,
    당시의 중국 국민당군이 정예화되었을지는?! 약간 의문입니다.
    정예 강군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기 쉽지 않죠.
  • 답댓글 작성자 Venice의 선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1.11.27 뭐 장개석 직속 몇개사단은 말그대로 정예화 되었지요 이들이 상하이랑 오송서 일본군과 투닥투닥하다 다말아먹은게 좀 컸죠;;
  • 답댓글 작성자 Che_GueVaRa 작성시간11.11.27 베니스의 선원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 Venice의 선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1.11.27 투르크랑 비교하기 애매한게 투르크는 말그대로 영국군을 갈아먹고 후에 그리스군도 날려버릴정도로 강해졌는데 중국 국민당군대는 워낙 부정부패가 심해서 이 정예사단 날아간 뒤로는 힘도 못쓰고 게릴라전에서 힘겹게 싸워 갑니다
  • 답댓글 작성자 Che_GueVaRa 작성시간11.11.27 저도 써놓고 웬지 좀 애매하다 싶어 그 부분을 지웠는데. 쩝.
    그리고 당시 투르크는 엔베르 파샤가 대대적인 체질 개선을 몇 차례에 걸쳐 한 게 컸다 생각합니다.

    '갈리폴리' 전투는 투르크의 예비 병력 --> 콘스탄티노플에 1개군이 편성되어 있었죠.
    이 바로 투입될 수 있는 철도 체계가 갖춰줘 있었고 지휘관이 굉장히 유능했죠. --> 무스타샤 케말.
    또, 갈리폴리전투에서의 영국군이 심각하게 무능한 지휘관들이었다는 것도 한 몫하죠.


    암튼 잘 모르는 중국군 얘기에 대해 하나 배워갑니다. 꾸벅.
  • 작성자 기러기 작성시간11.11.27 드디어 태평양 전쟁의 서막이..ㄷ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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