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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차 참하신년대회

무덤 이야기(上)

작성자prafit|작성시간19.03.31|조회수3,993 목록 댓글 11

" ... "


두 번의 절을 마친 남자는 자리에 앉아서 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이 장소에 찾아오기 시작한지 20년도 족히 지났지만, 이곳은 과거와 달라진 것이 거의 없었다.

단조롭고 칙칙한 도시의 아파트의 숲과는 대조되는 여러 민가가 옹기종기 모여 형성된 마을. 시끄러운 도시와는 대조되는 정적. 

조용한 마을의 옆의 철길을 때마침 지나가는 기차가 힘차게 연기를 뿜고 있었다.


한동안 산 밑 마을을 멍하니 바라보던 남자는 시선을 돌려 자신이 올라온 길을 바라보았다.

성묘객들이 편히 이용할 수 있도록 잘 정돈된 산 아래턱의 묘지와는 달리, 이곳은 지나갈 수만 있도록 최소한의 관리만을 하는 수풀 사이를 통과해서 자연 그대로의 길을 밟아야 도착하는 장소였다. 그래서 어렸을 때는 이 장소에 오는게 그렇게 싫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도 산 위에 도착해서 산 아래의 풍경을 내려다 볼 때 느꼈던 뭔지 모를 해방감. 그것이 산을 오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는지 모른다.


물론 그때의 남자는 혼자가 아니었다. 앞장서서 나아가며 남자의 손을 잡아주어 앞으로 이끄는 큰 손의 주인이 있었다.

상냥하게, 때로는 엄격하게. 언제나 앞에서 남자가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다. 그러나 이미 지난 과거의 일이다.

시간의 흐름이란 그런 것이었다.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었듯이, 손의 주인은 차가운 흙 속에서 남자를 맞이하고 있다.


생명체인 이상 언젠가는 반드시 죽기 마련이다. 어째서 그 당연한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일까.

처음엔 도저히 실감이 가지 않았다. 장을 지내며 관을 묻을 때까지, 아니, 명절이 다가와 다시 찾아올 때까지도 믿지 못했다.

뒤에서 몰래 나타나 사실은 짖궃은 장난이었다고 말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남자가 다시 아이로 돌아갈 수 없듯이, 그럴 일은 없었다.

이제는 시간이 지나 그 모습, 그 목소리 조차도 희미해지고 있다.



남자는 슬슬 자리를 정리하고 이동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직은 이 산에서 들러야 할 곳이 한 곳 남아 있었다.

볼 일을 마치고 부지런히 내려간다면 아마 저녁쯤에는 집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식어빠진 음식을 집어먹기보다는 공복을 조금 느끼더라도 집에 돌아가서 따뜻한 음식을 먹는게 더 좋을 것이다.

이번 연휴는 아주 길다. 그러니 다음 2일 동안은 늘어지게 잘 것이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고 푹 잘수 있겠는가? 그래도 마지막 하루정도는 정상적으로 일어나야겠지. 게으름이란건 순식간에 몸에 배기니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남자를 현실로 불러들인 것은 이 장소와는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소리였다.


" 테치? "


이미 남자가 태어나기도 전에, 다시 도래했던 실장석 붐 현상은 쇠퇴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원인은 자명했다. 인간에게 의존하지 않으면 스스로 힘으로 살아가기도 힘든 주제에 도와주는 인간조차 노예로 취급하는 그 이해할 수 없는 인지능력과, 투분이나 탁아, 절도 등 갖가지 방법으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히는 것도 모자라서 인간에 의해 길러지는 동족을 보면 질투심으로 죽이려고 덤비거나 자신이 사육실장이 되기 위해 바꿔치기를 시도하는 들실장 따위를 애호할 수 있겠는가? 

사육실장이라고 다른 점은 없었다. 고문을 넘어서 생과 사의 험한 갈림길에 내던져진 뒤 선택을 요구하는 그 가혹한 교육조차도 꺾지 못하는 그 분충성과, 스스로의 주제를 자각하지 못하고 주인의 호의에 감사할 줄 모르며 끝 없이 요구하기만 하는 그 태도가 많은 사육주들이 사육실장의 양육을 스스로 포기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실장석들이 괴멸했냐면 그런 것은 아니다. 지금도 길을 걸으며 보면 실장석용 봉지를 가득 채운 실장석들의 사체나 욕설을 내뱉으며 바닥에 늘러 붙은 실장석의 잔해를 치우는 미화원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간혹 너무 가혹하지 않냐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대다수는 실장석을 동정하지 않는다. 이건 그들 스스로가 쌓아온 결과이니까.

이런 상황에서 살아있는 실장석은 정말 오랫만이다. 산에서 사는 실장석이란건 본 적도 없었고.

말로만 듣던 산실장에 남자는 호기심이 갔다. 실장석이 공원이 아닌 야생에서 스스로 자립이 가능한가? 식량은 어떻게 구하는거지? 

계속 솟아나는 의문을 잠시 미뤄두고, 남자는 소리의 근원을 찾아 조심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실장석의 소리는 봉분 왼쪽의 수풀 속에서 나고 있었다. 나름대로 신경을 쓴 듯이 목소리는 일반적인 실장석의 목소리보다는 현저하게 작았다. 실장석의 불행이라면 이곳은 주변에 소음이 가득한 도시가 아니라 아무것도 없이 적막한 산이었다는 것이다,

남자는 수풀을 살며시 들춰보았다.


" 테치. 테치? "  


" 데스. 데스 데스! "


그 안에는 자실장 한마리와 성체실장이 있었다. 자실장은 봉분 앞에 놓여진 음식을 손으로 가르키며 무어라 말하고 있었고, 친실장은 그런 자실장을 꾸짖으면서 팔을 당기고 있었다. 아무래도 친실장은 당장 자리를 벗어나려는 것 같았지만, 자실장의 두 눈은 좀처럼 음식에서 시선이 떼지지 않았다. 그 모습은 마치 떼를 쓰는 아이와 이를 나무라는 어머니의 모습과 흡사했다.


" 이봐 "


" 텟! "  " 뎃! "


갑작스럽게 들리는 목소리에 두 모녀의 경직된 시선이 위를 향했다. 자신들을 내려다보는 저 커다란 형체, 분명 인간이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제자리에 주저 앉는 자실장과 그런 자실장을 품 안에 꼭 껴안으면서 자신을 경계하는 친실장. 

두 모녀를 바라보며 남자는 입을 열었다.


" 너희... 저기에 있는 음식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던거 같은데, 음식의 주인은 엄연히 나라고. 그런데 너희는 뭘 하려고 했던거지? "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거리는 자실장과는 다르게 친실장의 얼굴은 대번에 시퍼렇게 질렸다.

재빨리 제자리에 엎드려서 절하는 친실장의 채근에 아직도 갸웃거리던 자실장도 똑같이 엎드려 절했다.

정말로 신기한 생물이었다. 종도 다른 인간의 말을 이해하고 행동할 수 있다니, 다른 애완동물의 그것과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그래서겠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실장석들을 무시하고 미워함에도 아직도 사육실장을 기르며 귀여워하는 사람들도 있다는것이.

... 그 사람들 중에서 무책임한 일부가 사육실장을 유기해서 사람들이 미워하는 들실장이 생기는건 별로 비밀도 아니지만.


자신을 보고 엎드려 절하는 두 모녀를 응징하려는 마음은 딱히 없었다. 도시에서 본 들실장이었으면 냉큼 발로 걷어 차 줬을텐데. 

그러나 저기 저 자실장. 이해가지 않는 어미의 명령을 따라 절하면서도, 살짝 든 머리로 음식을 힐끔 쳐다보며 침을 꼴깍 삼키고 있는 저 모습을 보니 왠지 살짝 골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 너희들이 음식을 보고 군침을 삼키는건 자유지. 근데 말했듯이 이건 내꺼야. 같은 인간끼리도 남의 것을 탐내서 도둑질하면 그에 응당한 처벌을 받는데, 실장석인 너희가 인간의 것을 도둑질한다? 너희 목숨을 내놔도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라고는 생각안해? "


이제서야 이해가 갔는지 안색이 하얘진 자실장도 벌벌 떨기 시작했다.


" 도망가면 벌을 줄테니까, 여기 얌전히 있어. 뭐, 듣지 않아도 좋아. 내 말을 듣지 않은걸 반드시 후회하게 해줄테니까. "


돗자리로 돌아와 가방 속에 손을 넣어 뒤적거리던 남자는 곧 가방에서 큰 비닐봉지를 꺼냈다.

그리고는 봉분 앞에 차린 음식을 잠시 응시하다가 하나씩 접시를 기울여서 봉지에 담기 시작했다. 

어차피 잘 먹지도 않고 음식물 쓰레기로 버릴 가능성이 농후한 음식이니 그냥 적선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그 대상이 실장석이 될 거라곤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지만.


봉지에 음식을 담은 남자가 돌아올 때 까지, 모녀는 엎드린 채로 벌벌 떨고 있었다.


" 이봐, 일어나라구. "


남자의 눈치를 살피던 두 모녀는 우물쭈물하며 일어났다. 슬쩍 미소지은 남자는 자실장을 향해 손을 뻗었다.


" 테칫! "


검지손가락이 자실장의 머리를 가볍게 밀자, 그 힘을 이겨내지 못한 자실장은 뒤로 데굴데굴 굴러 쓰러졌다.

반사적으로 뛰어가려던 친실장은 남자의 눈치를 보느라 옴짝달싹 못했다. 어쩔 줄 모르는 친실장의 앞에 뭔가 떨어졌다.



" 데? "


그것은 동그랑땡이었다. 이미 만든지 하루가 지나 식었으나, 친실장이 여태까지 본 인간의 음식 중 가장 싱싱하였다.

아직도 배겨있는 기름냄새가 친실장의 코를 자극하여 입 안에 침이 고이도록 만들었다. 

친실장은 자신의 자를 공격하고 바로 먹을것 을 주는 남자의 의도를 알 수 없어서 고민에 빠졌다. 

그 사이, 쓰러졌던 자실장은 일어나서  흙이 잔뜩 묻은 몸과 맨땅에서 놔 뒹군 통증에 울먹이고 있었다. 


" 거기 너도 그만 울고 이리 와라. "


" 테에... 테끄윽... 테끄윽. "


앉아서 울먹이던 자실장은 눈물을 훔치며 친실장의 옆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남자는 자실장에게도 똑같이 하나 건네주었다.

손에 쥔 음식으로 자꾸 시선이 향하는 모녀, 그러나 남자의 의도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손에 쥔 채로 남자를 쳐다보기만 하였다. 


" 뭘 보고 있어? 이상한 것 안 들었으니까 먹으라고. "


재차 권하여도 모녀는 쉽게 경계를 풀지 않았다. 뒷머리를 긁적인 남자는 봉지에서 동그랑땡 하나를 꺼내어 먹었다. 남자가 먹는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입을 헤 벌리고 보던 모녀는 자신들의 손에 놓인 동그랑땡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손가락에 묻은 기름을 봉지에 쓱쓱 문지른 남자가 아무이상 없다는 듯이 팔을 펼치자, 자실장에게 낮게 뭐라고 말한 친실장은 손에 들은 동그랑땡을 잠시 보다가 반으로 쪼개어 입 안에 넣었다.


맛을 음미하듯이 느리게 반쪽을 먹은 친실장은 자신의 팔다리를 흘끔 보거나 자기 주변을 한바퀴 뛰어보는 등 한동안 부산을 떨었다. 친실장의 행동을 뚫어져라 지켜보던 자실장은 눈이 마주친 친실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잽싸게 자신의 몫을 입에 집어넣었다.

조리된 음식을 처음 먹은 듯 눈을 크게 뜨고 귀를 파닥거리며 동그랑땡을 입안에 넣고 우물거리는 자실장의 모습은 꽤나 귀여웠다.

동그랑땡을 다 먹은 자실장이 아쉬워하는 기색을 보이자, 친실장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나머지 반을 자실장의 손에 쥐어주었다. 

동그랑떙을 먹는데 열중인 자실장을 보며 남자는 아마 오늘이 자실장의 생애에서 가장 운이 좋은 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를 마친 모녀의 앞에 남자는 쪼그려 앉았다. 경계를 푼 자실장은 먹을 것을 준 남자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고, 여전히 남자를 경계하는 친실장도 이전보다는 경계심을 많이 누그려뜨렸다. 앉으라고 손짓하는 남자를 보고 모녀도 자리에 앉았다.


" 뭐 이제 대화할 분위기가 된 거 같네. 난 너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니까 내 말을 알아들었으면 고개를 끄덕여. "


" 일단, 대다수의 인간이 들실장을 보면 싫어하는 걸 너희도 알고 있지? 아까 숨어서 지켜보던 걸 생각하면 그건 아는거 같은데. " 


고개를 끄덕이는 모녀를 보고 남자는 말을 이었다.


" 그래, 꼭 너희 잘못은 아니지. 인간을 피할 정도의 생각이 있는 너희들이니까. 문제라면 장소일까. "


아이들한테 말하는 것보다도 힘들다. 어떻게 해야 이해시킬 수 있을까. 귀찮으니 그냥 링갈이라도 받을까 고민하던 남자의 눈에 뒤늦게 친실장의 팔에 걸린 비닐봉지가 들어왔다.


" 너, 혹시 들실장 출신이냐? "


친실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럼 좀 이해하기 쉽겠네. 들실장인 너희가 돌아다니면 괴롭히거나 죽이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많지. 어쨌든 자신의 공간이 아니니까. 그런데 반대로 탁아를 시도하거나 집에 몰래 들어온 들실장을 살려준 인간을 본 적 있니? 너희도 다른 실장석이 너희 집에 들어오면 좋게 넘어가려고 하질 안잖아. "


또다시 고개를 갸웃거리는 자실장과는 달리, 친실장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 그거랑 비슷한거야. 이곳은... 너희 말로는 뭐랄까.. 마마의 마마던가? 죽은 부모님이 묻혀 있는 곳이지. 뭐 물론 꼭 부모님만 해당하는건 아니지만 말야. 어쨌든 이렇게 무덤이 있는 장소는 다 죽은 인간이 묻혀있다고 보면 돼. "


" 죽은 사람의 기일이거나 특정한 명절이 되면 사람들은 무덤에 찾아와서 죽은 사람들을 위한 의식을 지내곤 하지. 그리곤 죽은 사람들이 돌아와서 꺼내놓은 음식을 먹는다고 하고. "


눈을 동그랗게 뜨는 두 모녀의 모습에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며 남자는 계속 말했다.


" 뭐 실제로 죽은 사람이 살아서 돌아올리는 없고, 그냥 날을 정해서 그 사람을 떠올리는거지. 죽어도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기억에 남게되는거야. "


남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모녀. 남자의 말을 듣는 자실장의 눈은 묘하게 빛나고 있었다.


" 중요한건 이거야. 어쩃든 사람들은 이렇게 찾아오는 걸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그런데 근처에 실장석이 고인을 위해 준비한 음식을 가져가려고 한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사실 너희가 가져갈 생각이 없어도 그래, 사람들은 한꺼번에 묶어서 보기를 좋아하거든. 음식을 가져가려는 실장석이나 그냥 지나가려는 실장석이나 눈에 띈 순간 같은 부류가 되는거지. 어쨌든 너희라면 그렇게 중요한 음식을 가져갈지도 모르는 실장석이 있다면 용서할까? "


고개를 바로 젓는 친실장과는 달리, 고개를 갸웃거리던 자실장은 뒤늦게야 고개를 저었다. 제법 귀여운 모습에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서 자실장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테츙♡ "


" 내가 해줄말은 여기까지다. 다음번에는 사람들 근처에도 가지마라? 언제나 이번처럼 운이 좋다고는 장담할 수 없으니까 말이야. "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는 모녀에게 남자는 봉지를 건냈다. 


" 이건 뭐... 변덕이다. 그냥 니 새끼 날린거랑 너희를 벌벌 떨게 한 것에 대한 사과의 표시라고 하자고. "


친실장은 봉지가 땅에 끌리지 않도록 음식의 일부를 자신이 소지하던 봉지에 덜은 뒤, 빈 팔에 남자가 준 봉지를 조심스럽게 걸었다.


" 뭐 그럼 잘살아봐라, 내가 한말은 절대로 잊지 말고. "


" 테치 테치 "  " 데스우 "


고개 숙여 인사한 뒤 수풀 너머로 사라지는 모녀에게 남자는 손을 흔들어주었다. 더이상 모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그들이 사라진 수풀을 바라보던 남자도 돗자리를 접고 짐을 챙겨서 내려갔다. 무덤은 처음부터 아무도 없었던 듯이 적막에 휩싸였다.



.

.

.

.



친실장은 원래 공원 태생의 실장석이었다.

원사육실장인 마마로부터 독립한 친실장은 자신감이 넘쳤다. 귀여운 자를 낳고 다 함께 행복하게 살겠다는 큰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공원에서의 삶은 친실장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다른 실장석보다 좋은 머리로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게 고작이었다.

친실장은 곧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이 무사히 어른이 되서 독립한 것은 마마의 희생적인 헌신과 남들보다 더 좋았던 운에 불과했을 뿐이란 것을.


공원은 작은 도시의 외곽에 위치하고 있었다. 본디 시민들의 휴식처였던 이곳은 실장석들이 출몰하면서 인간의 발길이 끊겼다.

휴게소에 기르던 애완동물을 버리고 가버린다. 지금도 휴가철이면 흔히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공원의 근처에는 제법 커다란 규모의 휴게소가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장소였다는 것이 시민들의 불행이었다.


더이상 귀엽지 않아서, 말을 듣지 않는 분충이 되서, 자꾸 자를 낳고 싶다고 졸라대서, 더이상 기르기 귀찮아서...

여러 이유로 주인들에 의해 버려진 원사육실장들은 처음 보는 낯선 환경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주인만을 애타게 찾다가 금세 목숨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그들중 일부는 본능이 이끄는 대로 길을 떠났다. 

처음부터 인간의 손에서 자란 출산석의 자식이었기에 어떤 지식도 없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지만, 위석의 강한 주장을 따른 원사육실장들은 하나둘씩 공원에 도착하여 새 삶을 시작했다.


처음의 공원이 그렇게나 가혹했던 환경은 아니었다. 버려진 원사육실장들을 가엽게 보는 인간들의 지원도 있었고, 아직 사육실장으로 주입당한 지식들에서 벗어나지 못한 원사육실장들은 공원에 새로 정착한 동족들을 도우며 부족한 자원도 나눠서 사용했다.


주인의 보호이자 속박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삶, 혼자만의 삶이 아닌 다른 이웃들과 공존하는 삶. 전과는 다른 형태의 행복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도 자신을 버린 주인을 잊지 못했다. 그날 받은 상처를 도저히 잊을 수 없었다.

원사육실장들이 본능을 따라 자를 가지는 것으로 자신이 받은 아픔을 잊으려고 한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들은 새로운 행복을 손에 움켜쥐었다. 그리고 동시에 파멸의 씨앗도 같이 싹을 틔웠다.


자원은 급속도로 부족해졌다. 처음에는 원사육실장들을 귀여워해주던 시민들도 실장석이 자꾸 늘어나자 서서히 발길을 끊었다.

새로 태어난 자들도 문제였다. 원사육실장들에겐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소중한 자식이었지만, 한번 인간의 손에 인도될 만큼의 충분한 교육을 받은 원사육실장들과는 달리, 인간의 체계적인 교육이 아닌 마마의 기억을 기반으로 한 엉성한 교육을 받은 자실장들은 사람들에게 귀여움보다는 불쾌감을 주기 충분했다. 원사육실장들이 자신에겐 너무나 귀여운 자를 내보이며 들이댈수록, 더 많은 시민이 공원에서 발길을 돌렸다.

결국 버려졌다는 동병상련 아래 만들어졌던 공동체는 와해되었다. 부족한 물자를 차지하기 위해 원사육실장들은 물자를 두고 서로 다툼을 벌였으며, 때로는 서로의 목숨을 노리기도 하였다. 

일부는 싸우는 사이에 물자를 가져가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동족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렇게 공원은 투쟁의 장소로 변질되었다.


새로 얻은 안식처가 붕괴되었지만, 원사육실장들에게 후회는 없었다. 서로를 견제하고 상처입히는 투쟁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목을 빼고 마마를 기다리던 사랑스러운 자들이 있었기에. 그 소중한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으며 좋아하는 자들이 너무나 소중했기에.

그러나 그 뿐이었다. 식사를 마치면 원사육실장들은 자들에게 교육을 한 뒤 바로 잠을 청하여 그날 소모한 체력을 회복하는 것에만 신경 써야 했다.


이미 현실의 벽과 마주친 원사육실장들은 과거 사육실장일 때 자를 가지면 같이 놀아주겠다는 소박한 소망도 실현할 수 없었다. 자신이 쓰러지면 자들이 공원에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였다. 언젠가 주인이 다시 자신을 찾아올지 모른다며, 아니면 귀여운 자를 어떤 착한 인간이 사육실장으로 데려가 자들이라도 행복하게 살 가능성이 있을지 모른다며 기억을 더듬어가며 열심히 가르치던 사육실장의 몸가짐은 곧 공원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을 가르치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모든것을 잃은 뒤 얻는 소중한 자들이 꽃피지도 못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너무나 끔찍한 일이었다.


단 한 번이라도 공원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원사육실장은 한마리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공원에 도착할 때 까지의 여정. 미지의 세계에 던져진 공포감과 그들의 목숨을 노리는 수많은 위험들을 잊지 못했다.

그리고 그렇게나 소중한 자들이야말로 그들의 발을 묶는 덫이었다. 혼자서도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곳에 자들과 같이 간다는 것은 상황판단이 떨어지는 실장석의 생각으로도 자살행위라는 것은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을 잃은 원사육실장들은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마주했다. 그리고 소중한 자들을 위해 그 모든 아픔과 담대하게 맞서 싸웠다. 그렇게 그들의 헌신과 희생으로 소중한 자들이 독립할 시기가 되었을 때, 공원의 삶에 적응하기 위한 지식을 쑥쑥 흡수하여 그들의 마마와는 다르게 완전한 ' 들실장 ' 으로 일어난 그들이 공원의 주역이 되었을 때, 공원은 지옥이 되었다.



친실장은 경험이 많은 실장이었다. 독립한 뒤 세 번의 겨울을 이겨내고 무사히 살아온 베테랑 실장이었다.

친실장은 운이 좋았다. 굶주림에 미친 동족들의 습격에서, 무시무시한 마라의 전횡으로부터,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 모든 동족들을 무자비하게 때려죽이는 하얀 악마로부터, 친실장은 큰 상처 없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운은 친실장 스스로의 것이었다. 자들은 친실장의 그것을 결코 가지지 못했다.

친실장은 세 번의 겨울을 지낸 베테랑 실장이었다. 그러나 친실장이 공원에서 독립시킨 자는 단 한마리도 없었다.


친실장은 동족들에 비해 비상한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남들보다 더 많은 자원을 모으고, 많은 위험을 순조롭게 피해갈 수 있었다.

자들의 교육에도 게으름을 부리지 않았다. 영특한 자들도 친실장의 가르치는 지식을 스펀지마냥 쏙쏙 빨아들였다.

그러나 공원은 지옥이었다. 아무리 멍청한 성체실장도 공원에서 살아가기 위한 교활함을 마음속 깊숙한 곳에 간직하고 있었다.

자들은 영특했다. 그러나 경험이 부족했다. 그 부족한 빈틈은 다른 동족들이 물어뜯기에 충분히 커다란 틈이었다.


친실장이 매번 실패했던 것은 아니다. 항상 다른 동족들의 술수에 모든 자들이 희생되었던 것은 아니다.

단 한번, 어떤 자도 희생당하지 않고 무사히 자랐던 때, 맏이 장녀는 독립을 앞둔 중실장까지 길렀던 적이 있었다.

그날은 달이 밝은 날이었다. 2~3일 뒤면 독립하는 장녀와 친실장은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지옥같은 공원에서 살아가면서도 장녀는 작은 희망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귀여운 자들을 잔뜩 낳아서 훌륭히 기르고 싶다는 소망, 그것은 친실장의 그것과 같은 것이었다. 곧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며 모녀는 기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두 모녀가 대화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골판지 밖에서 놀다가 갑작스럽게 부는 차가운 바람에 놀란 사녀가 바닥에 운치를 흘렸던 것을 알지 못해서 일 수도,  아니면 단지 운이 없어서일 수도 있다.

모녀의 꿈을 산산히 부숴뜨린것은 공원의 무법자이자 폭군인 고양이였다.


다음 날, 음식을 구하기 위해 집을 나서는 친실장을 배웅하는 자들. 그 중 장녀를 덮친 커다란 검은 형체는 공원의 폭군, 고양이었다.

친실장의 위석이 미친듯이 신호를 보냈다. 당장이라도 이 자리를 떠나서 도망쳐야 된다며 요동쳤다.

이후에 친실장이 회고하기를, 아니 어쩌면 그 당시에도 친실장은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본능을 따라 도망갔다면 더 좋은 결과를 얻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그러나 친실장은 물러서지 않았다. 장녀의 두툼한 몸을 입을 크게 벌리고 물고 있는 야옹씨에게 보검을 들고 달려들었다. 

몇번이고 앞발에 희롱당하며 나가 떨어지면서도, 친실장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자들은 용감했었다. 친실장의 생애에서 어떤 자들, 아니, 보아온 어떤 동족들조차 그 자들보다 용감했던 실장석은 없었다.

본능이 미친듯이 경고하고 있음에도, 맞이하는 결과가 확실한 죽음 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들은 언니를 구하기 위해 폭군에게 덤벼들었다. 야옹씨의 피부를 뚫지도 못하는 이빨로 몸을 물어 뜯었다. 야옹씨에게 저항하기 위해 운치를 던졌다.

장녀도 포기하지 않았다. 폭군에게 물린 몸이 찢어지는 고통 속에서도, 수염을 잡아당기며 가족의 분투를 도왔다.

치열한 싸움의 승자는 친실장의 일가였다. 자들의 끈질긴 방해에 자세가 무너진 폭군의 눈을 친실장의 보검이 꿰뚫었다.

공원을 가득 채우는 고통의 비명을 지르며, 눈 앞의 친실장을 강하게 후려친 폭군은 공원을 빠져나가 멀리 달아났다.


수많은 상처를 입고, 온몸이 부서질 것 같은 통증을 느끼며 친실장은 몸을 일으켰다.

정신을 잃기 전에 마지막으로 본 것은 미친듯이 도망가는 폭군의 모습이었다. 친실장은 폭군의 마수로부터 살아남은 것이다.

힘 없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친실장은 자들을 불렀다. 그러나 어떤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대가는 가혹했다.

야옹씨의 얼굴에 투분하여 코와 얼굴 곳곳에 운치를 맞춘 차녀는 그 보복으로 코 윗부분 부터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운치를 맞아 괴로워하는 야옹씨를 보며 미소짓던 차녀, 그러나 차녀는 이제 더이상 웃을 수 없었다.

폭군을 공격하는 가족을 위해 시선을 끌려던 삼녀, 네 발로 엎드려 폭군을 위협하던 삼녀는 상반신과 하반신으로 두동강이 난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잿빛의 두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 그 얼굴은 아직도 험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나뭇가지를 들고 야옹씨에게 덤비던 사녀, 결국 야옹씨의 한 발을 못쓰게 만들었던 사녀는 그 나뭇가지에 몸이 반으로 쪼개져서 더는 숨을 쉬고 있지 않았다. 두려움으로 가득 찬 그 눈을 감겨주며 친실장은 가슴이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 해서라도 야옹씨의 발을 물어뜯으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애쓰던 오녀 엄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말 없이 눈물을 흘리는 친실장의 귀에 희미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장녀는 아직 살아있었다. 그러나 날카로운 이빨에 찢긴 옆구리의 틈으로 삐져나와 바닥에 펼쳐진 분대가 알려주고 있었다. 장녀의 꿈은 결코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친실장은 떨리는 두 손으로 분대를 장녀의 몸 속으로 밀어넣었지만, 분대는 힘없이 몸 밖으로 다시 흘러나왔다. 

의미 없는 행동을 필사적으로 반복하는 친실장의 손 위로 장녀의 손이 힘없이 올려졌다. 시선이 마주친 장녀는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미소지은 뒤 고개를 떨궜다. 숙여진 장녀의 머리는 두 번 다시 올라오지 않았다.

소중한 돌에 크게 금이 가는 것을 느끼며 친실장은 뒤로 쓰러졌다.


작은 두 손으로 몸을 콕콕 찌르며 애타게 깨우는 엄지의 간절한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친실장은 먼저 떠난 자들을 만났을 것이다.

큰 부상을 입은 친실장은 며칠이고 집 안에 틀어박혀 몸을 회복시켜야 했다. 그리고 미처 몸이 회복되기 전에, 다시 혼자가 되었다.

엄지실장은 미숙아이다. 그 약해서 보호가 필요한 자실장보다도 더 연약한 존재이다. 앞발에 스쳐서 몸에 새겨진 발톱 자국도 엄지에게는 큰 상처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그 상처가 결국 엄지를 집어 삼켰다. 친실장은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하얀 악마. 아직 공동체가 유지되던 시절에 마마의 친구인 오바상한테 들은 무시무시한 존재였다.

사실은 인간들이 변장한 모습으로, 공원에 분충이 범람하면 찾아와 모든 분충에게 슬픈일을 하고 돌아가 공원을 다시 인간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깨끗하게 만든다고 했다. 그러니 결코 분충이 되선 안된다며 신신당부하던 마음씨 좋은 오바상이었다.

마마도 분충은 인간한테 피해를 끼치니 절대 분충이 되어서는 안되며, 착하게 산다면 인간들도 해를 끼치지 않을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공원에 하얀악마가 처음 찾아온 날, 힘든 삶에도 동족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살아가려던 오바상과 마마는 슬픈일을 당했다.

그 오바상도 마마도 틀렸다. 인간들은 결코 분충들에게만 슬픈일을 하지 않았다.


자신을 비롯해 세 마리의 자를 독립시킨 마마와는 달리, 오바상은 지난 겨울에 자가 모두 얼어 죽어서 한 마리도 독립시키지 못했다.

보온재를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며 슬픔에 빠진 것도 잠시, 그렇다면 자를 많이 낳는다면 서로를 감싸안아서 체온으로 추위를 버텨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오바상은 열마리도 넘는 많은 숫자의 자를 낳았다. 

자가 너무 많으면 키우기 힘들지 않냐는 마마의 걱정에도 자신이 더 노력하면 된다면서 큰소리를 탕탕쳤다.

다행히도 태어난 자들은 착한 자들이었고, 오바상도 누구보다도 부지런히 움직여서 자들을 부양하는데 어려움이 별로 없었다. 

마마는 겨울이 걱정된다고는 했지만 오바상과 자들이라면 잘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고, 친실장도 그에 동의했다.

부러울 정도로 행복한 가족이었다. 서로를 아끼며 사랑하는 그 가족은 행복한 미래를 손에 쥘 자격이 있었다. 분명히 그랬어야 했다.



그날따라 묘한 불안감에 일찍 일어나 자들을 깨워 밥을 먹고 있던 친실장 일가의 귀에 들려온 것은 그 오바상의 절규였다.

자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한 뒤 조용히 집 밖으로 나가 비명소리의 근원을 찾던 친실장의 눈에 들어온 것은 너무나 끔찍한 광경이었다.


오바상의 앞에는 하얀 옷을 입은 두 인간이 있었다. 오바상의 말과는 달리 옷은 하얀색이었지만 얼굴에 변장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문제는 오바상의 자랑이었던 그 자들, 나머지는 어디갔는지 고작 네마리만이 한 인간이 들고 있는 통 안에 갖혀 있었다.
그리고 다른 자 한마리는 다른 인간의 발에 비스듬히 눌려있었다. 들려있던 인간의 발이 순간 아래로 내려왔다.

" 지잇! "

무슨 일이 있었는지 깨달은 친실장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주변에 적록의 얼룩이 여러 군데 있다는 것을 뒤늦게 발견할 수 있었다.
친실장이 재빨리 팔을 뻗어서 소리내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기 때문에, 참상을 목격한 자들의 비명을 간신히 막을 수 있었다.
한편, 자가 눈앞에서 밟혀 죽는것을 눈 앞에서 본 오바상의 얼굴에서는 눈물이 끊임없이 흐르고 있었다.

" 데... 데에엥! 데에엥! "

" 울 시간이 어딨어, 멍청한 녀석아. 바로 다음타자 가자고? "

그 인간이 뒤를 돌자, 시선이 마주친 통을 들고 있던 인간은 다른 손으로 통 안에서 자실장을 한마리 꺼냈다.

" 테챠아아앗! 테에엥 테에엥! "

눈 앞에서 자매가 죽어버린 공포스러운 장면에 그 자실장은 발버둥치며 운치를 사방에 흩뿌렸다. 자실장을 건네받은 인간의 얼굴이 순간 확 구겨졌다. 인간은 자실장을 바닥에 내려놓고는 다시 발로 고정시켜서 눌렀다. 
그저 공포에만 질려있던 아까 죽은 자와는 달리, 힘이 가해져 고통스러운지 손으로 인간의 발을 툭툭 쳤지만 발은 미동도 없었다.

" 더러운 똥벌레한테는 시간을 별로 안줘. 자, 다음 라운드라고. 다시 해봐. "

" 데샤아앗! "

주저앉아 울던 게 거짓이었던 것처럼, 오바상은 번개처럼 인간의 발로 뛰어갔다. 도와달라고 고통스럽게 울부짖는 자의 앞에서, 오바상은 인간의 발을 들어 올리려고 시도했다, 발을 손으로 툭툭 때렸다. 발을 깨물기도 하였다. 그러나 인간의 발은 미동도 없었다.

" 떙! 시간초과라고. "

" 데갹! "

오바상은 인간의 발에 맞아서 왔던 길을 날아서 돌아갔다. 그리고 오바상이 일어나기도 전에, 인간은 무정히 발을 아래로 내렸다.

" 치벳! "

" 오.. 오로롱! 오로롱! "

" 전혀 달라지는게 없어, 재미가 영 없다고, 그러니 패널티를 주자고. 새끼가 죽어서 슬프다지만 정작 니놈은 별로 안다쳤잖아? "

이미 그 인간은 또 다른 자실장을 발로 밟고 있었다. 다른 자들과는 달리 엎드린 채로 밟힌 자실장은 팔다리를 바동거리며 마마를 끝없이 외쳤다. 남자가 들어오라는 듯이 손을 까닥거리자 오바상은 다시 포효와 함께 인간에게 달려들었다.


" 시간 초과다. 이 벌레야. "

달라진 것은 없었다. 오바상이 아무리 기를 쓰고 남자의 발을 치우려고 해도, 발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인간이 눈짓하자, 통을 든 인간이 다가와 그 인간이 밟고 있던 자실장을 대신 밟았다.
인간의 손에 잡힌 오바상은 공중으로 들어 올려졌다. 그리고 그 인간이 앞머리를 쥐고 손을 옆으로 휘두르자, 오바상의 앞머리는
간단히 뽑혀버렸다.

- 부욱 -

인간은 의외로 오바상을 얌전히 바닥에 내려놓았다. 
땅에 내려온 오바상은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떨리는 손을 뻗어 자신의 앞머리를 잡으려고 했으나 손에는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았다.

" 지금 그딴 거에 신경 쓸 때냐, 할 마음 없으면 니 새끼 그냥 밟아버린다? "

남자의 말에 정신차린 오바상은 다시 한번 가망이 없는 일에 온몸을 던졌다.

" 데...데...데에에... "

" 테챠아아! 테..테..치벳! 

인간은 잔인했다. 자를 포기하지 않고 덤비는 오바상이 실패할 때마다 벌이라며 해를 가했다. 처음엔 두건을 찢어버렸다. 다음은 뒷머리를 뽑아버렸다. 그 다음엔 옷을 찢어버렸다. 그 다음은 신발을, 마지막으로 소중한 팬티를 뺏어버렸다.
그리고 오바상이 더이상 움직이지 못하자, 인간은 발을 내렸다. 이전에 죽었던 자들과는 달리, 서서히 내려오는 발의 압력에 자는 온몸이 터질 것 같은 압력이 고통스러워하다가 허리가 박살 나고 내장을 입으로 뱉는 끔찍한 모습으로 최후를 맞았다.
마음도 꺾이고 체력도 고갈된 오바상은 자의 비참한 죽음에도 흐르는 눈물조차 닦지 못하고 그저 땅바닥에 엎드려만 있었다.

" 더이상은 무리같은데, 그냥 끝내자고. 뭐 그래도 너도 열심히 했다. "

손에 든 막대기를 들고 다가가는 인간. 다가오는 죽음의 손길에도, 오바상은 움직일 수 없었다. 인간의 막대기가 위로 높이 들렸다.

" 테챠아앗! 테치 테치! "

" 뭐? 니 엄마도 못한걸 니가 할 수 있다고? "

" 테치! 테칫! "

" 하, 웃기지도 않네. 좋다. 어디 한번 해봐라. "

눈짓을 받은 통을 든 인간은 소리를 지른 자실장을 땅에 얌전히 내려주었다. 자실장은 곧바로 오바상에게 쪼르르 달려가 뭐라고 작게 중얼거렸다. 오바상은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으나, 이미 자실장은 인간의 앞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놀라웠다. 그 자실장의 말처럼 그 자의 주먹은 정말로 웬만한 성체실장의 주먹질보다도 강했다. 아까 필사적으로 인간의 발을 공격하던 오바상보다도 강한 힘으로 발 주위를 돌며 열심히 때리는 자실장의 배 부분의 옷이 볼록 튀어나온 것을 친실장은 뒤늦게 확인했다.
한참 동안 발을 때리던 그 자실장이 자리에 앉아 거친 숨을 고르던 그때였다.

" 야, 다했냐? "


" 테....테? "


" 니놈도 탈락. 그래도 자매를 구하려는 용감함을 봐서 마지막 말을 남길 시간은 줄게. 할 말 있냐? "


자실장은 고개를 획 돌려서 오바상을 보았지만, 이미 체력이 다한 오바상은 제자리에서 일어날 수도 없었고, 통 안에 든 자실장은 울면서 통을 손으로 치고 있었지만 통은 미동도 없었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인간의 시선에 부들부들 떨던 자실장은 팔을 뻗어서 자신의 얼굴로 가져갔다. 그리고...


" 테...테츙♡ "


" 테츙은 개뿔이. 어디서 애교질이야 징그러운 새끼가. "


" 치벳! "


자실장은 단말마를 내뱉으며 남자의 발 밑으로 사라졌다. 남자가 발을 들어올리자, 밟힌 자실장의 시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의외로 체액이 사방에 터져나간것을 빼고는 애교를 부리던 그 자세 그대로 쥐포가 된 것처럼 바닥과 일체화되어 있었다.


" 야, 이것봐라, 꼭 프린터로 뽑은거 같지 않냐? "


" 그렇긴 하네요. 저대로면 어디에 그냥 붙여놔도 그림으로 착각하는 거 아닐까요? "


그렇게 인간 둘이 자실장의 시체를 보고 킬킬대는 사이에, 힙겹게 기어 온 오바상은 자실장의 최후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손으로 들어올리려고 해도 오바상의 힘으로는 바닥에 착 달라붙은 자실장의 시체를 들어 올릴 수 없었다.

오바상은 웃고있는 두 인간에게 큰 소리로 짖었다.


" 데샤아아아앗! "


" .... x발새끼가! "


" 데갸악! "


얼굴이 확 일그러진 인간의 분노로 가득찬 발길질이 오바상의 배에 닿았다. 오바상의 몸이 단순에 저 멀리까지 날아갔다.

땅을 뒹굴며 팔다리가 이상한 방향으로 부러진 오바상을 순식간에 쫓아온 그 인간은 손에 든 긴 막대기로 전력으로 내리쳤다.


" 애시당초에 니놈들이 아무 생각없이 새끼를 싸지르니까 이 모양이 나는거 아냐! "


- 퍽 -


" 데붓! "


" 환경을 고려할 머리도 없지! 새끼를 스스로 부양할 능력도 없지! 위험에 빠진 새끼를 구할 수도 없지! 


- 쾅! -


" 데벳! "


- 파킨 -


" 어미라면 최소한 자식새끼들이 안전할 수 있는 장소에서 길러야 하는 것 아니냐? 그저 자기가 살기 편한 장소에서 책임도 질 수 없는 새끼를 잔뜩 싸지르고 인간에게 빌붙는 주제에! 뭐? 내가 똥닌겐이라고? "


- 쾅! -


" 똥은 너겠지 이새끼야! 너같이 대가리도 텅텅 빈 실장석 새끼들 때문에 휴일에 강제로 끌려와서 똥벌레나 쳐죽여야 되는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고! 죽어! 죽어 이새끼야! "


- 쾅! -

- 쾅! -

- 쾅! -


인간은 미친듯이 오바상을 손에 든 막대로 후려쳤다. 오바상은 순식간에 원래의 형태를 잃고 뭉개진 고깃덩어리가 되어버렸다.  

숨을 씩씩 내쉬던 그 인간은 다시 돌아와 통에서 남은 자실장 하나를 거칠게 꺼내서 땅에 내팽겨쳤다.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반쯤 피떡이 된 자실장 위에 인간의 발이 내려왔다. 단 한번의 짓밟기에 피떡이 됐음에도, 그 인간은 미친듯이 자실장의 시체를 짓밟고는 땅에다가 발을 비볐다. 그것이 행복했던 한 가족의 끔찍한 말로였다.



악몽같은 시간이 끝났다. 멀어지는 인간들을 보며 안전한 장소를 친실장이 고민하던 찰나, 너무나 큰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한 육녀가 그만 큰소리로 울어버렸다. 


" 테.. 테에엥! 테에엥! "


떠나가던 인간들이 걸음을 멈췄다. 친실장은 피가 얼어 붙는 것 같았다. 몸을 돌린 두 인간은 빠르게 돌아오고 있었다.

양 팔을 옆으로 쭉 뻗은 친실장, 흩어져서 도망치라는 수신호였다. 지시를 따른 자실장들이 뛰쳐나가기 전에, 친실장이 먼저 나갔다.


" 데샤앗! "


인간의 주위를 돌린 친실장은 네발로 뛰어서 도망가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빠른 친실장의 속력에 당황한 인간들도 무시무시한 속력으로 뒤쫒기 시작했다. 이대로 인간들을 자들이 없는 방향으로 유인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친실장의 귀에 자의 비명이 들렸다. 친실장은 무심코 고개를 뒤로 돌렸다.


" 테칫! "


원래부터 몸이 약했던 막내가 달리다가 그만 넘어진 것이다. 평소라면 돌아와서 부축해줬을 자매들도 공포에 질려서 막내를 외면하고 도망가고만 있었다. 갈등하던 친실장은 자신을 보며 눈물을 글썽이는 막내를 차마 외면하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고 몸을 돌렸다. 막내의 앞에 도달한 친실장은 두건을 벗어 막내를 그 안에 넣은 뒤, 꽉 붙잡으라는 말과 함께 다시 정신없이 달렸다.

가까워진 인간의 발소리에 거리를 가늠하기 위해 고개를 돌린 친실장의 눈에 믿을 수 없는 장면이 보였다.


사방으로 흩어졌던 자들이 다시 뭉쳐서 자신의 뒤에 쫒아오고 있었다. 빨리 흩어지라고 팔 대신 머리로 가리켜도, 자들은 울면서 마마를 부르면서 쫒아올 뿐 흩어지지 않았다. 그 사이 아까 저멀리 있던 인간들은 어느새 멀지 않은 곳에서 쫓아오고 있었다.

그러나 친실장에겐 더 이상의 선택권이 없었다. 친실장은 자들을 외면하고 계속해서 달렸다.

살려달라고, 두고가지 말라고 울부짖던 자들의 외침이 곧 자신을 버린 마마에 대한 증오서린 저주로, 그리고 곧 사그라드는 갸날픈 단말마로 사라지는 소리를 두 귀로 똑똑히 들으며 친실장은 달려야 했다.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못한 채 계속 달렸다.



엄청난 속도로 자신을 쫒아오는 인간의 발소리가 돌연 들리지 않았다. 달리면서 뒤를 흘끔 보니 인간은 제자리에 서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마침 눈 앞에 나타난 수풀에 뛰어들어 가쁜 숨을 가다듬으며 상황을 살피는 친실장에게 인간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 안 쫒아가셔도 되요? 저렇게 머리 돌아가는 녀석은 놓치면 나중에 잡기 귀찮을텐데요? "


" 야, 내가 생각해봤는데, 어차피 우린 아마추어잖냐? 열심히 구제를 했으나 놓쳐버린 몇마리가 있었다. 거 말 되는거 같지? "


" 아닌것 같은데요? 오히려 일을 얼마나 대충했냐고 징계를 내리겠다고 길길이 날뛸거 같은데요? "


" 아니, 좀 생각을 해봐. 애시당초에 망할 놈들이 버린 사육실장이 인근 휴게소에서 걸어와서 정착한 곳이라며? 지금도 심심하면 유기되는 실장석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는 뉴스가 뜨잖냐. 어차피 우리가 기를 써서 구제해도 금방 다른 놈들이 와서 정착할거라고. "


" 그러니까 차라리 대충하자. 대충하고 왜 구제했는데도 엉망이냐고 물으면 우리는 아마추어니까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가 있다고, 그러니까 다음번부터는 전문적인 구제업체를 부르라고 그렇게 말하자고. 다른 사람들한테는 내가 미리 말 해놓을게. 아니, 애시당초에 추가예산이 아직 배정 안됬는데 구제는 당장 필요하니까 직원들보고 휴일에 나와서 하라는게 말이 되냐? "


계속 불만을 토로하는 인간을 난감하게 바라보던 다른 인간이 입을 열었다.


" 대충하시더라도 슬슬 움직여야 되지 않을까요? 저희가 잡은건 큰 놈 한마리랑 새끼 몇마리 밖에 안되니까요.  "


" 네네 알겠습니다. 참 고지식하다니까. 그나저나 쟤도 참 불쌍하네. 새끼가 울지만 않았으면 우리한테 들키지도 않았을꺼아냐? "


" 뭐 그건 그렇죠. 근데 생각해보세요. 사람을 죽이는 작은 빌라만한 괴물이 있다면 누구라도 비명을 지르고도 남지 않을까요? " 


" 그거 말 되네. 그럼 그냥 운 없던 실장석이라고 하자. 어미가 소리지르라고 시키진 않았을꺼 아냐? 한놈 때문에 줄초상 난거지. "


멀어지는 인간의 발소리에도 친실장은 그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안전하게 숨기 위해 친실장이 움직인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그 날, 공원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냉혹한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극히 일부의 '들실장' 이었다. 소중한 가족을 버려서라도 필사적으로 도망간 그들만은 삶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들 중 자가 남아 있는 실장석은 친실장이 유일했다.


공원은 그렇게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살아남은 실장석들은 그들의 모친과는 달리 다른 동족을 해치는데 아무런 망설임이 없는 완벽한 들실장이었지만, 공원 실장석의 거의 전부가 박멸되어 자원이 풍족해진 관계로 당분간은 평화가 유지되었다. 

그러나 친실장은 기뻐할 수 없었다. 원래부터 몸이 약했던 막내, 그 아수라장 속에서 간신히 살릴 수 있었던 유일한 자는 자매들이 무참히 도살당한 그날을 잊지 못했다. 친실장의 헌신적인 간호에도 약했던 몸은 점차 쇠약해져갔다. 

결국 밖에 꽃이 흐드러지는 계절에 막내는 그리운 자매들의 품으로 돌아갔다. 혼자가 된 친실장은 무릎을 꿇고 오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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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봄, 음식을 가지고 집에 돌아온 친실장의 눈에 들어온 것은 문이 열려있는 골판지였다.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아 교육이 부족한 자들이 그만 다른 성체실장의 꾀임에 넘어가 문을 열고야 만 것이다.

내부는 참담했다. 겨우내 먹고도 남아 있던 보존식과 집에 차곡차곡 넣어논 가재도구가 모두 사라져 있었다. 

친실장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나왔다. 보존식도, 가재도구도 기회가 된다면 언제라도 다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잃어버린 자들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는 볼 수 없다. 아직 사라지지 않은 자들의 온기를 느끼며, 친실장은 보검을 손에 쥐고 자들의 냄새를 쫒았다.


서둘러 냄새를 쫒아온 친실장은 이내 어느 골판지의 앞에 도착했다. 

잠시 숨을 고르며 체력를 회복하던 친실장은 골판지의 문을 슬쩍 밀어서 틈 사이로 내부를 살폈다.

그러나 이미 한발 늦은 듯 하였다. 저기 울고 있는 독라엄지 근처에 아무렇게나 던져진 포대기는 삼녀 엄지가 애지중지하던 막내 우지챠의 포대기가 분명하였고, 애교를 부리며 친실장의 피로를 풀어주려고 항상 노력하던 장녀는 발 밑에 쌓인 우지챠 몇마리의 시체 위에 말라비틀어진 채 움직이지 않았으며, 집에 쳐들어온 독라자실장들을 분투 끝에 몰아냈던 용감한 차녀는 회색의 눈에서 눈물을 흘리며 다른 자실장들에게 뜯어 먹히고 있었다. 낙담하는 친실장의 귀에 순간 찢어질듯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자신의 자를 뜯어먹으며 포식하고 있는 자실장의 반대편에는 자들을 꾀어 문을 열게 한 성체실장이 있었다. 그리고 그 성체실장의 억센 손에 붙잡혀 비명을 지르는 삼녀가 있었다. 입을 천천히 벌리며 팔을 자신쪽으로 굽히는 성체실장의 행동에 삼녀는 공포에 질린 눈으로 미친듯이 팔을 두드렸으나 성체실장의 비웃음만을 살 뿐이었다. 저항할 수 없는 운명에 비명을 지르는 일 밖에 할 수 없었던 삼녀의 시선이 순간 틈새로 내부를 살피는 친실장의 눈과 마주쳤다. 

살 수 있다는 희망에 환해진 얼굴로 두 팔을 친실장쪽으로 뻗는 엄지. 친실장이 망설이지 않고 문을 박차고 뛰어들었을 때, 두 눈이 반짝거리던 엄지의 상반신은 원수의 입 안으로 사라졌다.


친실장이 정신을 차렸을 때, 원수는 이미 팔 하나만 달려 있는 달마가 되어 있었다. 자신의 본능이 이끈 결과를 잠시 바라보던 친실장은 묵묵히 두 손을 놀려 원수를 독라로 만들었다. 패배의 대가에 절규하는 원수의 울부짖음이 집 안을 가득 채웠다.

무적인 마마의 비참한 몰락에,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강대한 습격자의 모습에 벌벌 떠는 원수의 자들이 친실장의 눈에 들어왔다.

자들은 결국 단 한마리도 구할 수 없었다. 그래도 아직은 새로운 자를 낳기에는 늦지 않은 시기였다. 자들이 건강하게 태어나기 위한 영양분이 필요함을 상기한 친실장은 원수의 자들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희생당한 자들을 위한 무자비한 복수의 의식이며, 태어날 자들을 위한 양분이었다.

강제로 끌려와서 한 마리씩  친실장의 입에 들어가 꼭꼭 씹히는 자들을 보면서도, 이미 저항할 방법을 상실한 원수는 그저 피눈물을 흘리면서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친실장이 독라엄지를 집어들자, 독라엄지는 미친듯이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도움을 바라며 애타게 마마를 부르는 독라엄지의 모습. 그 순간 친실장의 뇌리에 자신의 눈 앞에서 희생된 삼녀의 최후가 떠올랐다.

친실장이 힘 없이 팔을 아래로 내려 엄지를 내려주자, 독라엄지는 친실장에게서 달아나 원수에게로 달려갔다.


이전까지 없던 모성애가 발현된 것인가, 아니면 단지 하나뿐인 자를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인가. 

엄지를 그렇게나 냉대하던 과거는 까맣게 잊은 듯이 원수는 단 하나 남은 팔로 힘겹게 엄지를 품에 끌어안고 친실장을 위협했다.

그 모습을 본 친실장은 맥이 풀렸다. 피해자는 자신인데, 자들을 볼 수 없는 건 자신인데 어째서 저들이 피해자인 척 행세를 하는가.

원수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리는 엄지를 본 친실장은 가슴이 아파왔다. 자신이 조금만 더 빨리왔다면 자들이 저렇게 자신의 품에 안겨 있을텐데... 태어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자들은 죽는 순간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는 자신을 얼마나 원망했을까.


분명히 자신이 있었다. 마마의 가르침대로 분충을 걸러내고 착한 자들을 정성을 다해서 기르면 독립시킬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마치 운명이 친실장의 일가를 시기하듯이 단 한마리의 자도 독립시키지 못했다. 

죄송하다고 사과하는 자, 아직 죽고싶지 않다고 벌벌 떨던 자, 다가오는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하던 자.

자신의 눈 앞에서 죽어간 모든 자들의 마지막 모습, 가슴 속 깊은 곳에 새겨진 그 낙인들이 마음에 큰 상처로 남아 있던 것을 이제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방금전의 욱신거림은 친실장에게 확신을 주었다. 아마 다음번이 자를 낳을 수 있는 마지막이라는 가슴 아픈 사실을.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얻은 결과를 보니 마음 속에 풀리지 않는 의문이 든다. 과연 그게 과연 최선이었을까? 

마마의 보호를 받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았다. 인간의 눈치를 봐야했던 것은 그때도 마찬가지였지만, 그 때에는 여유가 있었다.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시간을 이용해서 가족이 함께 물로 개운하게 씻을 여유가 있었다. 

길러달라는 마음을 품고 사람들의 앞에서 애교를 부리는 다른 오바상의 가족들의 엉성한 몸짓을 보고도 인간들이 화를 내지 않고 지켜봐줬던 때가 있었다. 지나가는 오바상의 가족과 마주쳐도 서로 인사를 나누며 평범하게 헤어지는 그런 시절이 분명히 있었다.


어째서 깨닫지 못했던 것일까, 공원 밖은 너무 위험하니 결코 떠날 생각을 하지 말라고 당부하던 마마의 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아무것도 모르는 미지의 세계로 나서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어째서 단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일까.

스스로도 힘겹게 살아가는 공원에서 자들이 무사히 독립하길 바랬다니... 처음부터 잘못된 생각이었다.

지금 자신이 또 주저앉는다면 마지막 자들은, 아니 설령 자신에게 기회가 더 있었더라도 자들이 독립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진정 최선을 다할려면 모든 것을 걸어야 했다. 그걸 왜 이제서야 간신히 깨달은 것일까.

그러니 떠나자. 이 지옥에서. 추억과 슬픈 기억이 공존하는 이 괴로운 장소로부터.


아무 쓸모도 없는 위협을 계속하는 원수를 무시하고, 친실장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비닐봉지를 챙겼다. 

그리고는 원수가 자신의 집에서 약탈해온 보존식을 봉지의 아래에, 가재도구들은 그 위에 담은 채로 몸을 돌렸다.

멍하니 자신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원수와 엄지의 시선을 무시하고, 친실장은 집 밖으로 나갔다. 

친실장은 걸음을 옮겼다. 원수의 집이 저 멀리 점으로 사라질 때까지, 활짝 열린 채 주인을 맞이하는 집도 지나쳐서 계속 걸어갔다.

공원의 입구에 도착한 친실장은 단 한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기원이자 전부였던 장소를 떠나는 여정의 발걸음을 디뎠다.



공원을 떠나는 것, 모든 원사육실장이 바랬던, 그러나 아무도 실현하지 못했던 목표를 친실장은 해내고야 말았다. 

그리고 곧 왜 마마가, 왜 그들이 떠나지 못하고 발이 묶였는지를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었다.


길은 끝이 없었다. 아무리 걸어도 길이 끝 없이 펼쳐져 있었다. 몸을 숨기고 잠을 청하는 일을 반복하며 친실장은 여정을 계속했다.

공원에서는 볼 수 없었던 위험도 가득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있는 인간보다도 거대한 물체. 그런 물체가 수도 없이 다녔다.

그리고 그렇게나 큰 위협이었던 야옹씨 뿐만 아니라 인간들이 끌고 오던 멍멍씨도 잔뜩 보였다. 그들의 추적을 피해 죽을힘을 다해 도망쳐야 했다. 그들의 추적은 단지 장난에 불과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언제 진심으로 돌변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인간들이 수도 없이 많이 보였다. 자실장이던 시절에는 공원에 찾아와서 먹을 것을 나눠주던 인간들, 그러나 이미 친실장의 뇌리에는 오바상과 자들을 무참히 죽이던 무시무시한 하얀악마의 모습이 인간의 모습 위로 겹쳤다.


최대한 조심하며 인간들을 피해가는 친실장이었지만, 공원의 동족들보다도 훨씬 많은 인간들을 전부 피해간다는 것은 무리였다.

간혹 마주치는 인간들의 시선에는 친실장의 가슴을 후벼파는 경멸과 혐오가 가득 담겨 있었다. 

때로는 친실장을 쫒아오는 인간들도 있었다. 심심해서, 더러운 들실장이 돌아다녀서, 집에 침입하려는 분충일거 같아서. 다양한 이유로 친실장을 쫒은 인간들. 몇몇은 기어코 친실장을 따라잡아 발로 뻥 걷어차는데 성공했다.

악의 어린 행동에 휘말릴 때마다, 친실장은 상처가 회복될 때까지 고통과 두려움에 벌벌 떨면서 꼼짝없이 수풀에 숨어야 했다. 


인간을 피해야한다. 인간의 손길이 닿은 모든 것을 피해야만 한다. 그 두려움과 공포에 지친 몸을 끌며 힘든 여정을 계속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오랜 여정의 끝에 산에 도착한 친실장은 마침내 깨달았다. 어딜 가도 인간의 손길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대신 인간의 손길이 적게 닿은 장소를 목표로 잡았다. 마침 발길이 닿은 산은 인간이 거의 찾지 않는 장소이니 안성맞춤이었다.

만약 인간들이 특정 시기에 몰려 온다는 것을 친실장이 알았다면 다른곳으로 떠났을 것이나, 당시의 친실장은 알지 못했다.


힘든 여정 끝에 도착한 낯선 환경은 친실장에게 큰 도전이었다. 음식을 모으는 방법도, 집을 구하는 방법도 처음부터 가르쳐주는 이 없이 몸으로 부딪히며 하나하나 배워야 했다. 마마의 가르침을 받던 자실장인 시절보다 더 열심히 숙지했다.

한번도 보지 못했던 새로운 포식자에게 쫒겨 집을 여러번 옮기기도, 처음 보는 것을 먹었다가 배탈이 나 몇일을 고생하기도 했다.

크고 작은 시행착오 끝에 친실장은 그 해 겨울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친실장은 그렇게 충분한 지식과 경험을 쌓았다. 봄이 오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 친실장은 모든 준비를 마치고 마지막 기회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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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보니 생각보다 길어져서 나눈데스. 일부라도 원래 마감일에 올렸으니 세이프인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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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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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우지차레후 | 작성시간 19.04.01 존나 재밌는 레후
  • 작성자seizicha | 작성시간 19.04.04 설마 하는데 과거 회상의 오바상의 자중 하나는 마라였던건가요? 마라 실장이었다면 성욕마저 극복하는 굉장한 녀석이었겠네요.
  • 답댓글 작성자prafit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9.04.04 마라 맞습니다. 원래는 돌연변이로 할까 했는데, 오바상 가족의 비극적인 최후를 강조하기 위해 마라로 바꿨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seizicha | 작성시간 19.04.04 prafit 보통 마라는 성욕이 넘쳐서 친마저 덥치는 일가실각의 대표격인데 그 마라가 가족을 위해 뭐가 하려하다니...오바상네 가족은 운이 없었는듯..
  • 답댓글 작성자prafit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9.04.04 seizicha 친실장의 마마랑 오바상은 친실장의 생각과는 달리 인간은 필요하면 개념과 분충을 가리지 않고 죽인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한 장치였으니 어떻게 되더라도 죽을 운명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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