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外面, 어느 파키스탄 외노자의 사정과 나의 귀찮음

작성자濟暗,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작성시간24.03.27|조회수323 목록 댓글 3
집 근처

 

 

 

 

작년 여름이었다.

 

실의에 빠져 방황하던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자전거로 남강을 달렸다. 그러다 진주교 밑에서 한대 피우려는데 넋 놓고 쪼그려 앉아 있던 시커먼 외국인이 보이길래 호기심에 한대 하겠냐고 물으며 얘기를 나눴다.

 

그는 10개월 전 진주의 어느 공장에 일하러 왔다가 3개월만에 사고를 당한 동생을 케어하러 한국에 온 것이었다. 그런데 그는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 했고, 그의 동생도 간단한 말만 알아 듣는 수준이라 했다.

 

소송 때문에 막막해하기에 자기네 나라 통역을 해주는 무료 서비스를 찾아서 알려줬고, 한국의 사법체계가 대충 어떤지, 지금 뭘 해야 하는지 알려줬다. 그러다 분위기 탓이었는지 근처 병원에 있는 그의 동생에게 인사를 하러 갔다.

 

 

.........

 

 

휠체어에 앉아 나오는데 왼팔 하나만 멀쩡하고 나머지가 다 잘렸다. 대충 얘기는 듣고 가서 그런지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냥 뭐, 그렇구나’ 하는 마음이 전부였다. 그러고 연락처를 교환하고 헤어졌다.

 

 

.........

 

 

이후 연락이 왔다... 일전에 회사 사람들이 도움을 준다며 찾아와 서명을 했는데, 또 찾아와서 종이에 뭘 자꾸 서명하라고 한댔다... 처벌불원서였다... 절대 사인하지 말고 그 사람들 찾아오면 무조건 녹음하랬다. 그러고는 그날 만났는데... 이미 사인한 문서는... 의족과 의수를 회사에서 지원해줄 테니... 나중에 돈 생기면 갚으란 거였다... 치기 어린 의무감에 내가 알려줄 수 있는 건 다 알려주며 변호사 필요하면 얘기하랬다. 인연이 닿는 분이 계셔서 그랬다.

 

 

.........

 

 

이후로도 나는 몇달 동안 남강을 쏘다녔다. 그러다 너댓번 그와 마주쳤다. 진주가 아담한 도시이기도 하고, 타지에 온 그가 할 것이라곤 동생을 케어한 뒤 하루 종일 강변을 걷는 일이라 그런 게 가능했다. 아무튼 멀리서 나를 알아보는 그를 그냥 지나치기는 불편해서… 그렇게 마주칠 때마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물었다. ‘너 뭐 필요한 거 없냐’고.

 

돌이켜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귀찮아서 그랬던 것 같다.

 

그렇다... 귀찮아서 빨리 도움 줄 거 있으면 도와주고, 그냥 어쩌다 만나면 간단히 짧게 안부나 묻고 서로 갈길 가고 싶었다... 나도 그때는 심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그랬다... 그런데 그는 그때마다 한사코 말했다. “No problem Mr. Lee! No worries.” 그러면서 그는 내게... 그의 처지와는 사뭇 다른 얘기를 꺼냈다... “Mr. Lee! Where can I meet a Korean girl?”

 

내일모레 마흔을 앞둔 그는, 자기나라에서 이미 가정을 이루어 자식 1명을 두고 있었고, 그가 한국에 오기 전 두바이에서 일할 때는 거기서 가정부 일을 하던 필리핀 유부녀와 사귀었다고 했다. 그리고... 좀 다른 얘기지만 병상에 누워있는 그의 동생은 애가 셋이었다...

 

나는 그가... 그런 상황에서 여자를 만나고 싶다는 말을 하자... ‘이 자를 어떻게 떼어내야 할까’를 고민했다... 사람이 스트레스를 극심하게 받으면... 성적으로 해소하려는 경우가 많다지만... 내가 느끼기엔 그냥 원래 그런 사람인 것 같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이 자가 대체 뭘 하고 다니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그냥 얼버무리며 손절할 수도 있었지만, 아마 객기였는지... 이 자에 대해 알 수 있는 건 다 알아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대충 분위기를 맞춰 주며 어떻게 푸냐고 물었더니...

 

어플로 알게 된 부부와 만난다고 했다... 

 

 

.........

 

 

돌이켜보니... ‘나도 참’이라며 절로 탄식이 나오지만... 계속 장단을 맞춰 줬다. 그러고는 그가 아는 ‘Good place’로 따라갔다... 그가 통역 좀 해달라 하기에...

 

다 늙은 할머니들이 ‘놀다 가’라고 하는 거리... 가로등도 제대로 켜지지 않는 낡아 빠진 건물에... 물건처럼 앉아 있는 노인들... 그러다 그가 어느 ‘가게’ 앞에 멈춰 서서 내게 통역을 부탁했다. 그러자 주인이 그 자를 보고 말했다...

 

“아이고~ 여기 맨날 지나대이던(지나다니던) 총각이네~”

 

 

.........

 

 

역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안도감을 느꼈다...

 

‘이제 이 자에 대해서는 아무런 연민을 갖지 않아도 된다.’

 

 

.........

 

 

이후로 연락처를 차단했고 더는 그들과 마주치지 않았다...

 

아마도 나는...

 

그와의 인연을 끊을 구실을 찾으려고 그랬던 것 같다...

 

 

.........

 

 

귀찮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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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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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濟暗,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3.28
    “우리는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라고 믿는다. ......... 그리고 깨닫게 될 것이다.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인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대체로 복잡하게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_ 신형철 〈정확한 사랑의 실험〉
  • 작성자minhoo 작성시간 24.04.17 주옥같은 글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濟暗,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4.17
    아이고 선생님 ㅠㅠ

    졸필인데 옛글까지 읽어주시다뇨 ^^

    아마 식사 다 하셨겠죠 이미?

    굿밤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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