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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역사 문화

거제시 거제면 죽림포(竹林浦) 「할매 미륵불」 거제부 선소(船所)의 공간

작성자고영화|작성시간25.11.29|조회수42 목록 댓글 1

<거제시 거제면 죽림포(竹林浦) 할매 미륵불거제부 선소(船所)의 공간>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경남 거제시 거제면 오수리 죽림포 마을 대숲개(竹林浦) 끝자락에는, 당산나무 아래 '미륵당'이 있는데 할매미륵이라 불리우는 '벅수(法首)‘를 모시고 있다. 할매 미륵불은 마을과 더불어 바닷길 항해의 안녕을 기원하고 어선의 풍어를 바라는 일종의 수호신(守護神) 같은 역할을 한다. 예전에는 지금 해안 도로로 매립되어 있는 미륵당 바로 앞까지 바다였다. 그래서 이 일대는 조선시대 거제부 수군 진영의 선소(船所), 전선, 병선, 사후선이 여기 앞바다에 정박했다.

 

거제면 오수리 죽림포는 거제도호부사가 관장하던 대변정 선소(船所)가 있었던 유서 깊은 장소다. 조선 숙종(肅宗) 37년(1711), 거제현이 거제도호부(巨濟都護府)로 승격(昇格)하면서 거제부사가 병마첨절제사(兵馬僉節制使)를 겸직(兼職)하여 문무(文武)를 통할(統轄)하였고, 죽림포(竹林浦)에 어해정(禦海亭)을 두어 전선대장(戰船代將)이 전함(戰艦)을 상비(常備)하고 해군양성(海軍養成)을 하며 거제 수군진영의 수군조련을 행하기도 한 곳이다. 거제부 죽림포 육상에는 운주루(蓮籌樓), 군기고(軍器庫), 화약고(火藥庫)와 그리고 대변정(待變亭) 선소(船所) 입구에 감시 초소가 있었다.

 

[주] 거제면 오수리(烏水里) : 순우리말  '오'와  물 '水'자가 보태져 만들어진 지명임. 고대어 '오(아)'는 끝자락, 또는 제일 구석진 곳을 의미했다. 거제만의 바닷물이 돌다가 가장 끝자락인 오수리 마을 입구까지 들어왔다가 돌아나갔다. 지금은 매립이 되었지만, 고려시대까지 해수면이 높아서 오수마을이 천혜의 항구였다. 곧 "바닷물의 끝자락, 구석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뜻이다. 덧붙여 ’오믈‘이 고대 지명어인데 어감이 좋지 않아 한자어 ’水‘자를 붙여 ’烏水‘ 또는 '烏首' 라고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할매 미륵불은 조선시대 거제부 선소(船所)선창(船艙)에 정박하던 선박의 선수(船首, 船頭, 이물)를 밧줄로 묶던 육지의 계선주(繫船柱 배를 매어두는 기둥)였다. 이런 계선주를 해안 지방에선 ’벅수‘라고 부르기도 한다. 인근 통영에선 많은 벅수가 아직도 남아 전하는데 우리 거제도에선 여기 할매 미륵불이 전해오는 유일한 계선주이다. 요즘엔 돌핀(Dolphin)이라고 부른다. 옛날엔 선박 앞머리 이물은 계선주에다 묶고 선미(船尾, 고물)는 바닷속에 박은 나무 기둥에다 묶어 선박을 단단히 고정했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이, 이곳은 조선시대 수군(水軍)이 주둔하였던 '어해정(禦海亭)’이 있었던 곳인지라, 아마 옛날에는 이러한 계선주가 여럿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주민들이 전하길, 또 다른 할배 미륵은 미륵당 앞바다에 빠져 이젠 찾을 수가 없다고 전한다. 현재 「할매 미륵불」은 거제부 선소에 남아 전하는 유산의 유일한 자취다.

 

그런데 우리 선조들은 여타 민속신앙을 믿어서인지, 계선주에도 항해 길의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고자 미륵불의 모습으로 형상화했고, 또 거기다가 동양의 음양 사상을 투영해 음과 양의 조화를 이루고자 애썼다. 예전에 마을 수호신이었던 천하대장군지하여장군처럼, 할배미륵의 모습과 할매미륵의 모습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그리고 동앗줄(밧줄)이 계선주에서 잘 풀리지 않도록 할매 미륵의 양쪽 귀를 크게 만들었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귓돌이 닳거나 조각으로 떨어져 나가, 지금은 미륵불의 양쪽 귀가 밋밋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제는 민간 신앙으로써, 지역민속문화로써, 미륵당에 모셔져 있는 할매 미륵불로 재탄생하여 지나가는 행인들을 숙연케 하고 있다.

 

[전승 설화 곤발네 할매] 대숲개의 유명한 '곤발네 할매' 이야기는 1885년 고종 22년, 온 나라가 흉년으로 고통 받을 당시, 70평생을 오두막집에서 검소하고 외롭게 살면서도, 흉년이 들어 마을의 어린아이들이 '영양부족'으로 죽어나가는 것을 보고, 안타깝게 여겨 어린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전 재산으로 '엿'을 만들어 '오줌장군' 속에 감추어 두고, 마을 사람들 아무도 모르게 죽어가는 어린아이들에게만 나누어 먹여, 어린 생명들을 구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곤발네 할매'는 매일 매일 치성(致誠)을 드리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그곳이 바로 '대숲개'의 "미륵당 돌벅수"라고 전하여 왔으며, 마을사람들은 이돌 '벅수'를 '할매미륵'이라고 불렀다.

 

●●● 조선왕조는 왜(倭)의 침구를 대비하기 위한 일환으로 수군의 수와 군선의 수를 증대하였고 이를 위해 선소가 본격적으로 조성 운영되었다. 성종대에는 수군의 육상 시설을 보호하기 위한 수군 영진성을 축조했고 1510년에 발생한 삼포왜란 이후 수군겸치제를 실시하면서 연해 군현에도 수군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에 내지군현에서 볼 수 없는 선소를 설치 운영했다.

 

[참고 : 굴강(掘江)] 굴강의 본디 뜻은 ‘개골창 물이 흘러 나가도록 길게 판 내’ 또는 ‘성(城) 주위(周圍)에 둘러 판 못’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수군 진영의 굴강(掘江)은 군선을 정비·건조하고 수리하는 곳을 말한다. 또 굴강은 군선을 선소에 접안시키기 위한 시설이다. 자연의 지형을 활용하여 만들거나 인위적으로 축조하기도 했다. 굴강은 축조 방식과 형태에 따라 돌로 쌓아 만든 석축형(石築形), 지연 지형을 凹자형으로 굴착한 굴입형(堀入形), 그리고 일부만 축조하고 자연의 지형을 그대로 이용한 자연형(自然形), 세 유형으로 구분된다. 특히 거제도에선 석축형(石築形)이 대부분이었는데 그 이름을 ‘축강(築江)’이라 부르다가 ‘ㄱ’ 탈락이 일어나 ‘추깡’으로 불리어지고 있다.
아시다시피 선소(船所)는 ‘수리·물류·관리·정박·선적·정비·건조·창고’까지 행하는 복합 공간을 의미했다. 그곳에서 ‘축강(築江)’은 선소의 중심축 역할을 하였다.

 

[참고 : 계선주(繫船柱, 계주)] 말뚝, 돌핀(Dolphin)이라 불리는 계선주는 선소에 정박한 군선이 파도와 바람 등에 의해 표류하거나 파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고정해야 하는 육상 기둥이다. 대형 군선의 경우 여러 방향에서 선박을 결박해야 하며, 이를 위해 육상과 수중에 설치한 계선주(繫船柱 기둥)를 이용했다. 선수(船首), 선미(船尾)를 육상 또는 수중에 박아 세운 계선주에 동아줄로 결박해 놓았다. 옛날 동아줄(밧줄)은 보통 삼(麻)의 섬유를 꼬아서 만든 줄이었다. 참기름, 콩기름, 아주까리 기름, 돼지 기름, 생선 기름, 동백기름, 옻 등을 발라 부식을 지연시켰다. 삼이 부족할 때에는 칡넝쿨의 섬유를 추출해 햇볕에 말려서 삼의 섬유와 함께 섞어 꼬아서 만들었다. 선박 운영상, 동앗줄이 최소 1킬로미터 이상이 항상 필요했다.

 

[참고 : 선소(船所)] “선소(船所)는 배가 정박하는 선창(船艙)은 물론이고 그에 인접한 누정이나 창고(海倉) 등 모든 부두 시설을 갖추고 있는 일정한 전 지역이고, 선창(船艙)은 선소 안의 일정한 장소로서 배가 정박하는 수역과 그 축대이다.”
또 선소는 “수군의 정박, 보급기지, 조선소로서 역할을 넘어 다양한 기능을 가진 공간”이다. 그리고 ‘선소(船所)’를 군선의 정비·수리·건조하는 굴강(掘江)을 비롯 수군의 공무와 수군의 육상조련(陸操)에 필요한 공해(公廨, 관가의 건물)와 누정 및 군선에 필요한 무기와 물자의 보관 창고, 항만 출입시설 등 군선의 운용과 정비, 방어에 필요한 시설을 갖추고 있는 항만 내외의 공간으로 정의한다. 예전 거제 7진영에 모두 선소가 있었지만, 제대로 된 시설을 모두 갖춘 거제시의 선소(船所)는 거제면 죽림포 ‘거제부 선소’가 유일하다. 선소는 대개 연안형과 하구형으로 나뉜다. 연안형은 리아스식 해안의 남해안 선소가 대부분인데 반해 하구형은 단조로운 해안인 동해안에서 하천 입구에 위치한 것을 말한다.

 

덧붙여 선소(船所)는 군선이 정박하는 항만시설로 선박의 접안과 수리하는 좁은 의미의 연안 시설뿐만 아니라 공무와 육조(陸操)에 필요한 공해를 비롯한 군선에 필요한 물자와 장비를 육상에 보관하는 시설들과 아울러 항만 입구의 방어시설 등을 총칭하는 것이다. 이런 관방상 중요한 시설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주목하지 않았다. 연구 결과 선소의 입지는 하구형하안형으로 구분되었는데 이는 지형적 특징에서 기인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로 인해 군선의 수리주기, 연훈(煙燻)실시 여부, 수조(水操)의 장소, 굴강의 조성 방법에도 영향을 주고 있었다. 소의 공간구조는 크게 항만의 입구에서 감시·통제하기 위한 선소 입구시설’, 항만 내부에 군선의 접안과 수리를 위한 선소 접안시설’, 그리고 육조와 군선의 행정업무와 군기 및 집물을 보관하기 위한 선소 육상시설로 구분할 수 있었다. 선소에 관한 기록은 대부분 수군(水軍)의 선소에 대한 것이다. 경상도의 향토사 자료에는 선소 외에도 전선소(戰船所)·대변정(待變亭)·선진(船鎭)·선창(船艙)·주사(舟師) 등으로 일컫고 있다. 수군의 물자를 보호하기 위한 진성이 선소 인근에 축조되었다. 또 인근에 해창(海倉)이 위치했다. 참고로, 수군 영진의 경우 먼저 선소를 조성하고 후에 진성을 축조 한 반면, 연해 군현은 읍성을 먼저 축조한 후 나중에 선소를 조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영(水營)의 군선(軍船)] 연해 군현의 선소에 정박하는 군선으로는 전선(戰船)·귀선(龜船)·병선(兵船)·사후선(伺候船)이 있었고, 통제영에는 좌우별선(左右別船)을 비롯한 좌우방선(左右防船)이, 경상좌수영에는 탐선(探船)이 추가로 배치되었다. 한편 경상좌수영의 선소에는 전선 3척· 귀선 1척·병선 5척·사후선 11척·탐선 1척 등 모두 21척의 군선이 있었으며, 수군의 수상 조련에 대비해 관내 각 연해 군현의 군선들도 정박할 수 있는 대규모의 선소가 필요했다. 거제부(죽림포)와 가덕진의 선소에는 전선 2척·병선 2척·사후선 4척 등 모두 8척이 있었다.

 

[선소 앞바다 수군조련] 선소는 군선의 정박뿐만 아니라 수군의 조련장으로도 사용되었다. 수군의 조련은 해상에서 실시하는 수조(水操)와 육상에서 실시하는 육조(陸操)로 크게 구분된다. 수조는 매월 1일과 5일에 하며, 한 달에 모두 6차에 걸쳐서 실시했으며, 육조는 매월 3일과 7일에 하며, 한 달에 모두 6차에 걸쳐서 실시했다. 동아대에 보관 중인 『거제부도(巨濟府圖)』에는 거제의 선소(죽림포) 앞바다에 나가 거제현 자체적으로 춘추로 수조를 실시한 기록이 기록되어 있다. 육조는 수군이 배에서 내려 보전(步戰)을 하기 위한 훈련으로, 이를 위해 넓은 마당과 이를 지휘하는 시설로 중층 누각(운주루)을 건축했던 것으로 보인다.

 

[선소의 공간] 죽림포 선소는 크게 항의 입구에서, 적선(賊船)의 침입을 감시·통제하기 위한 ‘선박 출입 통제시설’과, 군선의 접안과 수리를 위한 ‘접안 및 수리시설’, 그리고 육상 조련(陸操)· 행정 업무 시설·군기(軍器)와 집물을 보관하기 위한 창고로 이루어진 ‘육상시설’ 세 시설로 구분할 수 있다. 거제부 죽림포 운주루(蓮籌樓), 군기고(軍器庫), 화약고(火藥庫) 선소 입구의 적선(賊船) 감시 초소는 『1872년 지방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 『중종실록』에는 적선(賊船)이 선소로 침입하는 것을 통제 차단하기 위한 시설에 대해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선소 입구의 수면 아래에 긴 목재 말뚝을 촘촘히 박고 이를 쇠사슬로 고정하거나 칡넝쿨을 이용 목주(木柱) 아래에 무거운 돌을 달아 그 나무를 물 밑 한자쯤 잠기게 하여 적선이 끊고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상호 연결한 목주 중앙에는 쇠갈고리를 설치하여 필요시 잠글 수 있게 했다. 또한 고지도에는 보이지 않지만 수중의 출입구 통제시설에 동아줄(철선)을 설치하여 선박 출입을 통제하기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선소 부분 참고 논문 : 경상도 남부지역 연해 군현과 수군 영진의 선소(船所)에 관한 연구. 권순강, 이호열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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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고영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5.11.30 [주] 거제면 오수리(烏水里) : 순우리말 '오'와 물 '水'자가 보태져 만들어진 지명임. 고대어 '오(아)'는 끝자락, 또는 제일 구석진 곳을 의미했다. 거제만의 바닷물이 돌다가 가장 끝자락인 오수리 마을 입구까지 들어왔다가 돌아나갔다. 지금은 매립이 되었지만, 고려시대까지 해수면이 높아서 오수마을이 천혜의 항구였다. 곧 "바닷물의 끝자락, 구석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뜻이다. 덧붙여 ’오믈‘이 고대 지명어인데 어감이 좋지 않아 한자어 ’水‘자를 붙여 ’烏水‘라고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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