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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전쟁 3> 대한민국은 청나라일까? 일본일까?

작성자gingery(이용호)|작성시간12.11.01|조회수375 목록 댓글 13

“화폐 발행권이 인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권력...

모든 사회 모순의 근원은 이익 분배의 불균형에 있고,

가장 중요한 이익 분배 수단은 바로 ‘화폐 발행’이다.”-12

 

“미국이 무절제한 달러화 발행을 멈추지 않는 한 세계적인 화폐전쟁의 화약 연기는 결코 걷히지 않을 것이다.”-18쪽

2008년 금융위기를 통하여 미국은

1) 대외무역수지적자를 줄이기 위하여

2) 달러화 부채부담을 줄이기 위하여

달러화 살포를 하고 있다.

 

금융이 독립하지 않는 한 경제도 독립할 수 없다.”-48쪽

 

이 나라는 이미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금융 산업이 죄다 외국인들 손으로 넘어갔다. 당시 말레이시아는 외환위기를 맞아 외국환투기를 근절하였다.

참으로 안타까운 대비적 대응이었다.

마하티르는 투기봉쇄정책으로 IMF 극복에 성공하였다. 이에 반해 이 나라는 국적 금융 산업이 죄다 외국인 손에 넘어가는 것으로 귀결되었다는 사실이다.

 

“1666년에 ‘주화발행자유화법’을 통과시켰다...

국왕의 독점권이었던 화폐 발행권을 민간에 이양(누구나 금괴를 화폐 주조 공장에 가져가 무료로 법정 금화를 주조할 수 있었다)했다”-51쪽

 

아편전쟁의 의미=금본위제의 영국이 은본위제의 중국을 장악하지 위한 것

“당시 농민, 수공업자 및 일반 서민들은 평소에 주로 동전을 사용했으나 각종 세금을 납부할 때에는 반드시 은화로 바꿔 납부해야 했다....

은본위제가 결국 아편에 의해 무너지면서 무역적자 급증, 재정수입 급감, 백성 생활의 불안정, 빈부 격차 심화 등 사회적 모순이 격화되었다.”-60쪽

97년 외환위기는 결국 "양털깎기"를 통하여 금융주권을 빼앗긴 것이다,

 

“홍콩상하이 은행은 대영제국이라는 든든한 배경을 믿고 청나라 정부에 고객의 어떤 예금 정보도 제공하지 않았다. 홍콩상하이 은행에 이런 특권이 있었기 때문에 당시 수많은 군벌, 관료, 지주들이 홍콩상하이 은행을 가장 안전한 금고로 여겨 다년간 모아뒀던 검은돈을 모두 그곳에 맡겼다.”-70/71쪽

지금 이 나라의 모습이 투영된다.

 

“마쓰카타 마사요시는 대장성에 즉시 요코하마 정금은행에 300만 엔의 외환 거래 자금을 지원하라고 명령을 내렸다.”-115쪽

당시 일본의 주력산업이던 생사부문에서 생산자는 6개월 어음을 지급받아 어음을 외국은행의 20% 할인을 감수했다. 하지만 일본정금은행의 싼 할인율의 혜택을 받아 외국자본의 무자비한 지배를 받지 않았던 것이다.

일본은 중국이나 한국처럼 외국자본의 앞잡이들인 매판자본이 아니라

“관리들이 무역 가격 결정권을 빼앗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 공로가 크다.”-117쪽

 

한미은행을 카알라일 그룹에 팔아넘긴 박태준의 경우를 돌이켜 보자.

-<Iron Triangle> 참고

인천신공항을 팔아넘기려는 이명박의 경우를 잊지 말자.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빚더미로 올라앉은 민자 사업들을 생각하자.

그 매쿼리의 한국지분은 우리네 기관투자자들이다.

“2010년 6월 말 현재 군인공제회(11.8%). 신한금융그룹(11.2%), 금호생명(7.5%), 대한생명(7.2%), 캐피탈리서치& 매니지먼트(6.0%), 공무원연금(5.4%), 라자드자산운용(5.0%) 등 국내기관투자자가 모두 56.7%의 지분을 갖고 있고, 매쿼리 그룹이 가진 지분은 4.4%에[ 불과하다.”

-<프리라이더> 319쪽

대한제국의 국채보상운동 당시의 일본에 진 외채보다 많은 금을 캐어 내갔던 운산 금광을 미국에게 주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라고 떠들던 개명된(?) 개독교 무리들을 상기하자.

 

“일본에는 미쓰이, 미쓰비시 등 민족의식이 강한 금융 재벌들이 존재했으나

청나라에는...매판 세력만 득실거렸다.”-118쪽

이 나라의 모습은 금융 주권을 보유한 일본일까? 매판자본의 중국일까?

제조업체 삼성이나 현대차, 포스코 등 이름있는 기업들의 지분의 과반수도 이미 넘아간 나라가

어찌 IMF 극복을 천명하였을까?

다 외국인들에게 넘어간 것인데............

그럼에도 지금도 대학강단에서는 그 신자유주의 교수들이 득시글거린다,

매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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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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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gingery(이용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11.01 했으나, 장제스는 "무한으로 가자니 실권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높았고, 안 가게 되면 스스로 당과 관계를 단절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138쪽
    즉 소련의 지원을 받아 북벌을 벌이던 국민당의 권력은 왕청위에게 있었던 마당에 그와 대립관계에 있던 장제스는 이런 국민당 (좌파)을 배반하고, 영국과 미국의 돈을 지원받아
    "1927년 3월 (국제은행가들의) 이익 집중지인 상해 조계지를 보호하기 위해 영국군 1만 7,000명, 일본군 4,000명, 미군 3,500명, 프랑스군 2,200명이 대거 몰려들었다."-156쪽
    "1927년 3월 29일, 상해 상업 연합회 대표단은 장제스를 방문해 공산당과 결별하면 재정 지원을 제공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161쪽
  • 답댓글 작성자gingery(이용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11.01 "대대적인 공산당 숙청작업으로 중국 전역은 일순간 피바다로 물들었다, 장체스는 수많은 공산당원의 목을 담보로 마침내 국제 은행가 세력에 빌붙는 데 성공했다,"-162쪽
    즉 파리 콤뮌처럼 장제스는 일본군의 엄호아래 동족을 학살하였던 것이 4.12정변
    "이로써 국민혁명군 총사령관 장제스가 공공연히 국민 혁명을 배반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167쪽
    "장제스는 내친 김에 4월 18일 남경 국민정부를 출범시키고 공식적으로 무한 정부를 부정했다, 28일에는 '서구 열강과 손잡고 무한 정부에 대한 경제 봉쇄를 실시할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169쪽
  • 답댓글 작성자gingery(이용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11.05 웃기는 것은 장개석을 끌어내리려던 그 왕청위마저 장제스처럼 반혁명으로 돌아선 것이군요.
    "(7월 15일) 무한 국민정부는 반혁명 정변을 일으켰다...
    국민당 내부의 공산분자들을 깨끗이 숙청한 후, 무한과 남경 양대 국민정부 사이의 원칙적인 갈등이 말끔이 해소되고"-173쪽
    즉 국민당내에서 서로 대립되던 국민당내 좌파 왕청위와 우파 장제스가 한 통속으로 되었던 것,
    결국 나중에 왕청위가 프랑스의 비씨정부처럼 친일파로 돌아섰던 것이 <색계>에서의 배경
  • 삭제된 댓글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gingery(이용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11.05 예 내일 배송된답니다, ^^
    금리와 환율에 관한 책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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