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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장코뱅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6.06.06 그리스도는 그 모든 것의 완전한 성취자였던 것이다(Lange). 한편 '온 줄로'에서 '왔다'는 말은 예언자들에게 사용되었던 표현으로서(11:18, 19), 적어도 예수가 어떤 사명을 가지고 보냄을 받았다는 것을 보여 주고있다(Maier).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 이 부분에 대한 가장 훌륭한 해석은 율법과 선지자가 예수를 지시하고 있다고 볼 때 예수가 그것들을 완전케 하는 자이고, 동시에예수가 바로 그 성취라고 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조시키고 있는 것은 '버리다'와 '행하다'간의 대조가 아니라 '폐(廢)하다'와 '완전(完全)케 하다'인 것이다. 그리고 마태복음에 있어서 문제되는 것은 '율법에 대해 예수가 어떻게 관계하고 있는가가 아니라 예수에 대해 율법이 어떻게 관계하는가인 것이다(Banks)' 한편 본문에 제시된 바 '완전케 하다'(* , 플레로오)는 말은 원래 '가득 채우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그 깊은 뜻과 충분한 의미를 드러낸다', '모두 실행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결국 본문은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하나의 큰 목적을 제시하고 있는 바, 예수께서는 율법이 목적, 의도하는 그 온전한 뜻과 속깊은 내용을 완전히 드러내 보이시기 위해 -
답댓글 작성자 장코뱅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6.06.06 오신 것이다(NcNeile). 이러한 사실은 당신의 권위로써 그 율법의 각 조항을 문자적 해석 이상의 궁극적 목적과 의도를 밝히신 21-48절에서 확실히 알 수 있다. 실로 구약성경이 가지는 실제적이고, 지속적인 권위는 구약성경의 풍성한 성취가 되시는 예수의 품격과 가르침을 통해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가 의도하는 바는 구약의 율법을 폐기하거나 강화하려는 것이 아니고 구약이 지시해 준 자기 자신의 권위에 입각하여 구약성경의 율법이 지향하는 바를 보여 주려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이 구절이 갖는 기독론적인 의미를 간과할 수 없다. 예수는 자신이 구약이 지향하는 종말론적인 목표(目標)임을 드러내고 있으며, 따라서 자신이 구약성경에 대하여 유일하게 권위있는 해석자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를 통해서만 구약성경의 근거를 얻고 의미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율법과 선지자가 가리키는 초점은 바로 예수였으니, 바로 이 점이 바울과 마태가 모두 의도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바울은 기독론적이고 종말론적인 해석을 통하여 구약성경에 접하고 있는데, 이러한 구약 해석의 기초를 놓은 분이 예수라는 점이 본 복음서에 의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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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장코뱅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6.06.06 분명해지는 것이다(Carson).
=====5: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멘 가르 레고 휘민) - '믿을 수 있는'이라는 말을 헬라어로 음역한 것이다. 구약에서는 이 말이 '틀림없이', '진실로'라는 부사로 자주 사용되었으며, 문장의 마지막에서 그 문장이 진실이거나 또는 진실임이 증명될 수 있다는 것을 보증하는 의미로 사용된 용례가 자주 보인다(기도에서 마지막에 '아멘'으로 화답하는 경우). 그리고 이 말로써 문장이 시작되기도 한다(렘 28:6; 계 7:12;19:4;22:20). 또는 '아멘'이 응답으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신 27:15-26; 고전 14:16; 계 5:14). 어쨌든 예수께서 하신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란 말씀은 당신의 절대적 권위에 입각해 어떤 한 진리를 단정적으로 선언하실 때 흔히 사용하셨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 이는 '세상의 종말까지는'으로 번역될수 있는 말로서 예수의 재림을 지향한 표현이다. 진정 세상 종말까지는 율법과 선지자는 폐해질수 없다는 것이 예수의 단정적 선언인 것이다. 일점일획(一點 一劃)(* , 이오타 헨 에 미아 케라이아). '일점'이란 히브리어 문자에서 가장 작은 글자인 -
답댓글 작성자 장코뱅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6.06.06 '요오드'(* )를 가리키며 헬라어로는 '이오타'(* )정도의 가장 작은 문자를 뜻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일획', 즉 '케라이아'가 무엇을 가리키는가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일획에 대하여 슈바츠(G. Schwaz)는 히브리어 문자 '와우'(* )라고 하고, 휠슨(Filson)과 렌스키(Lenski), 알렌(Allen), 잔(Zahn)은 비슷한 히브리어 문자들(* ; / ; / ; )을 구별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작은 획이라고 이해한다. 그리고 타스커(Tasker)와 슈니빈트(Schniewind)와 슈바이처(Schweizer)처럼 순수히 장식적인 획이었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락스(Lachs)는 가장 작은 글자의 가장 작은 부분을 가리키기 위하여 '일점'과 연결지어서 사용된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든간에 예수는 여기에서 구약성경이 '붓 한번 살짝 움직인 정도'의 아주 조그마한 내용조차도 모두 권위를 갖는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같은 예수의 생각이 구약성경에 대한 최상의 견해이다.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 이는 분명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 새 세상에서까지도 율법의 권위와 그 효력성은 -
답댓글 작성자 장코뱅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6.06.06 계속될 것임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24:35; 막 13:31). 그러나 이것으로써 이 구절의 의문점이 완전히 풀리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문자적 측면에서 예수께서는 안식일을 범하셨고(12:8), 이혼(divorce)에 관한 모세의 규범을 거부하셨으며(5:31, 32), 특히 음식에 관한 규정을 무효화시키셨었다(15:11). 그렇다면 땅이 지속되는 한 율법의 한 획도, 나아가 경건한 필사자(筆寫者)가 덧붙인 수식어 중 어느 하나까지도 없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마태는 어떠한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마태는 세상이 끝날 때까지는 율법의 어느 것도 없어지지 않는다는 엄격한 문자적 보존과 성취라는 측면에서 이해하기 보다는, 율법이 의도하는 것은 더욱 완전한 형태로 성취되며, 또한 모두 실제로 일어나고 실제로 이루어질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에서 일어나며, 어디에서 이루어지는가? 진정 그것은 예수의 가르침과 행위에서 그리고 그의 가르침과 행위를 계속하는 그의 제자들에게서 이루어질 것이다.
=====5:19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지극히 작다 일컬음 -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와 큰 자 사이를 대조(對照)시키고 있는 것으로 -
답댓글 작성자 장코뱅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6.06.06 보아서 이 구절은 천국 안에도 등급이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본다. 11:11의 경우를 보더라도 그곳에서는 '극히 작은자'를 가리키는 말이 본절에 사용된 단어와 다르기는 하지만 그 의미하는 바는 동일하다(18:1-4). 한편 본 구절에서 '이 계명 중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는'자라는 표현은 자신들이 그릇된 판단에 의해 율법을 중요한 것과 중요치 않은 것으로 나누어 놓은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율법관에 일침을 가하는 표현이다(Meyer, Westein). 그런데 우리가 알 것은 위와 같이 지극히 작은 계명 하나라도 버리는 자가 천국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다만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고 인정되거나 중요하지 않는 존재로 여겨질 것으로 생각된다. 이처럼 천국에서 특권을 누리는데 등급(grade)이 있다거나 천국에서도 수치를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은 공관복음서의 다른 곳에서도 나타난다(20:20-28; 눅 12:47, 48). 이런 구분은 그 사람이'계명 중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소중히 여기며 신실히 지켰는가에 따라 이루어질 뿐 아니라 그가 얼마나 열심히 타인의 올바른 삶을 위해 계명을 가르쳤는가 하는 점도 기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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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장코뱅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6.06.06 물론 '이 계명'이란 모든 율법과 선지자로 지칭되는 구약성경의 계명을 가리킨다. 이같은 모든 율법과 선지자는 예수가 오심으로써 폐기된 것이 아니라 성취된 것이다. 따라서 성경의 모든 계명은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다 실천되어야 한다(율법을 구분하는데 대하여는 22:36;23:23 주석 참조). 그러나 이러한 실천이 갖는 본질적인 성격은 이미 17, 18절에서 규정 되었다. 율법은 예수와 그의 가르침을 미리 지시해 주는 역할을 하였다. 따라서 예수의 말을 따르는 것이 율법을 지키는 올바른 길이다. 그렇게 되면 예수의 가르침이 구약의 계시를 성취한 것이므로 천국에서 등급이 정해지는 문제는 예수의 가르침을 어느 정도 따르고 실천(實踐)했는가에 의하여 결정된다. 따라서 구약이 미리 지시해 주었던 예수의 가르침을 순종하여야 하는 것이다(Carson).
=====5:20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낫지 못하면 - 은혜의 시대를 여시는 예수의 가르침은 관대하고 편리하게 되는 것이기 보다는 오히려 온전하게 되는 것을 요구한다(48절). 따라서 본문의 요구는 예수께서 당신의 제자에게서 바리새인들보다 더 나음을 요구한 것인데, 이는 그들이 보다 많은 계명과 율법을 -
답댓글 작성자 장코뱅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6.06.06 지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마태는 근본적으로 유일한 계명, 즉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이중 계명으로 축소시켰다) 그들이 새로운 의 즉, 훨씬 더 포괄적인 의를 이행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바리새인과 서기관(2:4;3:7 주석 참조)은 이스라엘에서는 가장 엄격한 종교 집단의 무리들이었다. 예수께서 그들을 비판하신 것은 그들이 선하지 못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만족할 만큼 선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Hill). 그들이 만들어 놓은 복잡하고 수많은 규정 때문에 도덕적인 사회가 이뤄질 수 있었는지는 모르나 그로 인해 율법의 권위가 상대적으로 실추되어 성경에서 요구한 성결이라는 철저한 요구에는 미치지 못하게 하였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문에서는 바라새인들의 의가 부인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다만 예수의 제자들이 추구해야 할 의(義)의판단 기준이 되었다. 실로 예수의 제자들은 그들보다 한 단계, 즉 결정적인 단계를 더 나아가야 했던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율법 조문에 철저히 순종했는데, 그들은 모든 세금 이외에도 정확하게 수입의 10%를 헌금했으며, 하나님의 안식일과 율법의 가르침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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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장코뱅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6.06.06 가장 잔인한 순교(martyrdom)를 당했으며, 또 자신들의 삶에서 하나님이 다른 모든 것보다도 더 중요하게 될 때 비로소 자신들의 삶이 진정 인간적인 삶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이러한 그들의 행위로는 진정 어떤 식으로도 비웃음을 당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예수의 제자들로부터는 그들보다 더 풍성하고 우수한 의(義)가 기대되었다. 즉 제자들은 형식적 삶과 선행 위주의 삶을 추구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보다 더욱 우월한 하나님께 대한 내면적인 열정과 사랑과 경건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의(義)의 결과로서 오직 하나님이 영광받으시는 참으로 인간적 욕망을 탈피한 하나님 중심적인 의(義)가 요청되었다. 실로 그들은 사 61:3이 말하고 있는 '의의 나무들'이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의가 그들 안에서 세력이 되며 그들을 통해서 세상 안에 들어오게 될것이다.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 이 말은 천국이 상대적으로 남보다 더 나은 자가 들어가는 곳이 아니며 또한 율법의 형식이 아니라 율법의 근본정신(사랑)을 지키는 자, 율법을 지적으로 잘 아는 자가 아니라 그것을 몸으로 실천해 나가는 자가 들어갈 곳임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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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노베 작성시간26.06.06 * 율법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완전하게 하심으로써, 모든 믿는 자에게 감히 도달할 수 없던 완벽한 의를 이루어 주신 주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하게 됩니다.
* '율법의 마침'이라는 선언이 방종이나 폐기론으로 흐르지 않도록 마태복음 말씀으로 중심을 잡아주시니, 이신칭의의 참된 가치와 복음의 균형 잡힌 깊이가 더욱 명확하게 다가옵니다.
*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뛰어넘는 절대적인 의의 기준을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거저 선물로 받았음을 기억하며, 오늘 하루 그 은혜에 합당한 거룩한 삶을 묵상하게 하는 귀한 나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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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노베 작성시간26.06.06 저더 나름대로 묵상 내용의 본론을 요약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에서 유일하게 의로우시며 인간에게 절대적인 거룩함의 기준을 요구하시지만, 타락한 인간은 스스로의 종교적 노력이나 행위로는 결코 이 기준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능동적 행위가 아니라 위로부터 거저 내려오는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전인적인 역사를 통해 얻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육신을 입고 오셔서 율법의 요구를 온전히 성취하심으로써 율법을 종결하셨고,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공적으로 승인하시는 완벽한 법적 자격인 의를 단번에 선물해 주셨습니다.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판결을 내리시는 의사봉의 선언처럼 거저 주신 칭의의 은혜를 받은 성도는, 결코 방종하지 않고 삶의 현장에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옳은 행실을 나타내는 성화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전도를 통해 구원받은 성도는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아내며, 이는 장차 다가올 어린양의 혼인잔치에서 신부가 입을 깨끗한 세마포 예복으로 단장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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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노베 작성시간26.06.06 * 온 우주에 홀로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전적으로 부패한 죄인임을 고백하오니, 스스로의 헛된 열심과 행위의 자랑을 모두 내려놓고 오직 주님이 거저 주신 칭의의 은혜만을 겸손히 붙잡게 하시고
* 십자가 복음이라는 온전한 지식의 토대 위에 우리의 믿음을 견고히 세워주시고,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 이 구원의 감격을 세상 가운데 입술로 당당히 시인하며 선포하는 삶이 되게 하시며
* 아무 자격 없는 우리를 위해 율법의 모든 요구를 성취하시고 의롭다 선언해 주신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이제는 성령의 도우심 속에서 구별된 성화의 열매를 맺어가는 거룩한 성도가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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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코람데오 작성시간26.06.06 인간은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수준에 이르지 못합니다. 거룩함이나 의에 있어서 하나님이 기준이시고, 인간은 그 기준에 도달하기 위해 열심을 낼 수 있지만 어차피 함량 미달입니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근본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도 이것을 아시고,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율법을 행함으로써 의롭게, 거룩하게 될 수 없음을 아시고, 성육신하신 아들을 보내주셔서 그 아들이 율법을 완성하실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심은 에덴에서 아담에게 주어졌던 계명을 예수께서 다 이루어내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인간이 자기 공로가 아니라 예수님이 이루어내신 공로에 의지하여, 그에게 편승하여 비로소 의롭다고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경작자, 제사장, 왕으로서 소명을 받고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는 존재였듯이, 구원 받은 성도도 성화로써 의로운 행실로 거룩한 옷을 입고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존재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성도의 기본적인 삶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필요성에 대해 잘 알려주는 성경 묵상으로 우리의 현 위치를 점검하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타 종교에서 선행과 자비를 강조해도 영적 교만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합당합니다. -
작성자 에이프릴 작성시간26.06.06 하나님만이 가지신 절대적인 의의 기준 앞에 철저히 무력한 죄인임을 겸손히 인정하며, 내 공로나 행위의 열심을 의지하려 했던 영적 교만을 먼저 회개하게 됩니다.
인간의 어떤 도덕적 실천이나 종교적 고행으로도 채울 수 없던 그 거룩한 기준을, 오직 십자가 복음이라는 온전한 지식과 믿음을 통해 거저 선물해 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마음의 진실한 믿음이 삶의 현장에서 당당한 입술의 고백으로 피어나는 전인적인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며, 내 생각과 고집을 내려놓고 주님의 주권 앞에 온전히 복종하기를 소망합니다.
값없이 의롭다 칭해 주신 재판장 하나님의 엄중한 은혜를 입은 자답게, 이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세상과 구별된 옳은 행실의 열매를 맺어가는 성화의 삶으로 나아가기를 결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