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막11:22-26
제목: 용서의 토대 위에 세워지는 권세 있는 성도의 삶
● 기독교는 용서를 최우선으로 여기시는 좋으신 하나님을 믿는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최고의 용서자이시고 용서하는 자를 용서하시는 좋은 분이죠.
| 마11:25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26.(개역개정 없음, 『제네바 성경 1599』) For if you will not forgive, your Father which is in heaven, will not pardon you your trespasses(죄를 범하다, 폐를 끼치다, 재산∙권리에 대한 불법 침해). |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용서를 가장 중요하게 말씀하시고, 모든 신앙 행위보다 앞세우시는 좋으신 분이십니다(막 11:25-26). 막11:26이 개역개정에는 없지만 칼빈주의자의 제네바 성경에는 있습니다. 이 구절을 직역하면 “만일 너희가 용서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죄)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의 소제목을 “믿음의 기도”라고 칭할 수 있듯이, 이 말씀의 핵심 키워드는 ‘용서’와 ‘믿음’입니다. 우리는 흔히 부르짖어 응답받는 믿음의 역사만을 떠올리기 쉽지만, 주님께서는 그 위대한 믿음이 역사하기 위한 영적 토대로서 ‘용서’를 필수적 전제조건으로 제시하십니다. 기독교 기도의 본질은 참된 믿음과 권세 있는 교훈에 기초한 진리입니다. 기도는 믿음과 진리에 수반돼야합니다.
| 마7:28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29.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for He was teaching them as one having authority)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막1:27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세 있는 새 교훈(new doctrine)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
기독교가 아닌 타 종교인들도 각자 자신들의 신에게 정성을 쏟으며 나름 독실한 종교적 열심의 언어로 기도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기도는 인간의 정성이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살아있는 믿음이 수반되어야만 하나님께 상달(上達)되고 응답을 받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설명하시기 전, ‘하나님을 믿으라!’(막11:22)는 강력한 권고를 먼저 하셨습니다.
| 막11:22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
이 믿음의 토대 위에서 성도가 선포하는 언어는 대상에 따라 두 가지로 명확히 분류됩니다. 기도(Pray)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연히 들어주실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직접 말씀드리고 간구하는 것입니다(24, 25).
| 막11:24.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25.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trespasses)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
기도는 자녀들이 아버지께 올리는 것이지만, 명령(Command)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이 아닌 존재들, 즉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모든 피조물을 향해 예수 이름의 권세로 직접 선포하고 의심하지 않고 믿는 신앙입니다.
| 막11: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NIV: does not doubt in his heart) 그대로 되리라 |
참된 믿음이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 좁은 의미의 ‘기도할 권리’뿐만 아니라, 우리를 가로막는 장애물(산)과 어둠의 환경을 향해 당당하게 ‘명령할 권리’도 함께 보장받게 됩니다. 이 명령할 권리는 넓은 의미로는 기도에 포함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든지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과장법을 사용하신 것으로 보면 되고요. 이를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곤란합니다.
● 신령한 기도 이전에 선행되어야 할 것은 용서입니다. 성도가 예수 이름의 권세를 믿으면 영적으로 담대해지고 용감해집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경이 말씀하는 영적 원리를 무시한 채 신비주의자처럼 허황된 마음이 들뜨거나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하고 명령하기 전에, 심령 속에 무엇보다 먼저 용서가 있어야 함을 강조하셨습니다(마11:25, 26). 우리는 아쉬운 것에 대해 기도하기 전에 우리가 이미 하나님께 용서받은 자답게, 우리와 대립하고 있는 누군가를 먼저 용서하여(forgive) 비로소 우리 믿음의 진실함과 온전함으로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기도가 막히는 이유는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미움의 죄가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기도 이전에 믿음이 있고, 믿음의 결과로서 용서가 선행되는 것이 온전한 기독교 신앙의 순서입니다. 막11:26을 보면 용서의 우월적 지위와 영적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개역개정 계열 사본들의 성경에는 마가복음11장26절이 ‘없음’으로 처리되어 있으나, 제네바 성경(1599)에는 명확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영적 ‘싸움’을 싸우는 믿음의 언어(기도, 명령)는 군사처럼 용감해야 하지만, ‘용서’의 영역에서는 순진한 소녀처럼 겸손해야 합니다. 이 둘은 대립되지 않으며, 용서가 믿음보다 우월적인 지위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십자가 복음 안에서 ‘용서해 주고’, ‘용서받는’ 신앙이며, 이 토대 위에서만 믿음이 정상적으로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제네바 성경』으로 막11:26을 직역하면 “만일 너희가 용서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죄)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입니다. 여기서 죄를 뜻하는 ‘trespass’는 도덕적 잘못 외에 법률적으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이라는 의미도 내포합니다. 최고 재판장이신 하나님 앞에서의 영적 소송에서 이기려면, 우리 스스로가 재판관의 자리에서 내려와 나에게 상처 준 이들을 향한 마음의 고소∙고발을 멈추고, 그를 먼저 ‘용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자가 남도 용서해줍니다.
● 명목상의 신자들이 형식적∙습관적 식사기도 외에는 기도를 잘 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와 관련, 기도의 막힌 담을 허는 승리자의 신앙적 비결을 나누고자 합니다. 누군가 오랜 시간 간절히 기도하고, 눈물로 회개하며, 어둠의 세력을 향해 사자처럼 포효(咆哮)하고 절규해도 아무런 결실이 없다면, 내 마음에 도저히 용서하지 못하고 미워하는 누군가가 남아있는지 철저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미움의 쓴 뿌리를 마음에 둔 채 부르짖는 기도는 하늘 문을 열지 못합니다. 우리가 치열한 영적 전쟁에서 날마다 승리하고 최고의 영적 상태를 유지하고 싶다면, 예수님의 말씀처럼 ‘하나님께로부터’ 내 허물을 용서받은 자임을 자각하고 ‘남을’ 먼저 용서하고 신앙적 순결함과 진실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것이 기도의 막힌 담을 허물고 하나님의 관심과 도움을 받는 비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용서의 법칙은 마태복음 6:14-15, 18:21-35 등 성경 곳곳에서 일관되게 선포됩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용서를 우선하고 강조하시는 자비로운 구세주이십니다. 그러나 이 거룩한 용서가 타인의 잘못이나 교회를 무너뜨리는 불의에 대한 ‘무분별한 용납과 방종의 묵인’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복음의 균형에는 균형과 분별이 있습니다. 무분별한 관용을 경계하고 불의에 대해서는 엄중한 태도를 보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복음 전파를 방해하는 세력과 불의에 대해서는 사도들처럼 하나님의 공의를 의지해 올바르게 판단하고 단호하게 대처해야 합니다(행4:19-20, 행5:29). 또한 교회 내에 치명적인 죄악이 존재한다면 불의와 타협하지 말고 정확히 분별하여 권징을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고전5:3-5, 고전5:12-13). 내게 해를 끼친 이웃은 자비함으로 철저히 용서하되, 하나님의 진리를 대적하는 악에 대해서는 공의의 분별력을 유지하는 것이 복음의 균형입니다. 용서 위에 세워지는 권세 있는 성도의 삶이 요구됩니다. 결론적으로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위에 세워진 ‘용서받고 용서하는’ 신앙입니다. 이 위대한 용서가 마음에 먼저 흘러넘치고 이웃과의 맺힌 담이 허물어진 후에야, 우리는 비로소 담대하고 권세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애로사항은 ‘하나님께’ 기도드려 위로와 공급을 받고, 우리를 묶고 있는 ‘하나님이 아닌 모든 불신앙적 환경들’을 향해서는 명령을 내려야 합니다. 날마다 먼저 용서함으로 기도의 문을 열고, 권세 있는 기도와 명령으로 신앙에서 승리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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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코람데오 작성시간 26.06.13 용서와 기도의 능력에 대해서 풀어주시니 유익합니다. 성도에게 있는 영적 무기인 기도는 하나님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강력한 힘인데요. 강력한 힘을 공급 받기 이전에 우리가 먼저 형제의 잘못을 용서해서 거룩함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함을 배웁니다. 손을 깨끗이 하지 않고 어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미움과 분노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거여서 그런 것들이 기도를 막고, 응답을 막고 있는 거겠죠.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았으니 그런 용서와 구원의 감격을 체험한 자들로서 마땅히 우리에게 죄 지은 자들을 우리가 먼저 용서하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라는 걸 상기시켜 주네요.
하나님을 고의로 대적하는 악인들에 대해서는 교회가 단호하게 대처해야겠지만 사람 간의 잘못에 대해서는 악을 악으로 이기려 하지 말고 선으로 악을 갚으라는, 용서의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그래야 기도의 담력이 생기고 응답 받는 기도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잘 명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장코뱅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13 풍성한 댓글에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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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에이프릴 작성시간 26.06.13 내 안의 억울함과 미움의 소송을 먼저 내려놓는 자비로운 용서가 있을 때, 비로소 우리의 믿음이 왜곡되지 않고 하늘 보좌를 움직이는 온전한 기도로 역사할 수 있음을 배웁니다.
아무리 사자처럼 부르짖어도 응답이 없다면 내면에 가로막힌 쓴 뿌리가 없는지 돌아보아야 하며, 하나님께 거저 받은 무한한 용서를 기억할 때 비로소 형제를 품을 수 있는 영적 순결함이 회복됩니다.
내게 해를 끼친 이웃은 철저히 용서하되 진리를 가로막는 악과 불의에는 단호했던 사도들처럼, 사랑의 용서와 공의의 분별력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균형 잡힌 성도의 삶을 살아가기를 결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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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포기브 작성시간 26.06.1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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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에이프릴 작성시간 26.06.13 하나님 아버지, 십자가의 보혈로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내 안의 미움과 쓴 뿌리를 먼저 내려놓고, 이제는 담대한 기도와 권세 있는 명령으로 가로막힌 모든 환경을 다스리며 승리하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