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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 나눔

모든 무너진 자를 일으키시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

작성자장코뱅|작성시간26.06.20|조회수303 목록 댓글 32

성경본문: 시편 145:8-14

제목: 모든 무너진 자를 일으키시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

 

●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은혜롭고 자비하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인자하심이 크신 절대자이며 성도들을 붙들고 돕는 분이라고 믿는 신앙입니다.

시145:8.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Slow to anger and great in lovingkindness) 14.여호와께서는 모든 넘어지는 자들을 붙드시며 비굴한 자들을 일으키시는도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와 그 본성적 특징을 잘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은혜로우시며 자비하시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끝이 없으신 절대자이십니다(시145:8). 여기서 ‘자비’라는 단어는 단순히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넘어, ‘끊임없는 동정심으로 가득 차 있다’는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 속에서 사람의 동정을 받는 것은 때로 비참함을 느끼게 하거나 스스로를 거지처럼 여기게 만들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동정을 받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인생에 임하는 가장 커다란 ‘은혜’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실패하고, 삶이 망가지며, 결국에는 스스로가 보아도 비굴해질 만큼 무너지는 순간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어떤 절망적인 상태에 있을지라도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넘어진 우리를 반드시 다시 일으켜 세워 주십니다(시145:14). 우리는 지극히 당연하고 확실한 영혼 구원 외에도 구원의 다각적 의미(시119:41)를 아울러 알아야 합니다.

시119:41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주의 인자하심과 주의 구원을 내게 임하게 하소서(공동: 사랑을 나에게 베푸시고, 약속하신 당신 구원을 내려주소서)
『제네바 성경』) And let thy loving kindness come unto me, O Lord, and thy salvation according to thy promise.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구체적인 ‘구원’의 역사로 우리 삶에 나타납니다. 칼빈주의자들의 제네바 성경(Geneva Bible)을 살펴보면, ‘kindness’에 대해서

He showeth that God’s mercy and love is the first cause of our salvation. 직역) “그는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이 우리 구원의 첫 번째 원인임을 보여준다.”

라고 각주를 달아 놓았습니다. 『제네바 성경』과 같은 계열의 사본을 번역한 KJV는 이 ‘인자하심’을 단수가 아니라 복수 형태인 ‘mercies’로 표현하였습니다. 왜 복수로 표현되었을까요? 그것은 여기서 말하는 구원이 단지 우리가 죽은 후에 영혼이 천당에 가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이 구원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현세에서 하나님께 끊임없이 공급받는 모든 삶의 자원과 은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사후의 영원한 구원뿐만 아니라, 신자가 오늘날 현실에서 당면하는 수많은 환란과 위기 속에서 건져내시는 구체적인 ‘구호(救護) 조치’로도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구원은 환란 날의 피난처(시59:16)가 되십니다.

시59:16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주는 나의 요새이시며 나의 환난 날에 피난처심이니이다

이 고백에서 다윗은 자신이 죽은 후의 구원을 노래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살아 숨 쉬고 있는 바로 그 당시에, 자신을 죽이려 쫓아오던 원수 사울 왕의 손아귀에서 구출받기(deliver)를 하나님께 간절히 탄원드렸고, 마침내 그 기도에 대한 실제적인 응답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다윗의 환난과 대적들(enemies)의 경우를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유비(類比, analogy)하여 적용해 본다면, 오늘날 우리를 괴롭히는 원수들은 여전히 유사하게 ‘죄와 환난(고질적 문제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고질적 문제들은 육체와 정신을 갉아먹는 ‘산 지옥’을 의미하며, 본질적 죄는 영혼을 파멸로 이끄는 ‘죽은 이후의 찐(眞) 지옥’의 원인자입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은 이러한 죄와 고질적 문제들에 대하여 강력한 구원의 능력으로 나타나며, 그 구원 안에는 내세의 지옥 형벌로부터의 구원뿐만 아니라, 현세의 삶에서 마주하는 모든 문제의 해결도 분명히 포함되어 있음을 우리는 굳게 믿고 고백해야 합니다.

 

● 성도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와 긍휼의 다면적 축복을 받습니다.

히4: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제때에 주시는 도움)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때를 따라 돕는 것은 성도의 필요에 적절히 반응하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우리의 삶 속에서 ‘긍휼’로도 표현되는데, 이 긍휼은 우리의 삶에 '때를 따라 돕는' 놀라운 은혜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성도의 특권입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때’라는 것은 미신이나 다른 타종교에서 흔히 말하는 막연한 타이밍, 혹은 우연히 맞아떨어지는 운수 같은 것이 아닙니다. 이 ‘때’는 하나님께서 정확한 주권 속에서 보고 계시는 ‘우리에게 가장 영적으로, 육적으로 필요한 바로 그 시점’을 의미합니다. 이미 구원을 받은 자가 현재 진행형으로 구원을 받고 있으면 믿음의 인내와 진정한 회개를 합니다. 귀한 하나님의 자녀일지라도 때로는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며 믿음의 인내를 통과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인내는 결코 낙심하는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굳건한 ‘담대함’에서 비롯됩니다. 만약 우리에게 이 담대함이 없다면, 우리는 현실의 무게 앞에 쉽게 좌절하거나 영적으로 침체하고 말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긍휼하심 속에는 영적인 축복(영혼의 구원)뿐만 아니라, 구약 성경의 수많은 용례가 보여주듯이 위기 상황에서 건져주시는 현실적인 공급과 고질적 문제들의 치유와 해결 등 인간 삶의 모든 다면적인 특성이 종합적으로 포함되어 있음을 우리는 통전적으로 파악하고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간구하는 것이 죄를 짓기 위함이 아니요, 개인의 사사로운 과욕(過慾)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정당한 모든 것을 기꺼이 도와주시는 ‘진정으로 인자하신’ 절대자이시며 참 아버지이십니다.

약4:2.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3.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새번역: 자기가 쾌락을 누리는 데에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입니다)
고후1:3.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공: 위로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이시며 4.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진정으로 당당하시고 참으로 인자하시며 의로우신 분이 없습니다. 그에 반해 우리 인간들은 너무나도 낮고 연약하며, 그중 많은 자들은 삶의 무게와 실패로 인해 처지가 더욱 비참하고 비굴해진 실패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비굴해지고 무너진 자들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재기(再起)의 능력’이 되어 주십니다(시145:14).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처한 비참한 환경이나 상황만을 탓하며 불평만 하고 좌절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했던 우리의 믿음 ‘없음’과 믿음의 ‘연약함’을 깨닫고 주님 앞에 겸손히 돌이켜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정한 회개입니다.

 

● 기독교 신자라고 자부한다면 기독교 신앙체계의 핵심 원동력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는 인간의 수양이나 노력으로 도달하는 종교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에 의하여 구원을 받고 삶의 모든 것을 공급받는 은혜의 신앙체계입니다. 그리고 이 위대한 신앙체계를 움직이는 가장 핵심적인 원동력은 바로 하나님의 변함없으신 ‘인자하심’들(mercies)에 있습니다. 이 인자하심(loving kindness)은 세상에서 버림받고, 스스로에게마저 실망하여 무너진 모든 비굴한 자들(시145:14)을 조건 없이 품어주시고 다시 일으켜 세우시는 ‘절대자의 거룩하고 위대한 긍휼’입니다. 기쁜 주일에 자녀들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이 놀라운 사랑과 현실적 구원의 능력을 마음 깊이 믿고, 삶으로 담대하게 고백하며 나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이 우리 구원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의 원인임을 보여주시는 성경 말씀들을 붙잡고 묵상하며 승리를 얻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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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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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장코뱅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20 아멘!
  • 작성자에이프릴 | 작성시간 26.06.20 진정으로 위로와 기쁨의 소식이 되는 귀한 묵상의 글을 올려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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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장코뱅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20 공감과 댓글 매우 고맙습니다^^
  • 작성자코람데오 | 작성시간 26.06.20 너무너무 좋은 말씀이에요. 대부분의,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용기와 믿음을 주는 단비같은 힘이 있다고 할까요.
    처음 믿을 때에는 기도만 하고 나아가면 뭐라도 될 것 같았고, 세상과 우주가 다 내 품 안에 있어서 이루지 못할 일이 없을 것 같이 용기 백배 했는데, 점점 그런 믿음의 용기와 담력들을 잃어버리고 적당히 타협하면서 그래도 이만하면 됐지 하는 마음으로 자위하며 지내왔던 것 같습니다. 비굴한 자들을 일으켜 세우시는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 인자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의 믿음 없음과 연약함을 깊이 회개하고 주 안에서 재기하는 믿음을 보여야 할 때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네요. 귀한 믿음의 묵상에 감사드립니다.
  • 답댓글 작성자포기브 | 작성시간 26.06.20 매우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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